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명 선생님의 대표작 3편을 수필과 비평에 실어봅니다.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수필을 쓰셨던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많은 분들의 작품에 하나의 씨앗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주인 없는 꽃수레 외 2편
일요일 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성당 입구에서 한 걸인과 만난다. 모자
를 깊이 눌러 쓰고, 얼굴을 가능한 한 보이지 않게 숙이고 쭈그리고 앉아
동냥 그릇을 들고 있는 걸인은 벌써 몇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그 걸인을 볼 때마다 Y가 떠오른다. 걸인의 동전 그릇에 동전을
넣으면서 Y처럼 따뜻한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데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
스치듯 지날 뿐이다.
미사가 끝나고 나오면 걸인이 있던 자리에는 꽃을 담은 수레가 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꽃을 판다. 장미, 국화 프리지어, 안개꽃
등 금방 화원에서 베어 싣고 온 듯한 싱싱하고 묶음이 좋은 꽃들이다.
<한 단에 1000원> 그런 종이쪽지가 꽃다발 위에 놓여 있고, 그저 가져가
고 싶은 대로 가져가라는 것처럼 경계가 없는 꽃장수 수레다.
꽃장수 아저씨는 한 40은 되어 보이는 분인데, 그는 꽃을 파는 데는
정신이 없고 미사시간에 미사 참례할 것만 챙기는 사람같이 언제나 꽃
수레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이다. 돈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꽃을 싸주
면서도 생각은 다른 데 있다. 어떤 날은 숫제 수레 앞에 꽃장수가 없다.
수레는 놔두고 미사를 보러 간 것이다. 그런 꽃수레를 보는 날이면 그가
미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내가 대신 팔아주고 싶은 생각에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주인 없는 꽃수레를 보고 있으면, 주인이 없다고 그냥 집어
가면 어쩌나 하고 생각하는 내 염려가 믿고 놔둔 아저씨 마음 앞에 도리
어 무색하고 부끄러워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나도 미사를 봐야지요.” 하며 어린이같이 환하게 웃으며 다음 미사시
간을 기다리는 꽃장수를 보면 또 Y를 보는 것 같다.
고등학교 학생들보다 더 순진하고 투명한 마음으로 그들 앞에 서 있
던 Y, 학생들이 일을 저질러 속을 썩이거나 교사들 간의 갈등이 생길
때면 술을 한 잔 걸치고 나를 찾아와 변형, 변형! 하며 하소연하고 괴로
워하던 Y. 학생들을 학생이 아닌 친동생처럼 사랑하고 돌보면서도 결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원 강사로 자리를 바꾸면서 자신으로 해서
가족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고민하던 착하기만 한 사람.
그에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 일요일 Y의 친구인 K가 명동성당 언덕길을 오르다 걸인을 만났
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일요일이면 자리를 지키는 걸인을 기
억한다. 같은 장소에 같은 걸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걸인의
모습이 조금 달라 보였다. 눌러 쓴 모자와 웃옷은 걸인 같은데 앉아 있는
모습이 어딘가 어색했다. 석연치 않게 느껴진 그는 걸인 앞에 쭈그리고
앉으면서 동전을 바구니에 넣었다. 그러면서 얼굴을 감싸듯 어깨 사이
로 깊이 숙인 걸인의 옆얼굴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그
걸인은 자신보다 앞서 성당에 간다던 친구 Y가 아닌가. 친구는 너무 놀
라 웬일이냐고 물었다. 그제야 고개를 든 걸인 Y가 웃으면서 누가 들을
까 소곤거리는 거였다.
“미사시간이 한 30분 남아 있어서…, 아침을 먹지 않았다고 하기에 아
침을 먹고 오라고 보냈어. 올 동안 대신 자리를 지켜줘야지….”
걸인에게 아침을 먹이려고 대신 걸인 행세를 하고 있었던 사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능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생각했었
다. 처음 사 입은 외투도 추워 떠는 사람을 보고 미련 없이 벗어주고
들어오는 사람이었으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
을 하고 있는지 오늘따라 생각이 난다.
그는 어느 날 친구와 술자리에서, 두 사람 모두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고 했었다. Y는 사립학교라 재단의 간섭이 싫다는 이유 때문이고, 친구
는 미래의 설계를 앞당기고 싶어서라고 했다. 교사를 그만두고 여관 주
인이 되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고, 밤이면 관능과 환락의
세계를 엿볼 수도 있고, 낮이면 쓰고 싶은 소설을 쓸 수 있어서라고 했
다. 그런 친구의 농담에 Y는 천박하다며 욕을 했었다. 현실적이고 계획
적이고, 돈을 알고 세속적인 삶에 충실하고 싶어 하는 친구라고 못마땅
하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지니지 못한 부분을 그가 지녔기에 그 친구
를 좋아했던 걸 나는 안다. 우리가 30대의 이야기이니 30여 년 전 기억들
이다. 지금 그의 친구는 현실적인 삶에 성공했을 것이고, 마음 착한 Y는
여전히 어린이 같은 순진함으로 가난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의
삶을 주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오늘따라 주인 없는 꽃수레를 보며 Y를 생각한다.
다가오는 목소리
새벽 1시. 빗소리가 머리맡으로 자꾸 다가선다. 잠을 청하려고 몇 번
이고 몸을 뒤채다 달아난 잠을 잡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모차르트
의 음악을 틀었다. 빗소리와 어우러져 누군가 내 집 문을 흔드는 것 같은
느낌으로 텅 빈 공간을 채워간다. 주전자에 찻물을 끓이며 이명으로 남
아 있는 그의 목소리를 되새김질한다.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의 목소리. 생소하기만 한 목소리가 빗소리처럼
반복되며 다가선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사람인데, 우연히 그곳에서 우리 잡지
를 보다가 내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전화를 걸어봤다는 것이다. 이제는
서툴어진 우리말, 20여 년이 지나 낯선 노년의 음성으로 다가오는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실수를 거듭한 끝에 겨우 기억해낸 내게, 나
도 기억 못하는, 내가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라며 내 기억에도 없는 글귀
를 외우면서 나를 잊지 않고 있노라고 했다. 한번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그 말을 자동응답기의 테이프처럼 돌리다 전화를 끊었다.
나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말을 잃고 있다가 전화가 끊기고서야 새삼
부끄럽고 당혹스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나를 아는 사람들을 그토록
빨리 잊어온 내 생활이 얼마나 매정하고 메말라 있었나 하는 생각에서
였다.
“고향은 다시 돌아가기 위하여 떠나는 곳이요, 타향은 떠남을 전제로
하여 머무는 곳이다.”
이 말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새삼스레
그 말을 되씹어 보았다.
그는 대학교 때 어느 모임에서 만난 종씨 후배였다. 나를 몹시 좋아하
여 졸졸 따라다니던 활달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사회인이 된 뒤에는 한
두 번 편지가 오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가 한국을 떠날 때 내게 보낸 편지는 전보 같은 문구의 짧은 글이었
다. 내일 몇 시 비행기로 이민 길에 오름, 그뿐이었다. 나는 서둘러 공항
에 나가 그의 부인과 아이들을 처음 상면했었다. 병아리 같은 남매를
앞세우고, “누님, 성공하고 돌아올게요.” 하는 인사를 남기며 떠나던 모
습이 떠오른다. 일본에서 태어나 원폭피해자로 귀국했지만 한국에서조
차 발을 붙이지 못했던 그는 결국 제3국인 미국으로 떠난 사람인데, 이
십여 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으니…….
나는 차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혹시 책상 밑에 깊숙이 들어있는 편지
상자에 그의 편지가 들어있지 않을까 싶어 그 상자를 끌어내어 편지들
을 쏟아 놓고 30여 년 전부터 받은 빛바랜 편지들을 뒤적거렸다. 이 상자
속의 편지들은 몇 번인가 정리하여 태워버리고 남겨진 것들로, 그리운
사람들의 소중한 글들만 남겨 둔 것들이다.
편지의 주인공들은 가족을 제외하고 나와 오래 사귄 사이로 이성으로
우정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같은 분야에서 함께 일하며 만나고 헤어
지는 과정에서 인정을 나누기도 했던, 또는 내 삶의 한 여정에 각인된
사람들이다.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 또는 알려고 노력한 사람
들, 좋아한다고 좋아하자고 다가서던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가 차곡차
곡 담겨 있는 편지들이다. 그 빛바랜 편지들이 일제히 오케스트라의 주
자들처럼 각기 다른 음색으로 그 시간으로 소급하여 환상 교향곡을 연
주하기 시작했다. 그 음악소리들은 모두 젊고 사랑과 고뇌와 열정을 담
고 있었고 이별과 그리움의 아픔도 함께 담고 있었다.
이십대의 편지글 속에는 무엇이 그리 절실하고 간절했는지, 무엇이
그리 고통스럽고 고뇌하게 했는지 세상의 모든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염려하고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비관하고 세상은 모두 자신들의 것인 양
했던 마음들이 담겨 있었다. 삼십대의 글에는 만나고 헤어짐을 분명히
행동으로 드러내려는 분별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삶의 자세들이 보였다.
가까워지면 안 되겠지? 사랑하면 안 되겠지? 두려워하면서 주저하면서
자신을 달래면서 초연한 척 겉 다르고 속 다른 사십대의 모습들로 바뀌
기까지 한 사람의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쓸 수 있는 글이란, 만남은 이웃사람처럼 반기고, 헤어짐
은 악수만큼의 인사로, 그래서 만남에도 헤어짐에도 마음의 흔들림을
드러내지 않는 그저 평범한 편지글을 쓸 뿐인데 그날의 젊음들은 보석
처럼 빛나 보이기도 했다.
그때는 그토록 가슴 절절한 편지를 받고도 그 사람의 마음을 몰랐었
을까? 내가 얼마나 둔하고 어리석었으면, 그때의 마음들을 이제야 가슴
설레며 헤아려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먼 어제들의 이야기들이다.
내가 그들에게 보냈던 편지들도 또한 그러했으리라. 그러나 지금 우리
는 서로가 글 속의 마음을 모두 잊고 살고 있다. 무슨 글들을 썼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안다고 해도 그때의 사람들이 아니니.
생을 달리한 사람들의 글도 있다. 수필가 H씨, 그의 부인, 그의 제자,
그리고 두 분의 은사님, 그 분들의 목소리도 생시처럼 글 속에서 살아
나온다. 다시 만날 수 없음이 안타깝다.
편지들을 뒤적이며 젊은 날의 나를 본다. 글 속에 되비치는 내 모습이
파도 위의 모습처럼 흔들리며 낯설게 일렁거린다.
아무리 뒤져도 그의 편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이 편지들도 모두 태울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나도 모두
의 기억 밖으로 밀려난다는 생각과 함께.
누군가 이 비오는 깊은 밤에 문을 흔드는 것 같은 모차르트의 음악
속에서, 편지조차 남겨지지 않은 사람의 이명 속에서 해묵은 편지들을
뒤적인다.
빨래를 하며
세상 바람에 시달리다 풀이 죽어 늘어진 옷을 벗어 빨래를 한다.
살아가기 힘겨워 땀에 배인 옷, 시끄러운 소리에 때 묻고 눌린 옷, 최
루탄 연기에 그을고 시름에 얼룩진 옷을 빤다.
장맛비 걷히고 펼쳐지는 푸른 하늘처럼 밤마다 베개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는 악몽에 시달리는 나의 잠을 깨운다. 그 물소리처럼 지심에서
솟구치는 물꼬를 찾아 콸콸콸 넘쳐흐르는 물에 빨래를 담가 절레절레
흔들며 빨래를 하고 싶다.
여름의 한 줄기 소나기는 도심을 태우던 열기를 식혀주고 악취와 쓰
레기를 쓸어가며, 시원하고 깨끗한 거리를 열어준다. 그처럼 소나기를
맞으면 머리카락 올올이 빗물로 감기고, 주머니에 담긴 먼지처럼 답답
한 가슴도 후련해지리라. 씹지 않고 삼킨 말의 응어리도 풀 수 있는 소나
기― 빗질하는 가로수처럼 빨고 싶은 나날들.
옛날 어느 날 신부님은 내 이마에 물을 부으시며 마음을 빨아주셨다.
다시는 너의 삶에서 후회로움이나 욕됨이 없을지니라.
그러나, 어인 일인가. 내 마음은 갈수록 번뇌와 욕심으로 더럽게 얼룩
져 샘터로 달려가 무릎을 꿇지만 마음의 주름살은 펴지지 않고 빛바랜
기도엔 바람만 오간다.
가난한 날들의 어두움, 기다리는 세월의 덩이진 아픔, 쫓기는 두려움,
누더기처럼 짜깁는 인정들―. 나는 언제나 외롭고 허기져 눈물을 흘려
도 지워지지 않는다.
빨래를 한다. 흐르는 물에 담가 빨래를 한다.
깨끗한 빨래. 활활 털어 햇볕에 널면 빨래는 바람에 물기를 날리고
거듭나는 몸짓으로 활개를 편다.
햇볕 아래 눕는 눈부신 정결. 비로소 자유롭다.
어머니는 날이면 날마다 빨래를 했다. 손톱이 다 닳도록 비비고 두드
렸다. 마디 굵은 손가락에 끼운 가락지도 손톱처럼 닳아 끈으로 두 쪽을
묶어 끼웠다.
흐르는 물소리에 실려 가던 빨래 방망이질 소리. 가슴에 서린 한을
자근자근 빨아내던 소리― 지금은 지워져 들리지 않는다.
나도 어머니처럼 빨래를 한다.
빨래를 비비면 열 손가락 사이로 옛날이 흐르고 아리고 쓰린 삶의 가
락이 굽이굽이 흐른다.
콩깍지 태워 잿물 내리고 광목을 필로 삶아 자갈밭에 널면 한 줄기
고달픈 흰 강이 출렁거렸다. 시집가는 딸이 한 끝을 잡고 지팡이에 의지
한 노할머니 한 끝을 잡고 눈으로 마름질하는 어머니 강줄기.
꽃가마 꽃상여를 앞뒤로 묶고 햇볕 아래 박꽃처럼 속살 보이던 광목
마전에 어머니 근심도 하얗게 바랬다.
물은 언제나 고향.
오늘의 빈 잔을 채우고 마른 혼을 적셔준다.
물을 보면, 물보라 위에 살아나는 추억의 송사리떼―. 기억의 징검다
리 사이로 빠져나가며 생활의 뱃전에서 찰랑거린다.
나는 깨끗한 빨래이고 싶어 강물에 눕는다.
심신이 투명해지면 학처럼 날개를 달고 구만리장천으로 비상하리라.
한 벌뿐인 옷을 들고 물가로 간다.
북한산 계곡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수유리 샘터에 앉아 언제나 진솔
이고자 빨래를 한다.
바람은 옷자락에 풀을 죽이고 하루도 못 가 땀에 젖지만 진풀 먹여
밟고 두드려 옷깃을 살려야지, 삼베 모시처럼 상큼하게 고개를 들도록.
빨래를 한다.
새벽마다 남몰래 더러움을 쓸어가는 청소부 할아버지의 비질 소리처
럼, 새벽 미사 때 빈 성당을 채우는 신부님의 기도 소리처럼 외로운 샘터
의 빨래 소리.
물소리를 들으면 살아나는 청청한 영혼들.
머리를 감아 빗고 새 옷 입고 새벽길 떠나는 신부新婦처럼 물가로 간
다. 지친 삶을 헹구려고 샘터로 간다.
변해명 -------------------------------------------------------------
1975년 ≪한국문학≫ 등단. 1976년 ≪소년중앙≫에 동화 당선.
부평문학회 2대 회장과 대한교원총연합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한국 수필가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
≪한국수필≫ 고문, 도봉문화원 수필 강사 등으로 활약했다.
수필집 ≪외로운 영혼에 불을 밝히고≫, ≪그리운 곳의 빈자리≫, ≪정바리기≫,
≪숨겨진 시간의 지도≫, 기행수필집 ≪길 없는 길을 따라≫, ≪옛 그림 풍속에세이≫,
≪잊혀져가는 우리 풍습≫, 수필선집 ≪그림자 춤≫ 등 다수.
현대수필문학상, 한국수필문학상, 신곡문학대상, 한국문학상, 월산 수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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