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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펴 2012년 6월호, 세상마주보기] 내 발을 씻어 준 아이 - 윤정혁

신아미디어 2012. 7. 11. 18:09

수필을 통해 세상과 자신이 마주보는 경험.. 수필과 비평에서만 가능한 경험이 아닐까요.

 

 

 

내 발을 씻어 준 아이


   너무 많이 걸었다. 점심 먹는 시간을 빼고는 마냥 걷기만 했다. 그것도
끝없이 오르내리는 산길을. 걷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느 날 느
닷없이 종아리에 알이 배도록 걸은 것이다. 애초 발품을 팔게 되리라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건 정도가 좀 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었다. 출발할 때의 부산함이 간데없었다.
   싯누런 황토물과 짙푸른 맑은 물길이 서로 몸을 뒤섞는 광경이 퍽 인
상적인 양쯔 강변의 우중충한 먼지투성이 도시는 처음부터 이 여행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갈아탄 전세 비행기는 우리를 하
염없이 기다리게 한 후에야 이륙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
나는 나라라고 했다. 비행기는 내륙 깊숙한, 한적한 비행장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은 온통 돌계단이었고 미끄럽기까지 하였다. 넘
어지거나 뒤처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느라 천하절경이라는 걸 제대
로 즐길 수도 없었다. 사람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 만한 협곡의 맨 아래쪽
에 일행이 모두 도착했을 때는 하나같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고 울
상들이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가이드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들 오늘 힘 드셨지요? 객실로 올라가시면 곧바로 발 마사지가
있겠습니다. 피로가 확 풀리실 겁니다.”
   마사지료는 지불되었으니 걱정 말고 각자 봉사료 오천 원만 내면 된
다고 했다. 그 이상은 절대로 주지 말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이곳에선
우리 지폐가 통용된다고 했다.
   발 마사지에 대해 듣기는 했다. 그러나 그걸 접해 본 적은 없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방으로 올라와서는 난생처음 맞이해야 할
상황에 대해 긴장되고 약간은 설레기도 하였다.
   벨이 울리고 두 명의 여자아이가 자그마한 나무통 한 개씩을 안고 들
어섰다. 이들은 이곳 관광지의 원주민이라고 했다. 머리를 묶었는데 어
려 보인다.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고는 곧장 화장실로 가더니 나무통에
뜨거운 물을 담아왔다.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게 하더니 발을 담그란다.
지극히 사무적이다. 웃지도 않는다. 내 새끼발가락 사이엔 건성 무좀이
있다. 많이 걸어서 땀 냄새도 난다. 미안하다. 선뜻 담그기가 뭣해서 머
뭇거리는데 조심스럽게 두 발을 잡아당겨 담가 준다. 약간 뜨거운 듯도
하나 시원하다. 아이가 발을 씻기 시작한다. 왼쪽 발부터 자근자근 주무
르며 때론 발바닥과 발등을 꾹꾹 눌러 힘을 들이기도 하면서 정성을 다
해 열심히 씻는다. 이내 아이의 얼굴에 홍조가 일고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솟는다. 힘이 드는지 숨소리도 가빠진다. 자꾸 미안해진다. 느닷없
이 눈시울이 뜨뜻해진다. 땀이라도 닦아 줘야 하는데, 잠시 쉬었다 하라
고 해야 하는데. 조바심이 다 난다. 마음뿐이다.
   여름이다. 우물가에서 어머니가 내 발을 씻어 주고 있다. 어머니의
앉은키에 겨우 미치는 나는 어머니의 목을 끌어안고 있고 때로 뒤뚱거
린다. 어머니의 무명적삼 안섶에서 조금은 쉰 듯한 땀 냄새가 난다. 어머
니는 나의 발바닥을 살짝살짝 간지럼 태우고 키득거리는 나의 종아리를
찰싹 가볍게 때린다.
   한쪽은 너무 힘이 들고, 한쪽은 너무 편하고, 상반된 입장이 가져다준
침묵이 견디기 어려웠을까, 옆자리의 사내가 몇 살이냐고 묻는다. 아이
가 발 씻던 손을 잠시 멈추고 손바닥에 16이라고 쓴다. 사내가 입을 다물
었다.
   발 씻기가 끝났다. 마른 수건으로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조심조심 닦
아준다. 기분이 상쾌하다. 몸까지 가뿐해진다. 이번에는 침대에 반듯하
게 누우라고 한다. 갑자기 긴장되기 시작한다. 왼쪽 다리의 무릎을 꺾어
세우고 종아리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알밴 종아리를 주무를 땐 나도 모
르게 짧은 비명이 나왔다. 아이가 손을 멈추고 걱정스러운 눈길을 준다.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또 손을 멈추고 쳐다본다. 힘을 빼라는 눈빛을 금방 읽어 내겠다. 어서
이 상황이 끝났으면 싶다. 다리 주무르기가 끝나고 다시 팔로, 팔이 끝나
고 등으로, 이게 어찌 발 마사지인가. 한나절 같은 한 시간이 지났다.
주섬주섬 수건과 물통을 챙긴다. 옆자리의 사내가 얼른 호주머니에서
봉사료를 꺼내 건네준다. 주라는 돈의 배다. 그는 나의 손아래 사촌 동서
로 장사꾼이다. 나는 멍청히 앉아서 아이들을 쳐다보고만 있다. 그냥
미안하다.
   어쩌다가 아내가 팔이나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할 때가 있다. 대충
주무르기는 물론이려니와 그 시간도 오 분을 넘기지 못한다. 그냥 건성
이다. 그나마도 힘에 부쳐서 헐떡거린다. 아내가 내게 해주는 경우도
다르지 않다.
   겨울철 저녁 무렵에 어머니는 종일 쏘다니다 돌아온 어린 나를 부엌
으로 불러들여 부뚜막에 앉히고 발을 씻어주기도 했다. 부엌문을 닫으
면 약간 어두컴컴한 그곳은 차가운 바람 소리도 잦아든 전혀 딴 세계였
다. 차츰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 쯤이면 부뚜막은 언 엉덩이를 따뜻하
게 녹여주었다. 뜨거운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타닥타닥 장작 타들
어가는 소리가 꿈결처럼 들렸다. 나의 터지고 갈라진 발을 어머니는 천
천히 오래도록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씻고 또 씻었다. 그럴 때
장작불빛에 설핏설핏 드러나는 어머니의 얼굴은 슬퍼 보였고 눈빛이 아
련히 젖어 있었던 것을 나는 보았다. 어머니는 내 발을 씻으면서 아들이
모를 시름을 가닥가닥 풀어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발 씻어주던 아이들이 돌아가고, 나는 침대에 반듯이 누워 눈을 감고
있다. 참으로 편안하다. 태어나서 내 어머니 말고 어느 누가 내 더러운
발을 그토록 알뜰하게 정성을 다해 씻어주고 주물러 준 적이 있었던가.
그것은 대가를 받고 행하는 반대급부의 행위라고 잘라 말해서는 안 되
는 일로 여겨졌다. 생각해 보면 아이가 씻은 것이 내 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국땅에서 내 발을 씻어 준 아이는 기억 속에 오래 간직하고
싶은 아이이기도 하고 지워 버리고 싶은 아이이기도 하다.

 


윤정혁  ---------------------------------------------------------------------
≪에세이문학≫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