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선님의 신작수필 3편을 소개합니다. 즐거운 감상되세요.
어멍아 어멍아
“느네 어멍 또 미쳐시냐.”
어렸을 적 동네 사람들이 쉽게 내뱉었던 말이다. 또 미쳤느냐는 ‘또’
소리가 들릴 때마다 온몸이 또 달아오르다가 사그라지곤 했다.
어머니는 잊어버릴 만하면 청상과부의 한을 이기지 못하여 쓰러지셨
다. 뭇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야 하는 표정관리며 몸관리에 지쳐 옹이가
터진 것이었다. 낙락장송 같은 마음이 무너져 내린 허허로움이었다. 덩
어리진 한을 뿜어낸 자유인지도 모른다.
느닷없이 일본에서 날아든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시신 없는 초상을
치렀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도 허깨비 같은 영상으로 남아 있다. 굴건
제복을 하고 대·소상, 초하루·보름·삭망을 삼 년 내내 지극정성으로
모시던 어머니는 순종의 노예요, 망부의 화신이었다. 어머니에게 불경
이부不更二夫의 규범은 망부석 그 이상의 징표였다.
육십이 넘은 어머니가 또 쓰러지셨다. 가난을 벗어나고 손자, 손녀가
재롱을 떨던 그런 시기라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머니 가슴에 박히고,
맺히고 덩어리진 한은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불덩어리 같은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자신의 처지를 새삼 찾았을 때의 허망함이 원인이라면 원
인이겠다. 화산을 지닌 여인의 내밀한 언어를 조금도 이해 못한 나의
불효가 어머니의 허망함에 또 다른 불을 질렀다.
중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는 겹으로 잠근 방에 갇혀 있었다. 이른 새벽
에 아내와 함께 면회를 갔을 때 우린 방관자일 뿐이었다. 면회 시간 전이
라 병원과 맞닿은 작은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어머니가 멍한 눈빛으로
손을 비틀면서 마당의 풀을 뽑고 있었다. 면회 시간이 되어 기다란 일반
병실을 지나 또 하나의 커다란 자물통을 열고 어머니가 계시는 독방 철
문을 밀어낸다. 알 수 없는 주술을 외우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순간 온몸이 감전된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멍청히 서 있다가 손목
한 번 잡아 보고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신병에 대한 수십 권의 책을 읽다 보니 책 속의 주인공들은 우리와
거의 닮아 있으나 조금 일그러진 삶을 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원장 선생과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얻은 결론은 ‘현대인은 모
두 정신병자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였다.
어머니의 병마 속에 난 둥둥 떠다니는 한 조각의 구름일 뿐이었다.
탈춤의 가면 같은 가상이 역설로 다가온다. 그 가상 속에 어머니의 그림
자가 바로 ‘나’임을 발견한다. 가면을 쓴 가상의 자아, 페르소나를 벗겨
내기가 너무 힘이 든다. 프리즘을 통한 어머니의 스펙트럼은 너무 진하
여 그 심연을 알 길이 없다. 어머니의 한을 깨닫는 깨달음이 진정한 깨달
음일 텐데 그렇지 못하는 나는 진정 누구인가. 어머니의 한 맺힌 모습은
화석으로 응고된 시간 속에 아직도 그대로 보이는 듯하다.
못난 자식이 철이 들 무렵, 어머니는 이 년여의 산소호흡기로 묵상하
시다가 모든 가식을 떼어놓고 십이월 눈 오는 어느 날 레테의 강을 건너
자유의 몸이 되셨다. 달팽이 같은 오체투지의 삶 속에서 판독할 수 없는
고독한 순례 끝에 모든 짐을 내려놓으셨다. 뭉개진 나이테를 멀리한 채.
어디선가 시나위가 잔잔히 울려오는 듯하다. 굿놀이패, 춤사위꾼들이
저 멀리서 나에게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낸다.
“어머니, 굿마당 한 판 벌여 봅시다. 어머니에게 찐득히 붙어 있는 모
든 한을 풀풀 날려 버립시다.”
“어머니, 웃으니까 좋네요. 예, 그렇게 그렇게 펑펑 웃으십시오. 웃음
해일, 있다말다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머니는 웃고 있는데 나 혼자 왈칵왈칵 울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아닌 살아있는 나를 위한 씻김굿이었다.
굿거리 마당은 어머니와 나를 오가는 징검다리 위에서 길게 출렁거린
다. 그늘지고 외돌아진 굿판의 몸부림은 새로운 밝음을 향한 몸부림이
되고 있다.
한맺힘을 어르고 풀어내는 춤사위, 삭은 한의 자락엔 흥과 신명, 해방
이 먼지처럼 그득하다. 서러움과 기쁨의 리듬이 한데 어울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어느결에 서러움을 밀어내고 기쁨이 몰려드는 틈새에
어머니의 경건한 원형이 우뚝 선다. 어머니의 한이 승화하니 그동안 외
로워 서늘했던 그믐달 모습이 따뜻한 보름달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
머니의 끝없는 희생적 파토스는 아름다움으로 변하여 무덤가에 푸른 꽃
으로 무성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안으로 여미는 슬픔, 속으로 삼키는 괴로움, 사랑도 스스로 닫아 버리
고 달팽이처럼 살았던 어머니의 환한 모습이 나비되어 내 주위를 맴돌
고 있다. 한도 승화하면 커다란 아름다움이 되는구나. 어머니는 받는
것은 늘 잊어버리고 주는 것만 생각하는 바보였다. 사랑할 줄 모르면서
사랑만을 남겨 놓은 이상한 사람, 자신을 쉽게 내팽개치는 행복한 사람
이었다. 시간을 뛰어넘은 어머니의 모습이 예전과 다른 실루엣으로 다
가온다. 어머니의 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과거가 될 수 없다. 나에게 늘
축복이신 어머니.
“춘설 속에 매화영 벚꽃이영 열심히 꽃망울을 틔우고 있수다. 천 년의
집 그 곳도 봄 아니우꽈. 잘 계십서.”
어멍아 어멍아.
바람이 되어
바람 속의 바람, 한 올 구경꾼이 되어 세상 나들이를 한다.
고비 사막을 지나노라면 수많은 모래알들이 꼭꼭 포옹하며 정분을 나
누고 있다. 샘이 나서 바람을 힘차게 밀쳤더니 회오리가 되어 날아오른
다. 그 속에서도 모래알들은 떨어질 줄을 모른다. 모래를 데리고 바다를
건너다 보니 파도끼리 흰 거품을 물고 저들끼리 치대고 있다.
외로움을 털어내며 한반도 북쪽에 다다르니 온 천지가 민둥산이다.
낯선 풍경이 싫어 휴전선을 지나 서울이란 곳에서 우선 멈춤을 한다.
빌딩숲 속에 개미 같은 사람들이 황사바람이라며 마스크를 쓰고 이맛살
을 찌푸린다. 콘크리트 벽으로 막힌 세상은 바람을 미치게 한다.
매캐한 서울 냄새가 싫어 경기도 들판으로 내달린다. ‘농자천하지대
본’이란 깃발을 흔들며 꽹과리를 울려대는 모습을 본다. 누런 들판에서
허수아비랑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방향을 틀어 강원도 산줄기를 따라간
다. 이곳저곳 널려 있는 다랭이논 너머 동해에 떠 있는 몇 척의 커다란
배들을 눈으로 품는다.
백두대간을 내달려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다 보니 영축산 통도사란 천
년 사찰이 보인다. 초록색으로 뒤덮인 사찰을 지나는 길에 작은 암자들
이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다. 참선하는 스님들의 경건한 모습에 흠칫 놀
란다. 목탁 소리, 풍경 소리 풀벌레 소리를 벗삼아 잠을 청한다.
우우우 하는 소리에 눈을 뜨니 내가 솔바람이 되어 우는 소리다. 달빛
이 창호문에 소나무 그림자를 파도처럼 출렁이게 하는 모습이 정겹다.
이리저리 기웃거릴 때마다 산사의 바람소리는 목탁 소리와 섞여 나무숲
을 흔들어 깨운다.
나다니는 게 습성이라 부산으로 갔더니 목하 태풍경보라며 수많은 배
들이 항구에 묶여 있다. 선배 바람들이 몽니부리는 서슬을 달래느라 사
람들은 ‘매미’, ‘메아리’ 따위의 이름을 붙이고 숨을 죽이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바람이 있다. 부는 게 바람인데 사람들은 바람의 세
기, 방향, 장소에 따라 바람 이름표를 붙이고는 울고 웃고 야단이다.
실바람, 산들바람, 건들바람, 흔들바람, 노대바람, 왕바람, 싹쓸바람,
회오리바람, 폭풍, 태풍, 토네이도….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갈마바
람, 북새바람, 높새바람…. 갈바람, 강바람, 산바람, 갯바람, 골바람, 솔바
람…. 어디 그뿐인가. 경제계에서는 돈바람 타령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
나오고, 정치계에서는 야바위바람, 교육계에서는 치맛바람이 정신없이
썩고 있다. 사랑의 훈풍 속에 휘파람 불면서 신바람나게 사는 방법도
많을 텐데.
무섭게 앙탈대던 바람이 일본 열도를 빠져 나간 뒷날 수영만의 요트
계류장을 둘러본다. 형형색색의 요트들이 정박해 있다. 성급한 하얀 색
의 요트가 오륙도 너머로 파란 바다를 가르며 신나게 달리고 있다. 트로
이 전쟁을 마치고 귀향하던 오디세우스에게 역풍의 자루에서 나온 바람
의 신 아이올로스Aeolos가 성질을 부리는 장면이 생각난다. 저 요트의
멋진 모습은 순풍의 자루에서 나온 아이올로스가 요트의 돛대 위에서
웃고 있는 것이리라.
요트를 멀리하고 태평양을 휘달려 조그만 제주섬에 이른다. 뱃고동
소리를 마시고 나서 산바람, 골바람을 앞세우고 계엄군처럼 한라산 기
생 화산인 오름들을 점검한다. 저만치 올레길 사람들이 재재거리는 모
습이 보인다. 서귀포 천지연 폭포수에 내리는 무지개를 한 움큼 모아
한라산에 뿌려 놓고 아래쪽 목초지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나 혼자 심심
하여 구름 속에서 노니는 실바람 친구를 불러내어 망아지들과 망중한을
즐긴다. 들꽃에도 앉아 보고, 현무암 곰보돌들과 속삭이다가 이웃한 골
프장에서 골프공이 데구르르 홀인원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사람들의 긴
호흡하는 모습이 우습게 다가온다.
골프장 아랫목을 나서니 돌담으로 만든 과수원이 보인다. 노란 귤 냄
새와 함께 시내 구경을 한다. 아담한 찻집이 보여 뜨락에 들어서니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내가 흔든 은행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아가씨가 젊
은이 가슴을 매만지고 있다. 심통이 나 은행나무를 힘껏 흔들어 대다가
시골집 돌담을 찾는다. 어릴 적 돌담 속 추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에게 바람의 이미지는 고향이다. 돌담을 낀 올레길에서 구슬치기하
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돌담을 통해 다람쥐가 들락거리고, 풀꽃이
잠들기도 했고, 사랑도, 그리움도 소통되던 옛정을 기억해 낸다. 소통의
달인이었던 돌담이 나이가 들어 이끼투성이다. 돌담을 드나들던 내 모
습이 초라하게 투영된다.
옛 추억을 멀리하고 남해안의 올망졸망 떠 있는 작은 섬들을 지나 널따
란 호남 평야에 이른다. 추수가 끝난 들판을 지나는 완행열차를 따라 나선
다. 시냇물이 죽어 강이 되고, 강이 죽어 바다가 되며, 바다가 죽어 구름이
되는 순환을 경험하면서 구름들의 수다를 엿듣는다. 코발트색 하늘을 이
고 해변 마을을 지나며 길게 기적을 울린다. 기차 지붕 위에서 나비처럼
팔랑거리다가 코스모스로 둘러싸인 학교 운동장을 지나간다. 갑갑한 터
널 속에서 짜증내다가 탁 트인 강을 따라 탱고춤을 추기도 한다.
저 기차 안에는 마음속 바람이 일어나 바람처럼 떠나는 누군가가 있
을 것이다. 가을 들판 풍경에 취한 저 여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여인을 따라 나도 사색의 길을 떠난다. 흔들리는 나를 움켜 잡고 지내
온 세월이 고맙기까지 하다.
어디선가 정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강가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풍금을 치면서 아이들과 신
나게 불렀던 동요가 향기롭게 내 마음을 적시고 있다. 어찌 이 노래뿐이
겠는가.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겨울바람 때문에 꽁꽁꽁!’,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
어 오니….’, 끝이 없다. 바람 동요를 마음에 쟁이면서 바람과 친구가
되는 아이들을 따라 어른들도 바람과 친구가 되는 자연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바람 속의 바람이 되어 굴러온 인생. 마그리트의 공중에 떠 있는 <피
레네 산맥의 성> 그림이 떠오른다. 떠 있는 지구 속의 바람이 떠 있고
나도 떠 있다. 바람은 굴레를 벗어던진 자유의 표상이다.
바람 속 한 올 구경꾼이 드디어 바람이 된다. 자유인이 된다.
갈대
오래된 흑백사진, 을숙도 갈대
밭 속의 ‘나’는 바람이 되어 흔들리고 있다. 초겨울 을숙도 강가에서
철새 떼의 군무와 갈대의 하얀 춤사위를 본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강의
언어를 불러내어 갈대의 언어에 서걱서걱 짜 맞추는 소리가 들린다. 귀
를 기울였더니 ㅅ 음소 같은 것, ㄹ 음소 같은 연속음이 귀를 간지럽힌다.
갈대는 바람의 화신이다. 갈대는 바람의 혼을 먹고 자란다. 갈대에는
바람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바람의 꿈이 잠겨 있다. 바람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그리움이 밀려들면 허공에 시를 끼적이고, 그림을 그린다. 노래를
읊조리고 몸을 흔들어 춤을 춘다. 인간의 언어로는 풀 수 없는 갈대의
몸짓은 유리구슬처럼 파란 하늘에 또그르르 구르고 있는 듯하다. 적막
한 품 가득 바람을 안고, 새들의 노래와 풀벌레들이 깃드는 소리를 즐기
고 있다.
저 멀리 낚시꾼들이 동동 띄운 초록 불빛의 찌가 강물에 출렁거리고,
에덴공원 쪽에서 구슬픈 색소폰 소리가 하얀 갈대꽃 속으로 흔들리며
빨려 들어간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파스칼의 말이 귓가에 서걱
거린다.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날리는 갈대라고 노래하는 베르디의 오
페라 <리골레토>에 등장하는 아리아가 갈대바람을 타고 갈대를 헤치며
울려나오는 듯하다.
고요한 흔들림,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게 있을까. 흔들리는 갈대를
보면서 지구도, 우주도 흔들림이며, 사람도 자연도 흔들림 속에서 흔들
리는 존재라는 철학적 명제를 새삼 깨닫는다. 하늘과 땅, 해와 달, 괭이
와 호미하면서 수컷, 암컷으로 분류하는 원시적인 비유에 치우치는 페
미니즘적 생각이나, 진보·보수, 좌우 등 이분법적 편견은 부질없는 일
이라고 갈대가 타이른다. 맑고 고요한 심미적 울림은 언어 이전의 감응
인 물아일체요, 생명의 소리이고 인간의 존재 이유라고 흔들림의 미학
을 넌지시 일러준다. 갈대의 부드러운 흔들림은 자기발견, 자기긍정의
몸부림임을 보여준다. 장자의 심원한 철학, 혼돈이 여기 있지 않겠는가.
갈대꽃에 바짝 다가서서 사진기를 들이미는 사람이 보인다. 때로는
앉았다가, 때로는 엎드려 가며 찍고 있다. 미미한 갈꽃에 눈높이를 맞추
며 놀라운 세상을 읽어내려는 모습이 경건하기까지 하다. 저 눈물겹고
치열한 미의 발견은 연말이면 보내오는 탁상용 캘린더에 춤추고 있는
갈꽃의 모습으로 환생할 것이다. 갑자기 혈관 속 피돌기가 따뜻해지는
황홀한 느낌에 찬다.
갈대의 모습에서 때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다. 웃는 듯 찡
그리고, 찡그린 듯 웃는 갈대는 넘어질 듯 애태우다 부드럽게 일어선다.
갈꽃 프리즘을 통한 하늘빛은 양극화에 시달리는 외로운 서민들의 생명
이고자 하얀 날갯짓이 되어 펄렁이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살아가기
위한 인고의 기다림은 바람이 되고, 향기 그윽한 사람꽃으로 피어나라
고 바람이 오가는 노을 속에서 기도하는 모습으로 서 있다. 그리움의
꽃, 갈꽃은 부는 바람에 스러지고 바람의 끝자락에 일어서는 순리 속에
서 세상의 온갖 번뇌를 털어내는 하얗게 소복을 한 여인의 환상이 떠오
른다. 산다는 것이 속으로 조용히 우는 것임을 모른 채 머릿술을 풀어
헤치고 강물 속에서 은근하게 흔들리고 있다.
갈대가 온 생애를 바쳐 사랑하는 그는 대체 누구일까. 달새가 달만
생각하듯, 비새가 비만 기다리듯 갈대가 사랑하는 그는 갈바람일 거란
생각을 한다. 바람과 더불어 아름다운 춤사위를 벌이는 예술이 되고 생
명이 되는 미학일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꽃의 하얀 춤사위가 3D 화면처럼 눈앞에 클로즈업
된다. 그것은 살아 숨쉬는 예술이다. 나약해 보이면서도 강풍과 같은
세상을 포용하는 부드러운 갈대의 흔들림 속에 어느덧 내가 흔들리고
있음을 본다. 갈대의 흔들림과 함께 내 몸과 마음에 몇 겹씩 재워진 헛헛
한 가식들을 훨훨 날려 보내고 싶다. 바람을 거스르며 무뚝뚝한 갈대가
된 나는 부드러운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안다. 나에게 나를 일깨워주는
갈대가 허락한다면 나는 생각하는 갈대이고 싶다. 안개비에 촉촉이 젖
은 갈꽃이 더 없이 싱그럽게 보인다.
갈대여, 나는 그대 앞에 허리를 굽혀 바람에 적응할 줄 아는 삶을 배우
고자 한다.
신창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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