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난 친구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제는 추억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일까요!
돼지감자
조붓한 골목시장에 일곱 색깔 봄 무지개가 떠있다. 볼이 빨간 토마토,
노란 참외, 초록 빛깔의 미나리, 쑥, 달래 등 형형색색의 과일과 봄나물
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들녘의 과일도, 야산의 풋나물도 적막함이 싫었
을까. 사람 냄새 나는 이곳까지 나들이했다.
이곳 장터에 나온 채소나 과일은 국내산이 대부분이다. 언젠가 들러
본 백화점이나 마트와는 많이 다르다. 그곳에는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
에서 온 채소들이 많이 있었다. 심지어 남미의 칠레에서 온 청포도가
명찰 달린 유리통 속에서 숨을 죽인 채 누워 있었다. 채소도, 과일도
지구촌을 누비는 글로벌시대의 세태를 따르는가.
난전에 좌판을 벌여놓고 푸성귀를 팔고 있는 노파의 물기 없는 눈길
이 아내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손자놈 용돈이라도 쥐어 줄 요량으로 집
뒤 텃밭에서 기른 채소’라는 말에 아내의 눈가가 금세 발그스름해진다.
아내가 두릅과 미나리, 풋고추를 주문한다. 지문이 닳아 없어진 삭정이
같은 손으로 주섬주섬 담더니 풋고추 한 줌은 덤으로 넣어 준다. 할머니
가게 끄트머리에는 뚱딴지, 일명 돼지감자가 봄 햇볕을 쬐고 있다. 늦은
가을에 나오는 돼지감자가 춘삼월인 지금, 장터 나들이를 했다. 남들이
장에 가니 거름 지고 장에 가는 속없는 돼지감자인가.
돼지감자, 울퉁불퉁하게 생긴 것이 참으로 못난이다. 눈알인지, 입술
인지 뭉툭한 것이 툭 튀어 나왔다. 참외나 수박처럼 덩그런 받침대 위는
아니더라도, 그 흔한 플라스틱 소쿠리 안에도 들어가 보지 못한 채 검정
비닐보자기를 깔고 앉아 있다. 척박한 땅에서 태어나 비료 한 줌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자란 것도 서러운데, 이곳까지 와서도 홀대를 받고 있
다니. 무엇보다 늙은이들이 잘 걸리는 당뇨병에도, 고혈압에도 참 좋은
돼지감자인데.
두어 달 전이다. 초등학교 동기모임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
났다. 그 옛날 혁명공약을 못 외운다고 변소청소는 도맡아 하던 상길이
였다. 햇수로 따져보니 근 반세기가 넘었다. 시커먼 얼굴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울퉁불퉁하게 생겼다고 별명이 ‘돼지감자’라고 놀려대던 친
구였다.
돼지감자 상길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짠하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
가 사고로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단둘이 살다가, 어머니마저 재가再嫁하
는 바람에 먼 친척뻘 되는 할아버지 댁에 얹혀살았던 친구였다. 그 할아
버지 댁도 애옥살이 시골 살림인지라도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형편이던
모양이었다. 늘 쇠꼴 베느라고, 농사일 거든다고 일 년에 서너 달은 학교
가는 것을 빼 먹었다. 그 약하고 어린것이 무얼 돕는다고 결석까지 하면
서…. 형편이 그러하니 상급학교 진학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도회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면 상길이
등에는 늘 지게가 지어져 있었다. 꺼먼 교복차림에 책가방을 든 우리들
을 보면 피할 만도 하건만 “나 지게 고등학교에 다닌다, 얼마 안 있으면
지게 대학에 다닐 게다.”라며 웃으며 맞아주던 친구였다.
동기회 모임이 있던 그날도 보자마자 두 손을 내밀며 반갑게 맞이했
다. 사람 좋게 웃는 모습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험한 일을
하면서 살아온 탓인지 나이보다 다소 늙었어도 심지心地 하나는 맑아보
였다. 욕심이 없는 순박한 얼굴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출세했다고, 돈
좀 벌었다고, 뻐기며 입에 침이나 튀기던 친구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
친구 말마따나 “지게 대학 졸업을 하고 무얼 했느냐?”하고 물으니 군에
서 제대 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가, 한 서른 해 전부터 대구 큰 시장
에서 채소장사를 하고 있단다. 시장통 국밥집에서 일하던 참한 색시를
만나 아들, 딸 삼남매를 두었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 출가시키고 아내와
단둘이 재미나게 살고 있다며 예의 그 사람 좋은 표정으로 허허 웃는다.
불교경전을 어쩌면 그렇게도 잘 외우는지. 아마도 독실한 불교 신자인
모양이다.
아내가 돼지감자 한 됫박을 산다. 올해는 집 근처 빌려놓은 밭두렁에
심어보자면서 주섬주섬 주워 담더니 날더러 들고 가란다. 산골에서 자
란 티를 내는 아내이다. 솔직히 나도 저 돼지감자를 샀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던 참이었다. 이래서 부부는 닮는가 보다.
검정 비닐봉지 안의 돼지감자 하나를 꺼내어 깨물어본다. 아삭아삭한
것이 맛은 쌉싸래하다. 여름철 자주 먹는 일반감자와는 또 다른 맛이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돼지감자에도 이런 맛이 있다니. 다시 한 번 비닐
봉지 속의 돼지감자를 내려다본다. 겉모양은 보잘것없어도 성인병에 좋
다는 누런 돼지감자 위로 친구의 얼굴이 일렁거린다. 지게 대학에 다닌
다며 허허 웃던 그 친구의 얼굴이다.
김성한 -----------------------------------------------------------------------
≪문학세계≫와 ≪한국문학예술≫에 수필 등단.
수필집: ≪우정이는 행복바이러스를 꿈꾼다≫, ≪민얼굴이 향내가 더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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