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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월호, 사색의 창] 사막을 건너다 - 김나현

신아미디어 2013. 2. 20. 15:43

"문명이 방치한 것으로 보이는 그곳에도 생명체는 있었다. 내내 눈길을 끈 건 죽은 듯 살아 메마른 땅을 잠식한 덤블링 트리였다. 이 나무는 지나치며 언뜻 보면 마치 가시덤불 같았다. 살아가는 방식이 유목민을 닮았다. 사막이라는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여 살기가 어려우면 미련 없이 뿌리를 포기하고 뒹굴며 새 터전을 찾아 나선다. 줄기만으로 사막을 방랑하다가 물기가 있는 적당한 장소를 만나면 뿌리를 내린다는 나무다."

 

 

 

 

  사막을 건너다  김나현

 

   지난여름은 내게 혹독했다. 찜통더위는 피할 수 없는 철벽을 만들고는 그 안에 나를 가두었다. 몸에서는 빨래한 옷을 짜듯 땀이 흘렀다. 밤이면 낮에 받은 열기로 죽은 듯 널브러졌다가 날이 밝으면 벌레처럼 꿈틀대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거기에 두통과 어깨통증에 설상가상 덮친 불면으로 휘청거렸다.
   가혹한 여름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어찌 짐작했으리. 지난봄에 갔다 온 모하비 사막이 내내 눈에 어른거렸다. 여행했던 라스베이거스의 휘황한 야간 불빛이나 그랜드 캐니언의 장엄함도 아니었다. 푸른 바다를 가로지른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도, 태평양을 낀 아름다운 캘리포니아 해안도 아닌, 온종일 달리기만 한 모하비 사막 길이 줄곧 떠올랐다. 해발 천 미터, 차로 몇 시간을 달려도 끝나지 않을 듯 펼쳐지던 황량한 땅, 물기라고는 없이 바짝 마른 대지에 내리쬐던 고강도의 빛과 볕과 투명한 햇살, 생명체를 미라로 만들려는 듯 뜨겁고 건조한 날씨…….
   문명이 방치한 것으로 보이는 그곳에도 생명체는 있었다. 내내 눈길을 끈 건 죽은 듯 살아 메마른 땅을 잠식한 덤블링 트리였다. 이 나무는 지나치며 언뜻 보면 마치 가시덤불 같았다. 살아가는 방식이 유목민을 닮았다. 사막이라는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여 살기가 어려우면 미련 없이 뿌리를 포기하고 뒹굴며 새 터전을 찾아 나선다. 줄기만으로 사막을 방랑하다가 물기가 있는 적당한 장소를 만나면 뿌리를 내린다는 나무다. 지난여름 내 몸이 하염없이 괴로울 때 이 나무가 떠오른 것은, 나무가 살아가는 방식에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몸의 부족한 수분과 영양 결핍은 메스꺼운 증세로 괴로움을 호소했다. 뒤척이는 밤이 잦았다. 사막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있는 곳이 지독히 견디기 어려운 사막이었다. 외로움은 당하는 것이고 고독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던가. 그러나 나의 고독한 여름은 결코 나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어느 때부터 그 길에 들어서서 황량한 땅을 터벅터벅 걷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처음엔 그처럼 막막한 여행길이 될 거라는 것을 예상조차 하지 못한 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막을 떠올리면 <어린 왕자>가 먼저 떠올랐다. 이어 모래바람이 불고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메마른 땅이 겹쳐졌다. 그러나 막상 가서 본 모하비 사막은 막연히 생각했던 모래땅이 아니라 지독히 건조한 황무지였다. 광활하고 황폐한 대지에 건초더미 같기도 하고 덤불 같기도 한 나무가 마른 땅을 덮다시피 널려있었다. 그 경이로운 광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땅에 납작 붙어 자라는 나무의 습성은 고지대의 세찬 바람에 견디려는 생존본능인가 보았다. 그 나무 한 포기를 뽑아다 집 화분에 심고 싶었다. 나무에는 못할 짓이지만 나무를 보며 그곳의 바람과 햇살을 떠올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막의 물류거점 도시 바스토로 가는 길은 높은 건물도, 막힌 산도 없어 가슴이 뻥 뚫렸다. 쭉 뻗은 도로와 대지라는 말이 어울리는 너른 땅이 대형 입체영상처럼 버스 앞 차창으로 안겨들었다. 차량정체 없이 달린 사막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길 또한 황무지여서 황폐했던 게 아니라 시야에 막히는 것이 없어 통쾌했다. 기력이라곤 다 빠져나간 껍데기 같은 몸으로 버틸 동안 마음은 그 고속도로를 달리는 꿈을 꾸었다.
   약 복용과 물리치료를 병행하며 가을을 넘기고 겨울을 맞았다. 활동하는 낮에는 좀 견딜 만하다가도 날이 저물면 머리가 묵직해 온다. 잠시 집 앞에 나갔다 오려 한 외출이 여의찮게 긴 여행이 되어버린 격이랄까. 어깨 치료를 하는 의사는 스트레스성이라고 하고, 주치의 격인 동네 내과병원 의사는 갱년기 증상이라고 했다. 어쨌든 누군가와 함께 앓을 수 없는 고독에 길들어야 했다.
   흔히 아파 보면 인생관도 바뀐다고들 한다. 나도 이만큼 고통을 받기 전에는 다른 이의 아픔도 어쩌면 건성으로 대했으리. 겪어보고서야 비로소 남의 사정도 헤아리게 되니 한 치 앞도 모르는 사람 마음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를 깨닫는다.
   아무튼 여행의 아스라한 기억이 한 줄기 단 바람이 되어준 것은 사실이다. 백여 개의 짐칸을 달고 긴 짐승처럼 땅을 가로지르던 화물 기차나 산 정상에서 위풍당당하게 돌아가던 수많은 풍차며, 산뜻한 원색에 세련된 차체를 저마다 뽐내며 달리던 대형 운송 트럭들,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어마어마한 높이로 기선을 제압하던 바위산과 그 꼭대기에서 쏟아지던 폭포……. 규모에서부터 놀라웠던 그런 것들이 지난 꿈처럼 아스라이 그립다. 지난 여행을 반추하는 것은 여행할 수 있는 건강을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리.
   아등바등 건너온 지난여름은 나만의 사막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 여름은 벌써 물러갔지만 나는 아직 후유증을 다스리는 중이다. 고독할 때 위안이 되어준 덤블링 트리를 떠올린다. 군락을 이뤄 서로 의지하는 그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 대형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파노라마처럼 달려오는 이국의 길을 달려보고 싶다.

 

 

김나현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바람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