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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5월호, 모신신화] 최초의 신은 어머니였다 - 이동민

신아미디어 2012. 6. 11. 18:17

어머니, 당신은 근원적 하나이고, 만물의 어머니, 신들의 모태입니다. 

 

 

 

최초의 신은 어머니였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 근교인 뷜렌도르프에서 도로 공사를 하다
가 겨우 10cm 크기의 자갈돌을 다듬은 여인상을 발굴하였다. 임신을 하
여 배가 유난히 부른 것이 특징이었다. 머리 부분의 형체는 있으나 눈,
코, 귀, 입 따위는 아예 조각하지 않아서 얼굴은 밋밋하였다. 요즘의 아
이들이 달걀귀신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하는 얼굴이었다. 대신에 유방과
여성의 성기는 과장하여 표현함으로 기괴하게 보이는 인체상이었다. 그
뿐 아니고 임신한 배를 안고 있는 팔은 겨우 형체만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흔적으로만 표현하였다. 다리도 극도로 단순화하였다.
   또 하나의 여인 조각상은 프랑스의 보르도뉴 주의 로셀 지방에 있는
석회암 동굴의 입구에 부조로 새겨져 있는 여인상이다. 젖가슴과 임신
한 아랫배, 그리고 엉덩이를 과장하여 표현하고, 인체의 다른 부분은 생
략하거나 간소화함으로써 뷜렌도르프 인체상과 아주 유사하였다. 다만
40cm 길이로 더 크고, 바위에 부착되어 있어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차
이였다. 팔은 좀 더 분명하게 나타냈다. 손에는 소의 뿔 모양을 한 물체를

쥐고 있는 것이 달랐다. 어쨌거나 두 조각상은 여인이 임신한 모습을

표현한 것은 분명하다.

 

▲ 상아 여인상. 시베리아 지역에서 발굴한 구석기시대의
여신상, 임신상이다. 맘모스 상아.


   이 시대의 임신한 여인상은 프랑스 지방에 한정하여 발굴되는 것이

아니다. 유럽에서 시베리아 지방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에서 발굴된다.

맘모스의 상아로 만든 여인상의 모습도 로셀의 비너스 상처럼 임신상
이다.
   지금까지 출토된 부조, 조각상, 판화에 이르기까지 구석기시대의

여인 조각상은 완전한 것에서 망가져 있는 것까지 망라하면 거의 1000여

점에 이른다. 유럽 지역에서 발견된 조각상에서 오래된 것은 약 27000~

26000년 전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여인상은 신석기에 이르도록 꾸준히

만들어졌다. 많은 수량들이 구석기인들의 거주 지역인 쉼터나 마을

공동체의 제단이 있는 작은 사당에서 발견하였다. 그렇다면 여인상은

신상이 틀림없다.
   앞서 말한 두 조각상은 언제, 왜 만들었을까? 우선 방사선 동위원소
측정법으로 약 2만 3천~2만 5천 년 전에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때라면
우리의 선조들이 동굴의 깊숙한 곳에 사냥하는 벽화를 그렸던 구석기
시대이다. 떠돌아다니면서 동물을 사냥하였고, 식물의 열매를 채취하여
배를 채웠던 수렵채취 생활을 하였다. 아직까지는 정착하여 농경을 하
지 않았던 시대이다.
   인류의 역사는 약 5백만 년쯤으로 본다. 우리가 인류의 생활을 어느
만큼이라도 엿볼 수 있는 시기는 동굴 벽화를 남긴 약 3만 년 전부터이
다. 이때는 돌이나 상아로 만든 조각품을 만들었고, 흙으로도 조상한
것이 남아 있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미술품(?)을 통하여 그들의 생활을
엿보고 추정한다. 인체상은 남성상보다 여성상이 절대적으로 많다. 여
성상은 대부분이 임신을 표현한 조각품이다.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
고, 양육하는 여인의 신비성을 표현한 것이 틀림없다. 신석기 시대에는
모신상을 신앙하였다. 뿌리가 바로 구석기 시대의 임신한 여신상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임신한 여인상은 구석기인들에게 생명을 주는 우주의
어머니인 모신이다. 그래서 우리는 임신한 여신상을 신격화하여 비너스
라고 부른다.
   뷜렌도르프 여인상처럼 몸에 지닐 수 있을 만큼 작은 것은 수렵민들
이 부적처럼 들고 다녔으리라 한다. 그러나 로셀의 비너스는 동굴 입구
의 벽에 부착되어 있으므로 옮길 수 없다. 구석기인들이 이곳으로 와서
경배를 올리거나, 어떤 의례를 치루었으리라. 그렇다면 이곳은 구석기
인들의 신성한 의례를 치르는 성소가 아니었을까?
   어떤 방식으로 의례를 치렀을까? 추측만 할 뿐이다. 3만 년 전의 동굴
벽화가 그려져 있는 쇼베 동굴의 진흙 바닥에는 사람의 발자국이 어지
럽게 찍혀 있다. 춤을 추었으리라 한다. 그들은 의례에서 춤을 추었으리
라. 로셀의 비너스가 있는 이곳에도 사람들이 모여서 집단으로 춤을 추
면서 종족 의례를 올렸으리라 추정한다.
   로셀의 비너스는 특이하게도 손에 쥔 뿔의 형상에 13개의 줄이 그어
져 있다. 초승달이 만월이 될 때까지 13일이 걸린다. 뿔의 형태는 초생달
의 상징으로 달의 신과 관계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집트의 하토르
신은 황소의 뿔을 강조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황소 뿔이 달린 관을 쓴
인간상은 신의 표현이다. 뿔은 신의 표식이기 때문이다. 13의 정확한
 

▲ 로셀의 비너스. 프랑스의 동굴 입구에 부조로 새겨진 구석기 시대의 여신상, 임신상이다.


숫자적 의미는 알 수 없다. 학자들은 여인들의 월경주기와 달의 주기는
서로 공통성을 지녔으므로 그 관계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라고 하였다.
뿔 위에 그어져 있는 13개의 선을 시간의 개념으로 표현하였으리라고
하였다. 만약에 숫자가 맞다면 자연의 관찰을 통하여 숫자를 신성한 세
계로 편입시키는 것을(聖化)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상 세계의 생
명주기와 이 세상의 인간이 갖고 있는 생명주기는 서로 대응관계를 지
녔다는 것을 믿은 구석기인의 사유세계를 보여준다. 역사 시대에 접어
들어서도 대우주와 소우주는 서로 조응한다는 사상이 확고하였다. 그렇
다면 그 뿌리가 구석기 시대에 있음이 틀림없다.
   구석기 시대의 조각상에는 남성상을 거의 만날 수 없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신들의 세계에서 남신이 나타나기 이전에는 여신의 세계였
다. 태초의 신은 생명을 잉태하는 여신이었다. 그리스 신화에도 최초의
신은 대지의 모신인 가이아이다. 배우자 없이 스스로 생명을 잉태하는
태모신이다. 후대의 기독교식으로 설명하면 성처녀이다. 반대로 생각하
면 성모 마리아의 성처녀 의식은 이미 구석기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처녀 생식 또는 단성 생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종교적 의미가 담긴 신성
한 출산을 의미한다.
   생명의 창조를 고대인들은 왜 여신의 역할로 생각하였을까?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체의 움직임이나 조그만 미물이거나 모두 같은 법칙에
의하여 움직인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대우주와 소우주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서 움직인다고 믿었다. 땅에서 식물이 돋아나는 원리
와 어머니의 몸에서 생명이 태어나는 것도 같은 원리에 의한다고 믿었
다. 땅은 곧 우주의 생명이 태어나는 우주의 어머니라고 생각하였다.
땅을 지배하는 신은 당연히 여신일 수밖에 없다. 땅을 갈아서 농사를
짓는 사람은 땅의 신으로 여신을 모셨다. 지모신이라고 하였다. 대지는
어머니와 다름 아니었다.
   농경을 하면서 정착 생활을 최초로 한 지역은 오늘의 중동 지역이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에서 가장 일찍 발생한 곳으로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6~7천 년 전의 신전을 발굴하였다. 닌 후
르사고라는 여신을 모신 신전이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많은 도시
국가가 나타나서 문명을 꽃피웠다. 수멜 문명이라고 한다. 많은 여신
조각상을 발굴하였다. 뼈, 돌, 진흙, 상아로 만들었고, 대부분이 벌거벗
은 모습이었다. 임신을 한 모습도 있었고, 어린이를 데리고 있는 모습도
있었다. 어린이를 가슴에 안고 있기도 하였다. 이들은 단순히 여인 조각
상이라기보다는 출산을 의미하는 여러 형태의 인체상이다. 천신을 모신
신전은 하늘로 높이 솟게 하지만(지구라트) 여신을 모신 신전은 단층
건축물이고, 형상도 계란 모양이다. 학자들은 여성의 성기를 나타낸 것
이라고 하였다.
   지모신을 모시는 인도의 사원 내부에 있는 사당은 굴-여성의 자궁을
상징한다. 출산은 곧 풍요이다. 풍요를 바라는 소망이 여성 성기형 사원
을 축조하게 하였다. 출산하고, 양육하는 여성의 힘을 비유적으로 나타
낸 것이다. 자연의 위대한 출산력을 상징하고, 염원하는 것이다.
   닌 후르사그 여신을 모신 우베이드의 사원 안에도 여러 구조물이 있
다. 신전의 여사제들이 기거하는 방이 있다. 특이한 것은 외양간도 사원
안에 있는 것이다. 사원에서 발견한 모자이크 그림에는 사제들이 소를
사육하여 성스러운 소의 젖을 짜고, 보관하는 것을 보여준다. 후대에
기록한 문헌에 의하면 이 사원은 닌 후르사그를 모시는 신전이라고 하
였다. 닌 후르사그 여신은 우주와 인류, 나아가서는 신과 동물의 어머니
였다. 사제들도 여사제였다. 사제들은 자신들의 축복을 받고 흘러내리
는 암소의 젖을 받아서 왕을 양육하였다. 뿐만 아니고 백성들에게도 젖
과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
   오늘의 인도에서도 여신을 모시는 신전을 방문하면 우유로 쑨 죽을
나누어 주는 유습이 있다. 예전의 풍습이 오늘까지 전해 온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화에서는 신전은 도시의 중심에 세운다. 도
시는 신전의 주변에 형성된다. 신전은 도시의 모든 재산을 소유하고, 관
리하였다. 사제가 도시의 지도자였다. 신권 사회주의 사회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여신은 남신보다 훨씬 더 고대 신이고, 원시신이고,
원초의 신이다. 후대에 이르러서 영국의 신사처럼 세련되고 잘 다듬어
진 남신보다 무자비한 일면도 가지고 있다. 거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
서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는 경우도 많다. 아득한 옛날에는 사람에게 일
어나는 모든 일을 신의 탓으로 돌렸다. 병이 들어도, 재산을 잃는 불운을
당해도 신의 탓으로 돌렸다. 신은 인간에게 자비도 베풀지만 해코지도
한다는 것이 고대인의 신관이었다. 고대신은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모두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이아 신만 하여도 자식을 시켜서 남편을 살
해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어머니를 무조건 사랑만 베푸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어머니가 자식에 사랑을 베푸는 것은 맞다. 그러나 자식에 숱한 금지를
내리는 무서운 일면도 있다. 어머니, 즉 여신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양면
성을 가진 존재이다.
   인도의 우파니사드에서는 어머니를 이렇게 노래하였다.
   오 어머니! 세계의 원인이 되시는 어머니.
   당신은 근원적 하나이고
   만물의 어머니
   신들의 모태입니다.
   심지어 창조주 브라만, 보존자 비쉬뉴, 그리고 파괴자 시바의 어머니
시여
   오 어머니! 당신을 찬양하면서 나의 언어를 정화시킵니다.


   달이 홀로 백야의 연꽃을 기쁘게 하듯이
   태양이 홀로 대낮의 연꽃을 기쁘게 하듯이
   하나의 사물이 홀로 다른 사물을 기쁘게 하듯이
   어머니 당신만이 당신의 눈짓으로 우주를 기쁘게 합니다.

 

 

이동민  -----------------------------------------------------------------------------
1992년 ≪수필문학≫에서 천료.
1998년 ≪수필과비평≫ 수필평론 공모 당선.
저서: 수필집 ≪떠내려간 고향≫,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
≪감각의 제국, 그 벽속에서≫, ≪뭐하는 짓이고?≫, 수필평론집 ≪수필, 누구를 쓸
것인가≫, ≪수필쓰기 방법론, 넷≫, 수필교재: ≪수필, 어떻게 쓸까≫, 미술사 ≪한
국 근·현대 서예사≫, ≪조선 후기 회화사(19세기)≫, 기타 ≪우리 아이는 잘 자라
고 있는가(육아서)≫, ≪우리 고을 지킴이, 팔공산(토속신앙)≫, ≪문학치료와 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