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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세상마주보기] 취향정과 왕버들 - 장병선

신아미디어 2012. 7. 13. 18:45

전주에 오랫동안 살면서도 취향정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아쉬움이 남네요.

내일은 오랜만에 덕진공원에 가보아야겠습니다. 즐거운 주말보내세요.

 

 

 

 

취향정과 왕버들


   취향정에서 바라보는 전주덕진공원은 한 폭의 그림이다. 연꽃이 활짝
피는 단옷날 선비들이 취향정에 모여 연꽃 향기에 취해 부채를 활짝 펴
며 시무를 즐기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요즘 취향정 앞을 지나다
보면 아쉬움이 앞선다. 도색한 지 오래되어 색깔이 우중충하고, 계단
손잡이는 반쯤 망가졌다. 취향정에 직접 올라가 보면 마치 농촌의 빈집
에 올라온 듯하다. 마룻바닥은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고, 한쪽 구석에는
낡은 돗자리가 깔려있었다. 작년에는 취향정 계단에 출입금지라고 써
붙이고, 기둥마다 비닐 끈으로 엮어 마치 입원환자가 붕대를 감고 있는
듯 보였었다. 90년 전 일제 강점기에 친일파가 지은 건물이라고 방치하
는 듯하여 아쉬웠다.
   취향정은 덕진공원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취향정은 공원의 한
가운데서 곱게 단장을 하고 풍만한 여인이 되어 해밝은 미소를 짓고 있
어야 찾아오는 관광객 모두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문화재를 잘 보존하려면 많은 예산이 든다. 그런데 취향정 보존에 필
요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1917년에 취향정을
지어 선비들의 유흥시설로 사용하다가, 1931년도에 이동면伊東面 검암리
劒岩里 1280번지, 답 6700㎡(2100평)와 함께 전주면사무소에 기부하였다.
기부된 논에서 생산되는 소득으로 2년마다 한 번씩 취향정을 개보수에
사용토록 명기한 자료가 비석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물론 지금은 해당
번지의 토지가 아마 개인에게 매각되었을 것이다. 매각대금을 그때 전
주시가 적정 용도로 사용하였겠지만, 이제는 전주시도 취향정 관리를
위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기부한 해당 농지에서 농사를 짓
는다면 1년에 쌀 20가마 정도는 수입이 예상되니 금액으로는 환산하면
300만 원쯤 된다. 3년을 모으면 대략 1천만 원이다. 그 금액으로 2,3년마
다 투자하여 취향정을 정비한다면 문화재로서의 품격을 유지하도록 가
꿀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사실을 관련 부서에서 충분히 파악하고
실천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취향정을 지금처럼 방치하면 오래지 않아 붕괴될지도 모른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 취향정이 일제 강점기에
친일파가 지은 건물이라고 하여 그 건물마저 미워할 수는 없다. 취향정
이 세워진 위치는 ‘완산의 북쪽 낮은 구름이 구불구불 평야에 쭉 뻗어
상서로운 기운이 서린 건지산과 산하의 맑은 물이 모여 하나의 연못을
이루는 곳인 덕진못에 세워져’ 있어 취향정은 문화적 가치가 충분하다
고 본다.
   취향정은 덕진공원에 연꽃이 피는 단옷날쯤 아낙네들이 창포에 머리
를 감고, 선비들은 취향정에 모여 자연에 취해 시무를 하며 솜씨를 뽐내
었던 곳이 아니었던가. 취향정 정자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9만 9천㎡(3
만 평)의 넓은 호수는 한가운데 현수교가 세워져 있어 시원스럽다. 연못
가운데는 섬나라 연화정 3층 건물이 아름답게 보인다. 호수 위에는 가족
이나 연인을 태운 보트들이 커다란 오리처럼 물살을 가르고 있다. 보트
를 타고 즐기는 젊은이의 모습을 바라보면 나도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수령이 200년을 넘었다는 왕버들나무는 취향정 옆에 묵묵히 서 있다.
아직도 건강한 모습으로 취향정 역사를 모두 아는 듯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 취향정이 다시 멋지게 단장하여 환하게 웃는 날이 언제가 될지
아마 알고 있을 것 같다.
   취향정은 덕진공원의 문화재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원형대로 멋지게
오랫동안 보존·관리되었으면 한다. 지금과 같이 그대로 방치되어 자꾸
한쪽 구석이 허물어진다면 나중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허둥댈 수
도 있을 테니 말이다. 올해 장마가 오기 전 단장을 하여 공원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명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장병선  --------------------------------------------------------------------------
2010년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