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한 것인 것을" 항상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수필과 비평』은 수필에 지나친 애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쏟아 붓고자 합니다. 같이 해주실거죠.
명품나무
꽃꽂이 강습에 열을 올린 적이 있었다. 꽃꽂이 선생을 초대하여 이웃
들과 꽃처럼 ‘하하’ 웃어가며 강습을 받았다. 작품에 따라서 꽃을 고르고
방향과 각도를 맞춰 침봉에 꽃을 꽂곤 했다.
하얀 수반에 놓인 예쁜 꽃들은 아들 둘에 남편, 남자만 셋인 집안 분위
기를 귀여운 딸처럼 부드럽게 가꾸어주었다. 화려한 자태와 꽃향기는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초췌하게 시들어가는 꽃에서 나는
소멸을 보았다. 시든 꽃들을 내다버리면서 꽃꽂이도 점점 싫증이 났다.
꽃꽂이 강습을 그만두고 그 대신 관엽수나 화초들을 사다 나르기 시
작했다. 어릴 때의 두 아들처럼 어린 나무들이었다. 햇볕 잘 드는 남향집
에 나무들은 에너지가 넘쳤다. 잎사귀들은 말갛게 윤이 났고 물오른 가
지들은 탱탱했다.
아이들의 키가 훌쩍 크면 관엽수들의 키도 커져있었다. 색색의 화초
들은 제 멋에 겨워 피고 지고했다. 꽃꽂이를 해서 보던 꽃보다 싱싱한
생명력이 있어 좋았다. 물뿌리개를 들고 화분에 물을 주던 아들들은 새
로운 꽃이 피면 엄마를 부르며 부엌으로 달려왔다. 한껏 들뜬 목소리로
꽃을 예찬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또 하나의 활짝 핀 꽃송이였다.
나무나 화초들은 정직했다. 정성을 기울이고 사랑을 주자 싱싱한 자
태로 보답했다.
하지만 처음엔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었다. 꽃마다 향기가 다르듯이
나무들도 각자 개성이 있어, 햇볕을 좋아하거나 음지에서 잘 크거나 또
는 물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특성이 있었다. 나무들을 키우는 과정에
서 병충해에 노출되기도 하고 영양이 부족해서 뿌리가 마르고 잎이 누
렇게 뜨기도 한다. 물과 햇볕과 영양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지만 너무
과한 사랑으로 오히려 화를 부르기도 했는데…….
손바닥 같은 잎사귀를 쫙 펼치고 튼실하던 관음죽은 내 사랑을 듬뿍
받았다. 더 멋있어지길 기대하며 거름을 듬뿍 넣어 다시 분갈이를 해주
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한 것인 것을. 잎부터
시들시들 말라가던 관음죽은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나무에게 얻은
교훈은 늘 나의 어리석음을 일깨웠다.
나무들이 점점 크자 화분의 밑둥으로 뿌리들이 뚫고 나와 소리 없는
반항을 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사춘기라는 통과의례가 있듯이……. 나는 먼 앞
을 내다보며 나무의 외형보다 훨씬 큰 도자기 화분을 골라 분갈이를 해
주었다. 처음에는 큰 화분 속의 나무들이 왜소하게 보였다. 하지만 넓은
집을 가진 나무들은 자기 실력을 맘껏 발휘하듯 쑥쑥 자라났다.
30년 정도 된 고무나무는 쭉 뻗은 가지들을 주체 못해 여인네들 머리
파마를 하듯 둥그렇게 구부려 묶여 자란 지도 오래다. 해묵은 관록을
자랑하며 특이한 자태를 하고 있다. 가끔씩 웃자란 잎들을 정전가위로
잘라주면 하얗고 끈끈한 진액을 뚝뚝 떨어트린다. 아픔을 표현 못하는
나뭇잎의 침묵이 안쓰럽다.
그럴 때면 아이들을 키우면서 뜻하지 않은 부상이나 병으로 맘 졸였
던 생각이 난다. 큰아들이 갑작스런 병으로 대학병원에 한 달 가까이
입원했을 때 작은아이는 이제 겨우 귀저기를 떼었을 때였다. 돌봐줄 사
람이 없어 옆방에 세 든 아줌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큰아들 병간호를 했
었다. 아픈 아이도 딱하지만 며칠에 한 번씩 집에 들를 때면 엄마 목을
꼭 끌어안고 엉엉 우는 작은아이가 더 안쓰러웠다.
작은아이가 학교 복도에서 친구와 부딪쳐 병원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갔을 때, 친구 먼저 치료해주라며 양보를 했다던 아들아
이의 입안은 피와 늘어진 살점으로 상처가 심각했다. 아들 친구는 이마
를 서너 바늘 꿰매는 정도였지만 작은아이 입안은 스무 바늘 이상을 꿰
메었다. 그 후유증으로 열이 떨어지지 않아 이십 일 가까이 병원에 입원
을 했었다. 아들의 병상을 지키며 나는 온몸의 진액이 말라가 듯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어린 아들들과 함께 커온 관엽수들이 어느새 15년에서 30년이 넘게
내 곁에 머물러 있다. 몇 번의 집을 이사 할 때에도 나무들은 VIP대접을
받았다. 삭막한 아파트 공간에 초록빛 생명은 그 어떤 비싼 장식품보다
멋스럽다. 관음죽, 소철, 고무나무, 가지마루 펜다 등은 어른 키 정도로
컸고 최근 새 식구로 맞은 해피트리와 화초들로 작은 숲을 이루었다.
지난해 여름, 아파트 보수공사를 했다. 이사를 가듯 짐들을 싸고 화분
들도 밖으로 대피시켰다. 칠을 하고 도배와 장판을 바꾸고 이곳저곳 수
리를 하느라 열흘 가까이 집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나는 옆에서 일을
거드는 게 힘들어 지쳐갔다. 보수공사 마지막 날 밖에 있는 화분을 제자
리에 들여놓았다. 장정들 둘이 낑낑 댈 무게이니 꽤 큰 화분들에 속했다.
예전처럼 화분들이 제자리에 배치되자, 이마에 땀을 닦던 젊은 인부는
“와! 정말 좋은데요. 몇 그루의 나무들로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지다니
요.’ 꼭 숲에 온 것 같아요.”라고 했다. 며칠 동안 나무들의 부재, 다시
보았을 때의 새로운 느낌. 이젠 내 곁을 떠나 가정을 꾸민 아들들을 본
것처럼 기운이 났다.
모처럼 성당 수녀님이 가정방문을 오셨던 날, 기도를 끝낸 수녀님은
대뜸 “자매님 댁 나무들은 명품이네요.” 하시는 게 아닌가. 명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 한 구절처럼. 그때서야 나는 나무들을 길러온 긴
세월을 되짚어 보았다.
오랫동안 나의 정성과 손길이 배어 있는 나무. 두 아들과 함께 커온
나무. 우리 가족의 삶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그들을 명품나무라 불러주
어도 손색은 없을 것이다.
“나의 명품나무들아.”
최성옥 ----------------------------------------------------------------------
2001년 ≪수필과비평≫ 등단.
'월간 수필과 비평 > 수필과비평 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연재/새로 꾸는 꿈] 장승 - 임만빈 (0) | 2012.07.14 |
|---|---|
| [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평론] 서사구조로 직조된 인간애, 그리고 해학성: 강호형 ≪정류장에서≫를 중심으로 - 정여송 (0) | 2012.07.14 |
| [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세상마주보기] 웃어요! 웃어봐요! - 조상영 (0) | 2012.07.13 |
| [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세상마주보기] 남보다는 낫다며 웃는다 - 전상준 (0) | 2012.07.13 |
| [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세상마주보기] 취향정과 왕버들 - 장병선 (0) | 2012.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