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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수필행] 수필행隨筆行 - 유병근

신아미디어 2012. 7. 4. 18:40

하늘에게서 즐거운 수상함이 느껴진다. 비가 이렇게 기다려지다니.. 수필을 읽으면서 행복을 더한다.

 

 

 

 

 수필행隨筆行


   비 오는 날은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보다 하늘이 무겁다. 젖은 담요
같은 구름을 껴안은 하늘은 비를 털어내느라 분주하다.
   빈 봉투에 무언가를 끼적거리고 있는데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인쇄된 것이 보인다. 며칠 전 나는 지인의 혼사에
하객으로 참석했었다. 오후 늦은 혼사의 하객에게 혼주는 교통비나 하
라고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 봉투의 알맹이는 뽑아 지갑에 넣고 빈 봉투
는 호주머니에 집어넣었었다.
   봉투에도 쓰임새란 가닥이 있을까. 사람 중심인 사고방식은 사람에게
만 운명을 들춘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봉
투 또한 운명이란 팔자소관을 끼고 있을 듯하다. 인간 위주의 주장만을
그대로 좇아갈 생각은 없다. 봉투에도 이런저런 운명이란 것이 있다고
거리낌없이 떠벌린다.
   베토벤은 운명을 악보에 담았다. 오선지를 타고 웅장하게 울리는 <운
명교향곡>은 듣는 사람의 심금을 쿵쿵 흔들었다. 턱없는 생각이지만 심
금을 쥐어뜯을 수 있는 글 하나 썼으면 하는 욕심은 비단 <운명교향곡>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요량으로 소재가 될 글감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데 주눅이 드는지 글감은 촌색시마냥 안으로 웅크리기만 한다. 구름에
서 천둥번개가 터지듯 생각의 봇물이란 것이 뻥 터진다면 속이 후련할
것인데.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처지가 생각의 덫에 걸려 기를 펴지 못한다.
글쓰기에도 과단성이란 것이 작용하는 법이어서 좀 만용이라도 부릴라
치면 그게 내 분수가 아닌 듯 글 전체가 그만 비뚤어지고 사개가 어긋난
다. 아, 내 길이 아니었구나 하는 뉘우침을 떨치지 못한, 그냥 어쩌다
길을 찾아 어둠 속 같은 미로를 허덕이며 가는데 무슨 구덕은 왜 그리
많은지. 번번이 발을 헛딛는 나는 또 길을 놓치고 허탈하게 주저앉는다.
   처음 빈 봉투에 뭔가를 끼적거릴 때는 어떤 형태가 잡히겠구나 하는
작은 들뜸에 다소 신이 났었다. 그 실마리를 따라가면 글의 새 지평이
열릴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아니다. 처음 몇 줄은 그런대로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주었다. 하지만 써 나갈수록 생각이 막히고 끝내는 빈 구덕
같은 것이 발목을 칵 잡고 더 이상 나가지 못하게 나둥그러졌다.
   언젠가 길에서 본 깡마른 나무에서 새 움이 솟아오르던 것에 무뜩 생
각이 끌린다. 나무는 참으로 장한 지혜와 힘을 갖고 있다. 겨울 동안 그대
로 동사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나무였는데 계절을 잊지 않고 새 움을 뽑
아낸다. 모진 눈바람에 등을 웅크리고 있었을 헐벗은 나무는 겨울바람
앞에서 모두를 비운 완전한 무의 정신으로 지내왔지 싶다. 그러지 않고
서는 다시 살아날 수 없을 만치 혹독한 추위였다. 무아無我의 경지. 사람
도 흔히 모두를 비움으로써 자아발견의 길을 터득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 나무에서 파르스름한 새 움이 트는 생명력은 어떤 가르침을 주는
것처럼 대견했다. 이를테면 물러설 줄 아는 시기와 나아갈 줄 아는 시기
를 놓치지 말라는 ≪명심보감≫ 같은 구절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지 싶었다. 그걸 모르고 함부로 처신할 경우 몸과 마음이 통째로 망가
진다는 은근한 눈짓을 나무가 가지를 흔들며 타이른다는 느낌이었다.
   빈 봉투 표면에 뭔가를 끼적거리는 자국은 엉뚱하지만 그 봉투의 내
면에 깃든 속청을 찾아내려고 한 노릇인지 모른다. 가만히 침묵하고 있
는 빈 봉투이지만 그 속에는 아무도 미처 찾아내지 못하는 내용물이 깃
들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자 하는 낌새가 있을 것만
같다. 싱거운 노릇이지만 그걸 알아내고자 볼펜으로 끼적거리며 안달복
달했다.
   경제제일주의 하늘 아래 기껏 한다는 짓이 이런 놀이라면 참 따분한
짓거리라고 누가 쑤군거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쑤군거림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으려 한다. 그런 점 나는 기운이 팍 처지도록 한심한 존재
라고 스스로 말해본다. 빈 봉투 속에 무엇이 들어 있다고 하는 그 생각
자체가 어떤 점 정신이 살짝 나간 터무니없는 말놀이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생각을 돌려본다. 대나무의 속울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
소리만이 아니다. 그것은 대나무의 속청에서 울리는 보다 심연의 울음
이겠다. 가장 깊은 소리는 가장 깊은 데서 울리는 소리임을 대나무가
말한다. 빈 봉투 속에는 빈 봉투의 속청이 들어있음을 어렴풋이 깨닫는
다. 그걸 찾아 빈 봉투를 쓰다듬으며 이리저리 다루어 볼 생각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빈 봉투 속에서 대나무가 자라는 어렴풋한 환영을 본다.

 


유병근  --------------------------------------------------------------------------
1970년 ≪월간문학≫ 등단.
수필집: ≪까치똥≫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