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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5월호, 생태 테마이야기] 나비들의 일생 - 김애자

신아미디어 2012. 6. 7. 20:32

김애자님의 생태 테마이야기 3번째 글입니다. 김애자님의 글이 기다려지는 것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이겠죠. 행복한 시간되세요. 

 

 

 

 나비들의 일생


   1. 종들의 변화
  
5월은 여름이 시작되는 계절입니다. 박새부부가 부지런히 알에서 깨
어나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노란 부리에 물려주는 때입니다. 나비들
도 짝을 짓고 먹이식초가 되는 양배추나 케일 등에 알을 슬어 놓기도
해요. 그런데요. 언제부터인가 배추흰나비와 노랑나비들이 보이지 않습
니다. 대신 무늬가 화려하고 몸집이 큰 나비들만 늘어나고 있어요. 어떤
조건이 맞지 않아 작은 종들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종일토록 긴꼬리제비나비들만 꽃밭을 넘나드네요. 긴꼬리제
비나비는 다른 나비에 비하면 몸집도 큰데다 검은 양 날개 끝에 붉은
점까지 달고 있답니다. 또 양 날개 밑으로 달린 긴 꼬리는 댕기머리처
럼 깜찍스럽기조차 해요. 아무리 봐도 도드라져요. 대체적으로 나비들
은 적들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얼룩무늬 날개를 달고 있거나, 중간
색을 띠고 있어 꽃에 앉으면 눈에 잘 띄지를 않거든요. 그런데 녀석들
은 검은 빛깔로 멋을 부린 것입니다. 어느 장소에서건 자신의 존재가
바로 드러나도록 차림새가 독특한 거죠. 그 가감 없는 당돌함 때문인가,
문득 맨발의 춤꾼 ‘이사도라 덩컨’이 생각나네요. 전통발레에 반기를
들고 맨발에 헐렁한 옷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영혼의 춤을 추었던 그녀
말입니다.

 


   ‘이사도라 던컨’처럼 당돌한 긴꼬리제비나비가 우리 집 후원을 찾은
것은 3년 전부터입니다. 그 전엔 배추흰나비와 작은 부전나비가 많았어
요. 물론 뱀의 눈과 흡사한 무늬를 달고 있는 얼룩나비도 있었고요. 그러
나 봄이 오면 제일 먼저 우리 집을 찾아오는 나비는 몸집이 아담한 배추
흰나비와 노랑나비였답니다. 그런데 점차적으로 작은 종들이 눈에 잘
띄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건 분명 기후의 변화가 아닌가 싶네요.
   제가 이 산골로 들어온 지 14년째입니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만 해도
한여름에도 해만 설핏하면 긴팔 블라우스를 입어야 할 정도로 공기가
쌀랑하여 모기가 없었습니다. 한 5년쯤 지나자 저녁이면 선풍기를 틀게
되었고, 모기들도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살이도 늘어났고
요. 뿐만 아닙니다. 반딧불이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1급수였던 개울물이
오염된 탓이지요. 농촌에서도 주거생활이 바뀌면서 수세식 화장실과 세
탁기와 주방에서 쓰는 세제를 거름장치 없이 마구잡이로 흘려보내니 물
이 오염될 수밖에요. 물을 정화시키려면 하수종말처리장을 시설해야 할
터이나 경비가 워낙 많이 들어 시청담당부서에서도 엄두를 못 내고 있
습니다. 때문에 개울 상류 쪽으로만 골뱅이가 서식을 하여 집 가까이에
선 반딧불을 이제는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하나의 종이 사라지면 다른 종이 찾아와 그 자리를 채우는 모양입니
다. 작은 나비들이 없어진 자리에 새롭게 출현한 것이 긴꼬리제비나비와
호랑나비입니다. 녀석들은 천적인 사마귀나 새들도 만만하게 대들지 않
는 것 같습니다. 작은 종들과 달리 4월 말경부터 여름 내내 유유자적 앞
뒤 정원을 누비며 빨대처럼 생긴 긴 입을 사용하여 꿀을 빨아먹습니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큰 종의 수가 늘어나고 작은 종들이 사라진
다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하는 환경이 바로 우리가 살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지요.
   마을 어귀에 둘레가 6km가 되는 저수지가 있습니다. 이 저수지에는
작은 물고기들은 없고 베스라는 녀석들만 살고 있답니다. 개울물이 유
입하는 상류 쪽으로 봄철이면 빙어들이 몰려와 관광 상품이 되기도 했
으나 지금은 빙어는커녕, 붕어도 한 마리 잡히지 않는다고 해요. 황소
개구리들을 들여다 퍼뜨린 것이 화근이 되어 이번엔 황소개구리를 잡
아먹은 ‘베스’라는 물고기를 외국에서 들여와 풀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베스’란 녀석들은 덩치도 크고 먹성도 완성하여 토종물고기들을 모조
리 잡아먹습니다. 호주에서 여우 먹이로 토끼를 들여온 것이 통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개체수가 늘어나 골치를 앓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
래한 것이지요.
   그렇다고 하여 나비들도 큰 종이 작은 종을 잡아먹는 일은 없을 것으
로 보지만, 먹이로 인한 영역다툼에선 작은 종들이 큰 종들에게 밀리는
것은 당연한 상황일 겁니다. 게다가 이 산골에서도 삼복이면 에어컨을
가동할 정도로 기온이 상승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고요. 지난
해부터 부쩍 좀벌레가 기승을 부려 사과나무와 밤나무가 선 채로 말라
죽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죽은 나무에나 슬었던 좀벌레가 살
아있는 나무를 밑둥치에서부터 갉아먹는 사건은 처음이거든요. 또 양봉
업자들도 원인을 모르는 병이 나돌아 벌들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래저래 유기농 특허를 받은 과수업자들은 보통 애를 먹는 것이 아닙니
다. 이상증상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은 번한 일인데도, 농산물개량
사업자 측에서조차 뾰족한 대안을 내 놓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지 않
을 수 없습니다.


   2. 나비의 일생과 특징
   나비로 시작한 얘기가 빗나갔네요. 현재 우리나라에는 수십 종의 나
비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나비들의 일생을 생각해 보면 인간승리 못잖
은 고난을 겪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처음 알에서 애벌레로,
그리고 몇 차례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되기까지 아슬아슬한 고비를 좀 많
이 겪어야지요. 첫 번째로 겪어야 하는 위험한 고비는 어미가 먹이 식초
가 될 수 있는 케일이나 양배추 장다리에 산란을 해 놓는 것부터 시작됩
니다. 어미들은 지혜로워 알을 한곳에 슬지 않고, 여러 군데로 분산하여
몇 알씩 먹이식초 뒷면에다 낳습니다. 포식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지요. 알에서 깨어나면 녀석들은 살충제라는 약물세례를 받기 십상입니
다. 농약세례를 피하고 나면 어미 새들이 새끼들에게 줄 먹잇감으로 애
벌레들을 수없이 물어가요. 배추밭 주인도 수시로 집게와 깡통을 들고
찾아와선 눈에 띄는 대로 동지들을 잡아가니까요. 참으로 살벌합니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목숨이 아니지요. 방어수단으로 쓸 무기조차 갖
추지 못한 연약한 벌레들이 용케 살아서 25일쯤 되면 번데기로 탈바꿈을
하게 됩니다. 탈바꿈을 하기 전에 애벌레가 성충이 되기까지 네 번의
허물을 벗지요. 벌레들의 몸에는 키틴질이란 특수한 물질이 들어 있어
서 탈피과정을 겪지 않으면 진화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고비를 넘고 고치를 튼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고치를 틀고 번데기로 탈바꿈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먹이의 고단함과
위험으로부터 놓여나니까요. 이때가 성인의식을 치르는 ‘정중동’의 시기
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인의식을 치르는 번데기의 과정에서 부리는 변
신술입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 고치를 트는 경우는 완전히 마른 가랑잎
모양으로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새들의 눈을 속입니다. 또 여름에
고치를 틀게 되면 초록색 나뭇잎과 똑같은 색으로 고치를 틉니다. 고도
의 전략으로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줄 아는 이 신비한 생태 앞
에서 우리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함부로 생명들을 다루는 짓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징그러운 번데기에서 아름다운 날개를 달고 우화하면 암컷일 경우는
날개의 물기가 마르면 바로 짝짓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수놈은 하루
가 지나고 난 다음에야 짝짓기를 할 수 있는데 배추흰나비의 암컷은 먼
저 짝짓기를 마쳤을 경우에는 다른 수컷이 날아와 구애를 하면 몸을 낮
추고 꽁지를 들어 교미를 끝냈음을 알린답니다. 물론 종에 따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애호랑나비나 모시나비처럼 수컷이 암컷과 짝짓기를 끝
내면 암컷의 배 끝부분에 점액질을 분비하여 수태낭이라고 하는 주머니
를 달아 둔다고 합니다. 이것은 암컷이 다른 수컷과 교미를 할 수 없도록
정조대를 채우는 행위와 같다고 볼 수 있지요. 아울러 정조대로 생식기
주머니를 막아버리면 자신의 유전자를 온전하게 지켜갈 수가 있음을 본
능적으로 간파한 것입니다.
   나비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머리, 가슴, 배, 삼절로 되어 있고 머리
에는 더듬이와 눈, 그리고 입이 달려있습니다. 특히 가슴에는 숨 쉬는
기문도 있지요. 다리도 세 쌍인데 앞다리 끝부분은 미각을 느끼는 데
쓰입니다. 더러는 한 쌍의 다리가 퇴화된 네발나비도 있어요. 이 녀석은
번데기로 월동을 하지 않고 산 채로 나무에 붙어 겨울을 보내기도 한답
니다.
   나비의 곁눈은 일반적인 광선만이 아니라 자외선은 물론 한 방향으로
흐르는 광파까지도 감지한답니다. 수컷은 냄새를 분비하는 비늘이 있어
암컷을 유혹하지만, 이 방법도 종마다 다를 수도 있답니다. 왕나비는
뒷날개 밑에 발향샘이 있어 암컷을 유혹할 때 쓴다는군요. 나비들이 짝
짓기를 할 때의 체위는 일단 수컷의 생식기가 암컷에게 삽입되면 몸을
반대로 돌리기도 하고 서로 몸을 마주보기도 합니다. 짝짓기가 끝나면
암컷은 100개에서 200개 정도 알을 낳는다는군요.
  나비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무늬를 달고 있습니다. 이는 색소가 들어
있는 미세한 비늘로 덮여 있기 때문이지요. 빗물에도 젖지 않는 특수한
색소비늘이 나비의 몸에 색깔과 무늬를 만든답니다.
   나비들이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2~3시 사
입니다. 그러나 검정녹색나비나 물빛긴꼬리부전나비는 해 뜰 무렵과 해
질 무렵을 더 좋아해요. 나비들이 잠을 잘 때나 비가 오면 나뭇잎 뒷면이
나 풀잎과 풀줄기 사이에서 날개를 접고 몸을 숨깁니다. 이런 곳은 포식
자들로부터 몸을 보호하기에 안전하기 때문이지요.
   나비들이 좋아하는 색도 종마다 다르답니다. 주로 붉은 색과 푸른색
이 섞인 보랏빛 꽃을 좋아하지만, 호랑나비는 흰색 꽃을, 배추흰나비는
흰색과 푸른색 꽃을 좋아합니다. 또 나비들도 꿀만 먹는 게 아니랍니다.
나비들도 물을 먹습니다. 또 염분도 필요하기 때문에 동물들의 배설물
이나 음식물찌꺼기를 내다버리는 쓰레기더미에서 필요한 소금성분을
섭취하지요.
   그리스어로 나비는 ‘영혼’을 뜻한다고 합니다. 맨발의 춤꾼, ‘이사도라
덩컨’도 죽어 나비가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긴 스카프를 나비의 날개처
럼 목에 걸고 다니기를 즐겼던 그녀는 죽어서도 춤을 추지 않고서는 솟
구치는 열정을 주체할 수 없었을 터이니까요. 이런 나의 상상 때문인지
오늘은 저 긴꼬리검은제비나비의 춤사위가 더 고혹적입니다.
   5월이면 보랏빛 등꽃이 피고, 보랏빛 아이리스도 피고, 오월의 신부,
붓꽃이 핍니다. 이 청순한 보랏빛 꽃들도 하나같이 나비들의 입맞춤을
기다릴 것입니다. 나비들이 입맞춤을 해 주어야만 사랑을 이룰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까요. 오월이 여왕의 계절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김애자  ------------------------------------------------------------------------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
월간수필문학상(1997), 충북수필문학상(1998), 신곡문학상(2004) 수상.
수필집: ≪달의 서곡≫(1996), ≪숨은 촉≫(2003), ≪수렛골에서 띄우는 편지≫(2008).