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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5월호, 의학에세이] 지나친 건 너도 마찬가지야! - 남호탁

신아미디어 2012. 6. 7. 20:47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해심이 넓어진다는 것은 아닐까요.

 

 

 

 지나친 건 너도 마찬가지야!


   백발의 할아버지가 진료실로 들어섰다. 뻔질나게 병원을 들락거리는
환자였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이끼 낀
습지를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그늘지고 음습하고 칙칙하고……. 아
무리 의사라지만 그런 환자와 마주보고 앉아있다는 것은 달가운 일이
못되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나까지도 끈적끈적한 늪 속으로 떠
밀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곤 했다. 입만 열면 그의 입에선 짜증과 불만과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언제나 그는 연로한 할머니와 중년의 딸을 대동하
고 있었다.
   “어떠셨습니까?”
   건성으로 차트를 넘기며 내가 물었다.
   “안 좋아.”
   환자는 시위하듯 짤막하게 대꾸했다.
   “어떻게 안 좋으신데요?”
   나 역시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이틀에 한 번. 매일 안 나와.”
   “할아버지, 누누이 말씀 드렸지만 이틀에 한 번 대변을 보시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
   이미 충분히 지칠 대로 지쳤고 질릴 만큼 질렸다는 듯 나는 가벼운
한숨을 내뱉고는 말을 흐렸다.
   “지난 주 월요일에는 오전 10시 22분, 수요일에는 오전 8시 54분, 금요
일에는 오전 6시 17분, 토요일에는 낮 2시 18분에 대변을 봤단 말야. 들
쭉날쭉 지 멋대로야.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어. 안 그런가?”
   할아버지가 1/4 크기로 접혀 있던 메모지를 펼치고는 뚫어져라 들여
다보며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똥을 눈 시간이나 방귀가 나온 시간
등 배변과 관련된 사소한 증상 하나하나를 깨알 같은 글씨로 빠짐없이
기록해 놓은 메모지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여보, 원장님 바쁘신데…….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벌써부터 할머니는 힐끔힐끔 내 눈치를 봐가며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고, 당신은!”
   대뜸 할머니 쪽으로 고개를 돌린 할아버지가 발끈 성을 냈다. 할머니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찍 소리 한 번 못한 채 길게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똥이 나올 것 같아 화장실로 달려가면 똥은 나오지 않고…….”
   이미 처방은 나와 있었다. 늘 듣던 소리였고 달리 들을 말도 없었다.
언제 적당히 말을 끊고 할아버지를 돌려보낼 것인가, 그것만이 나의 주
된 관심사였다.
   “내가 기록해놓은 걸 보면 이상하게도 밤 8시에서 9시 사이에 유독
가스가 많이 차고 속이 더부룩한 증상이 나타난단 말야…….”
   단서가 될 만한 중요한 사실을 알아내기라도 한 사람마냥 말을 이어
가는 할아버지의 표정과 말투는 사뭇 진지하기만 했다.
   “아버지, 그것도 지난번에 말씀드렸잖아요.”
   못마땅한 표정으로 할머니 곁에 서있던 딸이 끼어들었다.
   “니가 뭘 안다고!”
   이번에도 할아버지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딸에게 역정을 냈다. 이쯤
에서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그 연세에 이틀에 한 번 꼴로 대변을 보시는 건 지극히
정상이라고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잖아요. 남들이 들으면 할아버지가 자
랑하시는 걸로 안다니까요. 할아버지, 팔굽혀펴기 몇 번이나 하실 수
있으세요?”
   “팔굽혀펴기?”
   난데없는 나의 질문에 할아버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내 말만
되풀이했다.
   “젊을 때처럼 하실 수 있느냔 말씀입니다.”
   “그야 안 되지. 내 나이가 팔십둘인데.”
   별 실없는 소리 다 들어보겠다는 듯 할아버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젊었을 때와 비교하면 팔 힘이 많이 약해지셨잖아요.”
   “그야…….”
   “할아버지, 대장도 근육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세가 들
면서 팔이나 다리의 근육이 약해지는 것처럼 대장 근육도 약해지는 겁
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장의 운동도 무뎌지게 되는 것이구요. 할아버
지 연세에 이틀에 한 번 대변을 보시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니까요.”
   잠자코 듣기만 할 뿐 할아버지는 대꾸가 없었다. 물론 나는 안다, 할아
버지가 나의 말에 동의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적당한 때가 되면
다시 반격해 올 것임을. 그런 사실을 아는 나로선 이참에 확실하게 못을
박아 둘 필요가 있었다.
   “따님은 매일 대변을 보십니까?”
   “아뇨. 저도 이틀에 한 번 꼴로 보는 것 같아요.”
   뜬금없이 자신에게 돌아온 질문에 당황하기는커녕 반갑기 그지없다
는 듯 경쾌한 목소리로 딸이 내 말을 받았다.
   “불편하지 않으세요?”
   “전혀요.”
   짜고 치는 고스톱 판에 앉아 있기라도 한 사람마냥 할아버지가 못마
땅한 표정을 한 채 나와 딸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거 보세요, 할아버지! 제가 늘 말씀드렸다시피 대변을 보는 횟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하세요. 할아버지처럼 지나치게 신경 쓰는 거야말로 대장
의 운동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여기서 끝내야 했다.
   “약을 보름치 처방해드리겠습니다.”
   “거 참…….”
   마지못해 일어서며 할아버지가 툴툴거렸다.


   할아버지를 괴롭히는 것은 기실 대장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성화에
못이며 매년 내시경으로 할아버지의 대장을 들여다봤지만 언제나 정상
이었다. 그 흔한 용종 하나 없을 만큼 할아버지의 대장은 깨끗하기만
했다. 문제는 현상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태도에 있었다. 배변과 관련
된 잡다한 현상을 지나치게 확대해서 해석하는 것에서 모든 문제가 시
작되고 있었다.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도 할아버지에게로만 넘
어갔다 하면 자못 심각한 고민거리로 변해버리는 데 그 원인이 있었다.
똥을 눈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방귀를 뀐 시간, 똥의 색깔이나 모양새
까지 일일이 관찰해 메모지에 빼곡히 적어두고는 나를 볼 때마다 시시
콜콜 주워섬기는 할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내가 다 숨이 찰 지경이었다.
여간 짜증스러운 게 아니었다. 의사가 그러면 쓰느냐며 나를 나무랄 이
도 있겠지만, 어쩌랴. 짜증나는 건 짜증나는 거다. 할아버지가 병원에
나타나기만 하면 할아버지만큼이나 내 얼굴도 어두워진다. 환자도 아닌
데 스스로 환자라 여기는 이를 의사인들 어쩌랴. ‘지나침’ 그게 항상 문
제다. 오죽하면 ‘지나치면 없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으려고. 할아
버지에게 꼭 들어맞는 말이었다. 한데 언제부턴가 할아버지가 짜증스럽
기는커녕 친근하고 측은히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나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 할아버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어설픈 깨달음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를 두고 동병상
련同病相憐이라 부르는가 보다. 인정받기 위해 안달하고, 앞서가기 위해
마음을 졸이고, 아파트 평수는 이 정도는 되어야 하고, 명예는 저 정도는
되어야 하고……, ……, ……, ……, ……, ……, 숨차다. 내 자신이 살아
가는 모습을 찬찬이 들여다보고 있자면 지나친 건 비단 할아버지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꼭 막걸리라도 한 잔 대접했으면 하는 이가 있었
다. 천상병 시인이다. 그 선배와 함께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라치면, 그 선배는 내게 무슨 말을 해주었을까?
   “지나침은 몸을 망쳐요, 할아버지!”
   오늘 아침 나는 환자에게 훈계조로 그렇게 말했다.
   “지나친 건 너도 마찬가지야!”
   거나하게 취해 비틀대며 집으로 향하는 지금, 내 고막을 쑤셔대는 이
소리는 때 이른 이명인가 아니면 환청인가? 아파트 사이로 비쭉 얼굴을
내민 보름달이 천상병 시인의 얼굴을 닮았다.

 


남호탁  ------------------------------------------------------------------------
의학박사.
일반외과 전문의 예일병원 원장.
저서 : ≪대장항문병의 이해≫, ≪똥꼬의사≫, ≪똥꼬이야기≫,

         ≪수면내시경과 붕어빵≫,≪똥은 기똥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