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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북장단, 발장단 - 이용미

신아미디어 2013. 2. 18. 19:03

"그리워 가슴 저리거나 통한의 애절한 사모곡 속 어머니도 아닌데 내 어머니가 떠올라 가슴 한쪽을 메운다. 내 어머니가 노래라고 부르던 흥얼거림은 기껏해야 본인의 한풀이 같은 푸념에 불과했다. 정확한 음정 박자도 없이 아무렇게나 되풀이되는 가락은 단조롭고 재미도 없는데 묘하게 가슴을 후비는 설움 같은 게 있었다. 그게 싫어서 “그만 좀 하라고, 노래도 아닌 것을 듣기 싫게 흥얼거려 시끄러 죽겠다.”라고 짜증을 내면 멋쩍은 듯 욕 한마디 뱉으며 멈추시던 어머니."

 

 

 

 

 

  북장단, 발장단  이용미

 

   눈으로의 짜릿한 교감이었다. 바깥 날씨의 후끈함을 넘어 온몸으로 퍼지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주체할 수 없는 열기는 옆 사람 의식할 여유도 필요도 없이 그렇게 활활 타올랐다. 타올라 훨훨 산화될 것 같은 열기로 가득했다. 산골에 자리한 〇〇농악전수관에서 펼치는 젊은 전수자의 신명나는 북춤 한마당.
   크거나 특이할 것도 없는 밋밋한 북 하나를 가지고 그 오묘한 표정과 몸짓으로 사람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엎었다가 뒤집어 마술이라도 부리는 것 같았다. 우리 악기, 우리 장단의 신나고 기막히고 애절하고 관능적인 매력이 이런 것인 줄 미처 몰랐다. 같이 어우러져 목청껏 목젖을 울리고 손바닥 넓게 펼쳐 아프도록 탁탁 쳐댔다. 좋다, 즐겁다. 그런데 뒤에 싸하게 남는 이것은 무엇일까? 다 같이 공감하는 민족의 한인가. 나만의 한인가. 북춤을 끝내고 나가는 청년의 뒷모습에 남는 애잔함은 또 무엇인가.
   그리워 가슴 저리거나 통한의 애절한 사모곡 속 어머니도 아닌데 내 어머니가 떠올라 가슴 한쪽을 메운다. 내 어머니가 노래라고 부르던 흥얼거림은 기껏해야 본인의 한풀이 같은 푸념에 불과했다. 정확한 음정 박자도 없이 아무렇게나 되풀이되는 가락은 단조롭고 재미도 없는데 묘하게 가슴을 후비는 설움 같은 게 있었다. 그게 싫어서 “그만 좀 하라고, 노래도 아닌 것을 듣기 싫게 흥얼거려 시끄러 죽겠다.”라고 짜증을 내면 멋쩍은 듯 욕 한마디 뱉으며 멈추시던 어머니.
   어머니는 노래 말고도 동네 놀이마당에서 장구를 치셨다. 언제 어디서 배우셨을까. 익숙한 솜씨로 장구채를 쥐고 사람들 사이를 휙휙 오가며 신나 하셨다. 그것도 싫었다. 장구 멘 자리 멍이 들도록 벗을 줄 모르고 쳐대는 이유가 대체 뭘까. 그 답을 이 마당에서야 알 것 같다면 억지인가? 삶을 즐기려고, 삶을 보듬으려고, 삶을 넘기려고, 가지가지 맺히고 얽힌 한 풀려고, 펼치려고, 던지려고 굽이굽이 구절구절 읊고 넘기며 꺾었던 것을, 마음으로지만 왜 그리도 매몰차게 쥐어박듯 어머니를 몰아세웠을까. 그 한, 그 설움 한번이라도 들어볼 생각이나 했던가. 술에 취해서 ‘우리 막둥이, 불쌍한 우리 막둥이’ 하는 소리도 싫었다. 주위 환경과 내 처지를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히 불쌍할 게 없는데 왜 그리도 불쌍하다 했을까. 당신 한恨 자락 하나 나도 걸치리라 미리 생각하셨을까?
   한번도 어머니와 진정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려서는 워낙 늦게 둔 막내라 당신의 속내를 털어내도 들어줄 요량이 못 되는 것으로 아셨을 게다. 커서는 바라는 어머니상이 아니라는 생각에 내가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결혼해서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참 어이없는 이유들로 부딪힘의 기억만 선명히 남은 채 지금에야 내 가슴으로 퍼지는 어머니의 한과 불쌍하다는 의미를 알 것도 같은데 영영 이별한 지 20년도 넘었다. 딸의 도리에 앞서 어머니의 의무와 도리만 바라고 요구하며 들어주지 않음을 속상해하고 원망한 난 어머니의 무엇이었을까.
   원인 모르게 시름시름 앓는 병은 바로 아래 여동생이 먼저 혼인을 한 뒤 열두 살 큰딸 밑으로 일곱 살과 네 살배기 딸 줄줄이 딸린 상처한 홀아비의 재취로 들어온 것은 어머니 나이 스무 살 때였다. 90여 년 전 그때로는 드물게 보통학교를 마친 어머니에게 무당의 점괘에 나이 차가 많거나 재취 자리로 들어가야 병도 낫고 잘살겠다는 말은 위안이었을까. 절망이었을까. 외할아버지 내외는 당신들의 막내 학교담임인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홀아비가 애물단지 셋째딸 짝으로 그 이상 적격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셨을까?
   그렇게 혼인을 했고, 세 딸 외에 아들 딸 열을 낳아 절반만 건사하며 여든세 해를 살아오는 동안 쌓인 한이 오죽했으랴. 어렵지 않은 살림에 시아버지의 지극한 사랑, 성실한 선생님인 남편과 착하다고 소문난 딸들, 겉으로야 무언가 더 바라면 과욕이 되는 삶. 그러나 보이지 않는 갈등과 고단함을 참고 누르고 덮으며 산 세월을 누가 알랴. 그런 어머니와 비슷한 삶을 30여 년 남다르게 부딪고 느끼며 사는 나. 물 위에 평온히 떠도는 오리의 겉모습만 보는 이는 물속에서 쉬지 않고 해야 되는 두 발 버둥질의 버거움을 알 리가 없다. 소용돌이치는 물속 회오리의 어지러움을 결코 볼 수가 없다. 이제 나는 안다. 열다섯 철부지 때 “난 재취로 시집가야 잘산대.” 친구 집에서 만났던 날카로운 눈매의 여자 무당이던가? 내뱉은 말을 그대로 전할 때 사정없이 내 등에 날아온 어머니의 매서운 손길과 일곱 살과 네 살 오뉘가 딸린 아픔 있는 남자를 선택하겠다는 날 붙들고 울던 엄마의 눈물이 가슴에 남아있기에.
   여러 사람들의 걱정과 염려를 뒤로한 채 결혼한 첫해였다. 네 살배기를 목욕시키는데 나타난 귀뚜라미를 보고 질겁해서 아이가 지르는 소리에 달려 나오신 시어머니는 “누가 그랬냐?” 평소 그리도 점잖고 느긋하신 성품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목소리로 ‘왜 그러느냐.’가 아닌 ‘누가 그랬냐.’는 말과 함께 나를 향하던 눈빛을 지금도 기억하기에.
   궁~ 궁~ 궁~ 궁, 쿵~탁~ 쿵~탁 ~쿵탁, 쿵탁……. 북을 치며 천천히 느리게 숨 고른 후 서서히 발 옮기고, 옮긴 발 훌쩍 올려 맴돌기를 시작한다. 세상은 내 것인가? 온통 내 것이다. 설움아 물러가라, 아픔도 멈추어라. 즐겨보자, 느껴보자, 북장단에 발맞추고 발장단에 북을 치며. 어머니가 웃는다. 울엄마가 웃는다. 나도 같이 웃는다.

 

 

이용미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