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은님의 <오래된 약속>을 통해 장미영님이 더불어 잘사는 행복한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고민하고자 합니다.
같이 울어 주는 마음
- 윤정은 <오래된 약속>
그 보고서는 중국에 있는 내 친구들이 작성한 거야. 그들 중 한 명이 중국에 출장을
갔다가 조선족을 통해 우연히 북한의 식량난을 알게 됐어.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아서
조선족을 따라가서 직접 눈으로 봤다는 거야. 그러면서 탈북자를 몇 명 만났는데, 더
알아보니까 몇 명 정도가 아니고 국경 근처에 시체가 즐비할 정도니까 이 친구가 너무
충격을 받은 거야.
… (중략) …
김이영이 전해준 보고서의 내용은 처참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들이 직접 목격한
것부터 식량을 구하러 나온 북한 사람들의 증언까지, 가히 충격적이었다. 먹을 게 없어
서 손자를 가마솥에 넣고 삶아 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전부 믿기는 힘들었지만, 그 정도로
식량난이 심각하고 굶주린 사람들이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얘기였다.
- 윤정은 저, ≪오래된 약속≫, 양철북, 2012, 211쪽.
1. 불씨가 불꽃 된 관심의 언어
2012년 4월 19일, 배우 겸 탤런트인 차인표 씨가 SBS의 ‘힐링캠프-기
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했다. 그는 ‘탈북자 강제 송환 반대 집회’에 참여했
던 이야기를 꺼내며 ‘반대 집회에 나간 것이 아니라 그냥 두려움에 떨고
있는 탈북자들의 편에서 함께 울어준 것뿐이다.’며 ‘중국에 탈북자가 수
만 명인데 그 사람들이 한 사람씩 강제 송환되고 나면 나머지 북한 사람
들에게는 희망마저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어 차인표 씨는 자신의 어렸을 때 일화를 덧붙였다. ‘집에 지하실이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 장난으로 지하실의 쪽 창문에 머리를 집어넣었
다. 그런데 들어갈 때와 달리 머리가 빠지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지하실
의 어둠뿐이었고 도와달라고 외쳐도 그 소리는 지하실 안의 텅 빈 공간
에서만 맴돌아 그 막막함에 심한 공포를 느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마찬
가지로 나이 어린 형이 함께 소리 높여 울어주는 그 목소리를 듣고 어딘
가에서 달려온 어머니가 자신을 구해주었다.’는 사연이었다. 따뜻한 마
음으로 함께 울어주었던 형이 있었기에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고
결국은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관심은 고통의 치유제다. 차인표 씨의 탈북자에 대한 관심은 곧장,
그들을 불쌍하고 가엽게 여기는 연민의 언어로 표현되었고, 그 연민의
언어는 널리 공감의 언어로 커가면서 탈북자들은 물론 시청자들에게까
지 위안과 희망이 되었다. 수없이 달린 댓글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차인표 씨 같은 사람과 한 시대에 가까운 공간에서 살고 있다는 것 자체
만으로도 위안과 희망이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간 중국은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들을 체포
하여 다시 북한으로 강제 송환 조치해왔다.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에 대
한 북한 당국의 보복이 우려되는 상황에, 2012년 2월 13일 국회의원 박
선영 씨가 탈북자 24명의 강제 북송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지
면서 첫 모임을 가졌다.
처음 북송 반대 집회는 이렇다 할 관심을 끌지 못했고 심지어 집회장
주변 주민들이 집회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면서 경찰과 구청 측도 공식
적으로 집회 중단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이에 2월 21일부터 박선영 의원
은 단식을 시작했고, 같은 날 배우 차인표 씨가 탈북 청소년 50여 명과
함께 집회 현장을 찾으면서부터 집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일기 시작
했다.
이어 탈북자 1호 박사인 북한전통음식 연구가 이애란 씨가 박선영
의원의 단식을 릴레이식으로 이어받고, 김길자 대한민국사랑 회장 등
각계인사가 그 뒤를 이었다. 한국기독교총연합,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
연합, 한국여성변호사회, 한국여성의사회 등도 집회에 동참했다. 2012
년 3월, 북한인권단체 협의회 등 500여 시민 단체들이 ‘탈북난민 구출
네트워크’를 구성해 매일 오후 2시와 7시에 집회를 가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큰, 미국 하원 외교위
인권소위가 2012년 3월 5일 청문회를 연 뒤, 미 하원은 3월 20일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결의안을 발의했다. 4월 10일에는 전 세계 53개 도시에서
동시에 탈북자 북송 반대 집회가 열렸다. 4월 18일에는 독일의 인기 보
컬 그룹 보니 엠(Boney M)도 서울 시위에 참여했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3월 26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탈북자 문제에
대해 ‘한국 측의 입장을 존중해 원만히 처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
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중국은 2009년부터 베이징 한국 총영사관에
발이 묶여 있던 국군포로 가족 3명을 포함한 4명의 탈북자를 한국으로
보냈다.1)
탈북자 북송 문제에 대해 그동안 여러 한국인들이 가급적 드러나지
않게 탈북자를 지원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박선영 의원을 비롯한
인권단체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자 여러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
리를 냈다. 오히려 중국과 북한이 단속을 강화해서 아예 탈북 통로 자체
가 막힐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이에 그간 탈북자를 돕던 사람들도 남한
에서 떠들어 봐야 중국은 여전히 북한 편을 들 것이라 지레짐작하여 체
념의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2월 13일에 시작되어 4월 30일에 막을 내린 지난 77일 동안의
집회는 한국 사회에 인권 문제를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서울
에서 시작된 탈북자에 대한 연민의 불씨는 어느덧 국민의 관심을 받게
되고 이어 미국을 움직여 결과적으로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큰 불
길이 되었다.
2. 동행하는 사람들
윤정은 장편소설 ≪오래된 약속≫은 탈북자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탈
북을 돕는 평범한 한국인 이야기다.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지는데, 1부는 탈북 여성 강만금의 시점으로,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숨
어들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고, 2부는 NGO 활동을 하는 남한 여성 김
아영의 관점에서, 동료들과 함께 탈북자들을 제3국으로 밀입국시키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일을 그리고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1997년 북한에서 대량 기아 사태가 벌
어지던 때를 배경으로, 굶주림을 면하고자 북한을 탈출했던 13명의 탈북
자들이 ○○주재 한국대사관에 망명 신청을 하기 위해 7천 킬로미터 대
장정 길에 올랐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물론 ‘등장인물들의 캐릭
터를 비롯해 많은 부분’이 소설화하기 위해 꾸며진 허구이지만 작품의
내용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무척 시의성 높은 사건이 중심이 되다 보니
각자의 이념적 지향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
를 의식했는지 작가 또한 독자에 대한 우려의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만금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그러니까 탈북 식량난민의 이야기를 남한
사람의 관점으로 써서 세상에 내놓으니 많은 고려를 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각자가 서 있는 이념적 지향과 위치에 따라 달리
해석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게는 이 이야기가 북한 체제를 비난하고 공격하기 위한 빌
미로 쓰일지도 모르겠고, 어떤 이는 작가가 한국 정부와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게다가 친북적인 태도까지 보인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당사자인 북한 식량난민들은, 중국과 제3국을 떠돌고 있건 한국
사회에 정착한 새터민이건, 그들은 또 이 글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중략)…
남북한 사정을 고려해서 이야기의 의도를 밝히고자 한다. 이 이야기
는 남과 북의 체제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쓴 게 아니다. 두 체제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민, 개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분단 구조에
서 살아가는 한반도 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개인들이 분단
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또, 전쟁의 상흔이 지금
도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우리에게 국경의 의미가 무엇
인지 함께 얘기해보기를 기대한다.(318~319쪽)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탈북자 이야기지만 그 내면에는 서로 다른
정반대의 두 체제 안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분단 민족의 서글픈 실체가
담겨있는 작품이다. 남한 사람인 김아영이 탈북자를 언급할 때 “‘만나서
는 안 될’ 북한 사람을 만났다.”라거나 남한 사람을 처음 본 탈북자 강만
금이 대뜸 “왜 당신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겁네까?”라고 몇 번이나 묻는
장면은 분단의 후유증이 무엇인지를 예리하게 짚어낸 대목이다. ‘같은
민족이니까’, ‘같은 동포니까’라는 궁색한 답변은 남북한이 서로 자유로
울 수 없는 관계임을 방증한다.
처음에 만났을 때 만금은 “왜 당신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겁네까?” 하
고 몇 번이나 물었다.
우리는 똑같은 인간이고, 동포잖아요.
남조선 사람들의 대답이었다. 만금의 입장에서는 속 시원한 답은 아
니었다. 그 후 만금은 연변의 동포들이 모여 사는 농촌에 가서 살면서
남조선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러다 다시 만났을 때는 “왜 우
리를 도와주느냐?”라는 질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마냥 반갑고, 고마웠
다.(129쪽)
일영, 이영, 삼영이, 가영, 나영, 다영이. 우리는 본명을 다 밝히는데
남조선 사람들은 왜 그러는 거야?
만금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잖아요. 한국은 국가보안법이 있
어서 북한 사람들을 정부 허락 없이 접촉하면 처벌받도록 되어 있어요.
또 우리는 한국에 가서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신분이 최대한 노출되지
않아야 해요. 이해하시겠어요?(153쪽)
체제가 다르다는 것은 같은 인간으로서 베푸는 호의마저 의심하고 경
계하게 만든다. 굶주리는 동포에게 먹을 것을 나눠 줄 때도 우리는 체제
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같은 민족끼리 망명을 신청해
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도 직접 신청하지 못하고 제3제국을 통해
서 말이다.
정부의 처벌을 각오하면서까지, 아니,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인신매매 당한 북한 여성을 구해주는가 하면 대신 망명을 주선해주고
심지어 악어가 떼 지어 몰려있는 밀림의 큰 강을 같이 건너 주는 탈북자
도우미들의 동행 심리는 무엇일까. 이 작품에서 우리는 있는 것과 있어
야 할 것이 상반되는 가운데, 있는 현실을 부정하고 있어야 할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의 거룩한 미의식, 즉 숭고미를 발견하게 된다.
3. 남은 문제
현재 남한 사회에 살고 있는 탈북자의 수는 2만 명이 넘는다. 북한에
서 출발하여 중국을 거쳐 다시 제3국을 경유한 끝에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들. 작품 속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남북한의 문화적 차이는 숨어
지내야 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갈등을 일으켰고 목숨이 위태로운 쫓기는
상황에서도 문제를 야기했다.
나는 북한 남자들이 웃통을 벗고 돌아다니는 점이 못마땅했다. 이 집
에 온 처음부터 그 모습이 보기 싫었다. 낮에 덥긴 더웠지만 김민규,
강호, 철이 세 명이 바지만 입고 거실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나는 피해
다녀야 했다. 좁은 부엌에서 마주치면 더욱 싫었다. 더워서 그런 건지,
창문 밖으로 중국 남자들이 그렇게 다니는 걸 봐서 그런 건지, 북한에서
는 다들 그런 건지, 강민이와 조학수는 그렇지 않았는데, 유독 세 사람이
웃통을 벗고 다녔다. 그래서 나는 가영에게 불편함을 호소했다.
…(중략)…
다음 날 그 일로 집 안이 소란스러웠다. 남조선 여자들이 별걸 다 참
견한다. 할 얘기가 있으면 북한 여자들한테 얘기할 것이지 어디 여자가
남자에게 바로 얘기하냐, 남조선 사람들이 북조선 사람들을 무시해서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줬다는 등.
말조심을 해야 해.
나는 속으로 그 말을 되뇌었다. 서로 문화가 다르다 보니 어디서 어떻
게 탈이 날지 몰랐다.(227~228쪽)
작중 망명과정에서 드러났던 남북한의 문화적 차이는 망명 이후의 삶
에 대한 우려를 예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들이 한국 사회에 무사히
정착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원만히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탈북자들은 전혀 다른 체제에서 편안감을 느낄 수 있을까. 험한 여정을
함께했던 것처럼,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도 함께 풀어갈 수 있겠지.
탈북자를 포함해서 우리는 그간 꿈꾸어 왔던 것처럼 더불어 잘 사는
행복한 미래를 제대로 설계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남은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준비를 위해 우리 사회가 꼭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이다.
1) 오피니언, chosun.com, 사설: 나라와 세계를 움직인 탈북자 북송 반대 77일, 2012. 4.
30. 참조.
장미영 --------------------------------------------------------------------------------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문학비교학회 학술이사, 한국여성문학학회 연구이사, 국문학회 총무이사,
전북여성연구회 회장을 역임했고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페미니즘학회 편집위원,
전북 다문화 포럼 교육·문화분과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21세기 대중 취향과 미디어≫,
≪한국의 노인 담론≫, ≪실버를 골드로≫, ≪한국의 다문화 코드≫, ≪스토리텔링의 이해≫, ≪새만금
스토리텔링≫, ≪스토리텔링과 문화산업≫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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