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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수필행] 배, 몸, 인간 - 박옥경

신아미디어 2012. 7. 3. 18:46

수필과 비평에서 박옥경님의 수필을 즐거운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배, 몸, 인간


   유명한 예술가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내 배가 예쁘다고. 그분은 육십
대의 멋쟁이 남성이다. 평소에 스스럼없이 지내오던 터이고 인사말이라
일단 깔깔 웃고 말았다. 웃음으로 모면하려 했지만, ‘신체’ 특히 숨기고
싶은 ‘배’에 관한 표현이라서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옷 입은 내 배를 거울로 내려다봤다. 엉덩이 부분까지 실루엣이 드러나
는 긴 스웨터에 덮인 배는 당연히 완만하게 불거져 나와 있었다. 이 배가
예쁘다고? 사실 예쁜 데는 없었지만, 워낙 센스 있는 분이라서 그런 말로
대접했을 것이다. 그래도 형식적인 인사치레보다는 애정이 느껴지는 멘
트여서 배 한번 쓱 쓰다듬어주고 화장실을 나왔다.
   배에 관해 다시 까맣게 잊고 살다가 지난달, 영화 <레드 마리아> 시사
회에 초대받아 갔었다. 독립 다큐영화로 여성의 ‘배’와 여성의 ‘노동’을
통해 여성의 생생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이런 영화는 여성을
위해 남성들이 더 열심히 봐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남성 셋과 여성 하나를
대동하고 가서 함께 보았다. 객석 앞에 제작자와 감독과 사회자가 서서
인사말을 했다. 특별시사회는 배우와 스태프들의 무대인사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어 좋다. 여성 감독은 일본의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취재
하다가 필리핀까지 가게 됐고, 거기에서 빈민촌 성노동자들의 삶을 담
다가 내친 김에 한국 성노동 여성들의 시위와 기업노동자들의 투쟁까지
보여주기로 했다고 했다. 아시아 세 나라 여성들의 삶이 연출 없이 교차
하여 나오고, 98분 러닝이라 지루할 수도 있으니 옆 사람한테 피해만
안 가게 조용히 주무시든지 하면 좋겠다는 부탁의 말씀도 덧붙였다.
   영화는 화면 가득 일본, 필리핀, 한국 여성들의 ‘배’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불룩한 배, 쭈글쭈글한 배, 임신한 배, 살이 튼 배, 날씬한
배, 밋밋한 배. 피부색만 조금씩 다를 뿐, 배만 봐서는 어느 나라 사람인
지 분간이 안 갔다. 카메라는 이 세 나라 열둘의 여성에 앵글을 맞췄다.
일본 파나소닉의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파견직 여성근로자들, 일본군
들이 마을 전체 부녀자를 강간했던 필리핀의 당사자 할머니, 한국의 비
정규직 노동자 부당해고에 맞서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기륭전자 여성노
동자들, 아빠 모르는 아기를 낳은 성매매 여성 쉼터의 어린 엄마, 성매매
특별법에 저항하는 한국 성노동 여성들, 한국으로 시집온 필리핀 여성,
장애인들을 위해 일하며 그들과 주고받는 사랑을 가장 큰 보수로 여기
는 재일동포 여성, 극단 빈곤지역 필리핀의 빈민촌에 살면서도 꿋꿋하
게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쯤해서 영화 제목이 왜 ‘레드 마리아’인지 눈치채게 되었다.
‘레드’는 ‘열정’과 ‘저항’을 의미하는 거였다. 여성의 ‘배’를 통해 ‘노동’의
의미를 재구성하며 ‘뜨겁게’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는
보고서였다. 상처와 절망을 딛고 일어나려 노력하는 ‘희망’을 이야기하
는 영화였다. 생생한 ‘기록’을 한 점이라도 놓칠까봐 숨도 크게 못 쉬고
보고 있다가 옆의 남성 동반자를 흘깃 보니 그도 나처럼 헛기침 한번
못하고 숨죽이고 보고 있었다. 그 옆 남성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나는
잠깐 나의 배와 남편의 배와 엄마의 배를 떠올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여성의 배’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배’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남성
의 배’인 남편의 배도 떠올려 본 것이다. ‘인간의 배’가 참 많은 경험과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도 영화를 보며 처음 해본 내 생각이었다. 영화는
시작할 때 보여준 배들의 주인공 얼굴까지 함께 보여주며 끝이 났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나는 손으로는 손뼉을 치며,
가슴으로는 배를 보여준 여성들을 생각했다. 늙거나 젊거나, 파업투쟁
을 하거나 노동을 하거나, 노숙을 하거나 자원봉사를 하거나, 혹은 성노
동을 하거나 성노동자를 돕는 일을 하거나 하나같이 밝고 건강했고, 활
짝 웃으며 카메라 앞에서 배를 보여 주었다. 나라면, 내가 그들이라면,
영화 카메라 앞에서 배를 홀랑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다.
   나는 지금 영화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보고 관심
을 갖게 된 내 배와 내 몸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대화 혹은 토론을 안 할 수가 없어 동반한 사람들과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누었다. 진솔하게 오간 말들을 주섬주섬 담아 집에 오자마자 나는 목
욕탕에 들어가 아주 편히 내 배를 거울로 검색해 보았다. 역시 완만하게
나온 배다. 처녀 때의 개미허리는 타원형의 박 반쪽을 엎어 놓은 모양으
로 바뀌어 있었다. 영화 <슬리버>에서 이혼한 30대 후반 칼리가 화장실
에서 자신의 퍼진 배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시계방향으로 문지르는 장면
이 겹쳐졌다. 그녀의 외로움과 여성성을 아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
며, 나도 에로틱한 ‘샤론 스톤’처럼 위에서 아래로 둥글게 천천히 배를
문질러 보았다. 볼록한 뱃살의 촉감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랫부
분에서 단단한 선이 만져졌다. 시선을 거울에서 실제 내 배로 옮겨 살펴
보았다. 제왕절개 수술선이다. 이 선을 통로로 하여 나의 딸은 세상 밖으
로 나왔다. 그 아이는 배꼽이 살짝 보이는 티셔츠를 입히고 싶을 정도로
배가 무척 예쁘다. 배가 예쁘다는 건 옛날의 나처럼 개미허리라는 뜻이
다. 게다가 배꼽은 볼우물처럼 동그랗게 쏙 들어가 있다. 갓 스무 살과
내일이면 쉰 살과 배를 비교할 수야 있으랴만, 아이의 배가 섹시하게
예쁜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 예쁜 배를 가진 아이를 잉태하고 낳은 건
바가지 같은 내 배다. 목욕탕에서는 임신으로 뱃살이 터진 자국이 있는
여자들을 많이 보는데, 나는 살도 안 터졌고, 통통한 내 배가 별안간 아
름다워 보여 남모르게 돌아앉아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면서 거칠어진 내 손바닥을 느꼈다. 어렸을 적 배 아플 때 정성스
레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문질러주시던 엄마의 거친 손 같았다. 자연스럽
게 엄마의 배도 생각났다. 엄마의 배도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앞과 옆으
로 넘쳐 나와 있다. 그래도 80대의 배 치고는 쭈글쭈글하지 않은 편인데,
분명 살은 터져 있다. 몸이 약한 엄마는 다섯 번 잉태해 한 번은 자연유산
을 하고 네 번 출산을 했다. 엄마의 시대에 비하면 반에도 못 미치는 출산
숫자이다. 그래도 네 번을 배가 부르고 배가 아프게 자식을 낳았다. 엄마
는 평생 자신의 배를 들여다보기라도 했을까. 잠이 들고서야 끝나는 집
안일에다 남편의 박봉에 부업 일까지 하며 평생 쉬지 않고 일해 온 엄마
는 배 한번 손 한번 바라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남편의
봉급 덕분에 돈 버는 노동도 안 하고 출산도 한 번만 한 나의 배와 그리고
약한 손을 어찌 엄마의 그것과 비교하랴. 그래도 엄마와 나와 딸, 우리
셋은 공통점이 있다. 이 땅의 여성이며, 지금 엄마라는 것과, 앞으로 엄마
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엄마와 내가 그랬듯이 나의 딸도 매달 월경을
겪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이 땅의 모든 여성들처럼
살아가겠지. 이런 가사노동에 직장노동까지 더해 사회인으로서도 당당
히 누리고 대우받기 위해 매일 몸부림치며 살아갈 것이다.
   여성 감독인 이 영화감독은 세 나라의 차별받는, 약한 여성들을 취재
하며 “서로 다른 노동이 어떻게 그토록 비슷한 방식으로 몸에 연결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고, 그 근원을 찾기 위해 여성의 배를 카
메라에 담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사노동자, 성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위안부 출신 할머니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노동현실을 들여다봄으
로써 여성과 노동의 역학관계를 심도 있게 관찰하였다. 감독은 가장 낮
은 곳에서 글로벌자본주의, 신자유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여성들의 신체
를 기록하고 여성의 시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의 사회적 의미를 물었
다. 여성의 몸은 생명을 창조하는 가장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고, 여성
의 ‘몸’과 ‘일’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살면서 잘한 일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서슴지 않고 자식 하나
낳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보다 잘한 일도 없거니와 생명을 만들고 키
우는 일만큼 소중하고 위대한 일이란 없다고 평소 주장해오던 터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생명을 만드는 일은 여자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남자
가 있어야 한다. <레드 마리아>는 여성이 인간이고 그 인간의 반은 남성
이라는, 때 아닌 자각과 인식에 접근하게 했다. 그런 생각은 일상의 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먹고 살기에 바빠 잊어버리고 있던 삶의 뿌리를 다
시금 들여다보게 하는 눈도 갖게 했다.
   요사이 걱정스럽기만 하던 엄마의 여생과 아이의 미래도 새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 배를 위시해 내 몸 전체를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
그러더니 이 소중한 몸으로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
지도 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얼마 전 이사 온 삼선동 오래된 주택가 골목
안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중고품 산다는 트럭 확성기 소리까지도 삶에
지친 내 먹먹한 귓속으로 매일처럼 활력소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박옥경  ------------------------------------------------------------------------
2010년 ≪에세이스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