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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월호, 사색의 창] 잊어야 하는 말 - 김월미

신아미디어 2013. 2. 20. 15:48

"젊은 시절 자신의 사려 깊지 못한 무심한 말들을 가슴에 칼날처럼 꽂으면서 살아온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여 나이가 들수록 외로워지는 남편. 그런 남편의 타고난 성품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아내는 남편이 뱉은 수많은 말들 중 자신에게 상처가 되어있는 말들만 골라서 소의 위처럼 되새김질하고 있으니…….  생각 없이 버릇처럼 우리가 뱉어버린 말. 그저 산이고, 바다며, 꽃이고, 최고라고 하는 그 모두는, 사물과 생각을 일컫는 ‘말[言語]’일 뿐. 결코 그 말이 사물, 생각 그 자체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잊어야 하는 말  김월미

 

   흐릿한 날은 잿빛으로, 맑은 날에는 핑크빛으로, 안개가 자욱한 날엔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 북한산은 이른 아침 창을 열면 항상 거기에 있다. 내 시야에서 변화를 일으킬 뿐 산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다.
   나도 그 자리에 그대로 변함없이 있고 싶은데 수시로 변한다. 화를 내지 않겠다고 결심을 해도 참기가 어렵다. 오랜만에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사랑하는 친구들과 만나서 쓸데없는 논쟁에 휩싸여 오가는 말장난에 화를 내게 되고 곧바로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마음과 일치하지 않는 말이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상대방의 말이 서투르고 어색하여 실수를 하면 그 말이 그 사람의 전부인 양 그것으로 마음까지 판단해 버린다. 쉽게 뱉어버리는 말보다 진심 어린 마음을 더 소중히 알고, 가벼운 말 따윈 잊어야 하는데 가끔 그러지를 못하고 갈등을 겪는 부부를 보게 된다.
   나도 그들도 잊고 사는 것이 많은 것 같다.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추운 곳이 있고, 아무리 재산을 비축하고 건강을 챙기며 많은 것을 가져도 다 가져갈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
   결혼한 부부들은 자신의 성혼서약이 지켜야 할 평범한 진리임을 잊어버리고 허둥대며 살고 있다. 반면에 좋아하는 색과 싫어하는 색을 찾아서 색깔을 구별하려고 한다. 그 색깔도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잊어도 될 것을 잊지 않으려 애를 쓴다.
   말의 논쟁이 판을 치며 서로를 헤집고 있다. 눈을 치켜뜨고 나는 너를 떨어뜨리겠다며 말을 앞세우는 모습이 너무 악착스러워 흉하게 보인다.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보이고 생각을 말하고 서로의 의견을 아우르며 타진하는 대권후보자들의 자리가 싸우는 장소가 되었다. 오래전의 잘못들을 잊지 않고 끄집어내어 헐뜯고 있다. 말장난이 도를 넘는다. 보수건 진보건 밝은 미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과거의 어두운 모습을 찾아내어 말로 정곡을 찌르며 잘도 헐뜯는다.
   덕이 없어 보이는 삭막한 자리다. 그곳에는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며 싸우는 어리석은 부부의 모습도 보인다.
   내가 아는 지인은 불혹도 이순도 다 넘긴 나이까지 왔건만 결혼한 후부터 줄곧 남편이 자기를 비하한 말들을 잊지 않으려 애를 쓴다.
   최고의 대학을 나온 남편은, 여고만 나온 아내를 말끝마다 무식하다, 못 배웠다, 머리가 안 돌아간다는 등 서슴없이 한 말이 아내의 가슴에 못처럼 박힌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만한 버릇이 고쳐지지 않는다. 남편의 그런 만행을 여태 잘 참아왔건만 나이가 들수록 참아지지 않는다는 아내는 이혼이라도 불사하겠다니 작은 증오의 대상이 복수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 부부를 보며 새삼 말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를 미워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그 남자의 성정은 누구에게나 말을 심하게 하며 그렇게 대했는데, 가장 가까운 사람이 그 말 때문에 상처를 많이 입은 것이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젊은 시절 자신의 사려 깊지 못한 무심한 말들을 가슴에 칼날처럼 꽂으면서 살아온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여 나이가 들수록 외로워지는 남편. 그런 남편의 타고난 성품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아내는 남편이 뱉은 수많은 말들 중 자신에게 상처가 되어있는 말들만 골라서 소의 위처럼 되새김질하고 있으니…….
   생각 없이 버릇처럼 우리가 뱉어버린 말. 그저 산이고, 바다며, 꽃이고, 최고라고 하는 그 모두는, 사물과 생각을 일컫는 ‘말[言語]’일 뿐. 결코 그 말이 사물, 생각 그 자체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산을 바다를 알고 말하는 걸까? 최고가 무얼 의미하는 걸까, 또 얼마만큼이 최저일까, 그것들은 단지 입에서 나와 사라지는 말임을 알고 우리는 그 말의 장난에 흔들리지 말고 사람을 느껴야 한다.
   결혼 후에도 성혼서약 때처럼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질 못한다. 조금 알고 조금 젖어들어 조금 심취하면 다 아는 것처럼 말을 앞세운 자기주장만으로 내 인생관, 내 종교관만 옳고 타당하다고 하며 좋아하는 색, 싫어하는 색을 분별하려고 우격다짐한다. 부끄러운 모습들이다. 몰라서 지나쳐버릴 수 있었던 그때의 단순한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그리운지. ‘알면 다친다.’는 속어처럼 들리던 말이 예사로운 말이 아니었구나 싶다.
   말이 난무하여 서로의 마음을 잊기 쉬운 세상에 살고 있다. 지인을 보며 나를 돌아본다. 결혼 때 맹세하였던 말, 주례의 말 그 모두는 잊어도 그때 간직했던 마음은 잊지 않아야겠다.
   술을 먹고 거칠게 떠들다 잠이 든 남편의 모습을 본다. 그도 나처럼 나의 보기 싫은 모습을 많이 참아 주었구나 싶다.
   지금 내가 보는 산은, 예전 그대로인데 다만 봄이 아닌 백설의 겨울이 와 있다.*

 

 

김월미  -----------------------------------------------

   ≪수필과비평≫ 등단,  저서: ≪오음계≫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