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등불과 같은 사람을 알고 행동을 같이 하는 것만으로도 보람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어둠을 밝혀준 빛
달이 없는 어두운 밤 골목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는데
누가 등불을 켜들고 서 있었다. 사람들이 누군가 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자 이상히 여긴 한 사람이 그에게 당신
은 앞을 못보는 것 같은데 등불은 왜 들고 서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웃으며 저는 눈을 감고도 길을 다닐 줄 알지만 다른 이들은 어두우면
불편할 것 같아 등불을 들고 서 있다고 했다. 오래전에 읽은 ≪성자가
된 청소부≫에서 감명 깊게 읽은 이야기다.
문득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강영우 박사 생각이 난다.
그는 어렸을 때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어버려 정상적인 교육을 받
지 못했고, 부모님마저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려 동생과 누이동생과도
헤어져 살았다. 운 좋게 맹인재활원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 후 쉬지 않고 노력하여 서울맹학교 고등부를 졸업한 뒤 천신만고 끝
에 연세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밤낮 없이 노력한 결과 연세대를 우수
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한미재단과 국제로터리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미
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 당시는 정상적인 학생도 미국 유학을 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는 시각장애인으로서 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행운을 잡
았다. 그리고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명예롭게 교육철학박사 학위를 받
았다.
강영우 박사는 1977년부터 1999년까지 23년 동안 미국 인디애나주 정
부의 특수교육국장과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학 특수교육학 교수로 재
직한 뒤 마침내 2001년 차관보급인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위원으
로 임명되었다. 그는 불가능을 극복한 의지의 한국인임을 전 세계에 알
린 셈이다.
강영우 박사의 성공 뒤에는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도움을 준 이는 그의 아내 석순옥 씨가 아닐까.
그 당시 석순옥 양은 여대생이었고 강영우는 맹학교 학생이었는데 그
들은 첫눈에 서로에게 끌리게 되어 모든 장애를 물리치고 인생의 동반
자가 되었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도 성장하여 맏아들은 조지
타운대의 안과교수로 재직중이고 둘째 아들은 변호사가 되어 현재는 백
악관의 선임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연말 강영우 박사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길어야
두 달밖에 살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불행이 닥쳐온 것이다.
강영우 박사는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마지막 고별의 뜻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세상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얘기였다.
그의 유언은 아들에게 무엇이든지 해보지 않고는 포기하지 말라는 말
과 이웃에게 감사히 생각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이 전부였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쉽게 포기하고 쉽게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교에 불
합격했다고, 취업이 되지 않는다고, 부모에게서 꾸중을 들었다고 목숨
을 끊는 젊은이들이 해마다 늘어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인생을 괴로
움의 바다라고 한다. 사람이 살다보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사회 생활을 해보면 풀리지 않는 문제가 많다. 만일 시험에 불합
격했다고 죽고, 시험성적이 나쁘다고 죽고, 얼굴이 못났다고 죽고, 부모
에게 꾸중을 들었다고 죽고, 장사를 했다가 손해를 봤다고 죽는다면 이
세상에 몇 사람이나 살아남겠는가. 우리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을 몸소 실천한 이가 많지만 그중에
서도 강영우 박사는 가장 본받을 만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온갖 어려움
과 불행을 물리치고 미국에 건너가 변호사가 되고 백악관의 선임법률고
문이 되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이 세상의 등불이 될만하다.
그는 죽음에 임해서도 후배들에게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난
관을 이겨내어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그는 캄캄한 밤에
도 빛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선각자였다.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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