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자본주의, 물질주의를 풍자하는 ‘강남스타일’이란 단어는 삽시간에 유행어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 싸이는 기존 뮤직비디오의 전형적인 문법을 파괴하는 그만의 스타일, 그 특유의 흥겨운 말춤으로 세계인의 넋을 빼놓았다. 그의 성공은 철저히 그만의 개성이 발휘된 결과이다. <강남스타일>의 세계적인 성공을 보면서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은 항상 기존의 스타일을 과감하게 전복하는 그만의 스타일, 새로움, 독창성에 의해서만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필과비평≫ 134호에서 다시 읽어볼 만한 작품으로 박정옥의 <그날 나는>, 우종률의 <툭툭툭 쿵쿵쿵>, 김원의 <헌 책은 쌓이고>을 꼽고 싶다. 3편의 작품은 각각의 뚜렷한 개성적 스타일을 보여주는 동시에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까지 갖추고 있다"
자기만의 스타일,그리고 공감의 보편성 - 송명희
월드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이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올해의 가장 주목받은 영상’에 선정됐다. <강남스타일>은 유튜브에 게시된 지 불과 6개월 만에 10억 건에 육박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 조회 수는 유튜브에 올려진 기존 동영상을 통틀어 최다의 기록이라 한다. <강남스타일>은 24개 언어로 번역됨으로써 그야말로 한류의 세계화를 세계인의 뇌리에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강남스타일>의 성공에 문화평론가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기에 바쁘다. 특히 십대가 판을 치는 한국 가요판에서 어떻게 외모조차 너무 평범하게 생긴 삼십대 후반의 남자가 다른 K팝 가수들을 제치고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랐는지에 대해 해석이 구구하다.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물질주의를 풍자하는 ‘강남스타일’이란 단어는 삽시간에 유행어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 싸이는 기존 뮤직비디오의 전형적인 문법을 파괴하는 그만의 스타일, 그 특유의 흥겨운 말춤으로 세계인의 넋을 빼놓았다. 그의 성공은 철저히 그만의 개성이 발휘된 결과이다. <강남스타일>의 세계적인 성공을 보면서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은 항상 기존의 스타일을 과감하게 전복하는 그만의 스타일, 새로움, 독창성에 의해서만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필과비평≫ 134호에서 다시 읽어볼 만한 작품으로 박정옥의 <그날 나는>, 우종률의 <툭툭툭 쿵쿵쿵>, 김원의 <헌 책은 쌓이고>을 꼽고 싶다. 3편의 작품은 각각의 뚜렷한 개성적 스타일을 보여주는 동시에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까지 갖추고 있다.
자기반영적 성찰
박정옥의 <그날 나는>은 화가이기도 한 작가의 화실 환풍구에 몰래 둥지를 튼 비둘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품은 “분명 새끼 새소리였다. 짧았지만 높고 가녀린 것으로 보아 새끼새가 틀림없었다.”로 시작한다. 이 작품은 작가가 자신의 화실이 있는 건물에 비둘기가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어떻게 비인간적인 행동을 해왔는지를 반성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의 자신에 대한 자기반영적이고 성찰적인 의식은 손거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나는 긴장한 나머지 붓을 든 채 살금살금 걸어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놀랍게도 소리가 난 곳은 내가 시도 때도 없이 네모 판자를 두들겨 기어이 비둘기를 쫓아내고야 말았던, 바로 그 환풍구였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서 또 새소리가?
믿기지 않던 나는 작은 손거울을 찾아들고 조심스레 의자에 올라섰다. 괜히 다리가 후들거렸다. 벌어진 틈새로 가만히, 아주 가만히 거울을 비춰보았다. 틈이 너무 좁아 내부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낑낑거리며 각도를 조금씩 바꿔 보던 나는 거울 속에서 쥐눈이콩 같은 새끼새의 까만 눈과 그만 탁, 마주치고 말았다. 거울에 비친 나를 먼저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흠칫 놀란 나는 거울을 슬그머니 거둬들였다. 그리고 소리 없이 내려와 의자를 조용히 치우고 복도 문은 닫지도 못한 채 까치발로 걸어 내려왔다.
-<그날 나는>에서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대목을 살펴보자. 작가는 손거울을 들고 그의 머릿속을 날카롭게 건드린 소리의 정체를 찾아 환풍구 속을 이리저리 비춰보는데 “거울 속에서 쥐눈이콩 같은 새끼새의 까만 눈과 그만 탁, 마주치고” 만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깃털도 성글고 몸도 야윈, 아주 작은 새끼새 두 마리가 서로 꼭 붙어” 있는 비둘기 새끼의 가녀린 모습이었다. 그 순간 작가는 흠칫 놀라 슬그머니 거울을 거둬들이고 “소리 없이 내려와 의자를 조용히 치우고 복도 문을 닫지도 못한 채 까치발로 걸어” 나온다. 그리고 소리 없이 짐을 싸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화실에 나가지 않는다.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을까? 그것은 어린 생명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이자 그동안 그가 가냘픈 생명을 향해 어떤 만행을 저질러 왔는가에 대한 반성이자 부끄러움으로부터 나온 행동이었다. 그의 눈이 손거울 속에서 마주친 것은 가녀린 비둘기 새끼의 쥐눈이콩 같은 까만 눈이었지만 그 순간 그의 내면이 마주친 것은 그 자신을 돌이켜보는 콩알만 한 양심, 그리고 부끄러움이었을 것이다.
그때 작가가 손에 든 거울은 어두운 환풍구 속을 향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은유적 거울은 자신의 내면을 향한 반사경이었다. 거울은 태고부터 인식, 특히 자기인식의 수단이었다. 인간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해왔다.
시인 윤동주가 <참회록>에서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라고 녹이 낀 청동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참회하는 것, 또한 <자화상>에서 ‘우물’이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대해 느끼는 미움과 연민과 그리움이란 복합감정 역시 자기성찰에서 나온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서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윤동주 <자화상> 일부
그동안 작가는 “환풍구 속에 들어가 있는 비둘기를 내쫓기 위해 환풍기부터 틀었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옥상에 올라가 손사래를 쳐댔다. 환풍기를 켜도 달아나지 않을 땐 창문 밖으로 긴 막대기를 내밀어 쫓아내”는 행동을 하여 비둘기를 쫓아냈고, 비둘기들이 반대편으로 달아나자 하루에도 몇 차례씩 환풍구가 있는 네모 판을 막대기로 두드려 댔던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자행된 인간의 무차별 공격에 불안과 공포에 떨었을 비둘기 새끼들은 생존을 위해 어미를 찾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는 것을 작가는 뒤늦게 깨닫는다.
이웃집 건물주가 자신의 집 주변을 더럽히고 있으니 화실 건물의 비둘기를 쫓아내달라는 요청에 자신도 “비둘기 떼들이 이곳에 집을 지어 알을 낳게 되면 옥상과 외벽을 순식간에 점령해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럭 겁이 나서 비둘기를 내쫓는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비둘기들을 다 쫓아냈다고 생각하며 안도와 만족이 뒤섞인 숨을 쉬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편이 불편했던 것은 30년 전 주인이 갑자기 집을 팔아버려 전세 살던 집에서 거의 강제로 쫓겨나 어린 아이들과 함께 오갈 데가 없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도 잠시, 그는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을 수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작품 수정에 몰두하고 있던 그의 귀에 새끼새의 소리임에 분명한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그의 머릿속을 날카롭게 건드렸던 소리의 정체를 찾아 나선 그가 발견한 것은 그동안 생존을 위해 울음소리조차 삼키며 부들부들 떨었을 어린 생명이었던 것이다.
수필은 1인칭의 경험적 화자가 등장하여 서술하고, 작가 자신을 글 속에 솔직하게 드러내는 경험적이며 고백적인 문학양식이다. 미셀 푸코의 말대로 고백이란 진실을 산출하는 데 가장 가치 있는 기법들 중의 하나이다. 몽테뉴 이래로 수필은 그 장르적 성격에서 자신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고백적 요소가 본질의 하나가 되어 왔다. <그날 나는>에서 솔직하게 드러낸 자기반영적 자아성찰은 독자들의 동일시와 공감을 이끌어내게 한다. 즉 인간이 자연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대신 자연에 대해 어떠한 만용과 횡포를 자행해 왔는가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기성찰로 독자들을 유도한다. 그리고 서술어가 생략된 제목 역시 강하게 독자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데, 이것이 바로 생략의 힘이다.
묘사적 문체의 힘
우종률의 <툭툭툭 쿵쿵쿵>은 제목에서 두 개의 의성어를 대비시킴으로써 작가가 의도한 주제를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툭툭툭’은 가을에 도토리가 익어 저절로 떨어지는 소리이다. 그 소리는 “닫힌 영혼에 용기와 꿈을 실어주는” 경쾌하고 아름다운 소리이다. 반면 ‘쿵쿵쿵’ 하는 탁음은 “나무는 참으려고 하지만 흘러내리는 피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 내지르는 비명소리이다. 사내 둘이 억지로 도토리를 따기 위해 돌과 망치로 참나무를 내려치자 나무는 쿵쿵쿵 신음소리를 낸다. 이 신음소리는 나무에게서만 들려오는 것이 아니다. 산비둘기는 ‘구-구’대다 숨을 죽이고, 산까치는 ‘안 돼, 안 돼.’를 외치며 계속 퍼덕이고 있다. 인간들의 횡포에 자연의 아름다운 교향악은 정지하고 숲의 조화는 깨어지며 바람마저 숨을 멎는다.
사내 둘이 돌과 망치로 참나무를 내리치고 있다. 흔들리는 건 나무만이 아니다. 산비둘기는 안타까워 ‘구-구’대다 숨을 죽이고 산까치는 ‘안 돼, 안 돼.’를 외치며 계속 퍼덕이고 있다. 그들은 발아래 떨어지는 채 익지도 않은 열매들을 보고 신이라도 난 듯 더욱 세게 나무를 때린다. 온 산이 흔들린다. 자연의 교향악은 일시에 정지한다. 함초롬하게 아침이슬 머금은 아파리들 사이로 일렁이는 바람, 중간중간 울리는 도토리의 낙하는 트라이앵글처럼 얼마나 적절한 삽입음인가. 그들을 찬양할 숲의 조화가 깨진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바람마저 숨을 멎고 있다. “쿵쿵쿵” 탁음이다.
-<툭툭툭 쿵쿵쿵>에서
이 수필에서 돋보이는 것은 작가의 예리하고도 뛰어난 관찰력이다. “토실토실하고 반질반질한 것이 움칠움칠하더니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떼구르르 굴러간다. 잠시 낙엽 위에 앉더니 다시 달아난다. 낙엽과 동색이다. 설핏 봐선 구분이 가지 않지만 도토리는 조금 더 빛난다.”에서 보듯 작가의 뛰어난 관찰은 감각적이고 묘사적인 문체로 재현되며 이 글의 개성적 인상과 분위기를 창조한다.
묘사란 대상을 모양, 색깔, 향기, 감촉, 소리, 맛 등 오감을 동원하여 그려내는 기술방법이다. 묘사는 대상에 대한 인상을 실감 있고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의 감각을 환기한다. 한마디로 묘사는 독자의 감각에 호소하는 서술방식이다. 그것은 독자의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게 하며, 그 글을 사실적이고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든다. <툭툭툭 쿵쿵쿵>을 읽을 때 독자들이 작가와 같이 가을 숲 속에 들어선 것과 같은 생생한 착각과 상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은 작가의 묘사적 문체가 생생하고 구체적인 실감을 불러일으켰기에 가능했다.
‘툭툭툭’과 ‘쿵쿵쿵’은 단지 소리의 경쾌함과 둔탁함이라는 점에서만 대비되지 않는다. 전자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상태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소리이며, 후자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파괴하는 데서 나오는 부조화의 둔탁한 신음소리이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의 대비가 아니라 세계관의 대비이다.
우종률은 구태여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생태주의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툭툭툭’과 ‘쿵쿵쿵’의 대비를 통해 충분히 다 전달하고 있다. 그의 글에는 관념어가 아예 배제되어 있다. 그는 “이 계절이 다 갈 때까지 숲에선 ‘쿵쿵쿵’, 참나무의 신음소리만 소소하게 들릴 뿐이다.”라는 말로 인간의 무한정한 욕심 때문에 자연 상태의 숲의 조화가 어떻게 깨어지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즉 인간 중심의 자연 지배적 세계관을 비판한다. 생명적 관점에서는 인간이나 자연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명 중심적 평등(biocentric equality), 즉 심층생태주의의 주제를 강하게 환기하는 것이다.
경험의 보편성과 개성
김원의 <헌 책은 쌓이고>는 누구나 경험하고 있는, 자꾸만 쌓여가는 책을 처리하면서 느낀 안타까움에 대해 쓰고 있다. 대학에서 정년 할 때에 만여 권의 도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다 운 좋게도 대학도서관에 기증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현재 한정된 서가에 무한정 쌓이는 책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밖에다 내어놓을 결심을 그는 하게 된다.
쌓이는 책의 처리에 대한 고민은 그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작가들과 교수들이 경험하고 있는 보편적 고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경험의 보편성이란 측면에서 이 수필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머문다면 개성을 드러내야 하는 수필의 본질에서 어긋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에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헌책에 대한 그 특유의 의식과 사랑이다.
헌 책은 많이 읽힌 책이고 새 책은 한 번도 읽히지 않았다는 게 아닌가. 책은 읽힘으로써 그 소임을 더해가는 게 아닐까. 누군가에게 읽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따뜻한 눈동자가 머물렀을 것이고, 그래서 사람의 온기가 스며들었을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만큼 행복한 책이 어디 있을까.
-<헌 책은 쌓이고>에서
그는 많이 읽히고 누군가로부터 듬뿍 사랑을 받았던 헌 책을 행복한 책으로 규정한다. 헌 책은 단지 낡은 책이 아니라는 그의 독창적인 의식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독특한 발상이다. 자신으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던 책을 어쩔 수 없이 서가에서 퇴출하려고 노끈으로 단단히 묶으면서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더 어렵고 가슴 아프다. 내 손때 묻고 온기가 배어 있는 책을 누구에게 준다는 말인가. 마치 힘들여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아비의 심정이 이러할까.”라고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토로한다.
책을 밖으로 내놓을 때의 심정을 “힘들여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아비의 심정”에 비유한 것도 아주 유니크하다. 과년한 딸을 평생 끼고 같이 살 수도 없어 시집을 보내지 않을 수 없지만 소중한 보물을 내어놓아야 하듯 억울한 것이 딸을 시집보내는 아비의 심정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손때가 묻고 사랑이 배어 있는 책을 더 이상 가지고 있을 수가 없어 누군가 새로운 주인을 만나 사랑받기를 바라면서 내어놓을 때 느끼는 양가감정이 적절한 비유를 얻음으로써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의 퇴출하는 책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은 다음과 같은 염원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자신이 내놓은 책이 엄동설한에 바깥에서 비바람에 떨거나 재활용 공장으로 가지 말고, 찢겨서 연초를 말아 피우는 데, 아궁이의 불쏘시개, 재래화장실의 밑씻개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염려한다. 자신이 내놓은 책이 누군가에게 가서 새 보금자리를 얻어 더 큰 서재에서 후한 대접을 받으며 시력이 좋은 주인으로부터 따뜻하고 애정 어린 눈으로 읽히고 또 읽히며 오래오래 사랑받아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글은 헌 책을 떠나보내면서 쓴 일종의 별사別辭이다. 떠나보내는 헌 책에 대한 아쉬움과 애정을 듬뿍 담아 쓴 이별의 헌사인 것이다. 그는 책과의 별리別離의 감정을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더 어렵고 가슴 아프다.”라고 표현하는데,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이 어찌 책에 대해서만 해당될까? 인간은 욕망의 수레바퀴를 끊임없이 굴려나간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이 수레바퀴를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욕망을 비우고, 줄이고, 내려놓는 것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는 “채우는 것도 좋지만 비우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걸 알아차렸다.”와 같은 예사롭지 않은 깨달음에 이른다. 작가의 연령과 경륜에서 우러나는 깊이를 담고 있는 통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날 나는>과 <툭툭툭 쿵쿵쿵>은 우연하게도 생태주의적인 주제에서 유사성을 나타냈다. 두 작품 다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인간과 자연의 상생과 조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헌 책은 쌓이고>도 비움의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를 담았다는 점에서 크게 볼 때에 위의 두 작품의 생태주의적인 주제와 서로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3편의 작품들은 각각 자기만의 개성적인 스타일을 통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개성과 보편성이라는 모순적 가치를 잘 조화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송명희 -------------------------------------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6대 회장 역임, ‘한국언어문학교육학회’ 회장(현), 해운대포럼 회장 역임, 달맞이언덕축제 운영위원장 역임. 부경대학교 우수교수업적상, 부경대학교 학술상, 이주홍문학상, 봉생문화상, 한국비평문학상 수상. 저서: 수필이론서 ≪디지털시대의 수필 쓰기와 읽기≫, 에세이집 ≪여자의 가슴에 부는 바람≫, ≪미주지역한인문학의 어제와 오늘≫, ≪권력과 젠더 그리고 몸≫, ≪타자의 서사학≫, ≪시 읽기는 행복하다≫, ≪소설서사와 영상서사≫, ≪여성과 남성에 대해 생각한다≫ 외 저서 및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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