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나 지났을까. 질문은 다시 질문을 잇고 있다. 인간도 단지 먹이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그리고 이겼다는 것으로 모든 것은 정당화되는 것인지? 모든 것이 먹이경쟁을 위한 것이었다면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거나 자기기만일 뿐 아닌가. 결국 인간의 싸움도 단지 먹이경쟁과 종족번식을 위한 선택이라면 동물들의 행태나 다르지 않은 것이기에 밤새 묻기는 했지만 유구무언인 채 아침을 맞는다."
겨울로 가는 아침 - 이종전
뒤척거리기를 얼마나 했을까. 겨우 잠이 들었는가 싶더니, 이내 비몽사몽간에 생시의 생각이 이어진다.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래, 다 잊자. 그냥 떨쳐버리자. 그런 놈도 있고 저런 놈도 있는 것이지. 왜 이리도 아픔을 느껴야 하는가.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내일을 위해 자야 한다.’ 하지만 점점 침대가 무거워 견딜 수 없다.
더 이상 누워 있을 수 없어 결국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답이 없는 질문은 아픔을 더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다시 묻는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해야 하는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뜬눈으로 하얀 밤을 새워야 하는지?
사유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인간은 다른 생명들에 대해 스스로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다. 굳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우월감을 가지고 만물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정녕 인간은 다른 존재에 비하여 우월한가? 비록 미물의 존재도 동족간에는 생존을 위해 경쟁은 하지만 공존을 위한 협력과 배려를 본능적으로 하는데 인간은 어떤가.
같은 종種이고, 다르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기에 답이 궁하기만 하다. 자신만 백로이기에 다른 사람을 모두 까마귀라고 할 수 없는 것이 한계이니 어쩌겠는가. 오히려 밤새 묻고서도 변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유구무언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럼에도 그럴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분을 삭이기가 어렵다. 할 말을 잊은 채 멀리 창밖을 응시한다. 어느새 먼동이 트고 있다. 낮게 내려앉은 구름이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회색빛 도심의 아침 고요를 지배하고 있다. 마치 밤새 응어리를 내려놓지 못한 채 자신에게 묻다가 미명을 응시하고 있는 내 마음처럼.
짐승들의 생존 원리는 단순하다. 끊임없이 먹이를 찾는 것이고, 종족번식을 위하여 짝을 찾는 것이며, 새끼를 길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생존의 목적이고 과정이며 의미다. 때문에 미물의 짐승일지라도 생존과 종족번식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싸운다. 철저하게 자연 질서와 이치를 따른다. 그렇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물들은 동물답게,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것을 탓하거나 어리석다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인간이 더 어리석은 것이리라.
하지만 동물에 비교하기엔 자존심이 상한다. 동물들처럼 오직 자신의 먹을 것을 위해서 선택하고 행동한다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곧 ‘너’는 ‘나’에게 있어서 단지 먹이경쟁에서 이겨야만 하는 대상일 뿐이란 말인가. 그리고 ‘나’는 ‘너’의 경쟁의 대상일 뿐인가. 먹을 것을 차지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도 괜찮은 것인가. 생존과 종족번식을 위해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고, 자신에게 유익하다면 무엇이든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인가.
얼마나 지났을까. 질문은 다시 질문을 잇고 있다. 인간도 단지 먹이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그리고 이겼다는 것으로 모든 것은 정당화되는 것인지? 모든 것이 먹이경쟁을 위한 것이었다면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거나 자기기만일 뿐 아닌가. 결국 인간의 싸움도 단지 먹이경쟁과 종족번식을 위한 선택이라면 동물들의 행태나 다르지 않은 것이기에 밤새 묻기는 했지만 유구무언인 채 아침을 맞는다.
창밖엔 점잖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다. 이른 아침 생존경쟁의 현장으로 향하는 그들이 전장戰場에 나가는 군인들처럼 보이는 것은 밤새 스스로에게 물었던 자의 왜곡된 시각일까.
하지만 정당하게 일하고 그 대가로 사는 것이야 옳은 것 아닌가. 정당하지 못한 경쟁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손해와 화를 입히면서 자기 몫을 더 챙기려는 것이 문제일 뿐. 비록 생존경쟁을 하더라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인간됨에 대한 확인을 동반하게 할 것이다. 이웃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서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은 인간으로서 다름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땀을 흘리지 않고 자신의 몫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꽤나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은 저 출근길 대열에 없을지도 모른다. 굳이 이른 새벽부터 일터로 갈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어딘가에서 또 다른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자신의 몫으로 챙길 수 있는 것이 보이면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악어가 먹잇감을 물고 온몸을 뒤틀어 자신의 몫으로 챙기듯이 이를 악물고 차지하고야 말테니 굳이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겠는가.
밤새 묻고도 답을 찾지 못한 채, 멀리 흑백 활동사진 되어 종종걸음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응시하며 겨울로 가는 아침을 맞는다.
이종전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서 있는 바람≫, ≪철없는 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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