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주님의 "우리에겐 과장된 ‘친절’을 시혜하려는 포즈보다 눈을 맞추고 상대의 목소리를 들어주려는 준비가 더 필요하다. 결국 이런 시도들을 통해서 ‘통합’의 내러티브가 생성될 수 있을 것이다. 다문화 사회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가슴을 흔드네요.
‘친절’의 불편한 진실
- 영화 <파이란>
영화 <파이란>에서 병든 몸의 파이란은 직접 만난 적도 없는 서류상
의 남편 이강재에게 서툰 한국어로 편지를 쓴다.
“강재 씨. 저와 결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친절합
니다. 모두가 친절하지만 그래도 강재 씨가 가장 친절합니다. 저와 결혼
해주셨으니까요. 당신 덕분에 여기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줄 것이 없어서 미안합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보고 있는 사
이, 당신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당신을 만나면 꼭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
다. 당신을 사랑해도 되나요?”
나 이외의 존재는 모두 타자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내 안의 나조차
타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순간, 불현듯 내 안에 살고 있는 낯선
타자가 품은 욕망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타자와의 관계를 욕망한다. 또 이런 간극을 넘어서
타자의 실존과 만나고자 ‘사랑’에 ‘도전’한다. 헤겔에 따르면 사랑은 분리
된 두 남녀가 불완전한 인간임을 깨닫고 합일의 감정을 획득하는 과정
이다. 사랑은 불완전한 독립체로 자신을 인식하는 분리의 단계와 타인
과 합일의 감정을 이루는 통일의 단계를 연속적으로 경험하기에 모순인
동시에 모순의 해소이다. 때문에 사랑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스
스로를 규정하는 매개체이자 실존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일본작가 아사다 지로의 소설 <러브레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송해
성 감독의 영화 <파이란>(2001년, 최민식·장백지 주연)은 표면적으로는 아
름다운 중국인 처녀 파이란과 한국인 삼류건달 이강재의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 영화의 심층에는 한국사회의 주변부 계
층인 삼류건달 이강재의 재탄생 입문 편에 이니세이터이자 희생양이 되
는 중국인 이주노동자 파이란의 역경이 왜곡되어 있다. 말하자면 <파이
란>은 자본에 의해 철저히 타자화된 한 여성이 쇄락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영화인 것이다.
중국 국적을 가진 아름다운 처녀 파이란은 부모가 죽고 난 후 유일한
피붙이인 이모를 찾아 한국행을 감행한다. 그러나 이모는 이미 캐나다
로 종적을 감춰버렸고 파이란은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나머지 얼굴도
본 적이 없는 남자 이강재와 직업소개소를 통해서 위장결혼을 하고 위
장취업을 한다. 한국판 <파이란>은 일본 원작소설의 매춘여성 파이란을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하얗게 빨래를 하는 세탁소 잡역부로 변신시킨
다. 아름답고 순수한 파이란을 표상하는 하얀 빨래. 그 위에 토해낸 파이
란의 각혈은 그녀를 처연한 멜로드라마의 청순한 여주인공으로 채색하
기에 충분하다. 파이란은 자신의 몸값을 착취하고 있는 소개상에게 고
통을 호소하지만 이는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발에 무좀약을 바르며 상
냥한 목소리로 “니 돈을 못 받으면 내 발가락이 아퍼.”라고 읊조리는 소
개상에게 이주노동자 파이란은 저가로 환산되는 노동력일 뿐이다.
“6기통 디젤 배 한 척 딱 앞세우고”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희망사항을
십수 년째 되풀이하는 한물간 동네 깡패 강재는 잔푼을 벌려고 일면식
도 없는 파이란의 대리 남편이 되었다. 그런 그가 이미 고인이 된 파이란
의 편지를 통해 비로소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모질지 못한 성격
탓에 “동물 뱃속에서 나와 네 발로 기어다니는 것만도 못하다.”라는 취
급을 받는 삼류건달 이강재가 외로운 불법체류자 파이란에게는 ‘친절’한
은인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주변부 인생으로 애처롭게 살아
가는 두 사람. 생계를 위해 맺어진 이 아이러니한 만남의 마지막은 ‘파이
란 봄바다’라는 실재가 없는 남겨진 이미지, 비디오 속 파이란이 강재
앞에 현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로써 파이란은 강재에게 완벽한
판타지로 각인되는 것이다. 한 사내의 남루한 삶에 성찰의 계기를 만들
어 준 아름답고 순수하며 헌신적인 이주노동자 파이란이야말로 강재에
게 ‘친절’한 존재는 아닐까. 과연 이것을 사랑이야기라 할 수 있을까. 서
로의 실존을 만난 적이 없기에 현실의 고통이 배제된 채로 낭만적으로
왜곡된 주변부 인생들의 소외되고 쓸쓸한 삶. 이들의 이야기는 ‘친절’에
대한 씁쓸한 성찰을 남긴다.
우리의 새 이웃, 다문화가족은 불친절한 사회에서 ‘한국인’되기의 이
중고를 지고 있다. 대개 ‘다문화가족’과 관련된 문제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몰이해와 저변에 깔린 차별적 시선, 즉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에
서 왔으니까 그렇지라는 식의 ‘복제오리엔탈리즘’적인 인식 때문에 벌어
진다. 사이드의 말처럼 그동안 지배문화가 헤게모니를 쥘 수 있었던 데
는 ‘타자를 열등한 것으로 제외시키는 차별’이 있었다. 대개는 타문화를
비하시키면서 자신들 문화의 독창성을 숭상하고 찬양하는, ‘방어적이고
보수적이며 심지어는 편집증적인 국수주의적’ 태도가 있었던 것이다.
또 이런 다수자들의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폭언 못지않게 ‘그들’을 딱하
게 보려는 차별적 ‘친절’의 횡행도 문제적이다.
마음이, 영혼이 깃들지 않은 친절 역시도 타자와의 거리를 좁히지 않
으려는, 나를 위한 매너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장된 매너는 상처를
내기 쉽다. 우리에겐 과장된 ‘친절’을 시혜하려는 포즈보다 눈을 맞추고
상대의 목소리를 들어주려는 준비가 더 필요하다. 결국 이런 시도들을
통해서 ‘통합’의 내러티브가 생성될 수 있을 것이다. 다문화 사회의 초석
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연주 ----------------------------------------------------------------------
평택대학 국문과 겸임교수,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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