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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다른 시각으로 읽다] 자아 찾기와 소외로부터의 탈주 - 김경희

신아미디어 2012. 7. 10. 17:38

전경린님의 소설을 김경희님과 함께 다른 시각으로 읽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일탈은 주로 성적 일탈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주인공의 불륜은 단순히 소재적 차원에서 파악되기보다는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은폐되어 있던 삶에 대한 자각이나 내면에 감추어져 있던 정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자아 찾기와 소외로부터의 탈주
                  - 전경린 <밤의 나선형 계단>

 

 


1. 풀무질
   전경린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태로운 환멸의 일상을 뛰어넘고자 하는
면에서 1990년대의 작가들 중에서 독특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1990년대
문학에서 일상성의 심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는 여성영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이들은 가족과 자아라는 주제를 천착하고 있다.
여성존재로서 드러내는 고통과 억압, 욕망과 비원은 권태롭고도 편안하
게 보이는 생활 속에 잠긴 소외된 체험을 상기시킨다.
   전경린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핵심으로 삼고 있는, 1990년대라는 시
대에 감응하는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들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긴 이 작가는 불행한 일상을 뒤흔드는 정념의 사랑과
여성성에 대한 성찰, 내면에 대한 깊은 관심, 사물에 대한 강렬한 상징적
비유를 통해 독자에게 다가왔다. 전경린의 여성들은 오히려 생활세계를
박차고 비상함으로써 존재의 기쁨을 찾는, 엄연한 의미에서의 일상초월
적인 여성들이다. 이렇듯 피안의 세계를 지향하는 인물들에게서 남성과
싸워 자신의 삶을 변혁한다거나, 누추한 삶의 고통을 현실적으로 일깨
운다든가 하는 것은 본질적인 관심사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강렬
한 여성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은 주변부로서
의 여성적 생활체험을 저항적으로 일깨우지는 않는다. 그의 여성인물들
은 자기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생의 관습적인 고리를 끊기 위해 필사적
으로 가출과 탈주를 감행한다.
   라캉 식으로 이야기하면, 전경린 소설의 인물들은 아버지의 질서에
아직 편입되지 않은 상상계의 불안하고 흔들리는 상태에 놓여 있다. 그
들은 이미 기존 질서에 편입한 성인일지라도 무의식 속에 파묻혀 있던
‘유동적이고도 불안한 광기의 시간’을 끊임없이 그리워한다. 그의 소설
에서 ‘여성’들의 존재가 다분히 일탈적으로 묘사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전경린의 여성인물들이야말로 결핍, 부재, 의미의 부정,
비이성, 혼란, 비존재(non-being)로 규정되는, 그동안 주변화되고 은폐되
었던 고유의 여성성(femininity)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여성성은 흔히
상정되듯이 풍요롭고 전능한 어머니에 대한 애착과는 거리가 멀다. 소
설에서는 오히려 ‘기원’으로서의 어머니를 부정하고 결별하는 데서 여성
인물들의 자립적 근거가 가능해진다.
   <밤의 나선형 계단>의 엄마는 가정이라는 존재 조건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일탈적 욕망을 추구한다. 일탈은 주로 성적 일탈에 초점이 맞춰
지는데, 주인공의 불륜은 단순히 소재적 차원에서 파악되기보다는 결혼
이라는 제도 속에서 은폐되어 있던 삶에 대한 자각이나 내면에 감추어
져 있던 정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2. <바그다드 카페>, 마술사
  
<밤의 나선형 계단>에서 딸의 눈에 비친 엄마는 계속되는 가정의 경
제적 궁핍 속에서 아이들 양육과 가사일을 완전히 팽개친 상태이다. 여
자애와 어린 남동생에게 하루종일 피자와 콜라만 먹이고, 이월에도 거
실에 선풍기를 방치해두며, 식탁 위의 엎질러진 우유 속에 시리얼이 엉
겨붙어 있는 것을 치우지도 않는 엄마, 얼굴에서는 분 냄새가 나고 검은
보라색 립스틱을 바르며, 손에서는 담배냄새와 술 냄새가 나는 엄마가,
그나마 의욕을 가지고 하는 일이란, <바그다드 카페> 비디오를 보는 일
뿐이다.
   회사에서 해고된 남편, 생계를 위해 억지로 운영해야 하는 가게, 그래
도 늘어만 가는 빚, 우편함에 쌓이는 청구서들을 엄마가 잊을 수 있는
때는, 영화 속의 마술에 도취돼 있을 때뿐이다. 아빠가 엄마 모르게 아파
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아 쓴 사실이 탄로나 두 사람은 마주치기
만 하면 언성을 높여 싸웠다. 그 뒤 엄마는 외박을 했고, ‘두 사람은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구는’ 관계가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회피하
기 위해 아빠는 낚시에 빠졌고, 엄마는 연애에 빠졌다. 엄마의 남자에게
서 오는 전화는 영화 속 종이꽃과 같은 존재이기에, 여자애는 ‘아무 소용
도 없고 향기도 없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해도 엄마는 그것에 의지해 장
애물 경주 같은 생을 가로질러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엄
마는 그 남자와도 헤어진 것 같다. 엄마 인생의 종이꽃마저 없는 지금,
여자애는 아무래도 엄마가 가족을 버리고 가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다. 그래서 여자애는 엄마를 놓아준다. 만일 여자애가 엄마의 운명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머니에게서 딸로, 그 딸의 딸에게로 반복되는 운
명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초라한 운명의 연쇄를 끊고 싶어
했으며, 이 때문에 아이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결심한다. 작가의, 여성의
운명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 그것은 모성마저도 위험한 시험대 위에 올
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되었다.
   여자애는 짐을 싸둔 엄마의 여행용 트렁크를 들어다 물건들을 버리고
그 속에 메메를 넣어 호수 속에 버림으로써 엄마의 가출을 막아보려 했
으나 엄마는 떠나버렸다. 자신이 물 속에 빠뜨린 메메의 울음소리는 엄
마가 버린 자신의 울음소리처럼 깊고 아득한 낭떠러지에서 들려온다.
엄마를 잃은 아이의 절망은 세상의 모든 따뜻함을 잃어버린 ‘꽁꽁 언
얼음장같이 커다랗고 무겁고 무감각하게 느껴지는 발’에서 은유화된다.
‘엄마는 손으로 시금치 나물을 주물러 무치면서 어린 여자애에게 간을
보게 하고, 반찬을 만드는 틈틈이 여자애가 쓴 시험지 답이 옳은지 점검
하며 자주 미소짓던 길고 평화롭고 다정한 저녁’의 기억을 가진 여자애
에게 엄마의 떠남은 모든 것을 상실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엄마와
의 시간들이 ‘잘 닫힌 원처럼 안전하고 포근했’다면, 그 따뜻한 자궁 안의
시절을 깨치고 자신 스스로의 삶을 살아야함의 막막함이 아이의 모든
것을 얼어붙게 했을 것이다.
   여자애는 많은 갈등을 하였으면서도 엄마를 이해하고 보내야겠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동생의 숙제를 돕겠다는 것으로 비어버린 엄마의 자리
를 대신하려 한다. 그리고 엄마가 자주 보던 비디오의 마술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삶에서 채울 수 없는 욕망 때문에 절망하던
엄마가 마술을 보며 그나마 위안을 삼던 그 마음을 이해한 것이다. 그래
서 먼 훗날 여러 곳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엄마가 사는 마을에 도착해서
늙은 엄마의 집을 찾아가 마술사처럼 여러 가지 다양한 색깔의 꽃들을
만들어내고, 비둘기를 꺼내어 창밖으로 날려 보내고, 트렁크에 넣어 호
수에 버린 메메를 꺼내 다시 살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는 엄마가 아닌
한 여성으로서의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여자아이의 성숙한 면
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엄마로 인하여 절망했으되 엄마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아이는 메메를 다시 살려내듯이, 먼 훗날 자신이 엄마를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엄마와의 관계를 복원시키고자 한다. 그
래서 엄마의 웃는 모습이 여자애의 눈에 아프게 박힐 수 있는 것이다.
엄마의 떠남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이었으며 그들을 버린 게 아니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애도 엄마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이
해하게 된다.


3. 삶은 그저 도취이며 마술
  
그렇다면 이렇게 떠나야 하는 엄마의 반란의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
을 거부하고, 무엇에 대항하기 위한 방식인가. 그리고 남편과 아이를
버린 여자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엄마는 떠났다. 현실적인
삶의 무게와 남편의 무능에 대한 책임은, 흔히 말하는 보편적 관념으로
는 엄마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다. 그것이 일반적인 삶의 방식이다. 그러
나 <밤의 나선형 계단>에서의 엄마는 엄마이기에 아내이기에 짊어져야
하는 책임을 지기보다는 그러한 생활에서 점점 망가져가는 자신의 모습
에 더 견딜 수 없어 한다. 앞에서 밝혔듯이 엄마가 가출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남편의 경제적인 무능 때문이다. 그로 인해 엄마와 아빠는 남처
럼 살면서 서로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빠는 낚시를, 엄마는 외도를
한다. 그러나 그때에도 엄마는 아이들을 버리지 않았다.
   화자인 여자아이의 표현대로 엄마는 자식들에게 밥해 먹이는 행위가
즐겁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해서 그 의무를
실행하려 애쓴다. 의무일망정 자식들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고 있었
던 것이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행복하게 기꺼이 하는
일은 많지 않다. 특히 주부일이란, 한 가정을 꾸려가는 책임으로 하게
되는 것처럼, 반복되는 일상사가 생산적이고 기쁜 일이지는 않다. 그러
나 엄마가 처음부터 그렇게 엄마 역할을 심드렁하게 했던 것은 아니다.
여자아이가 보는 엄마는 ‘고무장갑을 끼어야 하는 삶을 모욕으로 느끼’
지만, ‘고무장갑처럼 질겨질 바에는 지루한 녹색의 나뭇가지에 주전자의
물을 부어 종이꽃을 만들어 낼 사람’이다. 바닥을 모르고도 자신의 본질
을 향해 추락해 버릴 수 있는 이 엄마는 분명 작가의 분신, 그의 내면의
극화일 것이다. 작가는 그처럼 여성이 자신이어야만 할 자기를 향해,
가족, 결혼이라는 제도의 바깥으로 이탈해 버리기 위해서는 아이문제를
이렇게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작가 전경린을 다른 여성작가와 다르게 변별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아이는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또 하나의 운명이라기보다는 엄마
에 부속된, 여성에 부속된 존재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던 것에서 자식
을 하나의 독자적 운명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엄마가 딸을 독자적 운
명으로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적일 수 있다. 자식을 개체적으로 인
정하는 것은 좋지만 자칫 여성적 자신의 삶을 위해 어머니로서의 최소
한의 책임까지도 방기해 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엄마는 아들의 유치원 회비 독촉 따위의 노란색 쪽지가 쌓인
바구니와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실에서 엄마가 비디오의 마술에 빠지고 삐삐를 치며 방안에
서 울어야 하는 삶을 견디기란 어렵다. 엄마가 마술을 좋아했던 이유도
그것을 통해 자신의 현실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삶은 그저 도취이
며 마술’이고, ‘마술이 있는 동안은 아무도 슬프지 않’다.
   그런 엄마였지만 여자아이의 동생 명에게 엄마란 세상에서 가장 아름
답고 가장 마음씨가 곱고, 자신이 하루 빨리 자라서 보호해 주어야 할,
세상에서 살아가기엔 가혹하도록 가냘프고 신비한 존재이다. 엄마는 아
빠가 직장에 다닐 때는 하루종일 여자아이와 함께 있어 주었으며, 함께
놀이터를 가고 시장에 가서 반찬거리를 사오고, 미싱을 돌려 시장에서
떠온 초록색 천으로 조그만 원피스와 냉장고 덮개를 만들고, 네 살 때부
터 글자를 읽을 수 있게 가르쳐준 엄마였다. 이러한 평온을 깨뜨리고
엄마가 가출한 이유는 가난과 아빠의 무책임이었던 것이다.
   아빠는 엄마의 가출 원인을 새로운 남자를 만나기 위한 것으로 치부한
다. 즉 자신의 경제적 무능력과 아내를 무방비 상태로 방치해 둔 이유가
원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엄마에게 있어 남자는 딸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것처럼 자신의 생의 비참함을 잊기 위한 방식에 지나지
않았다. 아빠가 자신의 무능을 은폐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낚시에 빠졌듯
이, 엄마는 남자를 만나면서 남루해진 자신의 생을 견디고 있었다. 중요
한 것은 경제적 궁핍의 원인을 제공한 아빠가 가정을 책임지려 하지 않
고 방기한 탓이다. 엄마가 두려워하는 건 가난 자체보다도 가난으로 인
하여 ‘단지 필요한 것은 충족시키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정체된 삶이며, 그래서 ‘두려운 건 가난이
아니라, 두려움 자체에 매여 자신을 묶는’ 일이다. 가난을 극복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남편에게, 그리고 그러한 삶에 대해 정면도전하지 않고 뒷
전에서 방치하고 있는 남편에게 자신의 생을 맡길 수 없었음이다.
   ‘끔찍해. 나도 이렇게 살려고 한 건 아니었어. 너에게 부도덕하다는
말을 하진 않을 거야. 나의 무능, 이런 현실 역시 부도덕한 거니까.’ 아빠
가 수긍하는 것처럼 무능은 부도덕이 되었다. 결국 엄마는, 죽어가는
화초도 엄마의 것이 되면 꽃을 피우게 되는 신비한 힘을 가난으로 인한
아빠의 무관심으로 잃고, 그 신비한 힘을 복원시키려 길을 떠난다. 여자
애가 엄마를 이해하는 것처럼, ‘누구나 노력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단지 그 노력이 자식을 위하고 남편, 가족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
의 삶에만 국한돼 있다는 데에 이 소설이 특별한 의미를 갖게 한다.


4. 탈주, 통과제의의 한 방식
  
결국 <밤의 나선형 계단>의 엄마는 결혼 후 줄곧 자신을 보호하고 정
체성을 규정해 주던 안전하지만 답답한 생활을 버리고 떠나간다. 이는
‘안주와 탈주’라는 두 가지 갈림길에서 모험의 길을 선택한 것이며, 그러
기에 용기와 인내, 결단이 필요하다. 때문에 엄마의 떠남을 단순히 어머
니로서의 의무를 방기한 것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여성들의 결혼 후 자동
적으로 선규정되던 아내와 어머니라는 정체성이 부가하는 구속과, 엄마
로 하여금 모든 꿈과 희망을 잃게 만드는 가장이나 사회 현실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결혼한 여성에게 남편과 자식을
제외하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이제 바꿔야 한다는 방향의
전환점을 제공해 준다. 결혼한 여성에게 남편과 자식이라는 존재는 그
들의 삶에 각각 한 부분일 뿐이지 전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성으로 여성의 정체성을 찾던 모성이데올로기의 공고한 기반은 무너
지게 된다.
   전경린은 소설 속에서 여자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밤의
나선형 계단>에서도 불륜이란 소재를 통해서, 가정과 모성성의 신화가
여자들의 삶을 옭죄고 있는 요인들을 보여준다. 이들의 불륜 모티프는
결혼이라는 제도적 틀로부터 자아 발견과 진정한 자기 정체성과의 대면
이라는 고통스러운 내적 성숙의 과정으로 옮겨가는, 삶의 거듭남을 위
한 필연적인 통과 제의의 한 방식으로 제시된다.

 


김경희  -----------------------------------------------------------------------
조선대학교 초빙 교수.
≪수필과비평≫, ≪월간문학≫으로 수필 등단.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작품집: ≪울 수 있는 행복≫, ≪표면적 줄이기≫.
소설집: ≪새들 날아오르다≫.
수상: 수필과비평문학상, 신곡문학상, 국제문화예술문학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