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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5월호, 사색의 창] 기도 - 최해숙

신아미디어 2012. 6. 9. 12:43

모든 분들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한가한 오후, 두어 줄 글을 읽고 있는 내 귓가에 다급한 파장음이 반복
해서 들려온다. 은근히 신경이 쓰여 주위를 둘러본다. 창문에 잠자리
한 마리가 붙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유리문에 갇혀 오르락내리락하더
니 창문 잠금쇠에 매달려 날개를 살짝 접는다. 제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어 누군가를 향해 기도라도 하는 모양새다. 사람이나 곤충이
나 절박한 상황에서의 몸짓은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절박함은 간절함으
로 이어지지 않는가. 이즈음 어머님의 모습이 그러하다.
   어느 휴일, 어머님을 뵈러 갔다. 같이 절에 가자는 명분이었지만, 속내
는 따로 있었다. 얕은 불심으로 법당에 엎디어 소망을 들어주십사 떼를
쓰는 것보다는, 어머님을 모시고 나가 눅눅한 마음에 볕살이라도 쬐게
하려는 심사였다. 자식들은 생업에 바쁘고, 어머님은 늘 방안에만 계시
니 바깥 공기가 그리울 것은 번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텅 빈 집은 고요하고 어머님 방문이 빠끔히 열려 있었다.
   “어무이, 저 왔습니다.”
   몇 번을 외쳐도 대답이 없었다. 방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말소리가 들
렸다. 손님이 온 건가. 걸음을 멈춘 채 목을 빼고 방안을 둘러봐도 어머
님 혼자뿐이었다. 순간 불길한 마음이 일었다. 아무도 없는데 누구랑
이야기를 한 걸까. 혹시 치매가 온 건가. 걱정스런 마음을 누르고 다시
방안을 자세히 살폈다.
   어머님은 바닥에 반듯이 누운 채 두 손을 모아 무언가 열심히 빌고
계셨다. 귀가 어두운 탓도 있겠지만, 자신의 기도에 몰입해 바깥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분위기가 자못 엄숙하기까지 해서 도로 문
을 닫을 수도, 안으로 들어설 수도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또 다시 기도가 이어졌다. 틀니를 빼놓은 채
말하는 때문인지 내용이 분명하게 들리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고 귀를
기울여 겨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님의 기도는 아주 짧았다. ‘우
짜든지 자는 잠에 가게 해 주이소!’
   반복되는 기도소리가 너무도 간절하게 들려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했다. 자는 잠에 가게 해달라는 건 나이 든 어른들의 당연한 바람일 수
있다. 또한 훗날 나의 바람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직은 그 문턱에
다다르고 싶지 않은 내게 어머님의 기도는 충격적인 일이라 다리가 후
들거렸다.
   한참 만에 다시 어머님을 부르니 그제야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
다. 당신 만수무강 빌러 절에 가자는 너스레에 손사래를 치셨다. 이 나
이에 무어 그리 삶에 애착이 있을 것이며, 절에 가서 무슨 복을 빌겠느
냐는 말씀이었다. 너나 가서 정성껏 기도를 하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덧없는 세월이 어머님의 유일한 낙을 뺏어갔나 싶어 돌아서는 발걸음
이 무거웠다.
   세상 어느 부모인들 다를까마는 평소 어머님의 삶 속에는 늘 자식들
을 위한 기도가 있었다. 장독대에서는 천지신명님께, 법당에서는 부처
님께, 산에서는 산신님께, 강에서는 용왕님께 머리를 조아리며 빌고 또
빌었다. 자식의 안위를 위한 간구의 세월은 때와 장소도, 경배의 대상도
가리지 않았다. 오직 자식이 잘 되기를, 무사하기를 아침저녁 온 마음으
로 빌 뿐이었다.
   그리 살아온 세월이건만 자식들은 제 앞의 삶을 꾸리느라 짙은 황혼
녘의 노모를 챙기는 일이 쉽지 않다. 때로 자식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할 텐데, 곱이곱이 긴 인생행로의 끝자락에서 올리는 기도마저
도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리에 오래 눕기라도 하면 사느라 바쁜
자식들에게 폐가 될 것 같으니, 자는 잠에 세상과 하직하게 해달라고
빌고 계셨다.
   지금 어머님은 병원에 계신다. 눈, 귀가 어두운 어머님에게 병원은
적막강산, 고립무원이다. 종일 혼자 지내기는 집이 더할 텐데도 언제
집에 갈 수 있느냐며 아이처럼 보채신다. 누구보다 강한 정신력으로 살
아오셨기에 아흔이 넘도록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던 어머님에게 그곳
은 감옥에 다름 아닌 모양이다.
   요즘 어머님의 가장 절실한 바람은 집에 가는 일이다. 간절한 바람을
담은 채 마주 포갠 어머님의 손등에 세월의 흔적이 마른 비탈밭고랑처
럼 켜켜이 내려앉아 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일이 인간의 전유물이기만 할까. 세상에 존
재하는 모든 것에게는 나름대로의 바람이 있을 것이다. 생명이 있는 것
에게는 그들 나름대로, 생명이 없는 것들 또한 그 나름의 바람이 있을
터, 바동거리다 지친 잠자리의 기도를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창문에
매달린 잠자리를 살며시 붙잡아 허공으로 날려주며 나도 두 손을 모은
다. 어머님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사고.

 

 

최해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