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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가을호, 독자수필] 허브마을에서 - 김미선

신아미디어 2012. 12. 5. 16:00

"몇 년간 정신적으로 많은 괴로움으로 속 끓이며 아파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아프다."

 

 

 

 

  허브마을에서


 

   딸아이가 옷 사라며 봉투를 놓고 출근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어버이날이다. 엊그제까지 아르바이트로 어버이날 카네이션 꽃바구니 만드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며칠 전부터 엄마 아빠 받고 싶은 것 생각해 두라고 말했는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서 지나쳤더니 현금으로 대신한 것이다. 찜찜한 마음을 안고 그동안 일한다고 거들떠보지 못했던 밀린 신문을 오전 내내 훑어보았다. 어버이날이라 하지만 시어른과 엇갈린 상황도 그렇고, 오래전 고인이 된 친정부모도 내 마음에 커다란 상처로 남아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바람이라도 쐴 겸 남편에게 나가자고 청했더니 흔쾌히 승낙한다. 꿀꿀한 마음도 달랠 겸 연천 허브빌리지로 장소를 택했다. 그곳 사무장으로부터 익히 들어 꼭 가보겠다고 약속했었다. 근무 중 방해될 것을 염려해서 몰래 다녀오려고 맘먹고 출발했다. 평일이라서인지 자유로는 한산했다. 문산을 지나 전곡 방향에 들어섰는데, 탱크부대의 이동 대열에 끼어 천천히 갈 수밖에 없었다.
   창밖의 풍경이 차량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들어온다. 곧게 뻗은 길, 멀쩡한 산허리를 둘로 갈라 길을 뚫었다. 사람들의 이기주의로 시뻘겋게 드러난 알몸이 볼썽사납다. 그런데 군데군데 어릴 적 할머니가 종기난 데 발라주던 고약 붙이듯, 칡넝쿨이 성큼성큼 기어오르며 붉게 드러난 상처를 처덕처덕 매만져 주는 게 아닌가. 빨리 갔더라면 이처럼 예쁜 보랏빛 칡꽃을 어쩌면 못 보고 지나칠 뻔했을 텐데, 조금 전 탱크 때문에 길이 막혀 속으로 짜증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한 시간여를 달려 연천 허브빌리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름처럼 수많은 허브와 꽃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천국의 어디쯤에 와있는 듯 착각에 빠졌다. 천국에 발 들여놓으니 마치 동화 속 공주가 여기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오감이 꿈틀거린다. 꽃으로 수를 놓은 듯이 오솔길을 만들어 발길을 유혹한다. 오늘은 바람도 맛이 있다. 훅 하고 불 때마다 외국의 유명한 작가가 제작했다는 조형물이 뱅그르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춘다. 오솔길을, 그리고 언덕을 오르고 또 내려갈 때마다, 각기 다른 허브 향이 코끝에 간지럼을 태운다. 발길 머무는 곳마다 아름다운 음악이 자연과 조화롭게 울려 퍼지고, 형형색색 예쁜 꽃들이 앙증맞게도,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재잘거리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허브티를 마시러 가는 길에 다리 밑 터널에 눈길이 간다. 그늘 아래로 작은 수로가 흐르고, 몇몇 관람객들이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벽에는 유명 시인의 글이 나무현판에 예쁜 그림과 함께 새겨져 시심을 자극한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까지 깨끗하게 정화되어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남편이 빨리 오라 손짓한다. 꽃처럼 예쁜 바리스타가 가져다준 이름 모를 허브티가 향기롭다. 그동안 뜨거운 차로만 여겨왔는데, 시원하게 우려낸 빛깔 고운 허브티가 향기와 함께 들어온다.
   몇 년간 정신적으로 많은 괴로움으로 속 끓이며 아파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아프다. 모양과 형태는 다르지만, 저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갈등 속에서 괴로워한다. 이처럼 삶에 지쳐 무거운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는 이곳 허브마을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본다.
   허브는 라벤더, 로즈마리, 페파민트, 애플민트 등 외국 풀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본디 허브란 향이 나는, 인간에게 유용한 모든 식물이라고 했다. 미나리, 깻잎, 쑥은 물론, 마늘, 배추, 상추, 쑥갓 등 매일 밥상에서 접하는 야채는 모두 허브라는 설명을 그곳 사무장님으로부터 듣고는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풀들도 달리 보게 되었다. 민들레 엉겅퀴, 쑥부쟁이, 구절초, 씀바귀, 냉이 등등 많은 허브들이 있지만 우린 너무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허브로 꾸민 마을에서 남편과 모처럼의 데이트도 좋았지만, 칡넝쿨처럼 자연이 자연을 치유하는 것과, 우리가 몰랐던 밥상이 약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우리가 자연을 아끼고 가꿀 때 자연도 인간에게 몇 배의 기쁨으로 되돌려준다는 것을 배워 갔으면 한다.

 


김미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