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침박달꽃을 아시나요? 꽃에 취해보세요.
가침박달꽃 그늘 아래서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이런저런 상상을 했다. K교수님 수필 속의 그
녀는 ‘여승의 미소’라고 표현되었지만 과연 어떤 모습인지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었다. 미소의 주인공은 나를 사로잡았고 난 그 이름만으로 그녀
를 사모하게 되었다.
봄은 몇 번을 왔다 가도 우리의 해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가슴속에 꿈을 꾸게 하는 것. 보고플 때 달려갈 수
있는 곳에 그녀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몇 해가 지났다.
선녀처럼 오월의 푸른 숲을 이고 그녀가 다시 찾아온다고 한다. 그녀를
위해 문학의 밤이 그곳에서 열린다 하여 잠시 하던 일 접고 달려온 화장
사. 경내에 들어서니 찬불가가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그녀가 있다는 뒷
동산으로 발길을 돌리며 바라본 산자락에 배꽃 같은 모습으로 무심히 나
를 맞이하고 있었다. 푸른 오월의 숲 속에 오색의 꽃보다도 더 찬란한
흰 나비 떼의 군무, 그 아름다움 속에 서서 진한 슬픔 같은 것을 느꼈다.
바람에 흔들리는 몸짓으로 미소 지을 듯 말 듯한 그 모습이 고독한 여인
네 같다고나 할까! 어쩜 모든 것을 초월한 스님의 미소인지도 모른다.
한줄기 안에 꽃과 열매가 공존하는 특이한 변화와 바람인 듯 스쳐오
는 은은한 향기. 가지마다 송이송이 눈물처럼 피어난 꽃송이들. 병석에
누워 계신 어머님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푸른 잎 하얀 미소로 하늘거
리는 모습 속에 봄날 꽃길 따라 먼 길 떠나시던 할머니의 꽃상여 같은
흔들림. 봄은 슬픔의 계절로 늘 다가왔다. 찬란한 봄날 가침박달꽃 그늘
아래 앉아 잠시 생각의 여행을 떠나본다.
산모롱이 돌아가던 상여 끝에 가물가물 흔들리던 만장의 깃발들이 어
느새 흰나비가 되어 하늘거리며 날아든다.
흰나비는 슬픔의 상징이라고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젓던 계집아이는 어
느새 훌쩍 늙어 버려 황혼을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그 봄날의 서러움은
오늘 또다시 아련함으로 떠오른다. 지금도 흰나비 중후군이 있나 보다.
애써 외면하려는 마음이니.
난 꽃그늘 아래 앉아 무수한 흰나비 떼를 연상하고 있다. 이승과 저승
을 오가는 또 다른 생의 고리 같은 나비. 그 나비의 화신인 양 하늘거리
는 가침박달.
세상의 현란한 색상 모두 버리고 하얗게 피어난 꽃.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인 양 봄날 아침 안개처럼 소리 없이 왔다가 영원한 시간 속으로 떠나
가려는가! 이렇듯 하얗게 피어나려면 가슴속 회한을 떨쳐 버릴 수 있는
몇 겁의 생을 거쳐야만 되는 것일까? 절 마당에 가득 피어있는 유혹의 꽃들
이 마냥 손짓하는데 환한 눈물을 이고 이 봄 가침박달 꽃봉오리 벙근다.
눈물 속에 번져오는 그리움. 바람이 분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어
어~.” 바람결에 실려 오는 요령 소리. 멀어져가는 할머니의 상여 끝에
꽃이런가 나비런가! 가슴속엔 가득한 눈물주머니 간직한 채, 어느새 나
도 한 마리 나비되어 춤을 추며 그 뒤를 따른다.
“뭐하세요. 어서 오셔서 차 한잔 하세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놀라
눈을 뜨니 꽃잎이 날리고 있었다. 나른한 봄날 영겁을 향해 날고 싶은
나의 몸짓이었나 보다. 가침박달꽃잎 날리는 봄날 나의 깨침은 무엇이
던가!
* 가침박달꽃: 청주의 보호수, 일명 깨침꽃이라고 한다.*
김영심 -----------------------------------------------------------------------
2003년 ≪수필과비평≫ 등단.
'월간 수필과 비평 > 수필과비평 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변해명 선생을 추모하며...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수필을 쓰셨던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0) | 2012.06.20 |
|---|---|
| [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인연] 대청호에 잠긴 꽃 이야기 - 신규 (0) | 2012.06.20 |
| [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촌감단상] 그녀의 기도 - 김연분 (0) | 2012.06.19 |
| [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나의 대표작] 에세이 모노드라마 - 조재은 (0) | 2012.06.18 |
| [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권두수필] 어떤 실패한 수필가의 몽상夢想 - 전병훈 (0) | 2012.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