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덕을 지닌 민들레의 소중한 기억을 통해 여러분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
민들레
이른 봄부터 노란 민들레가 도시의 시멘트 담장 밑에 피었다. 지나가
던 발걸음을 멈추고, ‘꽃샘추위에도 곱게 피어 참 고맙다.’고 인사를 했
다. 인도블록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가련한 몸짓으로 꽃 한 송이를 피워
낸 민들레도 대견하다. 열악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당당하게 꽃을 피워
내는 민들레가 사랑스럽다.
민들레는 봄꽃이면서도 진달래나 개나리처럼 대표적인 봄꽃으로 인
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서운한 감정 없이 계속해서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우는 그 모습이 가상하다. 앉은뱅이라고 놀려대도 개의치 않는다.
길섶의 민들레가 꽃잎을 지우고 하얗게 달무리를 만들었다. 여행을
떠나려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비행 준비를 하고 언제 불어올지도
모르는 바람을 기다린다.
Y엄마의 과수원에 하얀 민들레가 피었다. Y엄마는 1970년대에 우리와
같이 살았다. 2층에 전세 사는 Y엄마는 아래층 옆방에 전세 사는 나와
얼굴을 마주쳐도 새침했다. 처녀 때 어느 미인대회에 나갔다는 예쁜 얼
굴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했다. 그때 젊은 새댁이 찹쌀로 동동주를 담
가서 같이 나눠 마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김치도 맛깔스럽게 담근다며
안방 할머니가 살림 솜씨를 칭찬했었다. 그런 새댁이 이젠 할머니가 되
었다.
젊은 날 남편은 몸을 돌보지 않고 술을 즐겼다. 그 결과 간에 이상이
생겨 치료를 하려고 병원을 다녀도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 건강에 차도
가 없자 답답한 남편이 병원의 처방약을 먹지 않고 간에 좋다는 민들레
등 채식 위주의 식생활로 몸관리를 했다. 만경강 둑에 가서 민들레 몇
포대씩 캐다가 말려서 아파트 베란다에 놓고 우려먹기도 했다. 요즈음
은 매일 공원에 나가 운동을 하며 건강관리를 한다. 그 결과 서울대학병
원에 다니며 주기적으로 검진만 받는다.
이 말을 들은 Y엄마가 간에 좋은 효능이 있다면서 하얀 민들레 한
자루를 캐왔다. 뿌리가 우엉과 같이 곧고 잔뿌리가 적어 손질하기도 쉬
웠다. 한 뿌리에 열 개가 넘은 포기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포기마다
두세 개의 꽃대를 올려 꽃을 피웠다. 민들레를 깨끗이 씻어 물에 살짝
데쳐 채반에 널고, 일부는 된장에 갖은 양념을 해서 무쳤다. 또 뿌리는
김치로 담가 냉장고에 넣어 숙성을 시켰다.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는
식물이라고 하니 잎 하나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민들레는 잎과 뿌리 모두 버릴 것이 없다. 예쁜 꽃으로 감상하다가
건강 밥상을 차리고 차로 마시며 민들레가 주는 혜택을 생각하게 한다.
민들레는 첫째 새봄을 알려주고, 둘째 흰색과 노란색의 꽃을 피워 들
꽃을 감상하게 하고, 셋째로 밥반찬이 되어 인간의 건강을 지켜주며, 넷
째로는 위·간장 등에 좋은 치료약으로 이용되며, 다섯째로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자손을 번성케 하는 등 오덕을 지녔다.
민들레 한 포기 한 포기를 다듬다 보니 손에 까맣게 물이 들었다.
뿌리와 잎에서 쌀뜨물처럼 하얗게 나오는 액체가 손에 묻어 잘 씻어지
지 않는다. 그래도 남편에게 건강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또한
정겹다.
자기 몸을 생각하지 않고, 가족들 생각도 하지 못하고 술만 마시던
지난날들은 다 잊어버리고, 이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생활을 하기 바라
는 마음을 담아 민들레차를 우려 마신다. 더운 물에 데쳐져 햇빛에 물기
를 잃고 말라 가던 민들레 꽃송이. 솜털로 달무리를 만들어 바람에 날려
씨앗을 뿌리고, 밟혀도 꿋꿋하게 살아나는 강한 생명력을 남편과 공유
하기를 바라며 그 얼굴의 주름살을 바라본다.
박귀덕 ----------------------------------------------------------------------
2004년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삶의 빛 사랑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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