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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신인상수상작] 오늘만큼만 - 박미옥

신아미디어 2012. 6. 22. 15:37

박미옥님의 수필을 읽고 있으니 제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많음을 새삼느끼고 항상 감사합니다.

 

 

 

 오늘만큼만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파란색을 좋아했다. 병원을 나서며 바라본
파란 하늘빛을 그 옛날 보았다는 것을 오늘 새삼 알았다.
   미국으로 떠날 딸이 안경을 맞추겠다고 검사를 받던 중,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검사표에 눈을 맞췄다. 짧고도 지루한 시간이 흐른 뒤, 진지한
얼굴의 안경사는 단순한 시력 저하가 아닌 것 같다며 즉시 병원에 가길
권했다. 그 순간, 밝게 빛나야 할 세상이 그동안의 익숙함으로만 바라본
지 꽤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단순히 노안의 시작이라고만 생각했다.
   불안함으로 밤을 새운 다음 날, 의사는 장황한 설명과 함께 실명할
수도 있다고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희귀성 난치병으로 세계적으로
약이 없고 임상시험 중이라고 말했다. 남의 일 같은 그 얘기를 어떻게
내 일로 받아들여야 할지, 이제까지 없던 큰 고민으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남편과 딸은 걱정과 불안함을 애써 감추고, “어휴, 우리 엄마 안 그래
도 대충 보는데 별 차이 없겠는데.”라며 웃었고, 난 ‘암은 아니니까 죽진
않겠구나.’라는 터무니없는 위로를 하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
쳐 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남편은 내게 말했다. 하지만 너무 늦게
발견한 병은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리기 전에 절망으로 내닫고 있었다.
기다리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내 손을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잡아끌던
남편은 더 가 볼 병원이 없음에 조금씩 말이 없어져 갔다.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에서, 들판에 있는 비닐하우스
를 보며 혼잣말처럼 “물이 군데군데 참 많네.”라고 했다가 남편의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아야 했다. 그것도 잠시, 눈을 뜰 때마다 세상은
바뀌어 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애써 감추는 나
에게 도리어 남편은 미안하다고 했다. 우린 서로에게 가슴 아픈 위로를
하고 있었다.
   딸이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는 날, 산더미처럼 꾸려 놓은 가방과 함
께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한마디도 할 수
없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보이지 않는 눈을 크게 뜨며 딸의 모습을
담으려 비비고 또 비볐지만,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더욱 볼 수가 없었
다. ‘내 딸이 돌아왔을 때 예쁜 모습 못 보면 어쩌나? 이것이 볼 수 있는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안 보일까?’ 뿌연 안개처럼 희미한 딸의
얼굴만 만지고 또 만졌다.
   가슴이 녹아내리고 피가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숨조차 쉴
수 없는 사람 모양을 한 껍데기에 불과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파란
하늘 끝으로 비행기가 날아갈 때까지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 채 엉엉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딸이 떠난 뒤 주사와 약물 부작용이 내 몸을
황폐하게 하였지만, 목숨 같은 아이들이 있어 눈물과 절망의 내 생에
가장 긴 가을을 대견스럽게도 잘 견디어냈다.
   아직은 세상의 모든 것들과 마주 보며 서 있고, 나를 깊이 사랑해 주는
남편의 미소를 볼 수 있으며, 좋은 사람 만나 따뜻한 이야기로 마음 한가
득 행복을 안고 돌아온다. 십 년만 더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잠이 들고, 어제의 모든 것이 그대로 있기를 기도하며 눈을 뜬다.
   요즘도 희미한 악보로 합창단에서 노래하고 있다. 몇 번의 수술로 눈
조차 뜰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도 더듬거리며 연습에 임했다. 실망
과 서글픔에 펑펑 울어댈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 주며 나만큼 눈물을 흘
리던 친정 언니는 연주회에 꼭 오겠다며 위로하곤 했다.
   그러나 언니는 무대에 선 나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객석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을 언니 때문에 내가 눈물을 흘리면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
가 될 거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꼭 보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연주회가 끝날 때까지 기도하고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무대에 서 있던 내내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언니의 가슴 저린 사랑을
알기에…….
   올해로 세 번째 연주회에 선 나는 힘들었지만 잘 견뎌냈다. 나만큼
아파해 주고 곁에서 지켜봐 주는 단원들이 있어 넘치도록 행복한 날들
의 연속이었다. 사람의 일생이 낮은음의 알토처럼 힘들고 어렵고 고달
플 때도 있겠지만, 안정되고 행복한 중간 음의 메조일 때도 있고, 모든
사람의 부러움과 희망이 되는 소프라노일 때도 있을 것이다.
   아프기 전 나는 눈으로밖에 세상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는 게 어찌 두 눈밖에 없겠는가. 조금은 귀로 듣고 조금은 마음
으로 들어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처럼 내 앞에 서 있는 것을……. 날마
다 주위에서 믿을 수 없고 말로 설명되지 않는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만큼 볼 수 있게 사랑과 돈과 시간을 한없이 쏟아부어 준 남편이 나에
게는 기적이다. 무너지는 자존심을 끝까지 세울 수 있게 해 준 남편과
아이들.
   제일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물었을 때, 1년 전에도 오늘이라고 답했
던 것처럼, 10년 후에도 빛나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과 사랑하는 딸의
얼굴을 볼 수 있어 오늘이 가장 행복하다고 답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오늘만큼만의 세상이 나에게 허락되기를…….
   춥고 길었던 겨울이 막 돌아선 봄날, 꽃구경 가자는 남편의 말에 창밖
을 내다보았다. “날씨가 흐린 걸 보니 비가 오려나.”라는 중얼거림 뒤에
남편의 말이 들린다. “여보, 날씨가 정말 좋아, 햇볕이 따갑겠는 걸.”

 

 

박미옥  ----------------------------------------------------------------------
조선대학교 졸업. 현) 한국걸스카우트 경북연맹 이사, 예노을 여성합창단원.
솔빛수필문학회 회원.

 

 

 

수상소감
   가진 자의 교만에서 벗어날 수 있게 온몸으로 받아내야 할 바람이었
습니다. 가족들의 가슴을 찢어지게 하고서야 무지했던 나 자신을 돌아
보았습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잃고 나서 한없이 아
름다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겨울처럼 얼어 있던 생각들을 따뜻한 글이 되게 해 주신 지도교수님
과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아픔과 고통을 함께해 준 내 남편 조중형 씨.
분에 넘치는 사랑만 받았습니다. 내가 보았던 세상만큼의 사랑을 저를
아는 모든 분에게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