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을 사랑하는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합니다. 독자수필을 소개합니다.
운명의 힘
삼청동 산동네 군부대 철책 아래로 할머니 집이 있었다. 천주교에서 독거노인을 위해 마련한 것이지만 할머니는 재산의 전부를 기탁하고 그집에서 사셨다. 불우한 대학생들의 기숙사로 쓰이기 전까지. 할머니는 그리 멀지 않은 성당 근처로 이사를 하고 나서 거의 매일 아침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찌개에 밥 말아서 비닐봉지에 담아 집을 나선다. 하루가 다르게 택시를 잡는 것도 타는 것도 못할 짓이지만 어찌 죽으나 사나 일 없는 늙은이를 변치 않고 살갑게 맞이해주는 고양이를 생각하면 기운이 난다. 언덕을 오르시는 할머니를 고양이는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달려와 그립게 그립게 울어댄다. 할머니는 그런 고양이를 보며 사람보다 백 배 낫지, 낫지 하면서도 이게 무슨 청승이지 싶어 고놈 엉덩이를 지팡이로 뚝뚝 치신다.
가버려!
시집 와서 1년쯤인가 산 후 남편이 죽고 이제껏 혼자 수절하였으니, 자식도 일가친척도 하나 없다. 그런 어느 날인가 턱하니 할머니 집에 들어온 고양이에게 먹던 김치찌개에 밥을 주었다는데, 그 후로는 목욕도 시켜주고 직접 고기도 씹어 먹여주기도 하면서 서슴없이 잠자리도 내줬다나. 그런데도 낯선 사람이 들어서면 잽싸게 집을 빠져나가곤 했던 고양이.
할머니, 부침개 드세요.
술 한잔씩 해야지.
반장댁은 왜 안 나와.
고양이가 밥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그 옛집 앞 계단에 앉아 수없이 떠올렸을 풍경들. 어디 하나 눈 둘 데도 없고 고개만 돌려도 서럽다. 손 붙들고 차 한잔하러 들어오란 사람도 없으니, 이 꼴 보려고 목숨은 이리도 질긴 건가.
니네들도 끝장날겨!
점심때쯤이면 나는 아이를 데리려 언덕을 내려가다 가끔 할머니와 마주치는데, 늘 낯선 사람처럼 물끄러미 쳐다본다. 할머니, 이제 가시는 길이에요? 제가 태워드려요? 하면, 그때서야 이게 누구야, 꼭 하느님이 시킨 것 같애 하시며 알사탕 두 개 허리춤에서 꺼내 건넨다.
이거 안 받아먹은 사람은 없어.
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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