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듣고 싶은 말은 계속 바뀌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랑한다, 보고싶다, 닮고싶다.. 등의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듣고 싶은 말
‘듣고 듣고 또 듣고
듣고 싶은 말
언제 언제 언제나
엄마 목소리.’
문득 생각나는 노랫말이다.
내 딸들도 나중에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나를 생각할까 싶기도 하고,
항상 지적만 하는 엄마 목소리가 환청으로라도 들려서 질겁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어두워질 때까지 골목에서 고무줄놀이 하면서 부르던 노
래가 갑자기 떠오른 것은 방금 읽은 인터넷 기사의 한 줄 글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선생님, 존경합니다.’라는 말이다.”
‘존경한다.’라는 말의 느낌은 아주 크다. 한마디 말 속에 모든 것이 들
어 있다.
삶의 태도나 가치관, 행동 하나하나가 다 본받고 싶고, 따를 수 있어야
존경한다는 말이 나올 것 같다. 말과 행동, 생각조차 완벽히 모범이 되는
사람이어야 존경받는 사람 속에 들지 않을까 생각하면 늘 부족하기만
한 나는 부끄럽다. 모범 공무원상을 받게 되었을 때도 남이 알까 두려웠
다.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존경한다는 말을 듣는 사람은 그야말로 대
단한 사람일 것이다. 오늘도 그동안 여러 부문에서 학생들을 위해 노력
하고, 봉사한 교사들이 교과부장관상, 국무총리의 표창을 받았다. 우리
학교에서도 훌륭한 두 교사가 표창을 받았다. 교사들의 사기가 땅에 떨
어졌다고 매스컴에서 떠들어서인지 올해는 10년 차, 20년 차 되는 선생
님들에게는 인증서 같은 것을 주어 긍지를 갖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다행이다. 존경이라는 말만큼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나쁜 교사는 아니지만, 남들에게 학교에 근무
한다는 것을 쉽게 밝히지는 않는다. 갓 대학을 졸업할 무렵의 신임교사
시절에는 어디든지 자랑했는데 갈수록 자신감이 부족한가 보다. 마치
내가 도둑질이나 나쁜 짓을 하던 사람인 것처럼 어쩐지 등이 따갑기 때
문이다. 지구 위에 사는 수많은 사람 중에 도둑도 있고, 깡패도 있는
것처럼 교사들 중에도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많을 수도 있다. 가끔 작은
잘못이라도 밝혀지면 침소봉대하여 한꺼번에 매도하는 바람에 교사들
이 돈이나 밝히고, 학생 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는, 양심을 져버리고 사는
집단으로 패대기쳐진 일이 있었다. 사실 어떤 때는 교원인 내가 들어도
부끄러운 일도 허다하였다. 그러나 교사도 신이 아니고,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좀 알아 달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많다.
듣고 싶은 말을 조사하였다면 듣고 싶지 않은 말도 조사해 봤으면 좋
겠다. 나는 ‘스승의 날’이란 말 자체를 달력에서 지우고 싶은 때도 있었
다. 매년 4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각종 나쁜 소문들이 신문이나 방송을
달구면서 전 교사들을 교육모리배로 몰아가는 분위기여서 차라리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열심히 공부나 가르치고 근무하면서 지나가고 싶었
다. 그러나 도둑질하는 아들도 부모는 안아주고 품으면서 바른 사람으
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굳이 정해진 날까지 없애라고 어깃장을
놓고 싶지는 않다. 그럴 용기도 없다. 다만, 스승의 날에는 퇴근 때도
빈손으로 핸드백만 달랑거리고 집으로 오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마트
에서 장을 봐야 하는데도 남의 눈이 무서워서 가볍게 퇴근한다. 철없을
때 한번 마트에서 반찬거리를 이것저것 사서 백화점 쇼핑백에 담고 오
다가 이웃을 마주쳤을 때에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채소와
과일이 담긴 봉투를 한순간에 다 점검한 듯이 씨익 웃으면서 “선물 많이
받으셨네요.”라고 했었다. 나는 왜 그리 모자라는 사람이었던지, 하필이
면 그날 백화점 봉투를 들고 나섰는지 후회를 해도 늦었다. ‘봐라. 선생
님들은 스승의 날에 한몫을 챙기잖아!’라는 듯한 웃음을 흘리는 사람 앞
에서 굳이 찬거리라고 말하지 못하고 쩔쩔맸던 기억은 시간이 숱하게
지낸 지금도 등에 땀이 난다.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선물 받지 말기’
같은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아마 다른 교사들도 촌지니,
금품수수라는 말이 듣기 거북할 것이다.
교사들의 두 번째 듣고 싶은 말은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라는 말
이라고 한다. 주로 저학년 담임을 많이 했던 나는 학생들이 곁에 와서
옷깃을 만지거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선생님한테서 좋은 냄새가 나
요.”라고 하면서 코를 갖다 대는 것이 좋았다. 일부러 꽃향기가 나는 향
수를 슬쩍 뿌리고 다니기도 했다. 남편과 찍은 사진을 책상의 유리판
밑에 넣어 두어도 “애인 있어요? 우리 삼촌 미남인데….”라고 해주는 학
생들이 귀여웠다. 그중에서 나도 나중에 선생님처럼 선생님이 되어야지
하는 말은 어쩐지 내가 잘하고 있다는 말처럼 들려서 좋았다. 어른이면
서도 학생들의 자잘한 칭찬 말이 듣기 좋았다. 곧잘 사탕을 사서 나눠먹
는 이유이기도 했다.
듣고 싶은 말이 사람마다 다 같을 수는 없다. 연인들이 듣고 싶은 말은
‘보고 싶다’라는 말과 ‘사랑해’라는 말이라고 한다. ‘사랑한다.’라는 말은
천 번을 들어도 싫지 않은 말일 것이다. 서른한 번째 스승의 날인 오늘
아침의 내 책상에는 여러 통의 카드가 놓여 있다. 맡은 학생이 없다보니
선생님들이 시켜서 만든 것이다. 유치원과 돌봄교실의 저학년 꼬마들이
마음을 모아서 엮은 조그만 카드 안에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소복이
쌓여있다. 표현을 잘 하고 사는 요즘 세대의 어린이들은 사랑을 받으면
서, 표현하는 것도 배워서 그런지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곧잘 한다. 돌맞이 우리 외손녀도 제 어미가 시키는 말을 듣고 짧은 팔을
치켜들며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보면 대견하다. 나는 존경한다
는 말도 좋지만, 부담스러우니까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 더 좋다.
학생들은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너를 믿는다.’라는 말씀을 들으면 더
욱 힘이 날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명함 뒤에 ‘부모는 너를 믿는다.’라고
써 주신 글을 평생 기억하면서 허투루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을 지표로
삼은 것처럼 좋은 말 한마디에 삶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좋은 말을 자주
들려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선생님, 존경합니다.’라고 자주 말하면 존
경받을 스승이 많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며칠 전에 한 학생이 놀라서
들고 온 두 그릇의 밥이 생각난다.
전교회장인 수민이가 “이것 좀 보세요.”라고 하면서 두 개의 비커에
담긴 밥을 들고 뛰어 왔다. 한쪽은 사랑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중요해
등의 좋은 말을 쓰고, 다른 비커에는 욕이 씌어 있었다. 세상을 놀라게
한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읽어서 이미 아는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보았지만, 학생은 처음 본 현상이라 놀라서 내게 보여 주려고 뛰어
온 것이다. 아마 교실에서 학생들이 욕을 쓰자 담임 교사가 실험을 통해
서 가르침을 준 것이리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수민이는 앞으로 평생
남에게 욕을 하지 않고 좋은 말만 할 것이다.
때마침 휴대 전화로 문자가 날아들었다. 신규 교사를 겨우 면하고 다
른 학교로 전근 간 햇병아리 선생님이다.
‘교감 선생님, 아무것도 모르던 저를 이만큼 가르쳐 주신 은혜, 감사합
니다. 제 교직 인생의 스승이십니다. 보고 싶어서 며칠 내로 찾아 가겠습
니다.’
그래, 난 이런 말이 듣고 싶은거다. 가르쳐 주어서 고맙다는 말, 보고
싶다는 말, 그런데 정말 내가 그 선생님에게 뭔가를 제대로 가르쳐서
보내기나 했나? 모르겠다.
이용숙 -----------------------------------------------------------------------
≪수필과비평≫ 신인상 당선.
대구 효동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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