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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5월호, 스페인기행] 해를 안고 날다 - 한계주

신아미디어 2012. 6. 11. 18:40

스페인에 가보고 싶네요. 한계주님과 함께 같이 떠나보세요.

 

 

 

 해를 안고 날다


3부. 이슬람과 가톨릭이 공존하는 메스키타와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


메스키타 대사원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뒤로 하고 천년 전 유럽에서 가장 큰 도
시의 하나였다는 코르도바로 갔다. 당시 파리 인구가 2만 명 정도인데
코르도바 인구가 60만이었다고 하니 그 번성함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코르도바를 상징하는 회교사원 메스키타(코르도바 대성당)는 이슬람
의 메카로, 아름답고 화려한 스페인 성당과는 달리 돌로 쌓은 육중하고
웅대한 외관이 성 같기도 하고 요새 같기도 하다.
   8세기 중엽에 건립해서 13세기까지 증축과 개축을 거듭하여 면적 2만
5천 평방미터에 이르는 대사원 메스키타는 세계 10대 건축물의 하나로
꼽힌다. 1200년을 대지진에 흔들림 없이 버틴 견고함은 이슬람 과학기
술의 뛰어남을 과시한다.

 


▲ 유일하게 이슬람과 가

톨릭이 공존하는 메스키타 대사원

 

▲ 856개의 원주기둥이 말 발굽 모양으로 천장을 받치고 있는 장엄한 메스키타사원 내부


 


 

 

 

 

 

 

 

 

 

 

   사원에 발을 들여놓으니 어둡고 컴컴하다. 회교사원은 개방형이라 빛
이 들어오게 설계하는데, 가톨릭이 들어오면서 다섯 개의 문을 제외하
고는 빛이 들어오는 곳을 차단해서 내부를 어둡게 했다. 사원 내부는
화강암, 벽옥, 대리석으로 된 856개의 이슬람양식의 원주기둥이 말발굽
모양의 아치로 천장을 받치고 있는 것이 스페인 성당과는 또다른 아름
답고 장엄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천장은 진주 조개껍질 모양으로 둥
군데 여성을 의미하며 생산과 생명의 모태를 상징한다고 한다.
   ‘장식물을 건축하지 말고 건축물을 장식하라.’는 무아인들의 건축원칙
에 따라 필요 이상의 장식물이 없는 메스키타는 보다 엄숙하고 위풍당
당하다. 종교 지도자의 자리가 따로 없고, 마호메트와 신도들 사이에
계급이 없고 거리가 없었다 하는데, 이러한 이슬람의 인본주의와 평등
개념이 노예와 여자들에게 먼저 먹혀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2만 5천
명을 수용했다는 위세 당당했던 회교사원의 정중앙에는 금빛 나는 가톨
릭 성당이 턱하니 자리잡고 있다.
  1234년 스페인의 기독교도들이 코르도바를 탈환했다. 그러나 이슬람
의 선진문화를 모두 없앨 수는 없었다. 메스키타는 삼백 년을 왕의 보호
로 그리스도 교도들의 파괴를 면했다고 하는데, 1523년 가톨릭의 사제들
이 들고일어나 중앙의 63개의 기둥을 뽑아내고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했
다. 한 사원 안에 이슬람과 가톨릭이 공존하는 유일한 사원이 된 것이다.
당시의 왕 카를로스 5세는 성직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원의 일부
를 헐고 성당을 세우는 것을 묵인했으나 완공된 것을 보고는 “여기에만
있는 이슬람 고유의 건물을 부수고 말았구나.” 하고 못내 아쉬워했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도 사원의 일부를 성당으로 개조하는 작업은 진행 중
이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메스키타를 찾는 것은 장중하고 위풍당당
한 메스키타 사원이지 스페인 성당으로 탈바꿈한 메스키타는 아닐 것
이다. 그 역사성을 존중하고 이슬람문화를 보존하는 것이 스페인 정부
를 위해서도 인류문화를 위해서도 보다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 들었다.
   1500년 전만 해도 유태인들이 제일 많이 살았던 곳이 코르도바와 세비
야였다고 한다. 이슬람과 가톨릭, 유태인들이 공존했던 곳으로, 유태인
동네의 ‘꽃길’은 그 역사성까지 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가는 좁은 골목의 벽은 꽃과 액자와 그림접시로 아
름답게 꾸며져 있다.
   그 골목을 빠져나간 곳에 안마당 같은 광장이 있다. 줄지어 심어진
오렌지나무에는 잘 익은 오렌지가 탐스럽도록 반들반들하고, 광장에 놓
인 돌 벤치도 작은 타일로 모자이크해서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놓
았다. 이런 사소한 일들이 유태인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에서 나를 해방
시켜 준다. 광장에 면한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나는 유서 깊은 마을에
들른 기념으로 유태인이 수놓은 예쁜 손수건 몇 장을 선물로 챙겼다.

 

▼▶ 메스키타에 공존하는 이슬람사원과 가톨릭성당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는 지중해에 면한 항구도시다. 피카소의 <해변
을 달리는 여인들>의 무대도 말라가 해변일 것이다. 말라가로 가는 버스
는 누드해변을 지난다. 아직은 철이 아니니 벗은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
으나 자연주의자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고 한다. 거기서는 경찰도 우체
부도 모두 벗고 사는데 신분을 모자로 구별한다. 홀랑 벗은 사람이 머리
에 경찰모를 쓰거나 우체부 모자를 쓰고 왔다 갔다 하는 광경은 코미디
언들에게 좋은 소재거리가 될 것이다.
   한번은 그 마을에 부흥회가 있었다. 자연주의자들은 목사님을 대접해
서 옷을 걸치고 목사님은 신도들을 배려해서 옷을 벗고 왔더라는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다.
   인구 80만의 말라가는 3천년 전부터 고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피카소
거리를 지나다보니 로마인이 쌓은 성벽이 저만치 눈에 들어온다.
피카소의 생가는 흰 벽에 노란색 창틀을 단 아파트로 계단을 올라가
면 바로 2층에 있다. 아버지는 미술선생, 어머니는 음악선생으로 예술적
기질을 타고났다. 피카소가 태어난 방에는 치마를 입은 어린 시절의 사
진과 유아복이 전시되어 있고 책상 위에는 그가 사용했던 붓과 화구들
이 놓여 있다.
   그는 14세에 이미 라파엘의 그림을 능가했다고 한다. 입체적 그림을
그리기 전에 사실적 회화에 통달했던 것이다. 바르셀로나와 파리를 오
가며 꿈을 키우고 작품 활동을 했는데 평면적인 그림에 만족할 수가 없
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일면이 모두가 아니다. 앞모습을 보면서 뒷모습
도 보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욕구가 2차원 평면에 3차원을
담아내는 입체적 화면으로 재구성하게 했다. 1937년 파리 국제박람회의
스페인관 벽면에 그린 <게르니카>는 그 대표적 작품으로, 게르니카 마
을을 폭격한 독일공군의 비인도적 행위를 고발한 것이다.

 

 


▲ 게르니카 마을을 폭격한 독일 공군의 비인도적 만행을 고발한 피카소의 명작 <게르니카>

 


▲ 뒤 건물의 2층 왼쪽 코너가 피카소의 생가


 


 

 

 

 

 

 

 

 

 

 

 

 

   생가 앞 광장의 벽에는 대형 <게르니카>가 ‘여기가 피카소 마을’이라
고 나팔을 불고, 광장에는 벤치에 앉아 있는 피카소 동상이 있다. 그는
늘 여인들에 둘러 싸여 있었다 하는데, 그래서인지 그 동상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예술가라기보다 정력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것도 조금은 피곤
한 듯한. 그의 많은 여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나도 잠시 그 옆에 앉아
본다.


미하스와 론다
   안다루시아의 에센스라 불리는 미하스는 산 중턱에 위치한 하얀 마
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란 노래는 미하스를 두고 읊은 것이 아닐까
싶다. 인형으로 된 성모마리아상이 있는 동굴성당, 말이 끄는 작은 마차,
오밀조밀한 집들, 동화의 나라에 온 듯한 환상에 빠지게 하는 미하스.
   해발 천 미터의 산악도시 론다는 투우의 메카로 투우 축제 기간은 전
시민이 빨간 머플러를 두른다고 한다. 그러나 정열적인 스페인 기질의
상징이라 할 투우는 그 잔인성을 성토하는 여론에 밀려 론다의 투우장
은 목하 휴업중. 투우장 앞에 서 있는 소의 동상이 무료하기만 하다.
   스페인의 주 농산물은 올리브와 포도라고 한다. 론다에서 코르도바까
지 끝 없이 펼쳐진 올리브 숲은 3억3천 그루의 올리브나무가 심겨져 있
다 한다. 올리브는 나무 밑에 커다란 천을 깔고 털어서 수확을 하며 기름
을 세 번 짠다. 포도는 특산품으로 와인을 빚는다 하고, 중급은 과일로,
하급은 건포도를 만든다. 이번 여행에서 얻어들은 토막 상식.


관광입국 스페인
   스페인은 풍력발전과 태양광 등으로 세계 3대 자연 청정 에너지국에
든다. 우리가 수출입국을 지향할 때 그들은 관광을 지향해서 한 해에
40몇 조의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우선 자연조건이 좋다. 햇빛 찬란하고 공기 청정하고 파리 모기가 없
으니 고급 휴양지로, 피서지로, 돈 있는 사람들이 노후를 보내려고 몰려
든다.
   말라가에서 한참을 바다를 끼고 산을 끼고 달리는데 주위는 온통 골
프장과 별장들이다. 여기 별장은 싼 것이 우리 돈으로 80억이라 하며,
고급 양로원에 들어가기가 고급 유치장 입소하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겨울이면 구라파의 부유층들이 모여들어 한철을 보내는데, 온천이 유명
해서 포도주 섞은 목욕탕에 몸 담그는 데 150달러를 줘야하고, 미장원과
피부 관리소가 대성황으로 3박4일 코스가 6000만 원이라니, 내가 잘못
들었나? 입이 딱 벌어지는데도 돈 많은 여인들이 줄 서 있다고 한다.
한푼 두푼 버느라 땀 뻘뻘 흘리는 우리 관광사업과는 차원이 달라도 엄
청 다르다.

 

 

한계주  -------------------------------------------------------------------------
1992년 ≪수필공원≫ 등단.
수필집: ≪전화여행≫, ≪아들네 집에 자 주러 갔다가≫, ≪둘이 하나되어≫ 등.
수필선: ≪모천으로 돌아가다≫, 100인선 ≪사랑만 하다가 가기도 짧은 인생을≫.
현대수필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