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담그는 김치는 유난히 맛이 있었다. 가을이면 “애비는 가을 얼갈이김치를 좋아한다.”라고 하시며 맛있게 담가서 보내주셨다. 어머님은 김치를 담글 때면 김장하듯 많이 해서 4남매 모두에게 골고루 보내주셨다. 많은 김치를 담그면서 힘이 들어도 나눠주는 기쁨에 늘 즐거워하셨다. 김치를 받아 먹을 때면 어머님의 손맛을 통해 사랑이 느껴졌다."
손맛이 사랑이다 - 박귀숙
아파트 앞 공터에는 매주 목요장터가 열린다. 오랜만에 얼갈이김치를 담그려고 마늘, 고추, 생강, 쪽파 등을 구입해서 다듬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학생시절 자취할 때는 배추 한 포기씩 김치를 담가 먹었다. 그런데 졸업 후엔 오빠 집에서 직장을 다니게 되어서 김치를 담글 기회가 없었고, 결혼해선 시어머님이 손수 담가 주시는 것을 받아먹기만 했다. 김장때도 어머님 댁에 가서 조금 도와드리고 겨우내 먹을 김치를 갖고 왔다.
어머님이 담그는 김치는 유난히 맛이 있었다. 가을이면 “애비는 가을 얼갈이김치를 좋아한다.”라고 하시며 맛있게 담가서 보내주셨다. 어머님은 김치를 담글 때면 김장하듯 많이 해서 4남매 모두에게 골고루 보내주셨다. 많은 김치를 담그면서 힘이 들어도 나눠주는 기쁨에 늘 즐거워하셨다. 김치를 받아 먹을 때면 어머님의 손맛을 통해 사랑이 느껴졌다.
어머님은 억척같으신 분이었는데 당뇨병이 찾아왔다. 병원에 다니시라고 말씀드려도, 늘 괜찮다고 하시면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결국엔 합병증이 오기 시작했다. 당뇨병에 합병증이 오니까 병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한 가지 증세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백내장이 발병해서 수술하고 안압이 높아지면서 망막증이 오고, 안과치료를 받는 중에 심장이 나빠져서 심장 조형 수술도 받았다. 나중엔 신부전증으로 매주 두 시간씩 피를 걸러내는 혈액투석의 힘든 치료를 어머님은 잘 견디어 내셨다. 늦은 가을 어느 날, 안부 전화를 드렸더니 그간 못하던 식사도 잘하신다면서 밝은 목소리로 말씀을 하셨다.
어머님과 통화를 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형님, 바빠도 아주버님이랑 빨리 한 번 내려와야겠어요. 어머님이 또 입원하셨어요.” 하는 동서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해외 출장 중이라서 내가 먼저 어머님이 계신 울산으로 내려갔다. 어머님은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하시곤 눈만 껌벅껌벅하고 계셨다. 뇌출혈로 한쪽이 마비가 오면서 말씀까지도 못하셨다. 어머님의 손을 잡고 소리쳐 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고 잠만 주무셨다.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형제들과 의논하면서도 발만 동동 구르다가 침착해지려고 했지만 진정을 할 수가 없었다. 출장 중인 남편에게 급히 오라고 연락을 했다. 일정이 남아 있었지만 중지를 모아야 될 것 같았다. 다음 날 남편이 와서 모두 가족회의를 했다. 만약을 위해 장례에 관한 사항도 미리 의논하고 공원묘지도 알아보았다.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밤늦게 아버님은 남편에게 어머님이 임종하셨다는 소식을 전하셨다. 중환자실에 계셨지만 살아계실 때 아이들에게 한번이라도 더 뵙도록 해야겠기에 주말에 아이들과 가려고 기차표를 예약해 두었는데 어머님은 떠나셨다.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절감했다.
밤새도록 천릿길을 택시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장례식장엔 가족들이 진한 선향線香 내음 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잠겨 있었다. 정신을 잃은 아버님은 빈소에서 늘 어머님 곁에서 생시에 하시던 것처럼 중얼거리며 얘기하고 계셨다. 어머님은 어찌하여 인생의 긴 여정을 그렇게도 급히 떠나가셨을까. 입관할 때는 부디 좋은 세상 가셔서 편안하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드렸다. 큰 체구의 어머님이 바짝 마르도록 고통스러운 마지막을 보내셨다는 생각을 하니까 입관하는 내내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가을이다. 며칠 후면 어머님 기일이다. 벌써 삼 년이 지났다. 아버님이 계실 때는 고향의 아버님 댁에서 어머님 제사를 모셨지만, 올해 정월에는 아버님마저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는 맏이인 우리 집으로 제사를 모셔왔다. 제삿날이면 고향에서 두 시동생 내외와 시누이 내외가 상경한다. 그래서 얼갈이김치를 담그기로 했다. 형제들은 똑같이 어머님의 손맛을 그리워할 것이다. 오랫동안 그 맛을 보지 못했으니까 내가 비슷하게 흉내를 내어 김치를 담가본다. 내가 담근 김치 맛이 어머님이 담근 것만큼 맛있지는 못하더라도, 그와 비슷한 손맛이라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을 얼갈이배추를 다듬고 양념을 준비했다. 그들이 김치를 맛있게 먹어주면 고맙고 즐거울 일이다. 어머님이 김치 담가서 나눠 먹으며 즐거워하셨듯이 나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한다.
‘손맛이 곧 사랑이다.’라는 말을 생각한다.
박귀숙 ----------------------------------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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