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가슴을 다시 희망으로 그러안습니다. 아직도 농약이 닿지 않은 땅과 시멘트만 벗겨내면 언제라도 생명을 키울 수 있는 흙이 무진장하게 널려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고 희망입니다". 항상 자연을 생각하고 함께 하시는 김애자선생님이 부럽습니다.
녹비綠肥
1. 별이 빛나는 밤
고추와 고구마, 애호박 옮겨심기가 끝났습니다. 밤이면 마을에 있는
가로등이 모두 꺼집니다. 농작물도 잠을 자야만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친 농민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전선에 부착된 스위
치를 내리기 때문입니다.
문명의 불빛이 사라지면 짙은 어둠이 맑은 ‘결潔’로 살아납니다. 어둠
결이 맑을수록 별빛 또한 영롱합니다. 영롱한 별빛을 머리에 이고 맨발
로 걷습니다. 이슬에 젖은 차고 보드라운 풀잎의 감촉이 발바닥을 통하
여 몸 안으로 흘러들어옵니다. 대지와 한 몸으로의 호흡은 싱그럽고 안
온합니다.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여름 밤하늘의 별들은 어느 때
보다 찬란합니다. 남북으로 굽이치는 은하수 사이로 독수리자리의 견우
성 알타이르와, 거문고자리의 베가성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이어 뱀
자리·헤라클레스자리·땅꾼자리·전갈자리가 머리 위에서 빛납니다.
여름철에만 볼 수 있는 별빛이 축복처럼 내립니다. 이것은 혼자만이 하
늘과의 은연한 접속에서 얻은 고요한 ‘열悅’입니다.
개울 건너 두충나무숲에서 소쩍새가 웁니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
도 들려옵니다. 정적에 파문이 입니다. 곧 소리는 가뭇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잠깐 멈추었던 나의 발길은 다시 이어집니다. 솟대가 있는
동쪽 끝에서 서쪽 바지랑대를 세운 곳까지 갔다가 돌아오고, 다시 나갑
니다. 발이 이슬에 젖을 양이면 발가락이 간지럼을 타는 아기처럼 저절
로 오므려집니다.
문득 내가 발가락을 오므리고 내딛는 발밑에는 4만 마리나 되는 미생
물이 살고 있다는 생물학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사람
이 한 번의 발자국을 떼어 놓을 적마다 4만 마리나 되는 미생물과 접촉
한다는 것 말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자주 이르셨습니다.
“마당에 뜨거운 물을 버리지 말거라. 미물들이 죽는다. 스님들은 짚신
발도 조심스럽게 떼어 놓느니라.”
지금은 녹색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흙에 대한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고 주장하고 나섭니다. 흙속에 있는 미생물들이 지구를 푸르게 떠받들
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이들이 주장하는 ‘흙 살리기 운동’은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연환경을 지키지 않고는 행복한 미래를
약속할 수 없으니까요. 도시인들도 이 점에 관해선 관심을 모아야 할
때라고 여깁니다. 얼핏 흙을 비롯한 생활기반이 농민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모두가 흙에서 자란 것으로 먹고 삽니다. 흙에
의하여 모든 먹을거리가 생산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사람들은 가마득히
잊고 지냅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농민들조차 흙의 가치를 깨닫지 못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모내기를 마치고 벼가 땅내만 맡으면 바로 논에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농약을 살포합니다. 살충제와 제초제로 농사를
짓다시피 하니까요. 논두렁은 물론 전답 주변까지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도록 제초제로 잡도리를 치니 미물들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곤
충들의 개체수가 부쩍 줄어드는 것도 먹잇감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추녀 밑에 집을 짓고 새끼를 치던 제비가 떠난 지 오래입니다. 참깨나
들깻잎이 싹을 틔우면서 곧바로 오갈병이 드는 것도 예전에는 없던 일
입니다. 고추도 해마다 탄저병과 마른잎병으로 인해 선 채로 말라죽습
니다. 제초제로 약해진 땅에서 병충해는 기존 농약에 내성이 생겨 더
강한 농약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2. 녹비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한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몇 해 전부터 녹비
綠肥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녹비란 푸른 거름이란 뜻입니다. 가을철 농
작물을 거둬들이고 나면 논에 보리나 밀을 파종하였다가 3~4월에 갈아
엎고 농사를 시작하라는 것이지요. 이미 전라도나 경상도 지역 일부에
선 자운영을 논에 키웠다가 꽃이 한창인 4월에 갈아엎는다고 합니다.
정일근 시인은 일찍이 <녹비>란 시로 ‘녹비’의 가치를 알려주었습니다.
“자운영꽃이 만발했을 때, 붉은 꽃이며 푸른 잎을 싹쓸이하여 땅에
묻는 것은 농부의 야만이 아니라 꽃의 자비”라는 아름다운 문구가 오래
도록 가슴에 운韻을 남겼습니다. 꽃이 죽음으로써 벼로 환생하여 배고픈
이들에게 양식이 되어주는 것이야말로 자비입니다. 밀과 보리가 논에서
한창 자랄 때, 이를 갈아엎어 땅을 걸차게 하는 것 또한 자비입니다 친환
경 농사를 짓는 이들은 녹비의 자비를 압니다. 때문에 밭의 흙을 사랑하
고 아낍니다. 그 흙에서 생산되는 작물을 귀하게 대하지만 아직은 소수
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녹비로 땅을 걸우지 못하게 되면 볏짚이라도 썰어 겨울 동안
눈비를 맞혔다가 봄에 갈아엎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선 수
중에 들어오는 돈 몇 푼만 공짜인 양 싶어 벼 수확을 끝내기 무섭게 축산
업자들에게 볏짚을 팔아넘깁니다. 논마다 소의 먹잇감인 원형곤포사일
리지를 담은 희고 커다란 뭉치가 즐비하게 놓여 있습니다. 김치처럼 볏
짚이 숙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랍니다. 땅주인이 이 지경으로 보
양을 시켜주지 않으니 안타깝게도 땅은 원기를 회복할 기회가 없습니
다.
나의 시선은 다시 별들에게로 옮아갑니다. 크고 푸른빛이 감도는 것
은 젊은 별들이라고 했습니다. 노랗게 가물거리는 것은 늙은 별이고,
여린 듯 파랗게 반짝이는 것은 갓 태어난 아기별들이라지요. 별들도 인
간들처럼 생로병사를 거친다는 천문학자들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렇담
지구라는 별은 아직 건강한지 궁금합니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에서
본 지구는 푸른 구슬처럼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별인 지
구가 지금은 아프다고 자주 몸을 뒤척입니다. 지진이 일고 해일이 덮치
고 거대한 양의 폭우가 쏟아지는 것도 지구가 몸이 괴롭다는 신호입니
다. 대형 관정으로 지구의 몸에 들어 있는 수맥을 끊고 물을 퍼 올려
쓰고 있으니 지구도 수분이 부족해져 열기를 밖으로 분출하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구는 수분만 빼앗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표를 건강하게 지키
고 있는 숲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1년간 나무들 수십만 그루가 책
과 사무실용 종이와, 갓난아기들의 기저귀와 여성들의 생리대를 위해
베어집니다. 갓난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오줌똥을 가릴 때까지 사용
하는 기저귀가 6000장 정도 들어간다는 통계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매
년 70만 명의 아이가 태어난다는데 이 아기들이 쓸 지저귀를 만들기 위
해 나무 500만 그루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500만 그루의 나무가 들어섰을 숲은 상상해보면 놀랍습니다. 하늘 높
이 치솟았을 수직의 싱그러움, 빛과 그림자의 조화, 산소와 탄소의 알맞
은 균형으로 인한 또 다른 생명체들의 생성과 존속은 또 얼마나 많을
것입니까?
그러나 인간이란 존재들은 자연을 최대한의 소비자로서 군림하고 있
습니다. 눈만 뜨면 쏟아지는 쓰레기들과 재생되지 못하는 폐기물들이
땅속으로 묻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두렵기조차 합니다. 지구가 어찌
견딜 수 있겠는지요. 자신의 살이 문드러지고 있는데 어찌 몸을 들썩이
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한 번만 몸을 뒤척이면 지구촌 곳곳에선 아수라
장이 벌어집니다. 길이 갈라지고, 산이 무너지고 도시의 건물이 장난감
처럼 부서져 내립니다.
잠시 건너편 숲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어둠 속에서도 숲은 승한 기운
이 넘칩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을이면 여름내
무성하던 풀들이 쓰러져 눕습니다. 나무들은 나무들대로 잎을 떨어냅니
다. 제 뿌리로 돌아가는 엄숙한 귀일입니다. 눈비 맞으면서 서서히 썩어
가고, 봄이면 새로운 싹들이 제 어미들의 죽음을 딛고 태어납니다. 아직
도 지구가 푸를 수 있는 것은 저런 풀뿌리들이 서로를 껴안고 있는 그
엉킴의 힘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나고 죽는 법칙에 온전히 순응하며 자
생력을 키워왔기 때문입니다.
발가락을 꼼지락 움직여 봅니다. 4만 마리나 되는 미생물이 있다는
것이 이 시대에 아름다운 희망입니다. 시멘트 바닥에 갇혀 숨 쉬지 못하
는 흙들을 생각해 봅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올봄에도 살아 있는 나무들
이 선 채로 껍질이 벗겨지고, 그 벗겨진 껍질에서 사람들이 대 놓은 고무
호스로 수액을 흘려보낸 나무들의 고통도 함께 떠오릅니다. 고로쇠물
채취란 가장 잔인한 행위입니다. 미안하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아픔 가슴을 다시 희망으로 그러안습니다. 아직도 농약이 닿지 않은
땅과 시멘트만 벗겨내면 언제라도 생명을 키울 수 있는 흙이 무진장하
게 널려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고 희망입니다. 멈추었던 발길을 천
천히 솟대가 있는 동쪽으로 옮깁니다. 맨발이 이슬에 함씬 젖습니다.
오늘 아침 메일로 받은 ‘생태 시’ 선언문 한 단락을 떠올립니다.
“대지에서 태어난 인간은 결국 대지로 돌아가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대지는 내 자신이자 어머니이며 나의 현주소이자 나의 고향
이다.
그 부드럽고 찰진 흙은 내 살이며, 졸졸졸 맑게 흐르는 물은 내 피이
며, 아름답게 우거진 수목들은 내 머리털이며, 장엄하게 출렁이는 푸른
바다는 내 심장이며,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은 내 영혼이다.
- ‘생태시 선언문’ 중에서
김애자 -----------------------------------------------------------------------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
월간수필문학상(1997), 충북수필문학상(1998), 신곡문학상(2004) 수상.
수필집: ≪달의 서곡≫(1996), ≪숨은 촉≫(2003), ≪수렛골에서 띄우는 편지≫(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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