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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여름호, 신작수필20인선] 아들 - 김소이

신아미디어 2012. 8. 17. 17:22

저도 김소님이 이야기하는 아들이 있었으면 하면서도 제가 이런 아들이었나 반성을 하게 되네요.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들! 사랑한다.

 

 

 

아들

 

   ‘손자한테 말 배운다.’는 속담이 있다. 요즘 제 아범을 꼭 닮은 손
자 재웅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게 한
다. 또 많이 반성하고 옛말이 틀리지 않음도 자주 느끼게 된다.
   아마 20년쯤 된 얘기인 것 같다. 우리 집 앞마당에는 큰 대추나무
가 있었다. 유난히 굵고 달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지나는 애들
이 종종 나무를 괴롭히는 듯한데 현장이 눈에 띄지를 않는다고 생각
할 무렵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막 돌아온 아들과 거실에 앉아 그날 있었던 얘기
를 듣고 있는데, 아들 또래의 여자애들이 담장 위에 올라서서 대추를
따느라 정신없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창문을 열려고 막 일어
서는 순간 아들이 옷자락을 잡았다.
   “엄마 안 돼요. 소리치면 애들이 놀라서 떨어져 다칠 수 있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일어서던 나는 엄마란 호칭이 그때처럼 부끄러웠
던 적은 없었다. 열다섯 살 아들만도 못한 소견을 가진 내 등줄기에
서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소리를 쳤더라면 애들이 놀라 담장 위에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떨어지면 다칠 거라는 생각도 못한 욕심쟁이
어미보다 훨씬 사려 깊은 어린 아들이었다.
   내 자신이 너무 엄격한 가정에서 자랐기에 애들은 비교적 구속하
지 않고 키우려 신경 썼다. 어미가 어리숙한데 비해 아이 스스로 어
려서부터 심지가 깊어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해주었다. 아
침이면 도시락을 싸느라 정신없어 아예 돈을 서랍에 넣어 놓고, 누가
무슨 용도로 가져가는지를 적어 놓고 꺼내 가도록 해 서로 편리했다.
   또 당시는 책을 즐겨 읽었다. 밤새워 책을 읽고 또 슬픈 소설일 경
우는 퉁퉁 부은 눈으로 날이 밝으면 아침 밥 지어 학교 보내고, 설거
지만 해 놓고 다시 책을 읽을 때였다.
   지금은 30대 중반이 된 아들이 중학교 다닐 때이었으니 20년 전인
것 같다. 애가 수화기를 갖다 주는데 친구가 빌려간《토정비결》소설
을 다 읽었다며 요즘《동의보감》이 재미있다는데 없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버이날 책을 선물받으면서 ‘이 책 사온 서점을 알
려 주면 내가 빨리 읽고 동의보감으로 내일 바꿔 오고 싶다.’고 말했
으나
   “엄마 그러시면 안 돼요. 그 책도 사 드릴 테니 천천히 편히 읽으세
요.”
하고 서점을 안 알려줘 그만 포기한 상태라며 친구랑 이런저런 얘기
를 하고 끊었다.
   다음날인가 여름방학이라 복더위는 한창인데 아들은 냉동실에서
꽁꽁 얼린 얼음물을 들고 한낮이 되면 나가곤 했다. 당시 중학교 달
리기 대표선수라 미리 시합에 대비하느라 연습하러 가나 보다고 짐
작했다. ‘왜 하필 더운 한낮에 할까?’ 하면서도 모든 걸 알아서 잘하
므로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고 묻지도 않았다. 그런 며칠 후, 현관문
을 여니 땀으로 범벅이 된 애가 누런 봉투까지 안고 들어온다.
   “이 더운데 그건 또 뭐냐?”
   “엄마 좋아하시는 거요.”
하며 내게 안겨 준다. 봉투를 열어 보니 5일 전에 친구랑 얘기했던
《동의보감》시리즈였다. 나는 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내 방
으로 들어가 또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그런데 건강하던 아이가 늦은 밤부터 몸살로 몸이 불덩이가 되더
니 점점 심해져서 겁이 났다. 영문을 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들
에게서 물어 자초지종을 들었다.
   자기 친구가 그동안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여행을 가게 되었단다. 한 달 치 월급 받기에는 3일이 모자
라는데 그걸 안 채우면 너무 손해를 많이 보라고 한다며 사흘만 대신
해달라고 하더란다.
   헌데 엄마 허락을 못 받을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차에 엄마가 친구랑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기 친구도 돕고 엄
마에게도 좋은 선물을 할 수 있겠다 싶어 결단을 내리고 신문 배달을
대신했다고 한다.
   신문이라는 것이 문자 그대로 새 소식이라서 한시라도 빨리 독자
에게 전달해야 하므로 뛰어야 한다고 부탁해서 그 복더위에 5층 아
파트를 뛰어 오르내렸었다고 했다. 우리가 집에서 편히 받아 읽는 신
문에 어린 청소년들의 그런 애환이 있다는 것도 그때 아들로 인해 알
게 되었다.
   아이의 뜻이 갸륵할 뿐더러 이미 지난 일이니 야단칠 수도 없었다.
날이 밝으면서 병원에 며칠 다니고 부산을 떨었던 기억이 새롭다.
밤새워 앓는 아이가 안타깝기는 했었지만 행복했던 지난날이 그리
워진다.

 

 

김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