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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수필행] 올가미 - 유영자

신아미디어 2012. 7. 4. 18:47

즐거운 올가미, 행복한 올가미, 다른사람에게도 씌워주고 싶은 올가미.. 그것이 바로 수필이 아닐까요. 『수필과 비평』은 여러분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올가미


   친구에게 나의 등단소식을 전하면서 내 글이 실린 수필전문지를 한
권 보내겠다고 했더니 이런저런 축하의 인사말 끝에 하는 말인즉, “이제
자기는 올가미를 쓴 거야. 이젠 글이 쓰기 싫어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야.” 한다. 축하한다는 인사말까지는 좋았는데, 아무래도 그 뒷말이 꺼
림칙하다. 도대체 무슨 심술인가. 그 ‘올가미’라는 말의 여운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아 두고두고 생각에 잠기게 했다. 과연 나는 올가미에 걸린
것인가.
   ‘올가미’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산짐승의 ‘덫’이다. 그건 시골에
있을 때 남편과 함께 인적이 드문 산길을 걷다가 겪은 일인데, 좁은 오솔
길에 그 흉물이 놓여 있었다. 그 길의 주변은 잡목이 빽빽이 우거져 있어
그 길이 아니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 곳에 놓인 올가
미에 나는 발목이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올가미는 어떻게 된 것인지
나를 꼼짝 못하게 묶어 놓질 못했다. 그러나 산짐승이 걸렸다면 어찌
됐을까. 걸린 녀석은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더 깊이 옥죄여
결국에는 숨지고 말았을 것이다.
   삼장법사가 손오공의 머리에 씌운 ‘띠’가 생각난다. 손오공은 착하게 살
지 않으면 어김없이 그 띠에 머리가 죄어 고통을 당한다. 언젠가 본 영화
생각이 난다. 제목이 <올가미>였다. 오래된 영화인데, 아들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며느리를 괴롭히는 병적인 시어머니를 그린 내용이었다.
   내가 등단을 하고 보니 마음에 부담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우선 문학
에 관한, 많은 독서를 하여 주위 사람들에게서 무시당하는 일은 없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거려 보지만,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저 마음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런 강박증 자체가
이미 올가미에 걸렸다는 증거 아닌가. 그 친구 말이 맞다. 나는 요새
통 글이 써지지 않는다. 등단하고나서부터 더욱 그러하다. 이젠 등단하
기 전보다는 뭔가 나은 글을 써야겠다는 욕심이거나 아니면 자존심 때
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도무지 글감이 떠오르지도 않고, 글이 쉽게
써지지도 않으니 어쩌면 좋은가. 이거야말로 틀림없는 올가미다.
   어제 남편이 현관을 들어서면서 내게 누런 봉투의 우편물 하나를 던
져주었다. 책 보내줄 사람이 없는데 누가 보냈을까 하고 겉봉을 살펴보
니 뜻밖에도 내가 잡지에서 본 바로 그분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가.
나는 그분의 수필에 홀딱 반해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면서 그분의 수필
집을 사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다. 혹시 발표된 내 신인상
글을 봤을까.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었다. 나는 놀람과 기쁨에
들떠 당장 그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솜씨가 없는 나는 그분에게 선생
님의 글이 좋아서 두 번 세 번 읽고 있다는 말도 미처 못 하고 그냥 “너무
좋아요!”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이럴 때 나의 올가미는 신선한 충격이
다. 그분이 보내주신 책에 내 이름까지 사인을 했으니 이것이 어디 예삿
일인가.
   손오공은 올가미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애를 쓴다. 그러나 벗어날 수
가 없다. 자신이 올가미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고통만 가중된다
는 사실을 그는 깨닫는다. 손오공은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착하
게 살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때부터 그는 열심히 사느라 올가미 자
체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이제 손오공의 머리에 씌워진 ‘띠’는 더 이상
손오공을 괴롭히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자신을 성숙시키는 매체로 탈바
꿈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삶의 올가미에 걸려 어려움을 겪는
가.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건대 나 또한 이런저런 일들로 질식할 것 같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선 결혼부터가 나에게는 어찌할 수 없는 올가
미였고, 자식을 낳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때
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올가미 아닌 올가미에 나도 모르
는 사이에 익숙해져버렸다. 이제는 오히려 그 올가미에 감사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올가미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버팀목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새삼 깨닫는다.
   뒤늦게 나는 ‘수필가’라는 새로운 올가미를 둘러썼다. 그러나 이 올가
미는 내가 좋아서 만난 스스로의 선택이다. 새로운 올가미는 나에게 삶
을 보다 치열하게 살라고 주문하고 있다. 나는 그 주문을 기꺼이 받아들
이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영화에서 본 시어미처럼 병적인 집착은 하
지 않으리라. 혹시 내일이라도 문학보다 더 좋은 것이 생긴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이 올가미를 벗어 던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아 나는 오히려 마음 든든하다.

 

 

유영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