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수필과 비평 2012년 5월호, 사색의 창] 꽃피던 날은 가고 - 이종숙

신아미디어 2012. 6. 8. 18:11

항상 활짝 핀 꽃처럼 되고 싶은 것은 욕심이겠죠. 그러나 다시 활짝 피어나는 것은 ________ 입니다.

 

 

 

 꽃피던 날은 가고


   큰길 사거리에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모습이 황홀하다.
   겨우내 꽃송이를 준비한 풋풋한 소녀는 아기자기한 봉오리를 키워 오
다가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변하듯이 마치 그 모습이 터질듯하다. 봄날
의 쌀쌀한 대기에 몸을 감싸고 있다가 만개할 그날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러나 하룻밤 사이 부는 비바람에 무너져 내리는 것은 순간이다. 떨
어지는 꽃잎이 아픈 상처투성이로 한평생 살다간 황혼녘 여자를 연상하
게 한다.
   깨끗하고 고귀하기까지 한 목련의 자태는 한바탕 휘둘린 빗속에 우아
한 모습에서 청승맞은 모습으로 깊어가는 봄날을 따라서 그렇게 간다.
   그곳을 지나면서 여왕 같다고 바라보던 목련이었는데, 자연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후줄근하게 흩어져 나뒹굴고 있는 꽃잎을 보고 있노라면
그 허망함에 우리네 굴곡 있는 인생을 생각한다.
   며칠 후 찬란했던 그 가지에 꽃은 간데없고 연초록의 여린 이파리가
옹기종기 몸을 기대고 어우러진 모습으로 있다. 한 세대가 지나고 또 다
른 새 인생을 설계하는 듯한 모습이 우울한 마음에 그나마 위로를 준다.
   옥이고모가 시집가던 그때도 초봄이었다. 신랑신부의 첫날밤을 동네
아낙들은 침으로 문풍지를 뚫고 깔깔대고 훔쳐보았다. 첫날밤이 무엇인
지도 모르던 철없는 어린 나도 아낙들의 장난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이리저리 따라 다니다 어른들께 혼난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도 달빛에 유난히 하얗게 피어 있는 고운 목련이 꼭 옥이고모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울 너머로 떨고있는 초승달이 왜 그렇게 슬퍼 보였
던지 지금도 이유를 알 수 없다.
   옥이고모 혼례식은 성대했다. 대소가 집집마다 초대하여 거의 한 달
가량 잔치를 벌였다. 새신랑은 어색하기만 했던 처갓집 식구들과도 자
연스레 친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취직이 되었다며 새신랑은 옥이 고모를 데리고 새벽
기차로 떠났다. 옥이고모는 파스텔 톤의 얇은 캐시미어 코트에 예쁜 손
가방을 들었고 신랑은 감색 양복에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었다. 그때 어
린 내 눈에도 두 사람이 정말 멋져 보였고 웃고 있는 옥이고모가 부러웠
다. 먼 옛날의 기억들이 그리움이 되어 영화처럼 오버랩 되어 온다.
   그렇게 떠난 옥이고모는 신혼의 꿈에 젖어 잘살려니 했었는데. 반년
이 흐른 뒤 옥이고모는 임신한 몸으로 해거름 참에 작은 보따리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새살림을 시작하자마자 신랑은 각혈을 했고 병원에 실려 갔다. 알고
보니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 옥이고모는 여기저기 치료를 위해 뛰어보
았지만 이미 병이 깊어진 상태였다. 결국 요양원으로 보내고 옥이고모
는 친정으로 돌아왔다.
   사실 새신랑은 모든 것을 감추었고, 그 동네로 시집와 살고 있는 시누이
가 숨기고 중매를 한 것이었다. 그런 중병을 앓고 있는 줄도 모르고 창백
한 얼굴 때문에 미남이라고 처갓집 친척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새신랑은 새로 얻은 직장도 휴직을 한 채, 병은 이미 깊어 가고 있었
다. 그 후로도 옥이고모는 몇 달을 새신랑에게 오고갔다. 그러나 깊어질
대로 깊어진 병은 현대의학으로도 어쩌질 못했다.
   옥이고모는 친정에서 몸을 풀었고. 새신랑은 속절없이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맞았다. 아들과는 상면식도 못하고 책임 없는 삶을 마감했다.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내가 나이 들어 가끔 전해들은 고모 소식이 너무
나 애닯아서 산골 전동全洞에서 살고 있는 고모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상상도 하기 어려운 가난한 오막살이집을 보는 순간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었고 찾아간 내가 죄스러웠다. 나를 보고 고모는 좋아
서 어려운 살림에도 이것 저것 맛있는 음식을 만드시는데 옛날로 돌아
간 듯 웃고 즐거워하셨다.
   청상의 몸으로 절절한 세월을 보내고 이제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노
파가 되었어도 처녀 적의 그 고운 모습은 어딘가에 남아 있어 귀하고
귀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하룻밤을 묵고 떠나는 나를 동구 밖까지
나와서 손을 흔들고 서 있던 모습이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대로 내 가슴
에 남아 있다.
   옥이고모가 첫날밤을 치르던 날, 초승달빛에 비친 목련을 보며 고모
를 연상했듯. 달빛도 목련도 슬퍼보였던 것이, 왠지 파란만장한 고모의
삶을 예견한 것만 같아 마음이 짠하다. 찔레꽃처럼 아프게 다가오는 고
모의 기억이 밤하늘에 떨고 있는 그믐달같이 외롭다.
   옥이고모도 지난봄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아이는
성년이 되어 부모의 슬픈 사연을 알기나 하는지, 삶에 지친 가난한 표정
에 눈물도 없이 어머니를 보냈다.
   옥이고모는 조용한 성격대로 패랭이꽃처럼 언덕 아래 양지바른 곳에
서 스쳐 지나는 바람결에 아들의 안부를 듣고 싶어 해바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올봄에도 폐가가 되어버린 그 집 뒤란의 목련꽃은 여전하
겠지…….

 

 

이종숙  ----------------------------------------------------------------------
2006년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