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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5월호, 월평] 감성의 논리 - 유한근

신아미디어 2012. 6. 12. 18:34

『수필과 비평』에는 수필과 함께 평론이 같이 있습니다. 평론이 있기에 수필이 더욱 빛이 나지 않나 생각합니다. 4월호에 수록된 글을 보시고 평을 같이 감상해보시면 어떠실지요.

 

 

 

 감성의 논리


   수필은 사상과 감정을 전폭적으로 은유 및 상징들의 표현구조에 의존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와 변별성을 갖는다, 그러나 수필의 경우에도
표현구조는 시와 다르다 하더라도 감성(Sensibility)을 밑바탕에 깔고 쓴
다는 점에서는 다름없다. 문학의 본령인 감동 전달을 위한 정서적 표현
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감성은 외계로부터 우리의 5관五官이 자극을 받
아 그것에 반응하는 정도나 강도 등을 의미한다. 감성은 외부로부터의
모든 감각적 자극을 받아들여, 시간적·공간적으로 정리하여 이성 혹은
‘오성悟性’에 촉발하는 소재로 제공한다. 우리는 그동안 감성은 인간의
욕구 혹은 본능을 대척적인 자리 매김하고 있는 이성에 의해 억제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문학에 있어서 이성과 감성은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야 인간 삶의 제 문제들을
감동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성의 논리는 여기서부터 문제에
대한 담론이 이루어진다.
   이런 점에서 이번 달에서 감성적인 수필을 예로 들어 살펴본다.


   모닥불에 푸짐한 먹거리까지 만들어준 베두인 안내자들은 자신들은
모래 위에서 담요 한 장 덮고 자면서 우리 일행에게는 텐트와 침낭을
제공해 주었다.
   구름 낀 사막의 밤은 이내 한겨울이 되었다. 술기운이 가시면서 잠이
깬 이른 새벽, 텐트 밖으로 나온 나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구름 걷힌 하늘에서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손에 잡힐 듯 일렁거렸다.
   유년의 기억 속에 생생한 북두칠성과 은하수가 거기 있었다. 2천여
년 전 아득히 마을 하늘이 저랬을까? 사람이 살지 못하는 모래 세상,
문명의 혜택이 빗겨간 곳에 문명세계에서 멀어져 간 맑고 청아한 태곳
적 하늘이 살아 있었다.
   베두인들에게서 때 묻지 않은 원초적 순수함이 느껴지는 것이 이처럼
과학문명에 찌들지 않은 ‘별천지’에서 살고 있음이 아닐까.
                                           - 박영수 <별밤을 그리며> 중에서


   박영수의 <별밤을 그리며>는 세 개의 에피소드를 묶어 놓은 수필이
다. 수몰예정지의 고인돌 무덤방 탐방과 어느 문학단체의 문학의 밤 참
관, 그리고 위에 인용한 이집트 여행의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어 ‘별밤’의
감회를 쓴 것이 그것이다.
   고인돌 무덤방에서의 청동기 시대의 별자리 돌판, 문학의 밤에서의
별을 노래한 시, 그리고 베두인들이 사는 사막의 밤에서 본 ‘별’의 원시
적, 원초적인 감성들을 그리면서 작가는 “별이 보이는 청정한 하늘 밑에
서 살고 싶”고 “뭇별이 쏟아지는 사막의 밤이 그립다”는 감성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딸아이와 지냈던 많은 날이 사진첩 속의 그림처럼 순서대로 펼쳐진
다. 엄마에게 떨어지지 않으려 내 옷가지를 움켜잡고 울어대던 아기는
이제 스스로 멀어져간다. 잠 한번 실컷 자보고 싶어 잠시만이라도 내게
서 좀 벗어나 주었으면 했던 그 시간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내게 왔던 모든 것은 또 그렇게 내게서 흘러갈 모양이다.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 어디 자식뿐이랴. 마음을 다독여도 요즘 들어
자꾸만 우울해진다.
   몇 개월 전부터 느껴지는 내 몸의 변화, 양도 점점 줄고 소식마저 뜸
해져 속상하고 불안하다. 다 비워지는 것 같은 공허함에 밥맛도 차 맛도
없다. 귀가 아프도록 들은 갱년기에 대한 언니들의 열변도 소용없다.
모든 것이 심드렁하고 재미없다.
   나의 또 다른 방이 식어가고 있다.
                                                            -김귀선 <방> 중에서


   김규선의 <방>은 취직해 자신의 곁을 떠난 딸아이가 쓰던 방을 들여
다보고 감회에 젖은 작가의 감성을 표현한 수필이다. 딸아이와의 인연
의 시작을 희열의 순간으로 인식하고, 지난날 딸아이와의 기억들을 아
련한 그리움으로 회상하는 수필이다. 점점 멀어져 가는 딸 자식, 자신의
몸에 대한 변화, 그리고 공허감을 잔잔하게 서정적으로 그려나간 수필
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게 되는 속상함과 불안 그리고 허무 의식
을 “나의 또 다른 방이 식어가고 있다.”라는 마지막 한 문장으로 표현하
고 있는 점에 감동적으로 전달되는 수필이다. 특히, “나의 또 다른 방”이
라 표현하고 있는 비유가 모녀로서의 혈연 의식과 사랑, 그리고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주목된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우면 옷이 어긋난다. 삶 또한 단추를 순서대로 채우
는 것과 같다. 하지만 단추를 끼울 때 단추보다 단춧구멍이 작아 끼우기
가 상그러운 것도 있고, 단춧구멍의 위치가 빗나가 헛끼울 때도 있다.
아무리 탐나는 단추도 내 옷의 단추 구멍에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좋은 직업이 내 것이 아닌 것과도 같다. 세상사 쉽지 않은 것도 제 밥그
릇을 챙겨야 할 일자리가 적은 탓이고, 또 이가 맞지 않은 지퍼처럼 삶도
서로 삐걱거려서이리라.
   나는 작은 일에도 나무 잔가지처럼 잘 흔들린다. 지금껏 내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 줄 실한 단추 하나 마련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
뜰에 선 태산목 가지 사이로 들어찬 둥근 달이 단추처럼 허공을 껴안고
있다.
                                                           - 안경덕 <단추> 중에서


   안경덕의 <단추>는 보잘 것 없는 ‘단추’라는 하나의 사물을 감성적으
로 혹은 오성적으로 사유한 주목되는 수필이다. ‘단추’라는 사물에 대한
인식을 어떤 때는 시적으로 인식하고 있고, 어떤 때는 생활에서 우러
나오는 작은 깨달음으로 전달하고 있어 사물 인식의 수필로 주목되어도
좋을 수필이다.
   이 수필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헌 옷을 버릴 때 단추를 떼어
놓는다. 아니 정을 떨쳐낸다”가 그것이다. ‘단추’라는 사물을 자기화 혹
은 식구로 인식함으로써 시적 발상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아버지의 단
추, 사위의 마고자 단추에 대한 회상으로 진행되기도, 단추의 역사에 대
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단추들이 양장의 조화미와 균형미를
강조한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사람의 선택에 의해 제자리를 잡는 것이
단추”라는 사유를 한다. 그리고 급기야는 위에 인용한 결말 부분에서
단춧구멍 채우기의 의미,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정서 혹은 감성을 비유
적으로 성찰한다.
   마지막 문장인 “뜰에 선 태산목 가지 사이로 들어찬 둥근 달이 단추처
럼 허공을 껴안고 있다.”가 그것이다.


   계절이 오고 가는 길목에서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오늘도 서성입니
다. 아니 나만 유독 그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변함없이
상큼하고 발랄한 모습으로 꿈과 희망을 잔뜩 싣고 찾아와 내 앞에 풀어
놓곤 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당신을 맞이할 생각으로 나의 가슴 뛰
고 설레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도 다가오는 당신이 나는 왠지 두렵습
니다.
   나의 인생에 당신이 머물고 간 시간이 너무 짧은 순간이기 때문일까
요? … 때때로 계절이 알려 주는 서릿발 같은 냉엄한 가르침은 우리네
인간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인간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
생의 바다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에 부대끼기도 했습니다.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면서 삶이라는 굴레에 굳은살이 생길 즈음, 속
절없는 날들 속에 나의 젊음은 조금씩 빛을 잃고 퇴색되어 갔습니다.
                                     - 이선화 <다시 또 봄의 노래를> 중에서


   이선화의 <다시 또 봄의 노래를>은 ‘봄’에게 보내는 서간처럼 작가의
느낌과 생각을 감성으로 표현한 수필이다. 위에 인용문에서 작가는 ‘봄’
에 대한 감성을 “언제나 변함없이 상큼하고 발랄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고, 설레기까지 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봄은 “때때로 계절이 알려
주는 서릿발 같은 냉엄한 가르침”을 주는 것인 인간사와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수필의 끝에서는 “이 봄에 다시 또 부를 나의
노래는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러 있을 생명력이 넘치는 당신의 노래”라
고 맺고 있다.
   이에 반해 차하린의 <꽃바람 부는 봄날에>는 화엄사에서의 300여 년
이 넘은 홍매화의 만남, 그 감회를 쓴 수필이다.


   창밖 소리가 수상쩍다. 창문을 여니 밤부터 비가 왔는지 땅이 제법
젖었다. 비를 보니 조바심이 났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얼른 카메라
를 챙겨들었다.
   안개구름이 산등성이에서 마을까지 내려앉아 사방이 뿌옇다. 비가
많이 쏟아질까봐 신경쓰였다. 가는 동안 자꾸 하늘을 보았다. 바람비를
뿌리는 하늘을 보니 마음까지 흐려진다. 딱히 약속 시간을 잡은 것도
아니고 누가 나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지만 오늘은 꼭 화엄사에 가야
한다.
   화엄사는 첫걸음이다.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
선 이유는 온전히 화엄사에 있는 그녀를 보기 위해서다. 봄 냄새가 한창
기지개를 켤 즈음 신문지상에서 그녀를 알게 되었다. 뭇사람이 극찬하
는 기품이 있는 그녀의 모습을 며칠 동안 상상만 하다가 올 봄이 가기
전에 꼭 만나야겠다고 작정했다. 아롱거리는 봄 햇살 아래서 첫 만남을
갖고 싶은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빗줄기가 분분하다
                                       - 차하린 <꽃바람 부는 봄날에> 중에서


   위의 인용문에서 그녀는 홍매화이다. 이 수필에서 작가가 홍매화에
대한 특별한 감회는 그 나무가 한량이셨던 외할아버지를 기다리는 허리
굽은 외할머니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할버지로 인한 한숨으로
평생을 사신 할머니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홍매화에 대한 작가
의 감성적 묘사가 이어진다. 새색시 한복에 놓인 수처럼 정갈한 홍매화
의 진홍빛 꽃봉오리, 첫 마음처럼 순수하고 꽃잠처럼 황홀한 꽃 향기
그리고 인고의 아픔과도 같은 외로움과 기다림을 할머니에 비유해서 쓴
감성 수필이다.


   기분이 가라앉은 어떤 날, 거기에 서 있으면 쓸쓸함이 아래로 더 내려
가 스스로 끝장을 내는 소리가 들린다. 거리의 소음과 살짝 구분되어
사라지는 외로운 울림을 들으며 그 길을 걷는다. 사람들의 흐름에 따라
밀리고 부딪히다 문득 먹고 자는 기본 욕구도 내팽개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한일극장 옆의 와플집 앞에 몰려있는 학생들 틈에 끼어들
어 한 조각을 사들고 몇 걸음 옮겨 커피 파는 곳에서도 또 멈춘다. 동성
로의 이런 집들 앞엔 긴 줄이 없다. 그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웅성거릴
뿐이다. 초조하게 입을 다물고 차례를 기다리지 않는다. 저 틈에서 어떻
게 해야 할까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슬그머니 그 속에 들어가 섞이다
보면 어느 결에 먹을 것을 받아들게 된다. 동성로에 나가면 행복해진다.
   그 길엔 아무런 정서가 없다. 어깨를 비끼며 오가는 젊은이들로 북적
대기만 한다. 거리가 사람을 품고 그들의 소리가 길 위로 떠돌면 도로가
받아 안을 뿐이다.
                            - 허서경자 <날것의 삶이 머물다> 서두부분에서


   허서경자의 <날것의 삶이 머물다>는 제목이 생경스럽다. 그런 만큼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특히 제목부터가 그 뜻을 알 수 없어 호기심이
생긴다. 이 수필은 번잡한 대구 동성로 거리에서 딸의 부재로 인한 먹먹
함, 현실 앞에 무력한 그리움, 인파의 열기 속에서 만나게 되는 기진맥진
한 삶을 짙은 감성으로 그린 수필이다.
   위의 인용문처럼 도시는 아무런 정서가 없다. 동성로 같은 도시의 길
은 “세상살이가 신난다. 동성로에선 나이를 잊게 된다.”로 시작한 이 수
필은 미국으로 딸이 간 뒤, 작가에게는 딸에 대한 그리움이 깔려 쓸쓸한
동성로 거리이지만, 소중한 추억이 있어 특별한 장소가 된다. 동성로에
선 추억이 “잘 피어나는 풀꽃이” 되고, “사는 일이 부실한 바람벽 같아서
발목이 시릴 때 거기에 가서 풍요를 느낀다.” “그 거리엔 빛이 가득하”고,
“하늘이 어두워도 사람들이 발산하는 빛으로 들끓는다” “늘 새롭고 달콤
하다. 그리고 작가는 동성로에 대한 마지막 인식을 “그곳이 구태여 어른
스러움을 고집하지 않은 속셈을 알 것 같다.”고 토로하다. “긴 삶을 바라
봐야 하는 체온이 높은 거리이기에 그렇다”고 인식한다. 감성적인 느낌
과 깊은 사유의 궤적을 읽게 되는 수필이다.


   거대한 진열장 속으로 권태가 걸어 들어간다. 인공 향과 여러 색조의
조명들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는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의 무기력한
기분을 일시에 누그러뜨려 준다. 젖과 꿀이 흐르는 현대인의 가나안이
라는 백화점, 상품들로 넘쳐나는 풍요로운 계곡에 체포되는 순간 두 눈
은 빛을 발하며 분주해진다. 그리고 북적대는 매대에 달려들어 사람들
과의 자리 전쟁에 정신이 팔려 나간다.
   젖은 장작 타는 듯한 한낮의 무료함에 쫓겨 어디로든 나서지 않을
수 없을 때 집 근처 백화점만 한 곳도 없다. 도시가 내게 준 선물 같은
장소다.
   옷 매장에서 눈을 사로잡는 것은 여기저기 진을 치고 있는 플라스틱
장승들이다. 지그시 내리깐 눈, 만사를 초월한듯한 눈빛, 몽롱하게 풀어
헤쳐지고 있는 우수, 그러면서도 누구와도 쉽게 상대하지 않을 것처럼
당당하고, 차갑고, 도도하다. 감각적인 유행과 품격을 뽐내고 있는 마네
킹들이 혀를 날름거리듯 브랜드 상표를 꼬리표로 달고 존재를 외쳐 대
고 있다.
                                                          - 전미란 <마네킹> 중에서


   전미란의 <마네킹>은 백화점 안 마네킹의 인격화를 통해 그것을 정서
및 분위기를 감성적으로 쓴 수필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이 수필
의 첫 문장을 “거대한 진열장 속으로 권태가 걸어 들어간다”로 감각적으
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첫 문장이 마네킹을 의인화했던 것처럼 이
수필의 결말 부분도 의인화 표현 구조로 쓰고 있다. “가슴 안쪽이 허해진
다. 등을 돌리려는데 도도하고 매력적이던 화신들이 쓰러진 채 특유의
고독한 화법으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가여워하지 마세요. 우리들은
사실 허깨비들이니까요. 당신은요? 당신은 허깨비가 아니신가요?”/
“……”/ “쉿!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이곳에 권태라는 생활쓰레기를 버리
러온 당신의 속내가 드러나면 쫓겨나고 말테니까요.”가 그것이다. 이 부
분에 작가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들어 있다. 마네킹과도 같은, 그보다
도 못한 허깨비 같은 사람에 대한 은근한 질책이 그것이다. 그리고 삶에
있어서 권태를 생활 쓰레기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마네킹의
의인화 과정이라는 감각적 표현으로 작가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를
전언하고 있는 것이다.


   눈이 하얗게 덮인 뜰에 아침 일찍 까치 한 마리가 내려와 앉는다. 두
발을 모으고 깡충깡충 뛰다가 눈 속에 주둥이를 박아 먹이를 찾는다.
추운 겨울날 방에서 내다보는 바깥풍경이다. 공작단풍 나뭇가지 사이를
옮겨 다니는 참새들이 짹짹거리며 단풍 씨를 쪼고 있는 양이 귀엽다.
농촌의 온 들판을 포근히 감싸 안은, 하얀 눈의 겨울풍경이 아름답고
평화롭다. 산새들이 한겨울을 곯지 않고 넘길 수 있도록 눈 위에다 잡곡
이라도 조금씩 뿌려 줘야겠다.
                                             -조한금 <나의 사계四季> 끝부분


   조한금의 <나의 사계>는 귀농생활에서의 풀잎사랑의 디테일한 삽화
들을 써내려간 수필이다. 이 수필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농촌 생활을 그린 수필이다. 농촌 혹은 전원생활을 배경으
로 쓴다고 해서 서정이 짙은 수필, 감성적인 수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 속에도 감성은 있고 생명력을 느낄 수 없는 사물에도 감성은 있다.
그 감성을 표출해 내는 과정과 표현구조에 따라 감성의 논리는 만들어
진다.
   감성은 경험에 대한 감각이나 사고나 감정에 있어서의 특징적 반응
방식을 말한다. 인간의 경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과 감성,
즉 타인의 고통이나 기쁨에 대한 민감한 반응성(responsiveness)이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연민이나 자조적인 감성은 더욱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감성은 또한 위에서 예를 든 수필들처럼 자연에 있어서나 예
술에 있어서나 우아함의 지표로 간주되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대한 강
렬한 정서적 반응을 의미하기도 한다.
   감성의 논리로부터 벗어난 관련된 개념은 감상주의 같은 것이다. 감
상주의는 어떤 상황에 대한 감정의 과잉이라고 생각되는 것, 즉 비애나
동정 등의 연약한 감정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절제라는
개념 혹은 절제라는 미학이 없는 감정 포화를 의미한다. 감상은 한 시대
의 독자에게는 정상적인 것이라 해도 시대에 따라서 혹은 공간적 장소
에 따라서 사회의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어떤 모티프
를 어떤 문장으로 쓰느냐에 따라 감상주의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물론
감성의 경우도 감상주의만큼은 그 변화의 진폭이 크지는 않지만 감상의
개념이나 효용성의 문제도 시․공간을 영향으로부터 예외는 아니다.
   서구에서는 워즈워드와 코올리지 사이의 반세기동안 ‘감성의 시대’가
있었고, 그때의 감성의 문학은 곧 시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리고 18세기
말에는 감성의 소설 혹은 감상의 소설이 풍미했다. 이 시기의 소설은
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슬픔이거나 친구들의 슬픔에 대해 나타내는 눈
물겨운 비탄을 중시했고, 때로는 그 자체 역시 눈물 속에 표현되는 아름
다움이나 숭고함에 강력한 반응을 강조했다.
   그러나 수필의 경우에는 감성적인 수필, 혹은 감상적인 수필의 역사
는 찾아볼 수 없다. 장르 발생이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일천해서 그러한
건만이 아니다. 이성적 절제 미학을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수필도 이제는 우리 시대만큼 다양성이 인정되는 시대에 와있음을
인정했으면 한다. 감성의 논리에 대한 하나의 이론이 성립될 수 있는
수필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유한근  ---------------------------------------------------------------------------
중앙일보 신춘 동시, 동아일보 신춘 평론으로 등단.
시집: ≪사랑은 흔들리는 행복입니다≫ 외. 평론집: ≪문학의 모방과 모반≫, ≪현대불교문
학의 이해≫, ≪한국수필비평≫ 등 다수. 명상언어집: ≪별과 사막≫. 동화집: ≪무지개는
내 친구≫ 등 저서 논문 다수.
만해불교문학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신곡문학상 등 수상. 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
교 교수. 동 교무처장, 학생처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