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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수필행] 메밭골의 두견이 - 이희장

신아미디어 2012. 7. 6. 09:05

"생아生我자도 부모요 활인活人자도 부모라". 수필과 비평』을 사랑하시고, 수필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메밭골의 두견이


   아버지 제삿날 음복자리에서 걷지 않은 화조병花鳥屛에 그려진 따오기
가 어스레한 달무리를 그리움에 쳐다보고 있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시구처럼 언뜻 켜진 등화처럼, 접어져 있던 알뜰한 추억 속으로 나를
데려간다.
   백로白鷺가 지나니 찌던 한더위바람도 한결 건들건들했다. 들판에 이
삭 팬 벼들이 꾀꼬리빛으로 옮아갈 때면 우리네 풍습대로 선산에 벌초
를 한다. 그날은 칠월 그믐께 아버지는 나를 앞세워 마을 위 메밭골로
이끄셨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오학년이었다. 멧갓 발치를 적시고 있는
저수지 둑에 올라서니 건너편 솔숲에선 두견이가 울고 있었다.
   시월 시사 때 아버지를 따라 선산에 간 일은 있어도 이곳에 우리 산소
가 있는 줄은 몰랐다. 많은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다. 우리는 잔디가 잘
산 한 무덤 앞에 이르러 잠시 묵념을 했다. 아버지는 이 무덤이 할머니
산소라 하셨고, 우리는 벌초를 했다. 나는 풀을 베면서 여기에 어찌 할머
니 산소가 계실까? 처음 듣는 얘기라서 의아했다. 아버지께 그 내력을
묻고 싶었지만, 고개만 갸웃갸웃하는 나의 의중을 읽으셨는지 “이 할머
니는 순흥 안씨이시다.” 하시면서 산소에 대한 내력을 이야기로 풀어
주셨다.
   “그러고 보니 삼십 년이 넘었구나. 나는 우리 여덟 남매 중에 막내인데
내가 태어난 해가 을사乙巳(1905)년, 그 치욕의 을사오조약이 있던 해란
다. 내가 두 살 때, 병오정미丙午丁未(1906-1907)년에 전국 곳곳에 의병
이 일어났지. 그때 너의 할아버지는 영남 중동부지역에 창의倡義한 삼남
의병진의 기치旗幟 아래 대장(정환직)과 초모招募 때부터 진중 참모장으
로 수임하셨다. 왜구들의 침탈이 날로 악랄함에 청송, 입암에서 왜병들
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때, 불행히도 입암에서 대장 정환직이 장렬히
전사하고 너의 할아버지도 왼팔에 관통상을 입으셨단다. 전세는 중과부
적 열세로 어느 산골마을 뒤 산자드락에 수수대로 은신하여 하루밤낮을
지내셨단다. 그때 단간집 젊은 부인이 그 화급한 상황을 언뜻 김에 낌새
를 엿살폈나봐. 부인은 야음夜陰을 틈타 기장짚대를 한 자개미 껴다 더
가려주고 몰래 기장밥과 감자 몇 알씩을 날라다 주셨지. 그분이 여기
묻힌 이 할머니란다.” 하셨다.
   산 계곡 건너에는 두견이 우는 소리가 쉬엄쉬엄 들려왔다.
   아버지는 동네에는 하나뿐인 파이프(서양식 담뱃대)에 불을 댕기시고
는 두견이 우는 소리 쪽으로 잠시 어루더듬어 보시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으신다. 우리 의병은 군비軍備 군기軍器 등의 열세임에도 동격서공 게
릴라전은 계속되었으나 천운이 그릇됨인지 삼남의병진은 애석하게도
파하고 말았다. 설욕을 못하고 울분을 다스리던 중 일촉즉발 위난 시에
구명도생을 도와준 그 산촌 단간집 부인을 잊을 수 없어 찾아가 보았단
다. 집은 방 하나에 부엌 하나 쓰러져가는 오두막이고, 혼자서 살아가는
삶이 너무도 애옥함을 보고 가슴 아프셨단다.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
는 우리 마을 아래뜸에 작은 집을 마련하여 놓고, 신실한 인편으로 그날
의 고마움에 보답을 하겠다는 조심스러운 전갈을 다시 보냈단다. 처음
엔 완강히 부인하였지만, 마침내 부인은 사양하던 마음을 거두고 이곳
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단다. 그런 기막힌 인연으로 2년 뒤 할아버지의
정인이 되셨고 두 분은 그럴 수 없이 정애로이 지내시며 무척이나 귀히
여기셨지.” 하시면서 파이프에 댕겼던 불이 벌써 죽었는지 다시 불을
댕기셨다.
   아버지 나이 다섯 살 때라고 했다.
   철부지 꼬맹이는 개구져서 바짓가랑이와 저고리 소매에 흙탕칠을 적
시고도 할머니 집으로 뽈뽈 찾아가면 아이고 우리 순백이(아버지의 어
릴 때 아명雅名) 오나 하시며 덥석 안아 앉히고는 옷을 벗기고 아랫목에
밀주密酒 단지처럼 껴둘러 놓고 옷을 빨아 고이 입혀주시고, 이웃 환갑잔
치나 제사음식이 생기면 품속에 숨겨와 챙겨두었다가 내주시곤 하던,
그 정이 너무도 그리웠는지 그 대목에서는 말을 더듬으셨다. 어떤 날은
살가워 못 보내는 자애심에 인편으로 중마을 큰집에 그 사정을 일러 놓
고는 나를 보듬어 재워 보내기도 했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일본에서
귀국할 때라고 하셨다. 의사 이봉창이 도쿄 경시청 앞에서 일왕 히로히
토에게 폭탄투척 사건이 있었다. 그 바람에 귀국이 며칠 늦었지. 며칠만
일찍 왔어도 어머니 임종을 할 수 있었는데, 그랬으면 여기 공동묘지에
산소를 드리지는 않았을 텐데 하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3년 뒤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놈의 반상, 처첩, 서얼이 다 뭐이냐. 백정이니 까바치니 그 꼴같잖
은 소리 뇌작이다가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지 않았는가. 이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셨으면 할아버지가 여기에 무덤하지는 않았
을 것이다. 산 너머 구름 저 멀리서 바람 따라 삼월 봄 나비처럼 정인
따라 날아오셨다. 전설처럼 이 고장에 깃들어서 헌헌장부軒軒丈夫 좋은
임 만나서 한세월 고운 정 엮어놓고, 가시는 날 나는 뵙지도 못하고 홀연
히 떠나셨단다.” 하셨다.
   이야기를 하시고 듣는 동안 벌초는 끝이 났다. 가져간 수박과 탁주
한 잔을 올리고 우리 둘은 나란히 절을 드렸다.
  어느 사이 해가 설핏 기울었다.
   벌초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아버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나
를 낳은 어머니는 밀양 박씨고 이 산에 계신 어머니는 순흥 안씨다.”
한 번 더 일러주시면서 “생아生我자도 부모요 활인活人자도 부모라, 낳은
정도 중하지만 기른 정도 중하느니라. 모래가 할머니 제삿날이다. ‘홍랑
이도 선산 계하에 묻혔건만’ 아버지의 정인情人을 등한히 하면 이 또한
불효가 아니겠나. 이 할머니를 잊지 말거라.” 하시면서 은근이 나를 굽
어보셨다.
   키를 넘는 긴 그림자를 앞세우고 산발치를 내려왔다. 산자락을 물고
있는 저수지 수면 저 아래 높푸른 창송 그림자가 어리비친다. 쉬어 울던
두견이 울음소리가 할머니의 영음詠吟인 양, 수면 저 아래이듯 아득히
메아리져 온다. 하늘가 저 어디에서 울려오는 범종 소리처럼.

 

 


이희장  ------------------------------------------------------------------------
2009년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