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택님의 신작수필을 소개합니다. 『좋은수필』은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고 잊지않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건巾
염殮을 자시고 입관入棺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건巾을 나누어
준다. 상제들도 상복을 갖춰 입고 성복제成服祭올릴 채비를 한다. 비
로소 상제喪制가 된 것이다. 사모님은 나에게도 건을 건네 주셨다. 사
양했지만, 자네가 건을 안 쓰면 누가 건을 쓰느냐고 하신다. 생전에
선생님 뜻이란다.
세상이 바뀌기는 했지만 굴건제복屈巾祭服도 아니요, 양복을 입고
건을 쓴 상제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낯설다. 초상이 나면 집안 여인네
들이 모여 앉아 수의壽衣를 짓고 상복喪服을 만들던 풍습이 사라지고
상복도 신식으로 바뀌었지만, 유독 건만은 옛 모습 그대로다. 물론
그조차도 집안의 아낙들이 지은 것은 아니다. 크기가 동일해 어떤 것
은 귀가 덮일 정도로 큰가 하면, 어떤 것은 상투처럼 머리 꼭대기에
얹혀서 절만 하면 앞으로 튀어나간다. 머리 크기와 관계없이 만들었
기 때문이다. 상제라고 해 보아야 기껏 한 삼 일 쓰면 되는 것이요,
그나마도 잠시 틈을 내 문상만 하고 가는 건쟁이에게는 한 시간이면
족하니 크고 작고, 모양이 나고 안 나고를 따질 일도 아니다.
육이오 사변이 끝날 무렵 우리 집 사랑채에 사람이 들었다. 이북以
北에서 내려와 머물 곳이 마땅치 않던 젊은 피난민 부부였다. 바깥양
반의 성은 조趙씨였다. 그들은 내 조부모를 북北에 두고 온 부모처럼
여기고 지극정성을 다해 모셨다. 우리 역시 그들을 한식구인 양했다.
그렇게 산 지 몇 해가 지나자 이웃 동네로 세간을 났다. 그 후로도 할
머니, 할아버지 생신은 물론이고 정월이면 어김없이 세배를 오곤 했
다. 심지어 문중門中의 대소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이웃 동네에서 산 지 스무 해쯤 되던 1970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말할 것도 없이 조 씨 아저씨는 건 쓴 상제가 되었다. 피 한 방울 섞이
지 않았지만, 집안의 누구도 그가 상제가 된 것을 시비하지 않았다.
그는 건巾을 쓰고 행전行纏을 친 자신이 큰 벼슬이나 한 듯 이곳저곳
을 바삐 오가며 손님을 맞았다. 남들도 그에게 함부로 하지 않았다.
가끔 친구들 입에서 조 씨 출세했네, 하며 은근히 뻐기는 그를 한 방
먹이기도 했다.
지금 나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상가에 와 건을 쓰고 있다. 망
자亡者의 조카딸인 초등학교 동창이 곁으로 와 앉으면서 모두들 네가
누구냐고 물어와 설명하기 바쁘다며 웃는다. 사촌 오라비라고 그러
지 그랬느냐고 눙을 친다. 그렇지 않아도 시치미를 뚝 떼고 우리 사
촌인데 모르겠냐고 했더니, 대구에서 온 사촌은 나를 처음 본다며 어
떤 삼촌 아들이냐며 고개를 갸우뚱하더라고 해 한참 웃었다.
내가 건을 쓴 까닭은 평소 선생님께서 나를 자식 대하듯 하셨기 때
문이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건을 얻어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건을 주십사 하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럴
용기도 없었고, 과연 내가 건을 쓸 자격이나 되는가 하고 되물어 보
았지만 아무래도 염치없는 것 같아 내심 포기하고 있던 터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아무도 조 씨 아저씨를 챙기지 않았
다. 훗날 조 씨 아저씨는 어머니께 왜 건을 주지 않았느냐며 서운했
노라고 하더란다. 건 하나 건네주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었겠는
가. 다만 세심하게 일을 주장하는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평소 자식처
럼 조부모님을 믿고 따르던 이에게 건을 씌웠을 것이다. 상제 노릇하
기도 바빴던 독상제獨喪制인 아버지는 미처 그럴 겨를이 없었다.
어머니는 참 잘못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조 씨 부인은 아직도 생
존해 있는데, 어머니를 만나면 잊지 않고 삼십 년도 더 된 일을 떠올
리며 서운함을 토로한단다. 조 씨 아저씨 생전에 술만 취하면 할아버
지 장사 때 이야기를 하곤 했다니 얼마나 서운했으면, 얼마나 건이
쓰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어머니는 나라도 건을 씌웠어야 하는 것인
데 하고 말끝을 흐리신다. 조 씨 아저씨는 당신 집안의 일로 건을 쓸
기회는 없었다. 혈혈단신 피난을 와 피붙이 하나 없는 객지에서 건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애써 만들었다고 믿었지만, 그조차도 반쪽이 되고
말았으니 섭섭하기도 했을 것이다.
언제인가 선생님 내외와 아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선생님은
내 등을 두드리시며 당신의 아들에게 형으로 알고 언제든 어려운 일
이 생기면 형과 의논하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귀향해 사는 동안 한
해에 서너 번씩 내 집에 오셨다. 먼저 찾아뵙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
러웠다. 한동안 머뭇거리던 선생님의 큰딸도 이제는 나를 오라버니
라 부른다. 내일이 삼우三虞날이다. 물론 나는 산소에 갈 것이다. 건
을 얻어 썼으니 상제가 된 것이요, 상제가 제사祭祀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일순一瞬, 맨머리로 마당가를 서성이던 조 씨 아저씨의 풀 죽은 모
습이 얼핏 스친다. 얼마나 허전했을까? 얼마나 실망했을까? 그 이후
로 조 씨 아저씨의 발걸음이 뜸해지더니 얼마 후에는 아예 왕래가 끊
기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을 잊었다. 건을 쓰고 나니 불현듯
조 씨 아저씨가 생각난다.
최호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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