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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겨울호, 다시 읽는 좋은 수필] 비워 놓은 답안 - 리후이미엔

신아미디어 2013. 1. 2. 09:21

"그렇게 비워놓은 답안은 나로 하여금 어린 시절 지혜로웠던 한 영혼을 되돌아보게 했다."

 

 

 

 

 

 비워 놓은 답안

 

   내 눈꺼풀에는 작은 점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그걸 눈물점이라고들 한다.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아이들이 모두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가고나면, 어머니가 따뜻한 밥을 갖고 오시길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나는 보통 쉬는 시간에 언니가 나를 업고 화장실에 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교실 밖을 나서지 않았다. 다만 점심시간이 되어 학교가 조용해지면, 밥을 먹고 용기를 내어 간신히 절름거리는 걸음으로 교실을 나서 나뭇가지 무성한 용수나무에 기대어 초록 안의 햇빛과 공기를 음미하곤 했다.
   하지만 가끔 옆반 학생들이 일찍 학교로 돌아오면, 삼삼오오 지나며 “저 절름발이 절뚝거리는 걸 좀 봐. 참 희한하다 그치”하며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나는 귓전에 들려오는 아이들의 조롱에 상심하여 울먹이며 비틀비틀 황급히 교실로 숨곤 했다.
   그때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 연장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성적에 따라 반을 나누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수업 후에도 대부분 학원에 갔고, 나는 혼자 교실에 남아 숙제를 하면서 같은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큰언니가 퇴근 후 자전거로 나를 태우고 집에 돌아가길 기다렸다. 나는 비록 학원에는 안 다녔지만 성적은 제법 괜찮아서 내 기억으로는 대체로 3등 안에는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웬일인지 매번 월말고사 후에는 늘 마음이 울적했고, 어머니가 보실까 봐 종종 욕실에 숨어 슬프게 울곤 했다. 학원에 갈 수 없어서 울었던 것일까? 아니면 1등을 못해서 울었던 걸까? 이제는 그 이유조차 기억할 수 없다.
   절뚝거리는 다리에 대한 조롱과 시험성적은 내 어린 시절 넘쳐흐르는 두 줄기 눈물의 강이었다. 이제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되고 나니 더이상 불편한 몸과 석차 때문에 내 마음을 다치지 않게 되었지만, 가끔 추억에 잠길 때면 그래도 아직 마음 한편의 응어리로 남아있는 듯하다.
   재작년 여름휴가 때,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을 뵈러 갔다가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징후아吳靜華선생님의 따스하면서도 애달픈 어조가 마치 음악 선율처럼 메아리쳤다.
   “너는 늘 시험에서 백 점을 받았지. 그런데 월말고사면 꼭 마지막 한문제를 그냥 남겨놓곤 했어. 나는 참 답답했지. 분명히 쓸 수 있는데 왜 안 쓰는지. 그런데 언젠가 네가 말하더구나. ‘1등은 되고 싶지 않아요. 앞에 나가 상 받는 게 싫어요.’라고. 나는 지금도 눈에 선하단다. 특히 네가 대답할 때의 그 결연한 눈빛, 눈물 한 방울 비치지 않던 그 눈빛 말이야!”
   그때 나는 그 대답을 하면서도 눈물 한 방울 비치지 않았다는데, 25년이나 지나 그 일을 들을 때는 외려 눈물이 넘쳤다.
   그렇게 비워놓은 답안은 나로 하여금 어린 시절 지혜로웠던 한 영혼을 되돌아보게 했다. 한 문제의 답을 비워놓음으로써 나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고, 재능을 갈무리해 둘 수도 있었고, 곤경을 피할 수 있었고,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었고,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리고 영원히 무정함과 더불어 평온할 수 있었다.

 

 


리후이미엔  ---------------------------------

리후이미엔님은 수필가이며 중국 전통극 연구자로 타이완 대학 중문과 교수이다. 수필집으로『손으로 걷는 사람(用手走路的人)』이 있고, 학술서로『중국 전통극 문헌 해제(戱曲要籍解題)』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