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음의 마당과 『좋은수필』에 꽃과 이름모를 화초를 싶어서 키워보리라. 잘 키울 수 있겠지요.
여러분들도 『좋은수필』에 꽃을 심어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마당
백일홍이 피었다. 꽃 곁으로 갔다. 현관에서 백일홍까지는 12미터
정도, 햇볕이 무서워 양산을 쓰고 갔다. 꽃 곁에 머문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백 일 동안이나 꽃을 피우다니 의지가 대단하
다.” 하며 칭찬을 했다. 그 말 한 마디 남기고 단풍나무 그늘로 와 버
렸다. 그렇게 햇볕이 두려웠다.
해거름 때, 다시 백일홍을 찾아갔다. 해가 지면 극성을 부리는 모
기 떼가 겁이 나서 이번에는 소매가 긴 블라우스와 바지를 입고 갔
다. 나무를 조금만 만져도 몸을 오소소 떨며 간지럼을 타는 백일홍을
두고 흔히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나는 나무를 간질여대며 장난을
쳤다. 하지만 모기 소리에 얼른 집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풀숲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금잔화와 분꽃을 본체만체 하며 도망을 쳤다. 그
렇게 모기가 겁이 났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온갖 풀들이 기를 쓰고 솟아난다. 호박넝쿨이
며 나팔꽃도 엉뚱하게 단풍나무를 감고 오른다. 벽오동 새끼도 석류
나무에 딱 붙어 있다. 온 마당이 푸르고 싱싱하지만 무질서하다. 갑
자기 풀의 세력이 두려워진다. 내가 이루어 놓은 마당의 질서를 파괴
해 버릴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잡초들의 성장을 부추기는 빗줄기가
원수 같은 마음이 든다. 비가 그치고 뜨거운 태양이 어서 나오기를
갈망한다.
가뭄이 들면 빨리 비가 내려 물기 없는 마당을 파랗게 살려주었으
면, 또 장마가 시작되면 빨리 뜨거운 햇볕이 내려쬐어 풀들의 왕성한
생명력을 억제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마당은
나의 변덕 때문에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정신을 못 차릴 것
같다.
고추 밭에서 고추를 따고 있었다. 일곱 개쯤 땄을 때, 어떤 물체가
획 지나갔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갔다. 도둑고양이였다. 서쪽 담 밑
에는 목련나무와 참죽나무가 있다. 이런 나무 밑에 도둑고양이가 살
고 있었던 것일까. 동쪽에는 은목서, 매화, 산딸나무가 있다. 내가 사
랑하는 나무들이다. 동쪽으로 옮겨간 도둑고양이는 애지중지하며 키
우고 있는 이런 나무들 밑으로 숨어버렸다. 나는 고양이를 쫓아내기
위해 손에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었다.
우리 집 마당에 거처를 정하고 있는 것은 도둑고양이뿐 아니다. 산
수유 등걸에 붙어 있는 매미며 나무 가지마다 쳐 있는 명주실 같은
거미줄에도 거미가 살고 있다. 풀벌레 소리도 들린다. 필시 벌레들은
바위 밑에 땅을 파고 들어가 있을 것이다.
날아다니는 잠자리며 나비도 있다. 모기와 날파리와 개미 떼도 있
다. 시도 때도 없이 마당에 내려앉는 참새와 비둘기도 있다. 이것들
은 우리 집을 제집처럼 들락거리고 있다. 맴맴 노래를 부르고, 풀숲
밑으로 기어가고, 땅속에 집을 짓고,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솟아오
르고, 이렇게 제멋대로 살고 있다. 우리 집 가족보다 많은 숫자에 압
도당한다.
집터의 주인인 나는 마침내 말하였다. “그래, 마음대로 살아봐라.”
“거리낌없이 살아봐라.” “한판 신명나게 살아봐라.” 이런 말을 선심
을 베풀듯이 한다. 하지만 나의 손에는 여전히 도둑고양이를 쫓아낼
돌멩이가 쥐어져 있다.
뜨거운 날이 시작되었다. 더위를 피하여 집 안에만 있다. 쉬는 일,
먹는 일, 자는 일만 하고 있다. 한여름이 되자 마당에는 풀이 우묵 장
승처럼 솟아올랐다. 잡초를 뽑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먼저 꽃밭으로
갔다. 풀에 가리어 채송화도 사랑초도 보이지 않는다. 달개비 풀, 강
아지 풀, 명아주만이 건들거리고 있다. 나는 “너희들이 꽃이니?” 하
며 사정없이 뽑아버렸다. 옥매화 옆에도 풀이 수북하다. 이번에는 호
미를 들고 달려들었다. 소루쟁이, 자리공이 나무처럼 자라 있다. 나
는 또 “풀 주제에 옥매화와 키를 견주다니.” 하며 와락 뽑았다.
다음에는 소나무 곁으로 갔다. 고등학교 2학년인 손자와 키가 비슷
한 소나무는 힘차게 서 있다. 초등학교 시절, 손자가 기념으로 심은
나무이다. 나는 소나무 둘레에 있는 쑥부쟁이, 개망초 등의 잡풀들을
뽑아내었다. 이번에는 풀들에게 욕을 하지 않았다. 다만 손자를 바라
보듯이 소나무의 청청한 모습을 웃으며 올려다보았다.
작약 밭으로 걸음을 옮겼다. 윙하는 소리가 났다. 모기가 얼굴과
손등을 물었다. 힘을 뽐내며 풀을 공격하던 내가 그만 모기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쥐고 있던 호미를 던지고 쏜살같이 집 안으로 들어왔
다. 잔디밭은 손도 대지 못하였다. 필시 잔디 사이사이에도 쇠비름,
참비름, 질경이, 신금초 등이 진을 치고 있을 것이다.
모기에게 물린 곳이 몹시 가려웠다. 손으로 긁어대며 ‘가을바람이
불어와 모기와 잡초들이 죽어버릴 때를 기다리자.’ 하고 마음을 먹는
다. 살아있는 생명이 죽는 것을 고대하는 나의 마음, 잔인하다. 문득
나도 푸른 나무의 젊은 기운을 몸속에 채워 넣었으면, 잡초들의 무성
한 생명력을 나도 몸속에 받아 보았으면 하였다. 그렇게 나무와 풀들
의 강인함이 탐이 났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본다면 “욕심쟁이 사람
풀 한 포기도 솟아 있네.” 할 것이다.
정혜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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