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쫓겨 아무렇게나 깎아 세운 듯한 인형 같은 돌부처들…. 얼핏보면 아마추어 석공들의 미완성 솜씨 같지만 석재의 재질상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열심히 쪼다 잠시 장난기라도 발동했던지 얼굴 중심에서 세로로 다섯 개의 홈을 파서 눈, 코, 입 등을 표현한 돌부처도 있다. 추상화의 대가인 피카소보다 몇 백 년 시대를 앞선 선각자(?)가 아니었을까."
구름이 머무는 곳 운주사 - 윤정희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전남 화순의 운주사雲住寺를 다녀왔다. 하루 만에 천 개의 탑과 불상을 만들어 민초들의 소원을 이루고자 염원했으나 야속한 새벽 닭 소리에 물거품이 되었다는 운주사. 흥미 가득하여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경남문학관에서 ‘2012년 찾아가는 문학기행’이 있어, 창원·마산·진해·진주의 문협 회원은 4대의 관광버스에 나눠 타고 가슴 설레며 가을 여행을 떠난다. 주최 측에서 마련한 다과와, 따끈한 팥찰시루떡이 좌석마다에 나눠지면서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 버스는 미지의 땅을 더듬듯, 전라도 길을 접어든다. 추수가 끝난 들판은 한가롭고 아직 단풍이 내려오지 않은 시골길은 눈 붙일 곳 별로 없는 버석한 들길이다. 마을에나 산야에 주홍빛 감알이라도 달렸으면 눈부심이라도 있을 텐데……. 그래도 처음 보는 풍경들에 모두들 기대에 찬 표정들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인돌 유물이 많이 분포된 고창을 먼저 찾았다. 고인돌이란 거석巨石 문화가 발달한 선사시대 사람들이 무덤이나 제단을 만들어 조상들에게 최대의 예를 표했던 흔적이다. 이곳엔 응회암이라 하여 단단치 못한 돌덩이를 조심스레 다듬어 옮기면서 마을 공동체, 협동심이 생기고 일과 문화가 싹트지 않았을까 싶다. 2000여 기가 보존돼 있다 한다. 지배층, 부유층은 거석덮개를 하고 일반인들은 자잘한 돌멩이로 덮지 않았을까 박물관을 둘러보는데 수천 년 시간이 흘렀는데도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 스쳐온다.
운주골에서 점심으로 추어탕을 먹는다. 경상도에선 비교적 맑은탕인데 이곳에선 들깻가루와 고춧가루를 많이 넣어 묽은 찜 같은 탑탑한 맛이 있어 모두들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하다. 운주사 일주문을 들어서니 잔디가 깔린 넓은 평지가 나온다. 여느 사찰이라면 있을 법한, 높은 산, 골짜기의 흘러가는 물소리도 없고, 나지막한 등성이에 둘러싸여, 길 양 옆으로 ‘무형식의 형식미’를 갖춘 특유의 돌부처들이 서 있다. 돌덩이인가 싶어 잘못 밟을 뻔한 불두佛頭를 보곤 조심스레 발길을 옮긴다. 보물 제 797호인 거대한 ‘석조불감’은 한참 동안 발길을 멈추게 한다. 9층 석탑과 원형 다층석탑도 보물로 지정돼 있다. 원형 다층석탑은 흔히들 ‘호떡탑’이라고도 하는데 둥글게 깎아 얹은 것이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연화탑이다. 등을 맞댄 불감 속의 부처님, 입구 쪽을 향한 분은, 석가모니불이고 대웅전을 바라보는 분은 비로자나불이라 한다. 수백 개의 탑과 불상이 남아 있었는데 세월의 무게에 없어지고 지금은 100여 기에 불과하다. 크고 큰 염원이 없었다면 어떻게 하루 만에 천불천탑을 만들었을까. 시간에 쫓겨 아무렇게나 깎아 세운 듯한 인형 같은 돌부처들…. 얼핏보면 아마추어 석공들의 미완성 솜씨 같지만 석재의 재질상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열심히 쪼다 잠시 장난기라도 발동했던지 얼굴 중심에서 세로로 다섯 개의 홈을 파서 눈, 코, 입 등을 표현한 돌부처도 있다. 추상화의 대가인 피카소보다 몇 백 년 시대를 앞선 선각자(?)가 아니었을까.
천문지리에 능통한 도선국사가 진두지휘했을 법한 능선의 너럭바위에 오르려니 빤히 보이는데도 10월 초순 한낮의 태양빛에 숨이 들쭉날쭉,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한꺼번에 수많은 인력이 필요했을 터이니 삼국시대쯤, 이 지역에서 전쟁에 패한 유민들이나 새로운 세상, 행복한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불력과 신력으로 이루고자 원을 세웠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근처 일봉사에 떠오르는 태양을 묶어놓고 새벽을 늦추려 했으나 잠깐 졸다 깜짝 놀라 깬 동자승이 그만 꼬끼오! 소릴 내뱉어 마지막 ‘와불’을 일으켜 세우지 못한 채 만사 수포로 돌아갔다고 한다. 칠성바위를 비롯해 불탑 불상들의 배치가 하늘의 천문을 본뜬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그 후 도선국사는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고 멀리 개성(송도) 땅을 밟지 않았을까? 왕건을 도와 ‘고려’ 창건에 많은 공헌을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일설에는 이런 얘기도 있다. 송도에는 추앙받는 도승, 지족선사가 있었다. 몇십 년을 오직 수행정진, 도통했다는 분이었다. 개성의 명기인 황진이는 선사를 한번 만나보고 싶기도 하고, 시험해 보기로 했다.
옛 명기들은 절개가 있고 시서화 가무에 능했다. 요즘 같으면 일류 연예인이 될 팔자였겠지만 시대가 숭숭하여 기량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채 고달픈 삶을 살다 간 여인들이 많았다. 한곳에 머물지 못하는 명월(황진이의 예명임)은 비 오는 초저녁, 지족암을 찾아간다. 상좌스님의 극력 만류를 못 들은 척 선사의 방으로 들어선다. “선사님, 추워 한기가 들어 죽겠습니다. 몸 좀 녹여 주십시오!” 처음엔 추위에 떨고 있는 가엾은 중생인가 보다, 별 관심없이 면벽하고 앉았던 스님은, 옷을 말리겠다며 사그락사그락 비단옷 벗는 소리에 무뎌졌던 실핏줄에 가느다란 불꽃이 지펴진다.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젊고 어여쁜 여인의 몸매가 봉긋이 드러난다. 후끈, 알 수 없는 열기가 차오르고 춥다며 지족의 품속으로 파고 들어가니 수행이고 뭐고 송곳으로 무릎을 몇 번인가 찔렀겠지만 끝내 공든탑이 무너지고 말았다.
“십년공부, 도로 나무아미타불!”이란 남 말하기 좋아하는 소문이 송도에 퍼지면서 선사는 종적을 감춘다. 그후, 지족은 남몰래 멀리 화순에 와서 천불천탑을 조성하며 파계승에 대한 속죄를 꿈꾸지 않았을까. 만약 선사가 운주사에 왔다면 100일 정도 기도에 원을 세운 채 천불천탑에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잠깐 대웅전에서 올려다본 본존불은 특이하다. 금물 입힌 풍만한 모습도 아니고 까무잡잡하고 날씬한 형상인데 수수께끼 같은 알 수 없는 고뇌에 찬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설은 전설대로 우리들 마음을 살찌우는 것이니 천 년의 도량은 그대로가 문화재인 것이다. 혹시나 현대의 새옷을 덧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당 한편에 가득 널린 쭉정이 하나 없는 새빨간 고추가 스님들 겨울 김장 양식이 될 듯, 가을햇살에 반짝였다.
윤정희 ----------------------------------------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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