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리를 남기고 죽을 것인가? 죽기도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유언遺言
나하고 낚시 다닌 지 10년이 넘는 지인知人이 세상을 떠났다. 토요일날 장충체육관에서 국제 프로 레슬링 시합 구경을 하고 와서 자리에 눕자마자 신음을 하더니 그만 숨졌다는 얘기였다.
망우리 묘지에서 장사지내는데, 그의 유가족은 날 보고,
“유언도 한 마디 없이 그만…….” 하고 울먹인다.
본래 혈압이 높았던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프로 레슬링 같은 과격한 시합을 보고 왔으니, 그 흥분의 여파가 뇌일혈을 일으킨 모양이다.
‘유언 한 마디 없어.’라는 유가족의 말이 어쩐지 귀에 남는다. 내 직업이 의사여서 사람의 죽음을 많이 봐 왔지만 이 유언이라는 것을 하고 죽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 같다.
만성 질환으로 오랫동안 콜록콜록 하다가 전신 쇠약全身衰弱으로 숨지는 사람은 유언을 할 수 있겠지만, 뇌일혈이나 교통사고 따위로 죽는 사람은 유언 한 마디 할 짬도 없이 급행으로 저생엘 가 버리니 허무하다. 그러니까 유언이라도 하고 죽는 사람은 행복한 죽음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유언이라는 게 과연 유족들에게 행복한 것인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유언장遺言狀있는 곳에 소송訴訟이 있다.’는 진리도 생겨난다.
돈푼이나 있던 사람이 남긴 유언장 쳐놓고 유언장에 적힌 대로 이행된 일이 없이 항상 소송 사건이 생기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돈 없는 사람의 죽음에는 유언장이 무슨 소용이랴. 그러니까 유언장이라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 변호사를 기쁘게 만들어 주는 사후死後적선 사업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다.
오늘 산소에서 돌아오면서 차중車中에서 문득,
‘만약에 내가 죽는다면 무슨 유언을 할 것인가?’고 생각해 보니 할 말이 아무것도 없어서 별의별 궁리를 다 하다가 그만둬 버렸다.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죽을 것인가……. 심각한 문제이다.
내려오는 얘기로는 어떤 사람이 죽으려고 하자, 머리맡에 앉은 가인家人들이 유언을 하라고 독촉을 한다.
그 사람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아서,
“내가 죽다니, 기가 막히는데…….” 라고 말하자 그만 숨졌다. 기막힌 죽음이란 이런 것이리라.
“좀 더 빛을…….” 하고 죽은 사람은 괴테라고도 하고 슈트린트베르히라고도 전해온다. 죽기 직전에 빛을 바랐으니 이 얼마나 어두운 죽음이랴.
하이네가 숨지려고 하다가 모기만 한 소리로,
“쓴다.”
머리맡에 앉은 사람들이 하이네 입에다 귀를 갖다 대고,
“뭐라고요?”
“종이…… 펜…….” 이라면서 저생에 갔다 한다. 죽기 전에도 하이네는 말하기를,
“하나님, 내 죄를 용서하소서. 아마 하나님은 반드시 내 죄를 용서해 주실 거야. 용서하는 것만이 그이의 직업이니깐…….”
이러한 사람이‘종이…… 펜…….’이라고 중얼거리다가 숨졌다니, 만약에 종이와 펜을 주었더라면 무엇이라고 써 놓고 죽었을 것인지? 안타까운 유언이다.
유언 중에서도 통쾌한 것은 H.G. 웰스의 유언이다. 웰스는 본래 무신론자無神論者이어서 항상 가톨릭 교회를 비꼬던 사람이었지만 죽음에 직면하자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비서가 마음을 조이면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요?” 라고 걱정하면서 묻는다.
웰스는,
“시끄러워, 난 이제 죽기에 바쁜 몸이다.”
볼테르 역시 무신론자였다. 죽게 되자 그 당시의 풍습대로 구교舊敎의 주교主敎가 마지막 고백告解을 들으려고 머리맡에 왔다.
가인家人들이,
“주교가 오셨습니다.” 라고 하니까,
“주교님이세요. 당신은 어데서 오셨지요?” 라고 묻는 빈사의 볼테르.
“천주님이 나를 보내셨습니다.”라고 주교가 태연스럽게 대답하니,
“그러세요. 그렇다면 위임장委任狀을 보여 주세요.”
죽음에 직면했을 때 무슨 말을 남길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할 말이 없는 것 같다.
일전에 작고한 마해송馬海松씨의 유언이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니, ‘학식도 없고 인덕도 없는 내가 외롭다는 인생을 그래도 외롭잖게 살다 죽게 되는 것은 모두 다 나를 사랑해 준 지인知人들의 덕이라.’는 겸손하고도 만족스런 내용의 유언이었다.
생존 시生存時의 고인古人의 면목을 그대로 전해주는 유언이었다. 자그만 체구에 검정 안경 너머로 흘러 나오는 낮고도 부드러운 음성 그대로의 유언인 것 같아서 가슴이 뭉클해짐을 금할 바 없었다.
죽을 때에 무어라고 유언하고 죽을 것인가? 유언을 할 만한 인생의 내용이라도 있었더라면 오죽 좋으련만, 유언에 남길 만큼 내용 있는 인생도 못 살아온 주제에 유언으로 남길 그 무엇도 없는 처지에다가, 멋진 유언은 이미 선인先人들이 다 해 버렸으니 나 같은 범부凡夫는 무슨 말을 남겨야 할 것인가.
심각한 내용의 유언을 남긴 사람은 존경할 만하고, 또 유언까지 장난을 한 사람은 더욱 용감한 사람인 모양이다.
어떤 장난꾸러기가 죽었는데 유품遺品을 정리하다 보니 유언장이 나왔다. 가인과 지인이 모여서 뜯어보니,
‘나는 한평생 거짓말만 해서 여러분을 골탕먹여 왔지만,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둔 이 마당에서 나는 여러분께 속죄하는 뜻으로 선사를 남기고 죽소. 그것은 내가 평생 모아 놓은 돈을 궤짝에 넣어서 마당에 서 있는 느티나무 밑에 묻어 둔 것이 있으니, 이 유언장을 본 즉시로 그것을 파서 지인들이 공평하게 나눠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지인들이 나무 밑을 파 보니, 과연 궤짝이 나왔기에 뚜껑을 열어 보니 돈은 없고 종이 한 장이 있다. 펼쳐보니 가라사대,
‘이게 나의 마지막 장난이오.’ 라는 글이 한 줄.
무슨 소리를 남기고 죽을 것인가? 죽기도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최신해 ------------------------------------------------
최신해님(1919 ~ 1991)은 수필가·의사이며, 수필「탐라 기행」을 발표함으로써 본직인 의사로서 뿐만 아니라 수필가로서도 활약한 그는 정신 의학자로서의 체험과 관련된 수필들을 많이 발표하였다. 특히 그의 수필은 정신 분석학적 관점에서 인간 심층의 정신적 고뇌와 갈등, 현대인의 노이로제 등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수필집『심야의 해바라기』,『 문고판 인생』,『 제3의 신』,『 내일은 해가 뜬다』등이 있다.
'월간 좋은수필 > 좋은수필 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좋은수필 2012년 겨울호, 다시 읽는 좋은수필] 지룡아, 너 어디가니 - 김수봉 (0) | 2013.01.30 |
|---|---|
| [좋은수필 2012년 겨울호, 다시 읽는 좋은수필] 그림 속의 나그네 - 김효자 (0) | 2013.01.25 |
| [좋은수필 2012년 겨울호, 다시읽는 좋은수필] 돈 백만 원 - 유재철 (0) | 2013.01.22 |
| [좋은수필 2012년 겨울호, 다시 읽는 좋은수필] 주씨네 아들 - 김예경 (0) | 2013.01.16 |
| [좋은수필 2012년 겨울호, 다시 읽는 좋은수필] 현이의 연극 - 이경희 (0) | 2013.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