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세계에서 길을 찾아보세요. 모두가 행복한 천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그는 지독한 근시였다. 신문을 코앞에 들이대고 읽을 정도였다. 그는
또 지독한 술꾼이었다. 술이 그를 외롭게 만들었는지, 그의 외로움이
그를 술꾼으로 만들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그는 거의 매일 술
을 마셨다. 그는 언제나 혼자서 점심을 먹었다. 남들은 점심을 먹고 들어
오는 1시경에 혼자 어슬렁어슬렁 나간다. 그리고는 3시경에 술이 잔뜩
취해서 들어온다. 그리고 그는 신문지로 얼굴을 덮고 소파에 누워 5시경
까지 잔다. 남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일어나 그제야 일을 시작한다.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다. 간혹 업무일로 상의를 할라치면 그는
아주 퉁명스럽게 마치 시비 걸듯이 대꾸했다. 그래서 직원 누구도 그와
의 대화를 꺼렸다. 사무실에서 그와 대화할 동료들은 이미 승진하여 다
른 곳으로 속속 빠져 나갔고 후배들만 남은 사무실에서 그는 절대고독
자처럼 입을 닫고 자기 할 일만 했다. 그 누구도 그가 하는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종종 창가에 서서 석양에 저물어가
는 여의도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
지 30분씩이나 꼼짝도 안 하고 서 있을 때가 있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사무실을 둘러보는데 그의 두꺼운 안경이 햇살에 반사되어 차가운 광물
질처럼 번쩍거렸다. 고독해 보였다. 삶이 저렇게 적막해서 어떻게 하냐
며 걱정을 하면서도 그 외로움이 나에게 옮겨와 나도 모르게 우울해지
곤 했다. 그는 나와는 장르가 달라서 서로 만날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 사무실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쪽 사무실의 업무가
확장되고 인원이 많아져 사무실이 비좁아지자 스페이스 여유가 조금 있
는 우리 사무실로 그를 보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일로 불평하
거나 항의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해했다.
사실 PD라는 직업은 출근을 하든, 집에서 놀든 맡은 프로만 잘 만들면
누구도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질 않는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편안한 작
업처럼 보이지만 프로그램이 기대에 못 미치면 상당히 견디기 어려운
직업이다. 그는 그 장르에서는 대단히 유능한 PD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는 어쩐 일인지 메이저프로를 맡아보질 못하고 변두리 프로로만 빙빙
돌았다. 주위의 말로는 고분고분하지 못한 그의 성격 탓이라고 했다.
이미 상사가 되어 버린 그의 입사동기들한테 걸핏하면 대들고 입바른
소리를 해서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가 만드는
<TV미술관>이라는 프로는 비록 심야 시간대에 방송되었지만 상당히 잘
만들었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혹자는 <TV문학관>과 쌍벽을 이루는 프
로라고까지 칭찬을 했다. 미술계에서의 반응도 상당히 좋았다. 실제로
내가 그의 프로를 본 일이 있는데 그의 재기가 번뜩거렸고 그의 미술에
대한 지식도 상당해 보였다. 한마디로 불우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침에 출근해 보면 사무실 소파에서 쪼그리고 자고
있는 그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가 하는 프로가 밤을 새울 만큼
바쁜 프로도 아닌데 의아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가정불화가 심각
하다고 했다. 그는 S대학을 나왔고 그의 부인과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자존심 강한 그의 부인은 그의 무능을 못 참아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말다툼을 하고 집에 안 들어가고 부인은 부인대로 밖으로 돌고 가정은
말이 아니었다.
그는 점심 먹으러 나가면 저녁때가 되어야 술이 잔뜩 취해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남들 다 퇴근해 버린 사무실에서 혹은 편집실에
서 혼자 밤을 새우며 일을 하곤 했다. 그전보다 더 외톨이가 되었다.
누가 자기 흉을 보든 말든 그는 자기 방식대로 살겠다는 듯이 그 전보다
더 말을 아꼈고 눈빛은 더 형형해졌다. 감히 누가 말을 붙일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해 보니 사무실 분위기가 흉흉했다. 그가 12층 아파
트에서 뛰어 내렸다는 것이다. 부인과 그날도 말다툼을 하다 충동적으
로 아파트 베란다로 뛰어나가 바로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통상 직원이
사망하면 방송국 마당에서 노제도 지내고 동료들이 눈물을 훔치며 관을
들고 망자가 일하던 사무실도 한 바퀴 돌아나가는데 그는 직장동료들과
사귐도 성글어 빈소도 썰렁했고 노제도 없이 병원 영안실에서 쓸쓸히
화장터로 향했다. 단지 그와 절친했다는 친구 하나가 술에 잔뜩 취해
그의 영전에 엎어져 대성통곡을 하며 울부짖었다고 했다.
“야! 이 새끼야. 네가 천재냐? 네가 천재냐고? …… 왜 이렇게 일찍
가는 거냐, 엉! 이 나쁜 새끼야!”
그는 직업을 잘못 택한 것일까. 아니면 그의 천재성을 발휘하지 못하
게 한 그 어떤 것들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미숙
한 반항아였을까. 가끔 그가 생각난다. 그리고 이 비정한 사회를 생각하
고, 경쟁에 이기지 못하면 곧 도태당하는 PD사회를 생각한다. 그가 만약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면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
을 한다.
PD사회는 연륜이나 경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
과 20년, 30년 된 고참 PD가 맞붙는다. 거기에는 어떤 프리미엄도 없다.
누가 프로를 더 잘 만드느냐다. 그래서 진급도 하고 모두들 하고 싶어
하는 프로를 연출한다. 반대로 프로를 잘 만들지 못하면 제대로 된 대접
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한 번 처지기 시작하면 낙인이 찍혀 일생 동안
좀처럼 만회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일반 직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
는, 서열이 뒤바뀌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이 악물고 프로를
만든다. 살기 위해서. 그러다 보니 PD들에게는 동료의식이 부족하다.
옆 자리에 앉은 후배PD도, 입사 동기도 엄밀히 보면 경쟁자다. PD들은
고독하다.
그는 끝내 그 고독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그가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프로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가 천재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나는 그를 그렇게 부른다.
장기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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