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한 수필을 소개합니다. "진정 저를 버려야 합니까?"
그녀의 기도
“저를 버려야 합니까?”
“얼마를 더 버려야 제가 당신의 부음 앞에 깃털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다가설 수 있을까요?”
암 투병중인 그녀. 마흔에 찾아온 유방암. 수술과 항암치료, 그리고
재발. 두건을 두른 머리에 헐렁한 환자복, 여전히 눈빛만은 살아 있다.
그녀는 담담하게 나를 맞는데, 내 눈은 그녀에게 고정시키지 못한 채
자꾸만 아래로 내려간다.
짧은 만남과 긴 여운. 병실을 나서며 병원 복도는 참 길다는 생각을
했다. 환자들은 이 긴 복도를 오가며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들며 병원생활을 견뎌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언가 해 줄 말을 찾는데 변변한 인사도 못한 나의 어눌함에 고개 숙여
진다. 위로의 말, 격려의 말, 희망의 메시지 하나 남기지 못한 말주변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이토록 건강한 모습의 내가. 가지런하게 빗겨
진 머리카락, 단정한 옷차림. 서투른 위로의 말이 하루하루 죽음과 직면
하며 사투 끝에 허락받은 그녀의 시간들 앞에서. 말은 힘을 잃었으며
함의하지 못하고 의미 없는 말의 섞임은 공허할 뿐이다.
지금도 그녀의 낮은 기도 소리가 주기도문처럼 삶의 곳곳에서 들려온
다. 발길이 머문 곳마다, 손길이 닿는 곳마다, 눈길이 마주하는 곳마다
간절함이 신앙이 되어 천지간에 메아리 되어 들려온다.
그녀가 놓아버리려는 것들, 날려버린 것들이 벗어놓은 옷가지마냥 주
섬주섬 시야에 들어온다. 알곡을 얻기 위해 버려진 쭉정이가 허물어져
가는 육신 앞에 말없이 마주하고 있다. 가볍게 말라버린 것이 마치 자신
의 모습인 양 애달파 말이 없다.
쭉정이라 여겨 자신의 삶에 쓸모없고 거추장스럽게만 생각했던 것들
도 때로는 알곡을 만들기 위한 헌신이란 이름의 겉싸개였다. 그러니 삶
에는 곡정도 쭉정이도 없는 셈이다.
버리고 버려서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은 단지 버렸다는 생각과 가벼워
졌다는 무형의 잠재의식일 뿐, 아무것도 버릴 수 없고 버려지지 않는다
는 것이다. 죽음 앞에 겸손할 자 누가 있으며, 죽음 앞에 여유로운 자
또한 누구인가.
한낱 미풍에 흩어질 쭉정이를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유추해 보려 애
쓰는데, 그녀가 버려야 할 것들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 아닐까. 버리고
싶지 않은, 차마 버릴 수 없는 간절한 것들을 버려야 하고 몰아내야 한다
는 절박함이 피돌기의 흐름을 마비시킨다.
“진정 저를 버려야 합니까?”
김연분 -----------------------------------------------------------------------
2010년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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