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순련님의 수필과 함께 하루를 행복하고 즐겁게 마감하세요.
봄 한철밖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지난겨울은 왜 그렇게 추위가 극성을 부렸는지 모든 사람들은 이 겨
울이 하루 빨리 물러가고 어서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오는 봄을 맞이하기 위해 하루를 투자하기로 했다.
누군가를 맞이하는 것과 누군가를 배웅하는 일은 정성이 필요한 법이
다. 특히 먼 길 돌아 다시 이 자리를 찾아올 사람을 위하여 먼저 나가
손 흔들고 기다려주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특히 찾아오는 이를
위하여 고운 옷 갈아입고 정성을 다한 모습으로 그를 맞이해 준다는 것
은 찾아오는 이를 위해서도, 맞이하는 자신을 위해서도 아름다운 모습
일 것이다. 그 대상이 설사 사람이 아닌 자연이라 할지라도.
오는 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먼저 옷장에서 한복 한 벌과 두루마기를 꺼내었다. 서투르긴 하지만
저고리를 손질하고 여덟 폭이 넘는 한복 치마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반
듯하게 다린 후 두루마기를 손질하는 것으로 채비를 마쳤다.
다음은 미장원으로 갔다. 한복을 입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하며 품
위 있는 한복 머리를 부탁드렸다. 미장원 원장님은 머릿결을 이리저리
빗겨가며 롤을 말기도 하고, 스프레이를 뿌리기도 하면서 한 시간이 넘
는 시간을 내 머리에 투자했다. 한 번도 파마를 해 본 적이 없는 내 단발
머리는 한 시간 만에 평상시의 내 모습에서 벗어나 귀한 대가집 종손
며느리처럼 기품 있게 변하여 있었다. 한복을 잘 차려입기는 참 복잡하
다. 속바지를 입고, 속치마를 입었다. 그리고 속저고리에 버선을 신은
후 치마저고리를 입은 후 옷고름을 여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줏빛
두루마기를 입고 그 위에 그 봄빛 물씬 풍기는 머플러를 둘렀다.
오늘 봄맞이를 위한 내 계획은 어쩌면 이 머플러에 있었는지도 모
른다.
늦깎이 나이에 미술을 시작한 아우는 재주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손
끝에서 그려지는 그림이나, 손끝에서 태어나는 글씨나, 손으로 하는 재
주가 탁월하여 지금까지 저 재능을 숨겨두고 어떻게 살림만 살아왔을까
싶을 만큼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아우는 내가 한복을 즐겨
입는 사실을 알고 이 한복에 꼭 어울릴 선물을 준비했다며 집으로 초대
했고, 그 자리에서 이 머플러를 받게 된 것이다.
길이가 1미터가 훨씬 더 되고, 폭이 50센티는 족히 넘을 정도의 계란
빛 실크 천의 양끝을 잘 공굴러 실밥이 풀려나지 않도록 한 후 나염 처리
한 머플러이다. 노란색에 연두색을 혼합하여 머플러의 양끝에서부터 명
암과 혼합의 조화를 달리해 가며 차츰 중앙으로 달려가다 가운데 30센티
정도는 계란빛 원색이 그대로 드러나게 처리한 이 머플러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명품 중의 명품이다.
그 머플러의 질적 위상도 뛰어났지만, 행여나 구김이라도 갈까 싶어
머플러 길이만큼 한지를 잘라 그 위에 놓고 머풀러와 함께 곱게 접어
전해준 그 작품에는 아우의 정성과 아름다운 마음이 푹 배여있었다.
그 노란빛과 연둣빛의 어울림이 어떻게 저렇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까. 미술을 모르는 나의 눈빛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
한 봄 색깔을 나타내고 있었다. 한복과 두루마기를 다 챙겨 입은 후 그
봄빛 머플러를 한복 위에 드리웠다. 거울 속에는 나이에 어울리는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한 여인이 선한 눈빛으로 웃고 있었다. 그 눈빛보다
더 귀한 눈빛이 다가왔다. 바로 그 노란빛과 연둣빛이 어우러진 머플러
다. 봄이 오는 길목에 서면 모든 봄의 전령사들이 한달음에 달려올 것만
같은 신비한 색깔이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자동차를 타고 먼저 즐겨 찾는 계곡으로 달려갔다. 퇴근 때 눈여겨
보아두었던 계곡에 차를 세우고 한 손으로 손사래를 치고 실눈으로 앞
산을 바라보며 봄을 불렀다. 바람이 차갑긴 하지만 3월의 겨울산은 벗은
나뭇가지 끝에서부터 새싹을 틔우며 우렁우렁 알아듣지 못하는 희망의
소리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일찍 눈뜬 산버찌는 벌써 터질 것만 같은
연분홍 꽃망울을 안고 어쩔 줄 모르고, 냇가엔 버들강아지풀이 보송보
송 솜털에 싸인 채 바람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던 냇물도 안도의 숨을 내쉬고 마음껏 목청을 가다듬고 도란거렸
다. 아직도 매운바람이 숲 속을 헤집고 다니긴 했지만.
어서 오라는 인사를 했다. 두루마기 한 자락이 휙 바람에 날리었다.
이어서 노란색 머플러 한 자락이 팔랑팔랑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 나비
등을 탄 봄바람이 한 차례 노란 머플러를 애무하고 달아났다.
그 마지막 겨울의 끝자락을 붙들고 봄을 낳고 있는 계절이 위대하기
만 했다. 멀리 산자락을 바라보았다. 파스텔톤의 연보랏빛 융단을 깔아
놓은 것 같은 산속에서 위대한 봄을 잉태하고 있는 봄꽃들의 재잘거림
이 들려왔다. 돌아올 계절을 위하여 자비를 베풀고 떠나는 겨울 산자락
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렇게 봄을 맞이하는 하루를 보냈다. 아우가 선물한 그 머플러에게
제일 먼저 찾아오는 첫봄의 환희를 선물한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그 머플러를 봄 내내 애용하였다. 분홍 원피스
위에 휙 감아 두르기고 하고, 검정 투피스 위에도 자유롭게 늘어뜨려
내 딴엔 한껏 멋을 부리며 그 머플러와 함께 출근을 하였다. 그 머플러를
하고 갈 때마다 지인들은 그 머플러는 이 봄을 위하여 태어난 것 같다며
어디서 구입했는지를 꼭 묻곤 했다.
그렇게 봄 한철을 나는 아우가 선물한 그 머플러를 참 사랑하며 세미
나와 연수회, 그리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늘 동행했다.
그런데 그 머플러를 잃어버렸다.
이 봄이 떠나려는 사월 어느 날, 봄비 같지 않은 소나기가 하루 종일
내리던 날 분명히 내 어깨에 앉아 함께 자동차를 탄 것 같은데 어디서
어떻게 헤어지게 되었는지 함께 집까지 동행하지 못했다. 봄 한철밖에
함께하지 못했는데…….
나는 지금 대단히 큰 고민 속에 빠져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아우에게
말하나?
이 봄 끝자락 그 병아리 닮은 머플러는 어디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
는 걸까?
원순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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