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함께 생각에 잠기니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더위가 싹 사라지네요. 여러분도 수필과 비평의 수필과 함께 사색을..
초가
어린 시절, 농촌에 살던 작은댁의 삽짝은 늘 열려 있었다. 그 이웃들이
모두 그랬다.
햇살 좋은 날, 황톳물을 벽에 발라 집 단장을 하던 숙모의 모습은 늘
포근하고 온화했는데 내게 초가를 보는 느낌도 그와 같았다.
초가는 자연의 일부처럼 바람과 햇빛을 잘 받아들이게 지어졌다. 초
가지붕의 짚 대롱 하나하나에 바람이 머물고, 철따라 찾아 든 마파람이
나 하늬바람도 아궁이를 거쳐 방고래를 지나 굴뚝 위에서 아름다운 춤
사위를 그린다. 서슬 퍼런 칼날의 북서풍도 아궁이 속에서는 성질이 바
뀌어 하얀 구름이 되어 푸른 요람으로 날아오른다. 여름의 습한 바람은
황토벽으로 드나들어 숨을 쉴 수 있게 지어진 집이다. 사람들과 함께
들숨 날숨을 쉬니 초가는 살아 있는 집이다.
옛사람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닥나무로 빚은 한지로 방문을 발랐다.
자주 손길이 닿는 방 문고리 옆에는 마른 국화 꽃잎을 넣어 한 겹 덧발
랐다. 눈부신 아침햇살도 방문을 지나면 은은한 빛이 되어 방안을 밝힌
다. 은은한 그 빛 속엔 그윽한 국화향의 정취가 서리었다. 옛사람들은
그렇게 바람과 햇살도 걸러서 방에 들였다. 추운 겨울이라도 문을 숨구
멍 없이 다 바르지는 않았다. 문살, 두어 칸 칼로 금을 내어 심호흡을
하듯 맑은 바람이 들락거리게 했다. 해 짧은 동짓달 아랫목에서도 문풍
지의 떨림으로, 시베리아 눈밭을 거쳐 온, 날이 선 하얀 겨울바람 소리
를 본다.
오천 년 세월 속에서 서민들의 보금자리로 그 맥을 이어 오던 초가집
이, 철근과 시멘트로 견고하고 반듯하게 지어진 양옥이 생겨나면서 차
차 사라져 갔다. 현대 가옥의 편리함에 사람들은 하나 둘 그리로 옮겨
가고 사람들이 찾아들지 않는 초가는 명맥만 이어오다가, 언제부터인지
노란 박 덩이를 이고 있는 초가를 그림 속에서만 보게 되었다.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가장 자연에 가까운 집이라고, 펜션의 형
태로 초가를 닮은 집을 지어서 파는 사업자가 생겼다는 소리도 들렸다.
초가는 이제 흙벽돌로 벽을 쌓아 황토를 바르고 짚을 이고 방구들을
놓고 아궁이를 만들어 장작을 지피는 친환경 웰빙 하우스로 새로 태어
나 그나마 명줄을 이어갈 듯도 하다.
초가는 사람과 교감을 해야만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집이다. 가을에
는 노란 속짚으로 이 년에 한 번은 지붕에 새 이엉을 해 얹어야 비가
새지 않는다. 벌어진 틈새는 흙으로 메우고, 꾀죄죄한 벽은 황톳물을
발라 단장을 시켜야 한다. 마당도 새 황토를 날라 와 파인 곳을 다진다.
물과 습기가 장시간 머물지 않아야 오래 버틸 수 있는 황토의 속성 때문
에 치장과 단장을 해야 그림처럼 아름답게 피어난다. 이렇게 늘, 사랑의
손길이 가야 하는 초가이니, 사람의 버림을 받아 빈집이 되었을 때에는
맥이 빠져 얼마 버티지 못한다. 태풍이 아니어도 쉽게 풀썩, 주저앉고
만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흔적 없이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주저
하지 않는다. 그 마지막도, 폐자재가 쉽게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현대의 건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담백함을 지녔다. 초가는 그 담백함이
큰 결점이어서 사람들이 떠나고 버림받아 사라진 집이 되었지만 난 오
히려 그 담백함이 좋다. 모져 보이지만 깨끗한 뒷모습이 신선하다. 초가
는 손길이 많이 가고 단장을 해야만 환하게 피는 모자람은 있지만, 그
심성은 그지없이 따사롭다.
삽짝은 늘 열린 채 있고 열린 문으로 이웃들이 드나들었다. 닫아걸지
않는 문, 초가는 그렇게 어머니처럼 사람을 품어 안는 집이다. 이런 집에
살던 옛사람들은 초가의 일부처럼 잘 어울렸고 또 그 성질을 닮아 심성
이 맑았다.
나도 마음속에 문이 늘 열려 있는, 초가 한 동 자리 잡고 있었으면
좋겠다. 토담에는 강낭콩이 빨간 꽃을 피우며 호박넝쿨에는 벌들이 붕
붕거리고 마당에는 개미가 열심히 기어 다녀도 좋으리. 지붕 위에 박
몇 개쯤 올라 있으면 그림은 더욱 좋겠다. 소와 닭, 개까지 모두 한 마당
의 주민이다. 한데 어우러진 초가의 열린마당처럼, 품어 안는 심성으로
내가 물들어 갔으면 좋겠다.
딱딱한 물질로 지어진 집에 살아서 그럴까. 견고한 현대인의 집처럼
그 속에 살아가는 이의 마음도 삭막하게 변해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내 마음도 점점 석회화되어가는 것이 안타깝다. 열어야지, 열어야지 하
면서도 선뜻 내키지 않는, 스스로 문을 닫아 버린 공간에서 때론 처연함
을 느낀다. 이래서 빠지고 저래서 빠진 모임들, 이러다가 나는 갈 데가
없겠다. 하품이 나와서 가기 싫고, 보기 싫은 인물이 있어서 빠지고, 이
유도 내세우기 그럴듯하지 않아 다른 핑계를 대는…….
아! 나는 열려진 삽짝이 있는 그런 초가를 마음에 담고 싶다. 한 마당
의 주민들과 어우러져 호흡하는 초가를 마음에 두고 싶다.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역류하지 않고 굴뚝으로 자연스레 빠져 나가는, 초가에 길들
여진 바람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초가에 살아가던, 심성 맑은
옛사람을 닮아갈지 누가 아는가.
김인숙 -----------------------------------------------------------------------
2002년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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