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을 넘나들며 서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행복한 세상을 꿈꾸어봅니다.
백마강 달밤에
- 시공 넘나들기와 치유의 ‘엑스타틱트랜스(ecstatictrance)’
Ⅰ. 시공 넘나들기
<백마강 달밤에>는 시공간 넘나들기의 명부여행이라는 환상적 연
극체험을 통하여, 우리나라 전통 굿과 한이라는 소재로 문학적 시공간
이 영혼과 육체의 순간이동 같은 철학적 의미의 시공간으로까지 확대되
며 제한된 인식지평의 경계선 너머 죽은 자와의 소통과 새로운 유토피
아를 지향한다. 마을 굿인 ‘은산 별신제’라는 틀을 차용한 <백마강 달밤
에>에는 전통적인 기본틀 위에서 오태석 고유의 무대적 상상력과 한국
인의 삶과 애환에 대한 작가적 통찰과 안목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나
타난다. 이승과 저승,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한 몽상의 시학을
더욱더 상징적으로 보여 주면서, 영매가 된 마을 처녀 순단이가 명부에
가서 죽은 조상신들과 만나 그들을 해원시키고 사화시켜 이승의 삶으로
끌어내는 저승여행 구조는 가히 영혼의 순례 여정에 대한 한 편의 대서
사시에 가깝다. 황산벌에서 죽은 백제의 오천 군사들로 추정되는 숱한
유골이 출토되자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한을 풀어주기 위해 유래한 마
을 단위의 굿 절차라는 메인 플롯을 중심으로,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몽환적 세계 속에서 지난날 과거와의 화해 과정인 이 <백마강 달밤에>,
역시 경계 해체적 상상력의 단면을 보여준다.
금화가 된 순단이와 의자왕이 만나 서로의 앙금을 털어내고 용서를
빌고 진정한 사화를 이루는 장면과 그 밖의 긴 연극놀이는 몰입과 거리
두기의 반복과 변주를 통한 유희공간으로 이루어지는, 이 리드미컬한
흐름 속에 몸을 담그면 시공간의 축약과 확장,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
넘기에 동참하여 현재에서 과거와 만나고 거기서 미래상을 찾아내는 시
간들 사이의 비약의 순간이 관객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내 “북망산이 멀다드니 저 앞산이 북망”이라는 상여소리 가사처럼 무
대의 공간도 디아스포라의 상상계를 유영한다. 꿈과 민족 공동체 문화
에 대한 한 편의 추억제追憶祭 같은 <백마강 달밤에>는 이 시대의 이분법
적 고정관념에서 기인된 모든 분파적 경계선 위에서 새로운 소통과 치
유를 모색한다고도 볼 수 있다. 소통 부재로 어지러운 현실 위에서 오태
석은 꿈의 한 판 씻김굿으로 관객을 초대하며, 연극적 구조와 리듬을
빌어 개인적 꿈을 집단 무의식적 공감대로 확산시켜 관객의 상상력을
가동시킨다.
등장인물은 극중 현실에 살아 있는 자들과 명부의 죽은 자들 그리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초월한 산신, 지신 등 신적인 존재들로 나뉘지만,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은 각자의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서
로 넘나들 수 있다. <백마강 달밤에>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오갈 수도
있고 재생할 수도 있으며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됨으로써 이
승과 저승은 상호침투적인 관계로 상정된다. 이를 테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산등성이를 넘어가자, “저 사람들 서천 꽃밭으로 가려는데 어디
로 가야 하는지요.”라는 천신에게, “육로로는 구만 사천 리고 수로로는
팔만 사천 리나 수로로는 갈 수 없으니 육로로 가거라. 가더라도 그냥
가지 말고 은가래에 은줄 매고 놋가래에 놋줄 매고 쇠가래에 쇠줄 매어
좁은 길은 넓게 닦고 굽은 길은 곧게 닦고 높은 길은 밀어 깎고 깊은
길은 메워 가렵니다. 소리 주어 가면 수이 가리라.”라고 산신이 대답한다.
<백마강 달밤에>의 주요 연극 무대인 선암리 무당 할멈의 당집 벽면
에 있는 산신과 지신은 그림이나 조각상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분장하여 살아 움직이면서, 할멈이 정성스레 바치는 제사상 위
의 도토리묵을 먹어치우는 존재로 언제든지 우리의 고정관념 속 시공간
을 박차고 나와 가로질러 유영하듯 움직이며 돌아다닌다. 이로써 무당
할멈의 당집은 현실과 초현실의 세계가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공간이 되
어, 초현실 시공간의 두 신과 저승사자는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선 위에
있는 무당 할멈과 박수 영덕을 영매로 이분법적 경계가 무너지며 소통
과 교감의 시공간으로 어우러지고 객석의 연극적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오태석의 이러한 연극적 기교는 무
당 할멈의 개인적 꿈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환상적인 연극 공간을 마련
해준다. “꿈은 무의식의 압축과 전위”라는 프로이트의 언급처럼, 할멈의
꿈은 일면, 우리 민족의 역사적 기억을 변형시킨 것이다. 백제 멸망의
역사적 기억으로부터 의자왕을 중심으로 성충과 계백이 나오고, 금화라
는 여성 캐릭터가 ‘낯설게 하기’로 등장함으로써 집단무의식의 문화적
기억은 시공간의 지평을 점차 확대하여 나아간다.
Ⅱ. 치유의 ‘엑스타틱트랜스’
선암리 마을 사람들이 신대 들고 당집에 찾아오는 장면을 오태석은
할멈의 꿈과 극중 현실의 연결고리로 만들면서 환상적 유희공간과 전통
굿의 비주얼과 사운드를 곁들여 극적 효과를 거둔다. 꿈에서 깨어난 할
멈이 순단을 보고 놀라고 순단의 반쪽이 금화라고 주장하자, 순단과는
달리 할멈의 꿈을 함께 공유한 관객이 웃음으로 응수하는 상황은 극적
아이러니를 주는 장면이다. 주재해야 할 마을 굿을 며칠 앞두고 무당
할멈이 노쇠하여 몸져눕게 되자, 마을 유지들은 할멈의 수양딸 순단이
가 웬만한 굿을 해본 경험도 있고 하니 우선 대신 맡아 해주기를 바라는
데 정작 할멈은 뜻밖에 순단이가 앞으로 이 마을 당집 제사는 지낼 수
없는 신분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마을에서 쫓아내라고 소리 지른다. 할
멈의 지난 밤 꿈에 순단의 전생이 나타났는데 그 전생의 꿈 장면에서
김유신이 보낸 첩자인 금화의 모습인 순단이가 사랑을 무기로 의자왕의
사리판단을 흐리게 하여 백제를 멸망시키는 데 일조하고 결국엔 의자왕
등에 칼을 꽂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순단이가 의자왕을 제사하였다가는
의자왕이 얼마나 노여워하실 것이며 그로 인해 마을에 끼칠 앙화가 얼
마나 무섭겠느냐는 것이다.
순단이는 자신이 무당의 대를 이을 생각은 않고 읍내 유치원에 보모
로 나다니는 것을 서운하게 여긴 할멈이 꾸민 말이려니 여기며 자신의
본 직분은 무당임을 공표하며 할멈 대신에 마을 굿을 주재하겠노라고
나서나 꿈의 효시를 굳게 믿는 할멈은 순단이를 멀리한다. 마을 유지들
은 하는 수 없이 강경에 있는 박수무당 영덕이를 데려다 마을 굿을 벌이
는데, 굿을 하던 영덕이한테 갑자기 백제 장군의 신이 내리는 일이 벌어
지고, 자신의 전생이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일 리 없다고 여긴
순단이는 당집 병풍에 그려진 삼신의 도움을 받아 명부의 의자왕을 찾
아 나서게 된다. 이에 백제장군의 신이 내린 박수무당 영덕이도 의자왕
을 만나러 순단이 가는 길에 동행한다. 두 사람은 명부에서 아직도 충의
를 버리지 않고 지내고 있는 백제 조신과 장군을 만나서 의자왕이 중국
명부에 있음을 전해 듣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당나라에 끌려가
거기서 죽었으나 아직도 백제의 사비성으로 돌아갈 꿈을 버리지 않고
병사를 모으고 있는 의자왕과 왕자 일행을 만난다.
의자왕을 만난 순단이는 자신의 전생이 의자왕을 죽인 장본인이 아니
라 도리어 의자왕의 총애를 받던 무희였음을 알게 된다. 순단이는 의자
왕 일행을 중국 명부로부터 구해내는 데 필요한 경비와 황해를 건너오
는데 필요한 선가船價를 벌어 다시 모시러 올 것을 기약하고 일단 이승의
현실로 돌아온다. 순단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명부에서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들려주면서 마침내 자신이 할 일이 읍내 유치원 보모가 아니라
중국 명부에서 고국을 그리며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의자왕 일행을 하루
빨리 모셔다가 마을 당집에 들이고서 두고두고 공경하며 제사지내어 전
생에 누린 총애를 은혜로서 되돌려 주는 일이라고 깨닫는다.
<백마강 달밤에>는 작가란 개인적인 몽상을 문화화함으로써 독자들
에게 미적 쾌락을 주는 존재라고 정의하면서, 인간은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긴장들이 이완되고 해소되어야 비로소 환상을 즐길 수 있게
된다고 말한 프로이트의 주장을 상기시켜준다. <백마강 달밤에>의 극
전반에 제시되는 할멈의 개인적 몽상은 관객들에게 미적 쾌락을 제공하
며 현실적 긴장을 해소하게 하고 환상을 즐길 시공간의 터로 안내한다.
명부여행이라는 극적체험은 한민족적 집단무의식의 한 부분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하여, 그 무의식의 세계에 도사리고 있는 집단무의식
의 트라우마를 일종의 엑스타틱트랜스의 유희마당으로 끌어낸다. 관객
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뚫고 순단과 함께 우리 민족의 무의식에 도
달하도록 공연을 쾌락적으로 유도하고, 영덕이 벌이는 굿에 다양한 전
통놀이가 포함되고 거기에 산신과 지신의 유희가 개입되고, 극적 긴장
과 완화가 상이한 리듬을 지니고 변주되어 관객이 그 놀이에 즐겁게 동
참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 경계를 넘나들기 위한 전복적 치유의 기회
이기도 하다.
금화에게 칼을 맞는 의자왕은 백제의 멸망과 분열의 집단적 상징이며,
그것이 깊숙이 은폐되어 있는 역사적 기억의 공간은 명부이다. 의자왕
을 몰락하게 한, 그리하여 할멈의 꿈속에서 의자왕의 등에 칼을 꽂았던
금화는 명부에 가서도 칼을 꽂아야만 한다. 이제는 의자왕의 고통이 자
신의 것임을 아는 순단-금화는 칼을 꽂으며 “이년은 애시당초 전하의
천적으로 태어났던가 보오.” 하며 괴로워한다. 이것은 공간적 전위이면
서 동시에 타자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공동체로 엮어져
있어 타자를 향한 칼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다는 실존철학적 사유이
기도 함을 보여준다.
‘은산 별신제’라는 제의의 엄숙함은 환유적 틀로만 작용하고 나머지
여백 공간은 재치과 유희로 가득찬 <백마강 달밤에>는 마을의 ‘백치’인
희순이와 기다리던 영덕의 등장과 함께 축제분위기로 전환된다. “어어
어어어어…… 여게 뉘집 요강 있으면 나 좀 가져다 줄라우. 아래가 막혔
는가 위가 막혔는가 통 소리가 나오들 안 해. 내가 오늘 그저 힘만 들지
어째 운신이 뻑뻑하고 찌푸둥하고 저리고 뻐근하고 양수 양족이 몽당
빗자루 달아매논 거 모양 건들거리기만 하지 당최 돌아가들 않네.”라는
대사와 함께 영덕이 들어서면서 갑자기 홍어가 칠레산이라고 소리 지르
며 남포댁과의 언어유희가 질펀하게 시작된다. “치마 달라는데 지체는
왜 따라 들어와. 벗어놓고 가소. 뭘 빤히 섰디야. 어여 가.”라고 말하는
영덕에게, 바가지 엎어놓은 배를 들이대며 남포댁이 응수하며 노래한
다. “그려, 임자고 넘자고 없는 처자다. 보거라. 자. 백마강에 고요한 달
밤아. 고란사에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꿈이 그
립구나. 아, 달빛 어린 낙화암에 그늘 아래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영덕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트랜스’ 상태가 되면 드디어 신들린 굿판
이 벌어지고 무희 둘이 합류하여 칼춤 판이 격정적으로 가세한다. 그러
다가 어느 순간 연극 공간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순단이 손을 베고
들고 있던 대야 물속에 피가 번지는 순간, 순단은 금화로 변형 생성된다.
이렇게 언어유희와 자유연상놀이에 몰입하며, 시공간의 비약적 놀이에
합류하는 동안, 혼종의 경계선 위에서 관객도 역시 유토피아적 사화私和
를 꿈꾼다. 환상의 극적 체험인 연극 속 명부여행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현실이 오버랩되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관객은 시간을 뛰어넘은 비약
적 인식에 이르게 된다.
마침내 <백마강 달밤에>는 허구의 세계에 머무는 꿈이 아니라, 무대
진과 관객의 공존 및 현존과, 사물들의 현현으로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넘는 한판의 씻김굿이며, 죽음의 실존적 현실을 뛰어넘으려는 생명의
퍼포먼스로 ‘몸의 한계’를 초극하려는 치유의 엑스타틱트랜스 차원의 공
간이 된다. “별신굿을 여게서 중도막낼 수 없는 일이네. 할멈이 그러기
바래겄는가. 어른들 모시는 일이 할멈 모시는 것이여. 할멈 조문 겸해서
절들 올리고 다음 절차 밟어 가더라고. 이 동네 농사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담 끼고 정답게 지내오니 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오 일 번개같이
지나가도 산으로 들로 강으로 두루 사방 다녀도 아픔 간 새 없게 하시고
어둔 데로 등 돌리고 밝은 데로 앞돌려 웃음 가운데 꽃이 피고 말 가운데
향내 나게 하시고 바람결 물결 거두어 화재, 관재, 구재, 삼재 파랑일랑
멀리 방송을 시켜 주시오.”
* <백마강 달밤에>는 연극무대 위에서 은산 별신굿의 원형을 재현하며
1993년 오태석에게 서울 연극제 예술상, 비평가 그룹상, 중앙문화대상,
백상예술대상(희곡상), 대상문학상(희곡상) 등을 안겨준다.
김성희 ---------------------------------------------------------------------
백제예술대학 방송시나리오 극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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