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비평』은 수필문학의 번성과 내실이 같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수필문학이 하나의 큰 장르가 되기를 기대하며.
제4장 현대 수필문학의 전개(3)
현대수필의 방황기(수필 장르의식의 방황기)
- 광복 후의 수필문학 ②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 동인지 ≪에세이≫ 발간
최초의 수필동인지는 1963년 부산에서 발행된 ≪에세이Essay≫이다.
부산에서 수필동인회가 결성되면서 김병규, 김일두, 박문하, 이남원, 오
도환, 정신득, 장성만, 허천 등 8명의 수필가가 동인이 되어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64년엔 제호를 바꾸어 ≪수필隨筆≫이
라 하였다. 1964년 3월 계간 ≪春≫으로(NO.2) 발간된 이 동인지의 표지
그림은 이주홍이 맡았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
하였다.
2003년 어느 날 필자의 집으로 몇 권의 수필동인지가 우송되었다. 인
천 어느 기업에서 일하는 분으로 청년시절 부산에서 문학에 관심을 갖
고 활동하던 분이다. 그가 소장하고 있던 수필 동인지 몇 권이었다. 1960
년대 부산에서 발표했던 수필동인지들이다. 모두가 당대 부산지역에서
활동했던 수필가들의 작품으로 이 당시에는 전문적인 수필가가 없었던
시대여서 작가들의 면면이 다양하다. 전국의 작가를 망라하고 있다. 지
금도 그렇지만 부산지역은 수필문단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던
지역임을 여실히 증명할 수 있는 자료다. 대개 40여 쪽의 세로쓰기를
한 얄팍한 동인지들이지만, 이미 1960년대에 부산지역에서 수필동인 활
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본문의 한자는 필자가 한
글로 바꾸어 놓았다. 국한문혼용의 문체다. 오늘의 수필과 비교하여 읽
어보면 좋을 것이다.
- 한상렬, <수필동인지-수필>, ≪제물포수필≫, 2005-하반기. 통권 46호, 135쪽.
제호를 변경한 제2호의 필자와 작품으로는 김정한의 <목우기沐雨記>,
이남환의 <아내의 일기>, 김일두의 <야영의 밤>, 오도환의 <또 한해는
저물어 간다>, 김병규의 <아이 러브 유>, 정신득의 <구두장이 영감님>,
김병태의 <눈의 철학>, 장성만의 <금붕어 인생>, 박문하의 <십자매와 잉
꼬>, 허천의 <비군자의 변>, 박지홍의 <한국문학과 수필>이 발표되었다.
이 동인지의 5호를 보면 제호를 ≪隨筆≫, 인쇄 1965년 12월 25일, 발
행 1965년 12월 31일. 편집 수필동인회, 값 30원으로 되어 있다. 편집위
원으로는 김정한, 김일두, 인쇄는 태화인쇄소, 발행은 태화출판사, 등록
번호 카 제10호, 등록년월일 1963년 4월 6일로 되어 있다. 창간호보다
동인이 늘어, 동인 명단으론 김정한, 김일두, 김병규, 김현옥, 박문하,
송정수, 이남환, 장성만, 정신득, 차동석, 허천으로 되어 있다. 국판 61쪽
이었다. 수필동인지 ≪隨筆≫은 2008년 통권 70호를 기록하고 있다.
제5호에 발표된 작품 중, 허천許天의 <웃는 돼지>와 장성만張聖萬의
<포도주>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날뛸 만한 기쁜 일도 없다. 얼굴을 찌푸릴 만한 우울한 일도 없다.
울고 싶도록 외로운 일도 없다. 그러니 더군다나 견디기 어려울만한 슬
픈 일이 있을 턱이 없다. 그래서 요즘 나는 통 술을 먹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는 내 생활의 전반이 안정이 되어 있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생활이 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안정
되어 있는 것이다.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라기보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
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욕심이 없으니 복잡한 문제들
이 일어날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기야 나라고 욕심이 없을 턱이 없다. 하늘을 우러러서는 하늘을 좋
다고 하고, 꽃밭에 서서는 꽃을 좋아라고 한다. 장미가 피면 장미를 탐
내고, 칸나가 피면 칸나를 사랑한다. A형의 여자를 보면 A형을 아름답다
고 하고, B형의 여자를 보면 B형을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세속적인
인간, 탐욕적인 인간을 절대로 면할 수 없다.
그러한 욕심을 잊어버리고 있다 하는 것은 결국 현재의 나에 스스로
자족하고 있다 하는 의미가 된다. 자족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
도 더러는 있지만, 굳이 자족을 하려고 애를 쓰면 아니 되는 것은 아니라
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런데 인간들이란 대체적으로 지위나 권세 등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는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비교적 관심이 적다. 사람이 사람 속에 어울
려 살아가자면 그런 것이 전혀 없어도 때로는 곤란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신문사의 논설위원이다.
논설위원의 직이란 원체 계급성이 없다. 그래서 높다고 생각하면 높
고, 낮다고 생각하면 낮고, 말하자면 요령부득의 직이다. 간혹 기자보다
높으냐 낮으냐는 물음을 받는 수가 있다. 낮을 수도 있고 높을 수도 있
다고 대답을 한다.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러면 부장보다 높으
냐 낮으냐고 되묻는다. 이번에도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다고 대답
을 한다. 높다, 낮다의 말하자면 바뀌었을 뿐 뜻은 매 한가지이다.
그래도 짓궂게 파고드는 친구가 있으면, 하는 수 없으니까 미국의 대
통령보다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다고 대답을 해준다. 그런 다음에
는 아무리 물어 와도 대답을 안 한다. 나도 모르니 말이다.
대체 자기의 직업이란 자기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유일무이한 것이
되어 남과의 고하비교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논설위원의 직
이란 계급성이 없는 것인데 거기에 어찌 비교 관념이 허용될 수 있겠는
가. 그래서 나 같은 위인에게는 꼭 안성맞춤의 직이란 것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는 삼중의 노복이다. 군주 또 국가의 노복, 명예의 노복,
일의 노복. 그러니 그들은 자유를 갖지 못한다.
베이컨의 말인 것 같다. 노복이 되어서도 태어난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살아가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이미 초인이라고 할 것이
다. 나는 그런 것을 바랄 정도로 무엄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나의 형편은 어떠한가 하면 가령 한 사흘쯤 회사를 쉬었
다고 하자. 아마 회사 안에서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이다. 그런 지경이니 출근인들 어떠하겠으며 퇴근인들 어떠하겠는가.
모든 것은 내가 알아서 하면 되는 것이다. 과문의 탓인지는 모르지만
도대체 논설위원에 출근부라는 것이 있다는 말조차 들어 본 적이 없다.
간혹 나를 보고 너처럼 편한 사람은 세상에 드물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천부당만부당도 유만부동이다. 자유스럽다는 것과 편하다는
것은 그 질이 전연 다른 것이다. 열 장의 글을 쓰기 위하여 며칠씩 앓는
일이 예사로 있고, 그러고서도 끝내 써 내지 못하고 마는 수도 없지 않
다. 이럴 때에는 눈으로 영화를 보거나 입으로 술을 마시고 있어도 머리
는 노상 분주히 딴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서
일하는데까지 불평을 해서야 쓰겠는가.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줄 또한 알았도다.-
전도서 제3장 13절에 있는 말씀이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수고하는 것,
모두가 다 약이라고 하셨고 그것은 또 하나님이 작정해 주신 선물이라
하셨는데, 내가 비록 종교를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찌 그런 진리까지를
소홀히 생각할 수야 있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남보다도 월등하게 우월한
자유 속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현재를 고맙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또 비교적 돈에 대해서 담담하다. 사주를 보아도 그렇고 관상을
보아도 그렇고 간사스러운 점쟁이에 물어 보아도 그렇고, 어떻든 부자
가 될만한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 공통된 견해이다. 그리고 또 그것을
실증이라도 하듯이 화투놀이를 해 보면 백 번이면 백 번 꼭 잃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자의든 타의든 돈에 대해서 담백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명색이 의관을 하고 다닌다는 자로서 그 월급이란 것이 너무
빈약해도 사실상 체면이 서지 않는 것이다. 논설위원으로서 내가 받는
월급, 굳이 액수까지는 물을 것이 없다. 어떻든 이백 명 사원 중 위에서
부터 헤아리는 편이 훨씬 빠르다고 하는 사실만은 틀림이 없다. 세상에
월급근로자가 구름처럼 많은데 소득액수의 고하야 어떻든, 그 위치만이
라도 위쪽에 속한다고 하면 우선은 자족을 해야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로서는 경험이 없어 잘 모르지만, 듣건대 돈이란 모으는데도 고생
이요 지키는 데도 고생이요 또 쓰는 데도 고생이라고들 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백년도 못사는 인간평생에 굳이 그런 못난 짓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돈에는 고생만 따른다고 한다. 고생은 자기에 관한 일이지만 죄악은
남에 관한 일이다. 돈이 아무리 중하고 귀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타에
몹쓸 짓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돈에 얼마만큼 죄악이 따르는지 나로서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하지
만 이 나라의 졸부들을 볼 때 여간한 불의, 부정, 불법 등을 범하지 않고
서는 그만한 짧은 시간에 그만한 거액은 모으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든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돈에 관하여 죄악이 따르
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에 한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동서와 고금에 공통
적이고 보편적인 현상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수 같은 분이
그토록 부자를 규탄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닌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 가기가 어려우
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태복음 19장의
말씀이다.
낙타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그것보
다도 더 어렵다고 하면 부자는 세상에 어떤 일이 있어도 천국 구경은
다한 것으로 알아야 한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
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돈이란 참으로 무섭구나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예수께서 부자를 규탄한 데 대해서는 예수의 성장이 다른 성인군자들
보다 유달리 비천하였기 때문에 돈에 대해서 다소 편견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색다른 해석을 붙인 사람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적중한
해석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원체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의 부
자만 보아 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자가 돈으로 말미암아 죄를 많이
지어 그런 탓으로 필경 예수의 눈에 난 것이라고 해석을 해두고 싶은
것이다.
‘부자 만덕’이란 말을 어디선가 본 일이 있다. 가령 내가 어떤 운명의
희롱으로 졸부가 되었다고 할 때 나에게 과연 덕이 스스로 갖추어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쓴웃음이 나온다. ‘덕’이란 그야말로 인간의 덕
인데 돈이 생겼다고 그게 그렇게 쉽사리 인간을 따라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요즈음 보면, 돈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씩을 회사를 위하여 던지는 경
향이 있다.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余慶이라고 했으니, 권하고
싶기도 하고 환영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돈’이란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리고 또 그것을 좀 던져 놓고서 큰 자비나 베푼 듯이 득의만면해
있을 모습을 생각해 볼 때 어쩐지 눈을 꼭 감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니 나는 돈을 모으기가 틀린 것이다. 어쩌다가 돈 때문에 처자들
이 짜증이라도 낼라치면 마음속으로 한 구절 외어 본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찐 소를 먹으면서 서로 미워
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제4장). 벼슬과 돈에 관심이 적고, 현재의
위치와 소득에 보람을 느끼고 있으니 ‘지금의 나’, ‘지금의 상태’에 자족
을 아니 하려 해도 아니할 수 없다. 자족을 하고 있는 판에 무슨 복잡한
문제들이 생겨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좀처럼 핑계가 없고 핑계가 없으
니 통 술을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술이 없는 인생처럼 싱겁고 멋대가리 없는 생활은 드물 것이다.” 하
지만 그 덕분으로 나는 지금 살이 쪄 가고 있다. 이러다가는 끝내 내가
‘웃는 돼지’가 될 것이 아닌가 싶어 때로는 두렵기도 하다.
하기야 ‘웃는 돼지’나 ‘생각하는 갈대’나 모두 피장파장이 아닐까.
-허천, <웃는 돼지>, ≪수필≫ 제5집, 16-19쪽.
나라마다 마시는 음료가 다르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맥주
와 독일인, 코카콜라와 미국인, 차와 일본인, 그리고 포도주 없이 생각할
수 없는 프랑스인, 이렇게 본다면 한국인에게 어울리는 것은 역시 슝늉
일 것 같다.
맥주의 감칠 맛, 코카콜라의 쏘는 맛, 일본차의 은근한 맛, 슝늉의 구
수한 맛, 모두가 제 나름의 맛을 지니고 있지만, 유달리 포도주는 향긋한
향기와 함께 문명인의 긍지를 복돋아 주는 듯한 청초한 맛을 풍기는
음료이기에 좋다.
문화와 예술의 고장 파리의 노천식당에 앉아 거리를 왕래하는 평화로
운 새들을 바라보면서 포도주의 향긋한 향기를 들이켜는 ‘파리쟌’들에게
콧대 높은 긍지가 있음직한 것이다. ‘영광의 불란서’를 고창하는 드골의
뱃심도 포도주에 취하여 흥분한 한 불란서인의 사치스러운 취정일는지
도 모른다.
원래 포도는 원예작물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이라 한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육천 년 전에 포도를 재배했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니 인류의 연륜과 맞먹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득한 옛날 족장시대에 ‘노아’라는 의인이 있었는데, 그는 대홍수를
치른 후에 포도를 재배하여 포도주를 만들어 마시고 취한 나머지 벌거
벗은 몸으로 누워 자다가 아들에게 수치를 당했다는 성서사화가 있다.
또 지혜의 왕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의 연예문서를 볼 것 같으면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
나.……우리가 너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느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이들은 ‘포도주와 사랑’을 비교한 것이다.
비단, 이런 감미로운 애정의 기록에만 포도주가 인용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에 둔 예수가 제자들을 모아 놓고, 포도주 한 잔씩을 부어 주면
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라고 한 것을 보면 ‘포도주와
피’와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심각성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포도주는 인체의 영양소는 물론이고, 문화와 예술의
소재로, 애정의 표현으로, 정치인의 뱃심의 원천으로, 나아가서는 죽음
과 삶의 상징으로 두루 이용되고 있다.
포도 얘기가 나왔으니 지난번 내가 찾아갔던 동래부근의 A씨의 포도
원은 정말 하나의 기적의 자리였다.
원래 이곳은 지대가 낮은 것이라 습기가 많아서 원예엔 적당치 못한
장소였다. 그러던 것을 당년 58세의 A씨가 이곳에 들어가서 반생을 보
내는 동안 손수 땅을 파고 등이 부르켜 터지도록 흙을 져다가 칠천 평에
이르는 넓은 땅을 메워서 포도의 동산을 만든 것이다. 이 포도원과 더불
어 생사를 함께 하며, 푸른 청춘의 정열을 담뿍 쏟은 A씨를 대할 때 머리
가 숙여졌다. 목숨을 내어놓고 나서는 사람 앞에는 불가능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산 교훈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가느다란 철사로 이 넓은 땅을 거미줄처럼 얽어 놓고, 그 사이 사이에
다 포도나무를 정확한 간격으로 심어 둔 것도 장관이거니와, 여러 종류
의 품종을 접붙여서 보다 좋은 개량종을 만들어보겠다는 노력이 엿보여
더욱 놀랄만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품종이라 할 수 있는 ‘캼베어리이’와
‘데라웨이야’ 등도 값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새로 나와서 인기를
차지하고 있는 ‘마스카트 ․ 베리 A’나 ‘거봉’ 같은 품종은 앞으로 대단히
유망하다고 한다. 최고의 품종이라는 이집트산인 ‘마쓰카트 ․ 오브 ․ 알
렉산드리아’며 구주산이라는 ‘사바루칸 ․ 스코이’며 외관과 품종이 모두
좋다는 ‘스어파함브르그’ 같은 새로운 품종들이 A씨의 능란한 손에 의하
여 이곳에서 재배의 성공을 보여주고 있으니 앞으로 한국도 포도의 명
산지로 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슝늉의 유산을 내어 팽개치라는 말
이 아니다. 다만 앞으로 포도즙이 국민적 음료로 인기를 모으는 날이
온다면 파리하기 그지없는 겨레의 얼굴이 붉으스레하게 피지는 않을는
지 한 가닥의 희망을 걸어 보는 것뿐이다.
포도의 풍작을 바라보며 나는 부질없이 이런 꿈을 가슴 가득히 안아
보는 것이다.
- 장성만, <포도주>, ≪수필≫ 제5집, 20-21쪽.
이후 부산에서는 첫 동인지 ≪수필≫ 이후 이주홍이 산파 역할을 맡
아 ≪윤좌≫(1965년), 부산수필가협회의 ≪부산수필≫이 1977년에 간행
되었으며, 부산수필문학협회의 ≪부산수필문학≫이 1990년에, 부산문
인협회 수필분과위원회에서 펴내는 ≪부산수필문예≫이 2004년에 발표
되는 등 부산지역은 타 지역과 차별화하여 한국수필발전에 기여하여 왔
다. 이외에도 부산에는 수필동인으로 ≪길≫, ≪필맥≫, ≪석필≫, ≪청
추≫, ≪수필시대≫, ≪수필나무≫, ≪동백수필≫, ≪청술레≫, ≪수필
문학21≫, ≪부산여성문학≫ 등의 수필동인지가 속속 발간되었다. 수필
가의 수효만도 1974년 부산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은 고작 8명이었지만
지금은 300명을 웃돌고 있다.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광복을 맞이한 1940년 해방공간과 1950년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이 시기에는 엄청난 분량의 수필집이 대거 출판되기
시작하였다. 이정림은 그의 ≪한국수필평론≫에서(범우사, 2002년, 165-
167쪽) 이 시기에 출간한 수필집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놓았다.
1940년대에 출판된 수필집을 발간 순서대로 연대기식으로 나열하면,
이태준의 ≪무서록無序錄≫(박문서관, 1941년), 이은상의 ≪노산문집≫(영창
서림, 1942년), 박종화의 ≪청태집靑苔集≫(1942년), 김동석의 ≪해변의 시≫
(박문사, 1946년), 김동석·김철수·배호 3인공동수필집인 ≪토끼와 시계
와 회심곡≫(서울출판사, 1946년), 김진섭의 ≪인생예찬≫(동방문화사, 1947
년), 이양하의 ≪이양하수필선≫(을유문화사, 1947년), 마해송의 ≪편편상片
片想≫(새문화사, 1948년), 이광수의 ≪돌벼개≫(생활사, 1948년), 김용준의
≪근원수필≫(을유문화사, 1948년), 노천명의 ≪산딸기≫(정음사, 1948년), 이
광수의 ≪나의 고백≫(춘추사, 1948년), 김기림의 ≪바다와 육체≫(평범사,
1948년), 설의식의 ≪화동花洞시대≫(새한민보사, 1949년), 정지용의 ≪산문≫
(동지사, 1949년), 고황경의 ≪인도기행≫(을유문화사, 1949년), 최재희의
≪생활의 향기≫(온문사, 1949년), 조연현의 ≪문학적 산보≫(문예사, 1949
년) 등이 있다.
1950년대로 접어들어서는 김진섭의 ≪교양의 문학≫(조선공업문화사,
1950년), 김상용의 ≪무하無何선생방랑기≫(수도문화사, 1950년), 김진섭의
≪생활인의 철학≫(선문사, 1950년), 김소운의 ≪목근통신木槿通信≫(영웅출
판사, 1951년), ≪마이동풍첩馬耳東風帖≫(남향문화사, 1952년), 변영로의 ≪명
정酩酊사십 년-무류無類실태기≫(서울신문사, 1953년), 이은상의 ≪노변정
담爐邊情談≫(민족문화사, 1953년), 전숙희의 ≪탕자蕩子의 변辯≫(연구사,
1954년), 변영로의 ≪수주樹洲수상록≫(서울신문사, 1954년), 조경희의 ≪우
화寓話≫(중앙문화사, 1955년), 계용묵의 ≪상아탑≫(우생출판사, 1955년), 김
동명의 ≪삼오당잡필≫(진문사, 1955년), 천경자의 ≪여인소묘≫(정음사,
1955년), 이광수의 ≪병상록≫(광영사, 1956년), 박승훈의 ≪하루살이≫
(평문사, 1956년), 고유섭의 ≪전별餞別의 병甁≫(통문관, 1958년), 조연현의
≪문학과 그 주변≫(인간사, 1958년), 김팔봉의 ≪김팔봉수필집≫(경기문화
사, 1958년), 장만영의 ≪이종표≫(신흥출판사, 1958년), 박목월의 ≪토요일
의 밤 하늘≫(범조사, 1958년), 이영도의 ≪춘군집春芹集≫(청구출판사, 1958
년), 조지훈의 ≪창에 기대어≫(범조사, 1958년), 유달영의 ≪인생 노오트≫
(수도문화사, 1958년), 박두진의 ≪시인의 고향≫(범조사, 1958년), 김진섭의
≪청천수필평론집≫(신아사, 1958년), 유치환의 ≪동방의 느티≫(신구문화
사, 1959년), 주요한의 ≪자유의 구름다리≫(태성사, 1959년), 조지훈의 ≪시
와 인생≫(박영사, 1959년), 피천득의 ≪금아시문선≫(경문사, 1959년) 등이
속속 출간되었다.
1960년대에는 모윤숙의 ≪포도원≫(중앙출판공사, 1960년), 한하운의 ≪황
토길≫(신흥출판사, 1960년), 김형석의 ≪고독이라는 병≫(동양출판사, 1960
년), 양주동의 ≪문주文酒반생기≫(신태양사, 1960년), 이효석의 ≪효석전집
-수필편≫(춘조사, 1960년), 이어령의 ≪지성의 오솔길≫(민중서관, 1960
년), 박문하의 ≪배꼽 없는 여인≫(현대사, 1960년), 안병욱의 ≪사색 노우
트≫(동양출판사, 1960년), 최태호의 ≪애처론≫(삼중당, 1961년), 이희승의
≪좌석 잠꼬대≫(일조각, 1962년), 마해송의 ≪오후의 좌석≫(정음사, 1962
년), 김태길의 ≪웃는 갈대≫(동양출판사, 1962년), 조연현의 ≪여백의 사상≫
(정음사, 1962년), 안춘근의 ≪살구나무의 사연≫(동민문화사, 1963년), 최신
해의 ≪문고판 인생≫(정음사, 1963년), 안병욱의 ≪마음의 창문을 열고≫
(삼중당, 1963년),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현암사, 1963년), 천경
자의 ≪유성流星이 가는 곳≫(영문각, 1964년), 조지훈의 ≪돌의 미학≫(고
대출판사, 1964년), 김사달의 ≪소의낙수小醫落穗≫(수문사, 1964년), 김동리
의 ≪자연과 인생≫(국제문화사, 1965년), 박종화의 ≪달과 구름과 사상≫
(휘문출판사, 1965년), 박문하의 ≪약손≫(아성출판사, 1965년), 김형석의 ≪영
원과 사랑의 대화≫(삼중당, 1965년), 김소운의 ≪건망허망健忘虛妄≫(남향
문화사, 1966년), 이주홍의 ≪뒷골목의 낙서≫(을유문화사, 1966년), 박현서의
≪화려한 숲의 대화≫(여원사, 1967년), 최승범의 ≪반숙半熟인간기≫(형설
출판사, 1968년), 김우종의 ≪소양강에 비 내리다≫(홍익출판사, 1968년), 방
정환의 ≪소파수필선≫(을유문화사, 1969년), 전숙희의 ≪밀실密室의 문을
열고≫(국민문화사, 1969년) 등이다.
이들 작가들을 살펴보면 아직 본격수필가의 작품은 눈에 띄지 않으며
타 장르의 작가나 전문인들의 수필집에 대종을 이루고 있다. 이로써 해
방 이후 1960년대까지의 우리 수필문학의 주류가 아직은 본격수필가에
의해 창작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겠다.
양주동은 국문학자요, 이희승은 국어학자였다. 이들의 수필과 수필세
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일찍이 재자才子 김성탄金聖歎을 좋아했고, 양계초梁啓超를 읽다
가 신문학으로 전환한 이래 중문학에서 일문학으로, 불문학에서 영문학
을 거쳐 한국문학으로 금의환향하여 안주하였다. 그러므로 양梁 박사의
수필시계는 자연히 동서東西가 한 자리에서 조화되고 고금古今이 바로
오늘에 살아나는 신묘함이 있다.
불과 한 센텐스 안에 시간적으로 수백 년과 수천 년이 함께 들어오고,
공간적으로 천리만리 떨어진 하방遐方의 사물들이 어울리어 표현되는
긴축미를 볼 때 흔히 독자로서는 난해함을 느껴 경원하게도 되리라.
-양주동, ≪문주반생기≫, 이상보의 양주동론.
가슴속에서 정 불이 나면 묘액猫額만 한 안마당에 튀어나와 하늘을
쳐다본다. 똬리테같이 둘리어 빠끔히 뚫어진 초가지붕 틈으로 창궁은
나에게 철학을 강의한다. 예술을 이야기하여 준다. 뭇별이 소곤거리는
여름 하늘뿐만이 아니다. 따뜻한 빛이 뽀얗게 흐르는 봄하늘이 그렇고,
달빛을 담아서 붓는 가을 하늘이 그렇다. 눈 덮인 용마루 너머로 감벽紺
碧한 심연深淵과같이 야드막하게 들여다보이는 겨울 하늘이야 더할 말
있으랴.
이와 같은 천공天空에 구름이 흘러간다. 더욱이 여름 하늘에야말로
구름의 미술전당이 벌어진다. 어느 귀퉁이에 보일락 말락하던 손바닥만
한 구름장이 금시에 눈덩이 같은 햇솜을 틀어 던진 듯 뭉글뭉글 피어오
른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스르르 녹아 버린다. 어느 틈엔지 푸른 초원에
미각의 유혹을 받은 양의 무리가 나타나고, 지는 소리가 고대 들릴 듯한
삽살개가 양을 따라가다가 별안간에 맨송맨송한 동경강아지가 된다. 바
랑 지고 굴갓 쓴 중이 앞을 서고 연엽蓮葉 위에 감중련坎中連한 부처가
뒤를 따른다.
-이희승, <하운夏雲은 다기봉多奇峰>, 어문각, 수필선집. 1934년
이 시기에 우리가 주목할 일은 철학자들의 수필이었다. 그들은 하나
의 계보를 형성하며 한국현대수필의 철학수필의 한 유형을 이루기도 하
였다. 김태길, 김형석, 안병욱이 그들이었다. 그밖에도 의창醫窓수필의
최신애, 이시형 등이 있다.
① 사람은 가끔 자기 스스로를 차분히 안을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느 곳에 어떠한 자세로 서 있는가? 나는
유언有言 무언無言 중에 나 자신 또는 남에게 약속한 바를 어느 정도까지
충실하게 실천해 왔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함으로써 스스로를 안으로
정돈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안으로 자기를 정리하는 방법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은 반성의 자
세로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마음의 바닥을 흐르는 갖가지 상념을 어떤
형식으로 거짓 없이 종이 위에 옮겨 놓은 글은, 자기 자신을 비추어 주는
자화상이다. 이 자화상은 우리가 자기의 현재를 살피고 앞으로의 자세
를 가다듬는 거울이기도 하다.
-김태길, <글을 쓴다는 것>에서
② 싸움은 여러 날 계속되었지만 누구도 만족스러운 해결을 내릴 수
가 없었다.
어떤 날 이들의 집 앞을 지나가던 한 목사가 있었다. 세 아들은 그
목사에게 아버지의 유산 문제를 해결지어 주도록 청을 드렸다. 누구도
만족할 만한 결론을 얻을 수 없었던 때문이다. (중략)
세 아들은 모두 만족했다. 목사가 얘기해 준 대로 자기들에게 돌아올
말들을 찾아 가졌다.
일을 끝낸 목사는 “그러면 나는 다시 길을 떠나야 하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도보로 대문 앞을 나섰다. 바로 그때였다. 한 아들이 뒤따
라 나오면서
“목사님, 말을 타고 오셨다가 어떻게 이 사막 길을 걸어가실 수 있습
니까? 외양간에 가 보니까 아직은 한 마리가 남아 있으니 이 말을 타고
가십시오.”
목사는 “그렇습니까? 나에게 한 마리를 다시 주신다면 타고 가겠습니
다.”라고 말하면서 말을 탔다. 타고 보니 그것은 조금 전 타고 왔던 바로
그 말이었다. 아들들은 목사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목사는 아까와
같이 자기 말을 타고 갔다. 생각해 보면 세 아들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젊은이였다. 목사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라도 싸우다가 무슨
결과를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 세 아들만이
아니다. 오늘의 우리들 모두가 꼭 같은 생활을 해 가고 있지 않은가.
- 김형석, <수학이 모르는 지혜>에서
③ ‘삶’의 목표는 ‘죽음’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프로이드는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 두 가지로 나누었고,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파괴
요 공격의 두 가지 경향도 모두 이 죽음의 본능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했다. 메닝거 씨는 여기에 덧붙여서 죽음의 본능이라는 것은 죽고 싶은
생각과, 남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싶은 생각의 두 가지 요소가 있는
것으로 분석해 보았다.
이 죽음의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파괴의 정신적 에너지
가 밖으로 향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향할 때 글자 그대로 자기에 대한
살인행위, 즉 자살이 이루어지며, 이 에너지가 자기 이외의 타인으로
향해질 때에는 살인이 된다. 따라서 자살과 타살의 차이는 에너지의 방
향의 차이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며, 이 양자의 관계는 마치 필름에
있어서의 양화와 음화와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Thanatos를 규정하는 생각에 대해
서는 정신분석학자 사이에도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 최신해의 <사람은 왜 자살을 하는가>에서
①은 글쓰는 이가 유념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알기 쉽게 써 놓은
글이다. 자신의 경우의 예를 들어가면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는 설명적 수필이다. ②는 생활의 지혜를 삶의 철학을
통해 통찰하게 하는 사색적인 수필이다. ③은 의창수필을 쓴 최신해崔
臣海의 수필로 정신의학적 수필이다. 이런 수필은 이시형, 김정일, 양창
순, 이나미에 의해 계보를 형성하면서 전문적 수필로 독자층을 형상하
였다. 최신해는 ≪심야의 해바라기≫, ≪문고판 인생≫, ≪제3의 신≫
등 정신의학적인 전문적 내용을 알기 쉽게 써서 의학에세이의 효시를
이루었다.
한상렬 --------------------------------------------------------------------------
수필가, 문학평론가.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이사. 국제펜한국본부 인천지역명예회장.
에세이포레문학회 회장. ≪월간문학≫, ≪수필과비평≫ 편집위원.
계간문예지 ≪에세이포레≫ 발행·편집인.
강남문화원 문예창작 지도교수.
저서에 수필선집 ≪비움과 없음≫, ≪신화를 꿈꾸다≫, 수필창작론 ≪수필문학 강독≫
(전3권), 문학평론집 ≪수필문학의 성쌓기≫ 외 70여 권.
신곡문학상, 한국문학비평가협회문학상, 구름카페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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