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 위의 생명들은 수십억 년을 거치면서 새로 태어나기도 하고 멸종해 사라지기도 하면서 현재와 같이 균형 잡힌 모둠살이를 이루게 되었다. 어느 하나가 피해만 끼치고 어느 하나가 이롭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조금씩 희생을 하면서 함께 살게끔 되어 있다"
쥐 주둥이 찧는 날
올해 병자년 첫 쥐날(上子日)은 정월 초사흘이다.
옛날 이곳 안동지방 농촌에서는 해마다 이날이 되면 아침 일찍 여인들이 빈 디딜방아를 가볍게 찧으면서
쥐 주둥이 찧자.
쥐 주둥이 찧자.
하고 노래 부르듯이 외운다.
이렇게 하고 나면 그해 일 년 동안은 쥐들이 주둥이가 아파 아무데나 아무것이나 함부로 갉아대지 않는다고 한다.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믿고 편안한 마음으로 한 해를 살아가는 건 참으로 지혜로운 발상이다.
농촌에서 쥐는 그야말로 큰 골칫거리이다. 그것들은 인정사정 없이 닥치는 대로 곡식이 담긴 것이면 뒤주문*이건 봉태기**건 바가지건 구멍을 뚫어 놓는다.
그런데도 쥐에 대해서 그다지 미운 감정을 가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미워해 봤댔자 그 많은 쥐들을 모조리 잡아 없애지 못할 테니 아예 체념을 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말썽꾸러기 쥐지만 할 수없이 사람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식구처럼 생각하게 된 모양이다.
병아리를 채가는 소리개나 까마귀를 쫓기 위해서는 해마다 깊이 감춰 뒀던 삐쩍 마른 죽은 새를 꺼내어 장대 끝에 걸어 놓는다. 참새 떼를 쫓기 위해서는 나락 논에 허수아비를 세운다. 이렇듯 쥐를 몰아내는 방법으로는 빈 디딜방아지만 꽝꽝 찧으면서 으름장을 놓는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것도 몸뚱이 전부를 찧는 게 아니라 겨우 주둥이만 아프게 해 놓으면 된다. 굳이 죽일 것까지는 없는 것이다.
비록 소중한 곡식을 축내고 살림 그릇을 갉아 못쓰게 만들어도 이런 사소한 피해는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의 섭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농촌에 전해 내려오는 옛날이야기에도 쥐를 미워하기보다 쥐를 사랑하고 보호하자는 생각이 담긴 것이 대부분이다.
옛날 어느 부잣집 곳간에 쥐가 들끓어 하인들이 곡식만 대강 꺼내고 불을 질러 버리자고 했다. 그러자 주인 대감님이 말하기를“아니다. 그것들도 새끼를 낳고 식구들을 거느리고 살아가는데 어떻게 불을 질러 죽여 없애겠느냐? 곡식이 좀 축이 나더라도 그냥 두어라.”하는 것이었다.
이래서 쥐들은 계속 그 부잣집 곳간에서 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곳간 쥐들이 모두 주인집 마당에 나와 한 줄로 줄을 서서 대감님 방 쪽을 향해 자꾸 절을 하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대감님은 집 밖으로 나와 이만치 걸어오는데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집이 무너져내렸다.
쥐들은 이렇게 자신들을 살려준 대감님께 은헤를 갚은 것이다.
요즘 과학자들은 쥐나 돼지 같은 짐승들이 기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에 관심을 두는데, 옛이야기에도 이런 것이 전해지고 있으니 우리도 주변에 살고 있는 생명에 대해 피해만 준다는 생각을 버렸으면 한다.
만일 누구 말대로 ‘뭇 생명 가운데 사람만이 가장 귀하다.’고 해서 다른 목숨을 함부로 취급한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짓은 없을 것이다. 이 땅 위의 생명들은 수십억 년을 거치면서 새로 태어나기도 하고 멸종해 사라지기도 하면서 현재와 같이 균형 잡힌 모둠살이를 이루게 되었다. 어느 하나가 피해만 끼치고 어느 하나가 이롭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조금씩 희생을 하면서 함께 살게끔 되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런 균형 잡힌 모둠살이를 인간이 깨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쥐를 잡기 위해 쥐약을 놓고 보니 쥐만 죽는 게 아니라 능구렁이와 족제비도 따라 죽었다. 잡초를 없앤다고 제초제를 쓰고, 벌레를 잡기 위해 살충제를 뿌리고 나니 땅속 미생물까지 죽고 강물이 오염되어 물고기마저 사라졌다.
잘 쌓아올린 아름다운 탑에서 받침돌 하나만 빼 버려도 균형을 잃고 전체가 무너져내린다. 이 세상 목숨은 그 어떤 것도 소중한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사람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은 인간에게 편리를 가져다주고 무지에서 눈뜨게 했다. 하지만 과학의 남용은 인류를 파멸로 몰아갈 것이다.
빈 디딜방아를 찧으면서 쥐 주둥이에 상처를 준다고 믿는 것은 절대 미신도 아니고 무지도 아니다. 오히려 정신적 삶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가장 과학적인 생활 방식일지 모른다. 함께 살아가는 데는 조금씩 속아주는 지혜도 필요한 것이다. 굳이 디딜방아가 아니더라도 작은 절구공이나마 쥐 주둥이 찧기는 이어졌으면 싶다.
* 뒤주 : 쌀 따위의 곡식을 담아 두는 세간의 하나. 나무로 궤짝같이 만드는데, 네 기둥과 짧
은 발이 있으면 뚜껑의 절반 앞쪽이 문이 된다.
** 봉태기 : 소쿠리의 방언(경남)
권정생 --------------------------------------
권정생님은 1969년 동화「강아지똥」으로 월간 기독교 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굴곡 많은 역사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을 보듬는 진솔한글을썼다. 저서로는동화집『강아지똥』,『 사과나무밭달님』,『 하느님의눈물』등과소년소설『몽실언니』『, 점득이네』등이있다.
'월간 좋은수필 > 좋은수필 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좋은수필 2012년 겨울호, 다시 읽는 좋은수필] 시골 버스 - 정재은 (0) | 2013.01.10 |
|---|---|
| [좋은수필 2012년 겨울호, 다시 읽는 좋은수필] 구두 - 김수영 (0) | 2013.01.09 |
| [좋은수필 2012년 겨울호, 다시 읽는 좋은 수필] 사망통고서 - 박계주 (0) | 2013.01.03 |
| [좋은수필 2012년 겨울호, 다시 읽는 좋은 수필] 비워 놓은 답안 - 리후이미엔 (0) | 2013.01.02 |
| [좋은수필 2012년 가을호, 독자수필] 허브마을에서 - 김미선 (0) | 2012.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