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비평의 평론부문 두번째 신인상수상작품으로, 맹난자님의 수필에 나타나는 정신세계를 분석하고 탐구한 평론입니다. 한국문학의 수필에 대한 탐구와 이론을 통해 수필 위상이 커져가기를 기대해봅니다.
귀일歸一을 향한 배움과 비움의 여정
- 맹난자 수필론
이태리의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 원근법을 찾아내어 새로운 시대의
장을 열었다. 빛을 받고 있는 주인공 뒤에 있는 배경에 입체감이 살아나
면서 화면 전체에 생명감을 불어 넣었고, 주인공들 또한 생기를 얻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르네상스의 거장들에게 특별하게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원근법으로 인한 배경의 사실화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을 그려내면서 보이는 현상이나 표층 의식
만을 보여준다면, 완전하게 그 모습을 나타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뒤에서 보이지 않게 떠받치고 있는 허무와 죽음을 함께 조명하
지 않고 삶의 깊이를 그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
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뒤에 묻혀 있는 역경을 극복한 비담이 그를 더
위대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인간은 삶의 접점에 연결된 것이 죽음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먼 미래의 그것보다 내일과 연결된 희망을 바라보며 산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잠시 의식화하지만, 버거운 생존을
지속하면서 슬그머니 무의식화된다.
이러한 일반인들의 성향과는 달리 맹난자는 무의식화된 죽음을 의식
속으로 불러내어 전인적인 탐색을 하면서 살았다. 그녀에게 죽음은 생
존의 현장에서 수시로 나타나 소중한 사람들을 데려가며, 위협하는 실
체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춘기에 가족들의 죽음으로 생존의 위
기를 겪게 되면서 미지의 그것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삶과 죽음이라는
막연하고 거대한 문제를 알기 위해서 끝없는 배움을 지속했고, 배움에
서 욕망과 분별을 비움이 그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배움과 비움의 순환을 통해서 마음의 터를 넓히고, 무의식의
끝에서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귀일歸一’이라는 종교적 경지에 도달했
다. 그녀의 탐색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 하는 물음이었고,
찾은 대답은 인간의 삶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융이 “언제나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개인은 무의식의 저 끝까지
이르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듯이 그녀는 내면을 돌아보면서 모든 인간
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문제에 확실한 해답을 찾아냈고, 그것이 그녀
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러한 깨달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바로 그녀 수필의 핵심이다. 수
필은 경험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체득한 내면의 기록이며,
정신적인 태도이다. 그녀의 수필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잠긴 죽음을 불
러내고, 기피할 대상이 아니고 순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유도한다. 그
래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우리의 삶의 태도를 바르게 적립하도록 일
깨우고 있다.
Ⅰ. 죽음과의 대면
그녀는 행복한 어린 시절의 모습을 <수數, 이미지의 변주>에서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무엇보다 5는 내 어릴 적 모습을 먼저 떠오르게 한다. 어머니 옆에서
내가 가위로 오려 낸 그 숱한 앙증맞고도 작은 버선본은 5와 닮아 있었
다. 종이 상자 갑에 그걸 가득 담으며 부자가 된 듯 행복에 취했던 어린
시절이 문득 그리워진다.
어머니 옆에서 안온하게 버선본을 그리고 있는 어린아이의 귀여운 모
습이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어머니 앞에 하얀 보자기로
덮인 어린 동생의 주검을 목격하면서 삶의 그림자와 마주친다.
생애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고등학교 시절에 가족을 이어주는 축
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남동생의 죽음이다. 그것은 가족의 해체의 시
작이었고, 사춘기의 그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이었던 것 같다.
<시간의 단면>에서 자신의 슬픔보다 아버지의 절망적인 모습에 “양복
주머니에 면도날이 들어 있을까 봐 밤마다 몰래 뒤져야 했고”, 어머니는
절간으로 요양을 가셔야 할 정도로 가정의 안위가 위태로운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식구 모르게 동생의 무덤에 찾아가곤 했는데, 그 이유
는 “그 애를 외롭지 않게 하려면 내가 죽음 쪽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그때의 생각”이라는 말로 미루어 이때부터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의식화
가 시작된 것 같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아이들을 셋이나 앞세운 어머니의 실어증과 아버
지의 외도는 그녀가 “허망하게 스러져가던 비눗방울처럼 인생의 본질은
환幻인 것도 같고 슬픔인 것도 같다.”는 소회를 갖게 한 것이 <뒤늦게
찾아온 이 빛깔은>에 서술되어 있다. 어린 시절에 가족은 바람을 막아
줄 울타리이면서 정신의 안식처인 셈인데, 가족에게 일어났던 불우한
일들은 그녀의 터전을 황폐화시키면서 깊은 상처를 남겼고, 지탱할 뿌
리를 흔들어 놓았다.
일련의 상실들은 그녀의 인생관이 염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고,
<내면內面 일기>에서 대학생 시절을 회상하면서 “인생은 고통을 체험하
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닌가 싶다. 내던져진 하나의 불안한 존재”라
고 생각했고, 통행인을 바라보면서 “갈 때는 가는 것이 다인 것처럼 가는
일에만 몰두하지만, 반드시 떠난 곳으로 돌아와야 하는 법. … 이것이
산다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데, 이때 그녀는 “돌아와야” 할 죽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은 인간
의 본능이다.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불교 문구>에서 그 당시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나는 한때 비범非凡과 별미別味에 힘껏 박수를 보내왔다. 미각은 색다
른 별미를 추구하며, 시각은 평범을 벗어난 개성 연출로 튀고 싶어 했다.
우리 대부분의 젊은 시절은 그런 치기로 소모된다.
다른 젊은이와 다르지 않게 고등학교 시절부터 보였던 문학적 재능을
펼치면서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던 듯하다. 그때, 희곡, ≪산비둘기≫가
대학 문예 콩쿠르에 입선됐고, 대학생이 되면서 해외 문학작품, 불경,
철학에 몰입했다. 또한 ≪실험극장≫ 연극 연출을 하는 등 적극적인 사
회 참여를 통해 꿈을 펼칠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족들을 부양하
는 중에 몸과 마음이 아팠던 어머니가 빈집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
난 것은 또 한 번의 일격이었다. 홀로 남겨진 그녀에게 다시 망실亡失이
찾아왔다. 택지 개발로 인해 동생 묘를 이장하라는 통보를 받았으나 혼
자 감당하기 어려워서 미루는 사이에 묘가 유실된 현장을 목격했다. 그
때의 비통함에 대해서 <시간의 단면>에서 “지금도 묘지를 찾아다니는
버릇은 그때 잃어버린 무덤에 대한 어떤 특별한 보상 심리가 뒤따른 것
일지도 알 수 없다.”라고 술회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그렇게 아꼈던
동생의 무덤의 유실은 그녀 삶의 큰 짐으로 남아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그녀는 일생동안 52명의 세계적인 대문호들의 무덤을 순례하
면서 그들의 문학과 삶, 죽음을 집대성한 역작 ≪그들 앞에 서면 내 영혼
에 불이 켜진다≫를 2011년 12월에 출판하였다. 이 일은 앞으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일이고, “보상 심리”를 뛰어 넘는 한국 문학의 기념비적
인 작품이 되었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그녀에게 죽음은 관념이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외톨이로 남게 한 실체인 것이다. 죽음은 삶의 중심에서
그녀를 이끌어 간 지배자였다. 그녀는 그 장벽을 넘지 않고는 살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남산이 북산을 보고 웃네≫의 머리말에서 “죽음에 대
한 탐구는 나 자신을 위한 하나의 해답을 위해서였다.”라고 한 말을 미루
어 그녀는 살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죽음에 대해서 탐색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Ⅱ. 실존의 탐색과 깨달음
모든 종교는 내세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죽음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불교와 인
연을 맺기 시작했다. ≪불교신문≫(2012년 4월)에 실린 <목련꽃이 필 때
면>에서 그 인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대학을 중퇴하고 공무원이 되면
서 모든 문학 활동을 접었다. 정각사에서 ≪금강경≫을 공부하는 중에
김동화 선생님이 칠판에 “有求면 有苦, 無求면 無苦”라고 쓴 것을 보고
전율을 느끼면서 어둠이 걷히고 눈앞이 환해지는 체험을 한다. 둑가[苦]
가 다 해결된 즉 불가에서 말하는 초견성初見性을 경험한 것이다. 그때에
놓아 버리는 습관을 익히게 되었다고 술회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평
생 가지고 갈 “無”자의 화두를 얻은 듯하다.
그녀가 불교 철학과에 편입학하면서 문제의 답을 불교에서 찾아가고
있다. 자신의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문제 해결의 시발점으로 삼는
다. <자리에 앉다>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명상 중에 “애써 찾아낸 답”은 ‘생명’은 관념이라
는 것이다. 그것들은 작용하는 무엇에 붙여진 이름일 뿐, 실체가 아니라
는 사실이다. 따라서 머리로 찾은 답은 몸 안의 무명을 어쩌지 못한다.
온몸이 통째로 의단疑團과 한 덩어리가 되어 칠통 같은 무명 업식業識을
뚫어야만 생사生死 없는 자리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의 ‘생사 없는 자리’를 찾기 위한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한래서왕
寒來署往>에서 “나는 피하려 하지 않는다. 기꺼이 나를 얼려 죽이는 곳,
그리고 쪄 죽이는 곳, 생의 그 한가운데로 나아가고자 한다.”라는 정면
대결 의지가 보이고, 결국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낸 것은 이러한 강한 의지
였다.
그녀는 답을 얻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자신의 아집을 버리는 일임을
알았다. <빈 배에 가득한 달빛>에서 “아무 것도 가질 수 없을 때, 나는
버리는 것부터 배웠다.”라고 했는데, 욕심을 버리는 것이 원하는 것을
얻는 첫 걸음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학문에 대한 욕구는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어서 ≪주역≫을 비롯한 동양 고전 연구의 깊은
경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녀의 연구는 지식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삶에
대한 해답을 위한 것이어서, 모든 학문에서 종교와 공유할 수 있는 정신
적인 소통의 장을 찾아내었다. 그래서 그녀가 지향하고 나아가는 목표
속에는 불교적이면서 ≪주역≫과 노자의 해법이 함께 용해되어 있다.
원래 종교나 철학은 “삶과 죽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던가.
<간위산艮爲山>에서 “학문은 날로 채우려 들지만, 도는 날로 비우려
한다.”는 갈등 속에서 불교의 선禪의 자세에서 주역의 간艮괘의 “멈춤
[止]”의 의미를 묵상하며, 노자의 “무화無化되고 싶다”는 심중을 털어 놓
는다. 그녀가 학문을 통해서 들어간 도의 세계에서 ‘앎’을 내려놓아야만
그 경지에 머무를 수 있다는 부조리를 깨달으면서 그녀의 “무화”에 대한
애씀이 시작된다. 그래서 삼경에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간자艮字의 자
세로 명상에 들어간다. 그래서 그녀의 수필은 학문을 배우기만 하고 “실
천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질책이며, 조금씩 마음 그릇을 비우며 깨달아
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자리에 앉다>에서 그녀는 치열한 참구參究를 통해 존재에 대한 물음
과 해답 찾기를 반복한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하나로 모아지고 있었다.
“조건만 맞으면 연기緣起 상황으로 일어났다가 조건이 다하면 돌아간다.
귀일歸一이다.” 법이나 존재가 인연 따라서 만萬 가지 모습이 되면서 차
등이 생기지만 한 가지 이치에서 모아지면서 평등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다. 그러면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이 그녀의 진일보된 물음이
었다. 그녀는 서화담의 문답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해답을 제시한다.
그 사람[화담]은 죽음과 삶을 다만 기의 뭉침과 흩어짐일 뿐이라고 말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흩어짐과 뭉침을 있게 하는가? 그것은 어떤 외부
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 스스로가 그러하다[自然]는 것이다.
자연이다. 모든 사물은 극極에 달하면 원점으로 돌아온다. 시작된 근원
으로 마침을 돌이킴이니 시작과 끝을 알기에 생사生死의 문제 또한 알
수 있다고 ≪주역≫은 말하고 있지 않은가. 원시반종原始反終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돌아가야 할 곳이 바로 떠나온 그 자리이므로 죽음
은 상실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순환의 한 과정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앉은 자세로 “요달了達해 마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녀가 일
생 동안 품었던 죽음의 짐을 내려 놓고,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이와 같이 그녀가 현상으로 깨달은 죽음과 삶의 순환을 지구 과학자
들은 실체로서 ≪죽음과 섹스≫에서 설명하고 있다. 역사 철학자인 도
리언 세이건은(Dorion Sagan)은 “열역학 에너지에 의해 가동되는 체계인
생명은 세포에 재생을 제한하는 장치가 내재되어 유기체의 죽음으로 이
어져 순환의 출발점으로 돌아간다.”라고 했다. 우리는 세포 속에 내재된
장치에 의해서 죽을 수밖에 없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원시반종의
운명을 타고 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탄소 순환을 연구하는 뉴욕 대학교 생물학과 교수이며 공저자인 타이
러 볼크(Tyler Volk)는 우리 몸속에 있는 탄소는 옛날에 있었던 별들에서
나온 핵 분진들이고 우리 몸은 영구적인 것들의 일시 배열이라고 한다.
체내의 분자 역학이 멈출 때에 죽는다고 하면서 한 인간은 온 우주와
통합되어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속의 화학 원소들은 생물권을 순환할 것이고, 구름과 바다와 수많
은 경이로운 생명체가 될 것이다. 또한 나는 광대한 망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문화적 매듭이다. 나는 문화적 패턴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나는 스스로를 흐르는 물 위의
잔물결로 간주한다. 내가 있는 곳은 여기인 동시에 여기가 아니다. 나는
여기에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완전하고 미묘하게 다른
사람들 속에 융합되어 있다.
그의 생물학적 발견은 철학적 ‘귀일’을 증명하면서 물질적인 면뿐 아
니라 정신적으로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귀일에 속
한 자신을 인식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무생물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이웃과의 공동체적인 통합 속에서 살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그
녀가 오랜 탐색을 거쳐 찾아낸 답을 과학자들이 증명하고 있는 것에서
경이로움을 느낀다.
배움에서 터득한 앎의 경지를 거쳐 체화되어 가는 과정이 수필의 여
러 곳에서 나타난다. 귀일에서 생명과 죽음은 하나로 합쳐지고, 앞서
간 가족들과도 하나가 되는 화합의 자리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녀가
만나는 생물이나 인간과도 동질 의식을 갖게 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사철나무에서 움 돋는 새싹을 보면서, 생명
을 나누고 싶어 한다.
좁은 산도를 빠져나오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어린 생명체처럼 보
여…순간 먹지 못해 쇠약해진 기력이나마 그리로 보태 주고 싶은 간절
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염력念力때문인지 이미 그곳으로 흘러들어
가는 어떤 기운을 느낀다. 내 몸에서 빠져나간 생명의 일부가 둥글게
꼬리를 이으며 순환하는 우주의 기운 속으로 흡수되는 게 느껴진다. 이
런 것을 일러 귀일歸一이라고 하는가? 원시반종原始反終의.
그녀의 내면의 열림은 나눔이라는 귀중한 정신적 태도를 갖게 해 준
다. <불꽃 춤>에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 타의他意에 의해서 이용당하면
서 살아가는 생명에 대한 염려와 안쓰러운 마음이 나타나 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것들이 변형되면서 등장한다. 방울뱀이 집시 소녀로, 아르
바트 거리에서 청년들의 감시 속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소녀가 에곤 쉴
레가 즐겨 그린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질병으로 시들어 가는
상한 육체”를 가진 병든 소녀들 중의 한 사람이 된다. 그녀의 삶이 ≪집
시의 시간≫이라는 영화의 장면들에서 구체화되면서 뒷골목에서 암울
한 생활을 견뎌 나가야 할 것에 가슴 아파한다. 그래서 그녀의 안위를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그 마른 몸에 살을 붙이고, 옷과 신발
을 신기면서 그녀가 즐거운 춤을 추는 상상을 한다. 그녀가 평온한 생
활로 돌아가기를 비는 따뜻한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이들을 연기緣起
로 인해 갈라진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하는 모습에서 죽음 속에 갇혀
있던 자아가 귀일을 통해 극복되면서 이타적인 모습으로 전환되었음을
알 수 있다.
Ⅲ. 성性의 허무
생존의 여러 현상 중에서 인간이 의지로 피할 수 없는 성적인 욕망에
대해서 그녀는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연주의 작가들은 인간 행동
을 지배하는 세 가지 요소가 식욕과 성욕, 공포라고 생각했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이 본능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문화 사회에서 살고 있
는 사람들은 본능을 표면화시키는 것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
나 본능만큼 정직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도리언 세이건은 “진화는
가볍게 여행하고 섹스와 죽음은 한 몸으로 나타난다.”라고 했는데, 그는
지구에 생명이 존재하는 것은 번식하려는 성 에너지와 생명이 죽으면서
다른 우수한 개체로 바뀌는 진화 덕분이라고 말했다.
생명을 가진 것이 모두 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성적인 욕망이
다른 생명을 창조하려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가 깨달은 귀일
에서 원시原始가 일어나는 연기의 시점이기도 하다. 작가가 죽음 외에
가장 강하게 관심을 보였던 성性이 우연이 아니었음이 놀랍다.
<불꽃 춤>에서 아르바트 거리의 소녀가 환상 속에서 어른으로 성장하
여 방울뱀이 내는 “따라락 따라락!”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춘다. 이어서
같은 성향을 가졌던 여자들이 탈 공간적이고 통시적으로 줌인되고 아웃
된다. 에스메랄다로, 카르멘으로, 살로메로 변한다. 그들이 성으로 인해
남성들로부터 받았던 열광적인 사랑과 그로 인한 파멸이 그 소녀를 기
다릴 것이라는 예감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불꽃처럼 욕망을 쫓아 거침
없이 사랑을 불태우지만, 그 끝에 기다리는 죽음 때문에 사위어 갔다.
그러나 작가도 그녀의 춤이 절정에 이르러 수십 개의 불꽃이 하나의 불
기둥이 되었을 때에 자신의 몸 안에서 잠자고 있는 욕망이 점화되는 기
분이 된다. 그러나 피비린내도 함께 맡는다. 성적인 열정은 뜨겁게 시작
되고 그 끝에 허무가 기다리는 것을 알지만 인간은 그 본능을 거부할
수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탱고, 그 관능의 쓸쓸함에 대하여>에서 생명과 성을 동일시 할
정도로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부분임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감각의 비늘을 일으켜 세우는 우리 몸의 관능이 어떻게 하여 일어나
며 어떻게 스러지는가? 생명의 에너지를 성의 에너지로 환치한다고 해
도 다를 바 없다는 그 에너지의 본체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한때는
내게 화두였다. 백골白骨을 떠올리며 거기서 애욕愛慾의 공무空無함을
상상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목숨이 있는 한, 성性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적인 충동은 평정한 상태에서 일어나서 격렬한 열정이 정점에 이르
면 평정으로 되돌아가는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본능적인 욕망
은 평범한 인간들이 억제할 수 없는 강열한 에너지임을 작가는 외면하
지 않고 있다. 그녀는 성적인 욕망의 기복起伏을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서 진력을 다하지만, 뒤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과 똑같이 원시반종
을 통해 귀일로 돌아가는 순환으로 본다. 그래서 “몸이 도달하고 싶어
하는 지점도 끝내는 허구虛構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양파 껍질처
럼 한 겹 한 겹 다 벗겨지고 나면 끝내는 망실亡失, 바로 그 발밑은 죽음
의 계곡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또 <투우>에서는 관능과 죽음의 속성이 같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파괴적인 욕망은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관능과 죽음은 참으로
등배 사이다. 귀가 멍멍해 오는 백색의 여름날 오후의 권태를 죽이기에
는 투우가 적합할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건 바로 그때였다. 죽음
보다 확실한 생의 체감이 어디 있겠는가.
그녀의 성에 대한 관심은 생명의 끝에 기다리는 죽음과 욕망의 끝에
서 기다리는 허무감이 같은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무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극을 향해서 가지만, 극에 이르면 다시 시작점
으로 돌아오는 원시반종의 귀일이다. 태어남이 누구의 의지가 아니듯이
성적인 욕망 또한 자연 현상으로 스스로 나왔다가 스스로 돌아가는 순
리인 것이다.
Ⅳ. 순리順理
그녀가 깨달은 귀일은 ‘순리’라는 정신적인 태도로 살아가게 만들었
다. <산책>에서 “우리의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 받아들이는
데에 전 생애가 다 걸리는 것도 같다”라고 고백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녀
가 “뜻”을 털어 내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
을 귀일에 맡기면서 “스스로 하나의 자연”이 되어 그것과 합일이 되고,
자신을 그 속에 풀어 놓는다.
나비의 두 날개가 한 장으로 접어지듯, 몸과 마음을 포개어 마침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조용히 풍화風化되고 싶다. 텅 빈 숲 둘레에 어둠
이 가만가만 내려앉는다. 나는 적요 속에 한 점의 정물靜物이 되어 그냥
앉아 있다. 이윽고 편안한 어둠이 몸을 감싼다. 푸른 어둠의 바다 밑으
로 잠기고 있다. 이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녀는 초견성에서 얻었던 배움[有]에서 비움[無]의 화두에 도달하여,
마음의 평정에서 가장 중요한 ‘순리順理’를 체화시킨 경지에 다다랐다.
최근에 ≪수필과비평≫ 2012, 3월호에 발표한 작품에서 그녀는 “봄의 대
합실에서 바꿔 타야 할,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의 모습으로 자신을
묘사하고 있다.
또 ≪에세이 문학≫ 2011, 가을호에 실린 <그분의 행방은>에서 노자
의 도덕경처럼 간결한 문체로 노자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작가 또한
생명이 자연의 것이니 “나, 공空과 무無로 돌아가리. 여기에 무엇을 더
보태랴.”라는 말로 노쇠한 몸과 마음을 투명하게 노출시켰는데도, 독자
는 애처로운 생각보다는 왠지 평화로운 풍경을 보는 듯 담담했다. 도덕
경에서 말하듯 작가 자신의 의식이 해체되어 죽음과 소통하면서 공포의
막이 완전히 사라지고 무의 경지와 합일을 이룬 상태를 볼 수 있었다.
죽음마저 인간이 당연히 가야 할 순리로 순응하는 상태는 독자들이 두
려움으로 죽음을 생각하지 않도록 길을 안내하는 것 같다.
Ⅴ. 나가면서
인간의 죽음이 정명을 다한 후에 찾아올 때에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
비가 되어 있고, 순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충격이 적다. 그러나 작가는
극極을 향해 성장해 가는 어린 나이에 죽음의 연타로 인해서 세상에 펼
칠 꿈을 키우는 대신에 그 충격을 감당하고 흡수해야 할 과제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 그 과제를 회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서
해답을 찾아 극복하려는 의지와 태도로 살아왔다. 그것은 종교에 투신
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구도적 자세였다.
인간은 태어나서 다양한 조건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데, 감당하기 힘
든 어려움이 닥쳐올 때에 세 가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자신을 운명 속에
방치하고 무책임하게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해로운 존재가 되는 사
람이 있다. 반대로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서 성실하게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여 부나 명예를 얻어 성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극
히 소수의 사람들은 역경을 해결함에 있어서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 가다가 그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와 닿아 있
음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신적인 구도를 통해서 그 해답에 도
달하여, 다른 사람들의 길 안내자가 되는 위대한 정신을 가진 사람도
있다.
마지막 경우에 속하는 작가는 해답을 위해서 끊임없는 배움을 갈망
했고, 찾아낸 답이 비움이라는 이율배반적 갈등 속에서 귀일을 체질화
시켜서 정신적으로 안정된 노년기를 맞이하면서 다른 이들의 안내자가
되고 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죽음은 인간의 최대의 발명품이
다. 죽음은 삶이 할 수 없는 것을 변화시킨다.”라고 했다. 죽음은 물론
발명품은 아니다. 그러나 죽음을 표층 의식화한 사람은 가장 순수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과 마주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녀가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그녀는 죽음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원하던 정신세계의 한 경지에 도달했다. 또한 그녀의
깨달음의 기록은 관조 수필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 놓았다. 프로이트는
“작가에게 불멸이란 무수히 많은 익명의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의
미한다.”라고 했는데, 그녀의 수필은 앞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와 희
망을 주면서 사랑받을 것을 의심치 않는다.
오순자 -----------------------------------------------------------------------
Villanova 대학원 석사, 한남 대학원 문학박사. 한일장신대학교 영문과 교수 퇴임.
≪뉴욕한국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에세이문학≫, ≪계간수필≫ 추천 완료.
≪생활 속의 글쓰기≫, ≪바람 엿보기≫외 공저 수필집 다수.
수상소감
김춘수의 <꽃>을 생각하면서 수필을 읽는다.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
는 글을 만났을 때에 독자로서 큰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그 꽃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누군가와 교감하고 싶다. 그래서 독자의 마
음에서 그 “꽃”의 숨겨진 씨방에서 열매를 찾아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글을 써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평을 시작한다.
≪수필과비평≫ 121호의 ‘인연’에 <퇴적암 절리>가 실려서 인연이 시
작 되었다. 퇴적암에 한 개의 암반이 더 쌓이게 되었다. 무엇인가를 시작
한다고 나서기에 쑥스러운 나이이지만, 수필의 발전에 조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애써 볼 생각이다.
뽑아 주신 심사 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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