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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세상마주보기] 남보다는 낫다며 웃는다 - 전상준

신아미디어 2012. 7. 13. 19:04

"세상살이가 우리 맘 같지 않고, 내가 늘 말이 적고 자상하지 않아 숲 속의 고주배기 같다고 생각해 왔는데 마누라 편드는 마음이 남보다 낫다며 웃는다."  소중한 가족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주말되세요.

 

 

 

 

 남보다는 낫다며 웃는다


   한참을 소리 내어 웃었다. 상상만으로도 웃지 않을 수 없다. 대중목욕
탕 바닥에 벌거벗은 채 넘어져 있는 아내의 모습. 함께 목욕하던 사람들
웃음소리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웅성웅성 둘러서서 혹 다치지나 않았을
까 걱정하는 사람, 안타까운 마음에 안아 일으키며 위로하는 사람, 목욕
탕 종업원을 황급히 부르고 있는 사람,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이 넘어
진 양 안절부절못하는 사람, 이들 모두가 알몸이 아닌가.
   목욕 간 아내가 돌아올 때가 지났는데 오지를 않는다. 오늘따라 딸아
이까지 제 어미가 몹시 늦는다며 기다린다. 아내는 평소보다 시간이 한
참 지난 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왔다. 표정이 약간 어둡다는 느낌은
받았으나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내가 이것저것 집안일 몇 가지를 한 후 큰일 날 뻔했다면서 머리를
만져 보란다. 뒤통수에 혹이 툭 불거졌다. 피는 나지 않았으나 붉게 충혈
되었다. 이 정도라면 넘어져 심하게 부딪쳤거나 아니면 몽둥이로 뒤통
수를 몹시 얻어맞아 생긴 상처다.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내게 목욕탕에
서 넘어졌단다.
   일반 병원은 문을 닫았으니 종합병원 응급실에라도 가 보자는 제안에
괜찮다며 오늘 밤을 참아 보잔다. 놀랐는지 잠을 자면서 몇 차례 앓는
소리를 낸다. 잠자는 모습은 평소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원래 잠을 깊게
자는 편이라 머리를 만져 봐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무사하기만 기다릴
뿐 의학적인 상식이 없는 나로서 달리 어떻게 처방할 방법이 없다. 다른
날보다 밤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영상의학과에서 머리 부분을 MRI 촬영했단다. 의사가 사진으로는 아
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면서 좋아한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개운하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아내가 뇌진탕으로 병원에
있다면 내 처지가 어떤 상황일까. 더 심한 경우를 당해 염라대왕의 부름
이라도 받았다면, 우리 가정은 나침반이 고장 난 배가 되어 망망대해를
떠돌며 표류하지는 않을까.
   육십 대의 상처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기분 좋은 표정으로 집안일
을 하는 아내가 참 고맙다. 가뭄에 목말라 하던 화초가 비 맞아 생기를
찾은 듯 움직임이 더욱 활기차고 싱싱하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
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이 간다. 둘이서 만나 가정 이루며 산 세월이
산천이 세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이다. 남들보다 유별나게 정을 나누며
산 것 같지도 않은데 가슴이 두근거리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긴장하고
걱정했다.
   어디서 들었는지 아내가 목욕탕에 MRI 촬영 경비를 요구해야 한다며
열을 올린다. 당신 몸에 이상이 없다고 의사가 진단했고, 목욕하다 넘어
진 것은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엉뚱한 생각하지 말고 밥이나 잘
먹고 전과 다름없이 잘 놀고 다음부터 목욕할 때 조심이나 하라고 했다.
목욕탕 주인이 치료 경비를 주는 게 아니라 보험회사에서 처리할 것이
라며 반드시 받아내고야 말겠단다.
   외출하고 들어오는 아내의 기분이 퍽 들떠 있다. 오늘 목욕탕 주인과
통화를 했는데 치료 경비를 다는 줄 수 없고 삼 분의 일 수준 정도 주겠
다는 약속을 받았단다. 거참 당신은 똑똑하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갖고
있느냐고 했더니 사람 잘못 봤다면서 의기양양이다. 통장을 찾아 전화
로 계좌번호를 불러준다. 수화기에서 이른 시일 안에 송금하겠다며 굵
직하고 힘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내 말에 당신은 세상을 너무 소극적으로
산다면서 왜 주어진 권리를 포기하느냐 하며,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있으란다. 그런 사업하는 사람이 이런 사건 한두 번 처리
한 것도 아닐 것이고 곧 돈이 입금될 것이라며 좋아한다.
   하루 이틀 기다리던 돈이 통장에 들어오지 않자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우리 집 가훈이 ‘수분守分’ 아니냐. 그런 돈 바라지 말고 편하게
생활하라고 충고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나쁜 사람이
라고 안 되면 처음부터 약속하지 말든지 사기꾼이라고 목욕탕 주인을
비하하기 시작한다.
   외출했다 들어오면서 현관문을 꽝 하고 닫는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불
만이 가득하다. 나를 보자마자 목욕탕 주인이 업자들 모임에서 상의했는
데 그런 사고는 보험도 적용되지 않고 자기도 치료비를 변상할 수 없다고
하더란다. 치료비가 문제가 아니라 그만하기 다행이니 잊으라고 위로했다.
   저녁 잠자리에서 아내는 내 손을 잡으며 그래도 이번 목욕탕 사건으
로 얻은 것이 많단다. 우선 세상살이가 우리 맘 같지 않고, 내가 늘 말이
적고 자상하지 않아 숲 속의 고주배기 같다고 생각해 왔는데 마누라 편
드는 마음이 남보다 낫다며 웃는다.


* 고주배기: ‘그루터기’의 경상도 방언.

 

 

전상준  -------------------------------------------------------------------------
≪문예한국≫ 등단.
수필집: ≪아름다운 삶 행복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