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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세상마주보기] 돌이 고맙네양 - 고미선

신아미디어 2012. 7. 9. 19:26

작은 것, 하찮은 것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소중하고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겠죠. 수필과 비평도 현재는 작지만(?) 크게 쓰임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이 고맙네양


   어디를 가든지 지천에 깔린 게 돌이다. 많은 돌이 있어도 형태와 빛깔
은 다르다. 똑같은 돌은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쓰임새도 같지 않다. 조물
주가 큰 돌이나 작은 돌에 독자성을 부여해서일까. 발부리에 차이는 게
돌이라 하지만 내가 화장품 대리점을 경영할 때 하찮은 돌 덕분에 목숨
을 구한 일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뜨거운 태양의 위력은 아스팔트 위를 지나간 자동차 바퀴자국에 선명
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물이라도 부으면 뜨거운 김이 금세 올라올 태세
였다. “여기 서귀포인데요, 내가 쓰는 파우더가 떨어졌어요. 갖다 줄 수
있나요?” 거리상 자동차 기름값이며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
지만 어느새 샘플을 더 챙겨서 가게 되었다. 해발이 높은 만큼 서늘해서
더위 스트레스도 날려 버릴 겸 ‘1100도로’를 택했다.
   시내와 약간의 온도 차이로 여름날의 더위를 식히기에 안성맞춤이다.
옛날 사용하던 도로라 왕복 1차선이다. 웃자란 방풍림 신록은 시각적으
로도 시원하다. 피톤치드향이 그윽하다. 일정이 바빠서 잠시 쉬고 갈
여유도 없다. 돌아올 때는 ‘거린사슴 전망대’에서 더위를 식혀 가고 싶다.
멀리 초록 숲으로 이어지는 넓은 벌판이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거린
사슴’은 세 개의 오름과 광활한 들판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서귀포 시내
와 해안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고기압과 저기압
이 만나 인간과 동식물이 기압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장소로 길손의 휴식
처가 되기도 한다. 여기저기 드러누워 있는 오름군群에서 피어나는 뭉게
구름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이고 있다.
   보통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총알택시처럼 사십 분만에 도착하
니 고객이 미안해하며 시원한 음료수를 내놓는다. 음료수 대접을 얼마
나 받았던지 얼마 가지 못해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거린사슴 전망대
에 가까스로 도착하니 구경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십여 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비어 있다. 급해도 L자로 후진하여 정직하게 주차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터질 것 같았던 아랫배도 비우고 나니 살 것 같다.
   느긋하게 걸어 나오는데 내 승용차가 굴러가는 게 아닌가. 문득 귀신
에 홀린 것 같았다. 차가 움직이다니! 처음 보는 상황이어서 황당했지만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며 달려가서 차 앞을 막아섰다. 척추 수술을 받
은 지 두 해가 막 지난 무렵인지라 보닛 쪽에서 아무리 밀어 올려도 역부
족이다. 굴러 가고 있는 자동차바퀴 때문에 운전석 문 열기도 무섭고
버겁다.
   “거기 누구 없어요? 도와 주셔요.”
   힘껏 소리를 질러도 인기척조차 없다. 점점 겁이 났다. 내가 차와 같이
굴러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허리가 뻐근하다. 아래는 덤불로 가득
찬 낭떠러지처럼 보였다.
   차가 굴렀다면 견인하기도 힘들 정도의 상황이이어 머리카락이 곤두
서고 얼굴엔 땀방울로 범벅이 되어 눈까지 따갑다. 차가 폐차 되는 것보
다 트렁크에 들어 있는 화장품이 뇌리를 스친다.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
에도 이천만 원어치가 넘는 물건이 박살 날 것만 같아 조바심으로 손에
진땀이 났다. 일간지 신문에 사건사고 기사가 나면 창피해서 어쩌나 싶
기도 했다. ‘거린사슴 전망대’에 무엇이 볼 게 있다고, 왜 하필 그 시간에
화장실에는 가고 싶었는지 죄 없는 꿈자리도 떠올려 보았다.
   하늘이 도왔는지 낭떠러지로 구르기 직전, 납작하고 방석 반쪽만 한
돌덩이 하나가 범퍼를 받쳐 준다. 돌과 함께 차와 내가 곤두박질치는
줄 알았다. 올라서 보았더니 흔들거리면서도 밀려 내려가지는 않는다.
   범퍼 쪽이 돌에 많이 찍혀있다. 다행이다 싶어 깊은 숨을 몰아쉬는데
커피 판매점 남자가 나왔다.
   “아주머니 대단히 재수 좋았네예. 방향이 조금만 트러져시민 흔적도
못 찾아시컬. 저번엔 티코도 떨어졍 폐차 됐수게. 견인도 힘들언마씨.”
애타게 불러도 대답조차 없다가 섬뜩한 얘기만 늘어놓는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 문을 열어 보았다. 이런! 핸드브레이크를 채우
지 않은 게 아닌가. 기가 막히고 가쁜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저 돌 때문에 살았네양. 하필이면 범퍼가 거기에 닿았기 망정이지.
경 안해시민 와장창 떨어져시컬, 돌이 고맙네양.” 남자가 후진해 주면서
하는 말이다.
   납작하게 생긴 돌이 관세음보살로 보인다. 돌에게 고난에서 구제해
주어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합장하며 절했다. 눈물이 흐른다. 요령 피우
지 않고 주차선 그어진 대로 정직하게 주차한 것도 탈이던가. 그 돌이
나를 살린 건 무슨 뜻일까. 어려운 이웃들에게 선의지善意志라도 베풀며
살라고 구해 주었을까. 우주의 에너지가 통하여 이끌려온 돌처럼 보인
다. 하찮은 것이라도 멸시한 일은 없는지 참회해 본다. 입으로 지은 죄
또한 적지 않으리라.
   남편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오늘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대답이 가관이다.
   “그거 참 좋은 돌이네. 우리 각시 살리게. 그 돌 가져와서?”
   보잘 것 없이 쓸모없는 돌이라도 경우에 따라선 생사를 뒤바꾸어 놓
는 위대한 힘을 갖는다. 돌이 지닌 오묘한 조화는 신비스러움을 더할
뿐이다.


   * 각시: 제주어에서 각시는 새댁만이 아닌 나이 들어도 부인을 호칭함.

 

 

고미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